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의 신이라 불린 故데즈카 오사무(1928∼1989) 작가의 신작 <;파이돈>;이 사후 31년만에 발표됐어. 후배 작가들과 AI(인공지능)의 협업으로 탄생했다는 소식에 화제가 됐지.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AI로 영생을 꿈꾸는 작가가 있다는데?
이현세 작가, AI에 만화 기법 전수한다!
지난 10월, <;공포의 외인구단>;, <;아마게돈>;으로 잘 알려진 우리나라의 만화가 이현세 작가는 44년간 쌓은 만화 그리는 법을 AI에 전수한다고 밝혔어요. AI로 그림풍과 세계관을 발전시켜 작품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지요. 웹툰 프로덕션 재담미디어와 이현세 작가는 이 작가가 평생 그려온 4174권 분량의 만화책을 AI에 학습시켜, 작가 특유의 그림체를 구사하는 ‘AI 이현세’ 프로젝트를 완성할 계획입니다.
재담미디어 박석환 이사는 “AI 이현세는 AI 생성모델 중 텍스트-이미지 ‘확산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고 했어요. 확산 모델은 데이터를 의도적으로 망가뜨린 뒤, 원래대로 복구하는 과정을 학습해요. 즉 AI가 고해상의 사진을 백지로 만들었다가, 다시 원래의 그림으로 돌려 놓는 작업을 반복하며 그림 그리는 방식을 익히는 것이지요. 박 이사는 “만화 각 컷에 담긴 이미지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AI가 이를 반복 학습한 뒤, 데이터를 확산 모델에 적용하면 특정 단어를 입력했을 때 이름이 붙은 이미지의 평균적인 모습을 그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AI와 인간의 합작, <;파이돈>; 탄생
<;우주소년 아톰>;으로 잘 알려진 故데즈카 오사무 작가의 신작 <;파이돈>;은 AI가 만든 캐릭터와 이야기에 만화가들과 시나리오 작가의 손을 거쳐 30쪽 분량으로 만들어졌어요. 기술을 담당한 일본 게이오대학교 사토리 쿠리하라 교수는 “AI가 데즈카 오사무 작가의 작품을 학습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130개의 줄거리를 만들었다”고 했어요. 여기엔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 기술이 활용됐습니다. GAN은 창과 방패처럼 한쪽은 계속 진짜 같은 가짜 데이터를 만들고, 다른 한쪽은 가짜인지 판단하며 서로 치열한 대결을 벌여요. 이 과정을 반복하면 점점 더 진짜 같은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기술이지요.
●인터뷰
박석환(재담미디어 이사), 이현세(만화 작가)
“노동집약적 예술인 웹툰, AI가 도와요!”
Q왜 ‘AI 이현세’를 기획하셨나요?
박 이현세 선생님은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내 최고의 인기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만큼 작업물이 많고 대부분 당대 최고 수준의 기량이 담긴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AI가 충분히 학습하고 이현세 작가님의 뒤를 잇는 의미 있는 작품을 생성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어요. 또한, 선생님의 화풍이 긴 세월의 변화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문화예술사적으로도 기록하고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QAI 이현세가 나오면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이 만화계에 첫 입문한 20대 때는 펜촉에 검정 잉크를 묻혀 만화를 그렸습니다. 펜촉에 힘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선의 굵기가 달라졌고 완성된 만화의 느낌도 달랐습니다. 힘이 넘치던 시절이니까 화풍도 강했고 주로 강한 힘을 지닌 인물을 그렸죠. 반면 나이가 들면서 선이 좀 단정해졌습니다. 손에 힘이 떨어진 탓도 있고 만화를 그리는 도구가 달라진 것도 있어요.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그리고 싶은 내용이나 인물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화풍이 변했습니다. 이제 제 나이가 70살에 가까운데, AI 기술을 통해 20대 때 제 화풍을 살려낼 수 있다면 좀 더 젊은 분위기의 작품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Q이번 프로젝트로 웹툰계에 어떤 변화가 생기길 바라나요?
이 시대가 변하며 만화가들의 작업 환경이나 과정이 많이 달라졌어요.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만화책 소비가 줄고 웹툰이라는 새로운 만화 분야도 만들어졌죠. AI 기술 역시 만화와 웹툰을 빠르게 변화시킬 거예요. 노동량이 주는 대신에 창작의 고통은 더 강화되겠죠. 저 역시 그림으로 경쟁하던 부분은 줄고, 이야기에 더 집중해서 재미와 감동을 전하게 될 겁니다. AI가 예술의 모든 부분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반복적인 노동의 문제는 최소화될 거라 기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