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2일 오후 1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서울대학교 상산수리과학관 강의실 101호는 사람들로 북적여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교수님부터 빨갛게 상기된 젊은 대학생까지 모두 자리에 앉거나 혹은 앉을 곳이 없어서 뒤쪽에 선 채로 기대에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요? 얼마 뒤 후드티를 입은 평범한 남자가 단상 위에 올랐고 사회자의 소개가 이어졌습니다.“여러분,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신 천재수학자 테렌스 타오 교수이십니다~!”
천재수학자와의 만남
테렌스 타오 교수는 중국계 호주인으로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보인 천재수학자입니다. 그의 천재성은 어린 시절의 일화로 잘 알려져 있지요. 타오 교수의 아버지에 따르면 타오 교수는 2세 때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5세짜리 아이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려 했습니다‘세사미 스트리트’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고 혼자서 수와 단어를 깨우쳤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수학 능력을 보인 타오 교수는 11세 때인 1986년부터는 3년 동안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연속으로 참가해 각각 동메달, 은메달,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타오 교수는 지금까지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역대 최연소 금메달 수상이라는 기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후 20세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24세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정교수가 되었습니다. 이 대학교에서는 가장 어린 나이에 정교수가 된 기록을 세운 것이죠. 타오 교수는 천재성뿐만 아니라 연구 분야가 넓다는 사실로도 유명합니다. 조화해석학, 정수론 등의 순수 수학 분야는 물론 영상 처리와 같은 응용수학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타오 교수는 여러 분야에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지금까지 풀지 못 했던 문제를 여러 개 해결해 냈습니다. 2006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필즈상’을 받았을 때 프린스턴대학교의 수학 교수인 찰스 페퍼만은 “어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타오 교수가 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만들면 된다”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타오 교수는 대한수학회와 미국수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회의에 참가해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지난 12월 11일과 12일에는 서울대학교에서, 16일에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띤 강연도 펼쳤습니다. 특히 12일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소수의 구조와 무작위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이 날의 강연에서 타오 교수는 자신에게 필즈상을 안겨 준 ‘그린-타오 정리’와 관련된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했습니다.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
필즈상은 수학계에서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1936년 만들어졌다. 4년마다 열리는 국제수학자대회 개막식에서 개최국의 국가원수가 직접 상을 준다. 노벨상과 달리 수학자의 장래성을 고려하기 때문에 만 40세 이하의 수학자에게만 준다. 현재까지 총 48명의 수상자가 나왔으며, 공동수상도 가능하다. 테렌스 타오 교수는 2006년 두 명의 다른 수학자와 함께 필즈상을 받았다.
필즈상을 안겨 준 그린-타오 정리
수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정수를 연구하는 분야를 정수론이라고 합니다. 타오 교수에게 필즈상을 안겨 준 ‘그린-타오 정리’는 정수론 분야의 뛰어난 업적입니다. 그것도 정수론을 연구하는 수학자에게 끊임없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소수에 대한 이론이지요.
간단히 설명하면 ‘그린-타오 정리’는 소수로만 이루어진 등차수열을 찾고, 그 수열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를 설명한 이론입니다. 등차수열은 일정한 값만큼 점점 커지는 수가 나열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1, 3, 5, 7, 9, …처럼 2만큼 일정하게 커지는 수를 늘어놓은 수열이 바로 등차수열이지요. 9, 7, 5, 3, 1…도 -2만큼 일정하게 커진다고 볼 수 있으므로 등차수열입니다. 그런데 소수로만 이루어진 등차수열도 만들 수 있습니다.
5 11 17 23 29
이 수열은 6씩 일정하게 커지는 등차수열이며, 각 수는 모두 소수입니다.
7 37 67 97 127 157
이 수열도 30씩 일정하게 커지는 소수로 이루어진 등차수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소수로 이루어진 등차수열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에 타오 교수는 영국의 수학자 벤 그린 교수와 함께 연구한 끝에 임의의 길이를 갖는, 소수로 이루어진 등차수열의 존재를 밝혔습니다.
자세한 원리는 학생 수준을 벗어나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타오 교수는 자연수 중 어느 한 수를 골랐을 때 그 수가 소수가 될 확률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몇 개의 수로 이루어진 등차수열을 골랐을 때 등차수열을 이루는 각각의 수가 소수가 될 확률을 이용해 구한 것입니다. 그 결과 충분히 길면서 소수로만 이루어진 등차수열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힌 것이지요.
이것이 궁금하다!
강연이 끝난 뒤 타오 교수는 쏟아지는 질문에 친절히 답해 주었습니다. 잠시 후, 마침내 기자들에게도 질문할 시간이 돌아왔지요. 타오 교수에게 궁금했던 점을 물어 보았습니다~.
언제 수학자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내 기억으로는 언제나 수학자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10세 때 미적분을 공부하고 있었는데,당시 부모님께서 대학교의 교수님을 정기적으로 만나 볼 수 있게 도와 주셨지요. 그래서 수학을 공부하고 그 길을 걷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습니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최연소 금메달을 받으셨는데, 그런 경시대회가 좋은 수학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지요?
국제수학올림피아드는 제게 즐거운 추억입니다. 하지만 경시대회를 위한 학원이나 훈련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험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좋지않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아는 게 중요합니다.
수학을 공부하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수학은 매우 유용한 학문입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공학, 컴퓨터,의료 등 다양한 분야로 수학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수학자가 될 수는 없지만, 수학을 즐겁게 공부하면 좋겠네요. 수학은 명쾌한 사고력을 갖추는 데도 도움이 되거든요.
어린 시절 받은 교육 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나요?
수학을 공부하느라 다른 공부를 충분히 하지 못했는데, 훗날 연구 논문을 쓸 때 작문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지요. 수학을 좋아하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공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양한 연구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10개 국어에 능통한 동시통역사이신 고모님에 따르면 처음 3~4개 언어가 어려울 뿐 그 뒤로는 구조와 원리를 알면서 언어를 익히는 게 쉬워졌다고 합니다. 수학도 마찬가지예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