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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地五)의 나라



제1화 첫 만남

대낮부터 저잣거리가 시끌시끌했다.
“대체 내 몫이 얼마라는 거여?”
“허허, 그러니까 이 놈들을 나눠 봐야 알 것 아녀. 근데 어떻게 나눠야 허나.”
“어서 내 몫을 달란 말여.”
“누가 주기 싫어서 그러나. 나눠 가질 방도를 못 찾아서 그러지.”
티격태격 다투는 사내들의 소리가 달포아저씨네 대장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오는 어깨에 멘 바랑을 고쳐 메며 발걸음을 뚝 멈춰 섰다.
‘또 무슨 일이야? 하여간 조용할 날이 없다니까.’
달포아저씨네 대장간은 저잣거리 가운데에 있다. 호미, 낫, 쟁기 따위의 농기구나 사냥도구를 고치는 대장간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그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장이 서는 날이면 더했다. 오늘도 대장간에선 사소한 시비가 벌어진게 분명했다.
 

제 1화 첫만남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대낮부터?”
지오는 사람들 틈바구니를 헤집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지오야, 마침 잘 왔다.”
지오를 본 달포아저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오가 왔구먼. 이제 입씨름 할 필요 없겠구먼. 지오가 다 해결해 줄 것이여.”
대장간 마당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오라면 금세 답을 찾아 낼 거야.”
“그럼, 그럼. 셈도사 지오잖아.”
저잣거리에서 지오는 셈도사로 통한다. 아무리 어려운 셈이라도 눈 깜짝할 새 계산을 해내기 때문이다.
“지오야, 저기 멧돼지고기 좀 나눠 보거라.”
달포아저씨가 손에 든 칼로 마당 가운데를 가리키며 말했다.
칼이 가리키는 곳을 본 지오는 흠칫 놀랐다. 커다란 멧돼지 다섯 마리가 죽은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그 주위로 사냥꾼으로 보이는 사내 다섯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한눈에 지오는 모든 상황이 짐작되었다.
‘음…….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잡았군. 사냥꾼들이 칼을 고치러 온 참에 여기서 멧돼지를 나눠 갖기로 했는데, 그 일로 시비가 붙은 거야. 멧돼지는 다섯 마리, 사냥꾼도 다섯 명. 그럼 한 사람이 한 마리씩 나눠 가지면 될 텐데, 시비가 붙은 걸 보면 다른 조건이 있는 거야.’
지오의 짐작이 맞았다.
“여기 사냥꾼들이 멧돼지고기를 나눠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어. 잡은 사냥감을 각자 정한 몫으로 나눠 갖기로 했다지 뭐냐. 내가 멧돼지고기를 나눠주기로 했는데, 당최 어떻게 나눠야 할지를 모르겠구나.”
달포아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정한 몫이 어떻게 다른데요?”
나는 고기 중 다섯만큼의 몫을 갖기로 했지.”
사냥꾼 중 덩치가 가장 큰 자가 가슴을 쑥 내밀며 말했다.

