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인간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 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상 인간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에게 혼란을 주거나 진짜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가상 인간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가상 인간과 잘 지내려면 어떤 점들이 고려돼야 할까요? 전문가 세 분의 의견을 들어보았습니다.
“가상 인간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활발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전창배(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 고학수(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심지원(동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Q다양한 가상 인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상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긴 어렵습니다. 넓게 생각한다면 게임 캐릭터, 챗봇도 가상 인간과 같은 디지털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단계에서 가상 인간을 법적으로 정의한다고 해도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습니다.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거나, 가상 인간에 대한 허가제가 필요해진다면 그때 정의해도 됩니다.
사람과 비슷하게 생기고, 쇼핑과 여행을 다닌다고 해서 인간이라고 부른다면 오히려 인간이라는 거대한 개념을 축소하는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가상 인간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시도도 필요합니다.
Q가상 인간에 대한 모욕 행위나 성적 대상화 등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상 인간이라는 대상보다는 악의적인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동물도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대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행동이 당연시되면 그런 행동이 결국 사람에게까지 향하게 됩니다. 교육을 통해 이를 예방해야 합니다.
Q사칭이나 가짜뉴스 생산에 가상 인간 기술이 이용되는 상황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요?
바이러스와 백신처럼 가짜 정보를 만드는 기술과 가짜를 판독하는 기술이 앞으로 계속 대립할 것입니다. 또 가상 인간이 등장하는 콘텐츠에 자막으로 가상 인간이라는 것을 표시하도록 규제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외국에서부터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국제 공조를 얻으면 좋으나, 추적해서 처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문제가 등장합니다. 어떻게 실제로 효과가 있는 법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법 연구자들의 과제입니다.
Q가상 인간을 포함한 인공지능 윤리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기술은 부작용이 존재합니다. 특히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 분야 대부분에 걸쳐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인공지능 윤리는 기술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서 인공지능 기술이 더 잘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전장치입니다.
인공지능 윤리를 만들고 지켜야 하는 건 결국 인간입니다. 윤리는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수리공 같은 역할이 아닙니다. 기술의 기획, 개발, 활용 과정에 고루 녹아 있어야 하죠. 윤리는 기술에 앞서서, 기술의 모든 단계와 함께해야 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Q가상 인간과 함께 살아갈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여러분이 가상 인간을 만들고, 판매하고, 소비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기술이 올바르게 쓰이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상 인간이 등장한 메타버스는 상상력과 기술이 만나는 영역입니다.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기술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문제는 없을지 같이 생각한다면 좋겠습니다.
이제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이 윤리적으로 기술을 활용하는지, 혹시 ‘윤리 세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두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인터뷰
심지원(동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관점에 따라 가상 인간도 인격을 가질 수 있습니다”
Q가상 인간의 인격에 대한 논의가 실제로 가능할까요?
인격은 오직 사람만 가지고 있는 속성입니다. 그래서 가상 인간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먼저 기계(인공지능)를 수단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사람과 인공지능이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상 인간의 인격에 대한 논의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기계나 인공지능에 친밀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마크 쿠헬버그에 따르면, 가상 인간이 실제로 무엇인지보다 우리가 가상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인격이나 권리를 갖는 기준을 확장한다면 가상 인간의 인격에 대해서 논의가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