“나는 넷만큼 갖기로 했어.”
“난 셋만큼.”
사냥꾼 다섯은 5:4:3:2:1의 비율로 사냥감을 나눠 가지기로 한 모양이었다. 비율이 각각 다르다 보니 얼만큼씩 나눠야 하는지를 놓고 시비가 벌어진 건 당연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시비는 한낮이 되어서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오는 머리 한번 갸웃하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달포아저씨는 멧돼지 중 두 마리만 칼질을 하면 돼요. 두 마리 모두 세 토막씩 내면 되는걸요 뭐.”
“그래? 그래서 어떻게 나누면 되는 것이냐?”
판결을 내리는 원님을 바라보듯, 모두들 지오의 입만 바라보았다.
“멧돼지 두 마리를 세 토막씩 내면 여섯 토막이 되잖아요, 다섯(5)만큼 가지기로 한 아저씨는 한 마리하고, 그 중 두 토막을 가지면 돼요.”
“그럼 나는?”
넷(4)만큼을 가지기로 한 사냥꾼이 지오 곁으로 바싹 다가서며 물었다.
“아저씨는 한 마리하고 한 토막을 가지면 되고요, 셋(3)만큼 가지기로 한 아저씨는 한 마리만 가지면 되지요. 그럼 나머지 세 토막이 남지요?”
“그렇지.”
“이(2)만큼 가지기로 한 아저씨는 두 토막을, 그리고 일(1)만큼 가지기로 한 아저씨는 남은 한 토막을 가지면 맞아요.”
지오를 지켜보던 구경꾼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터진 건 그때였다.
“오호라! 그럼 다섯 마리가 정확히 맞네.”
“저 녀석의 계산이 맞기는 한 거여? 산대나 주산도 없이 계산을 저리 빨리 할 수 있남?”
“맞고말고! 지금껏 지오의 계산이 틀린 적은 한 번도 없다니까. 자로 잰 듯 딱 맞춘다니까. 오죽하면 셈도사라 부르겠어.”
하지만 지오는 구경꾼들의 칭찬에는 관심도 없는 듯 메었던 바랑을 달포아저씨 앞에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저씨, 이번엔 좋은 약초들이 많으니까, 값 좀 잘 쳐서 받아 줘요.”
“이번엔 약초를 좀 캤나 보구먼. 거기 놔두고 가. 약초 장수가 오면 팔아 줄 터이니.”
묵직한 바랑을 들어 보며 달포아저씨가 기분 좋게 웃었다. 바랑엔 지오가 며칠 동안 산을 헤매며 캔 약초들이 가득했다. 돌봐줄 부모 없이 혼자서 살아가는 열두 살짜리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약초를 캐서 파는 일이 고작이었다. 간혹 양반집에서 품팔이를 할 때도 있지만, 그 일만으론 입에 풀칠을 하기도 힘들었다. 약초에 대해 잘 아는 누나를 따라다닌 탓에 좋은 약초를 찾아 내는 기술을 익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두 해 전, 갑작스런 사고로 누나를 잃은 후로 지오는 산에 오르는 일이 많아졌다. 약초를 캐기 위해서기도 했지만, 누나를 그리워할 수 있는 곳으로 산만큼 좋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봉긋봉긋 솟아오르는 봄나물을 보면 절로 누나 얼굴이 떠올랐다. 문득문득 만나는 제비꽃을 보면 작고 곱던 누나 얼굴을 보는 듯 반가웠다.
“지오야, 진달래꽃이 참 곱더라. 요걸로 화전 부쳐 줄게.”
치마폭에 그득 따온 진달래꽃잎을 펼치며 웃던 누나….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서 들깨 기름으로 자글자글 부쳐 주던 누나의 화전을 생각하니, 지오는 절로 군침이 돌았다.
“꼬르륵!”

뱃속에서 요란한 천둥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지오에겐 엽전 하나조차 없었다.
“지오야, 국밥 한 그릇 사주랴?”
눈치 빠른 달포아저씨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괜찮아요. 집에 가서 먹으면 돼요. 안녕히 계세요.”
지오는 꾸벅 인사를 한 후, 바쁘게 걸음을 집 쪽으로 옮겼다. 매번 달포아저씨의 신세를 질 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한숨이 흘렀다. 약초를 캐느라 며칠이나 비운 집에 먹을 것이 있을 리 없었다. 물로 배를 채울 생각을 하니 다리 힘이 풀리며 비칠비칠 비틀 걸음이 났다.
저잣거리를 지나 좁은 고샅길을 막 돌아갈 때였다.
“그 셈법 좀 가르쳐 줄 테냐? 그럼 팥죽 한 그릇을 사 주마.”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지오의 발걸음을 세웠다. 어디서부터 따라온걸까? 갓을 쓴 사내가 지오를 깊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챙이 좁은 갓을 쓴 걸로 봐서 양반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옷차림새와 비싼 발막신을 신은 것으로 봐서는 벼슬아치가 분명했다.
“누구세요?”
사내는 싱긋 웃으며 지오의 팔을 잡아끌었다.
“일단 팥죽부터 먹자꾸나. 네가 셈하는 걸 구경하다가 점심때를 놓쳐 버렸단다.”

팥죽집 가마솥에선 붉은 팥죽이 보글보글 끓었다. 보시기 그득 담긴 팥죽은 꿀처럼 달콤했다. 지오는 게 눈 감추듯 팥죽 한 보시기를 먹어치웠다.
“한 그릇 더 먹으련?”
팥죽을 반도 비우지 못한 사내가 다정하게 물었다. 지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팥죽을 얻어먹더라도 누군지는 알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을 알려 주면, 아까 했던 네 셈법을 알려 줄 테냐?”
지오는 다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나는 황현수라고 한다.”
순간, 지오의 눈이 놀란 토끼마냥 휘둥그레졌다.
“황현수요? *산사 황현수요?”
산사 황현수는 백성들 사이에선 신화와도 같은 인물이다. 중인 출신인데도 뛰어난 산학 실력으로 높은 벼슬에 오른 탓에 ‘실력만 있으면 벼슬아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백성들에게 심어 준 사람이기도 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 황현수라면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지오는 제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얏!”
볼이 얼얼한 걸로 봐서 꿈은 아니었다.
“아저씨가 산사 황현수라는 증거를 보여 주세요. 진짜 황 산사님이라면 제가 했던 셈법을 모를 리가 없잖아요.”
지오는 당돌한 표정으로 사내를 쏘아보았다.

*산사(算士): 산학(수학) 관리.
산사들은 토지를 측량하거나 세금을 정하고, 달력의 날수를 계산하는 등 나라 일에 필요한 기록이나 계산을 하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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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5월 수학동아 정보

  • 이향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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