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에서 수많은 입자가 쏟아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뮤온’이라는 입자는 양 손바닥을 1분에 약 200개씩 통과하고 있는데 우리 몸은 전혀 느끼지 못하지요. 핵물리학자는 이런 작은 입자들을 가속기에서 만들고 찾아내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입자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검출기’로 말이죠. 핵물리학자들의 ‘헥!헥!’ 숨이 차오르는 추적극을 소개해요!
입자의 정체를 밝힐 첫 번째 단서, ‘상호작용’
뮤온은 전자처럼 매우 작지만 질량은 200배 무거운 입자예요. 높은 에너지의 입자와 방사선으로 이뤄진 ‘우주선’이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다 공기층과 충돌하면 수없이 많은 뮤온이 발생해요. 지표면까지 내려온 뮤온은 가로와 세로가 각각 1cm인 평면을 1분에 평균 1개씩 지나요. 양 손바닥의 면적이 약 200cm2라면, 1분에 200개의 뮤온이 양 손바닥을 지나는 셈이지요.
하지만 사람은 뮤온이 몸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해요. 뮤온은 우리 몸을 이루는 입자와 거의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우리 몸의 입장에서는 무척 다행이죠! 물리학에서 ‘상호작용’이란 두 물체가 힘을 주고받으면서 각각이 에너지를 잃거나 얻는 현상을 말해요. 뮤온은 다른 물체와 상호작용을 하는 정도가 매우 작기 때문에 에너지를 잃는 등의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고, 그 결과 우리 몸은 수많은 뮤온의 폭격을 받아도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입자가속기에서는 뮤온같은 입자가 수없이 많이 만들어져요. 양성자나 핵을 가속시켜 충돌시킬 때마다 입자가 수십여 개에서 수천여 개씩 뿜어나오지요. 이런 입자들을 검출하는 방법 역시 상호작용이에요. 입자가 발생하는 충돌 지점에 ‘검출기’를 설치하면, 새로 생겨난 입자들이 커다란 검출기에 들어가 마주치는 부위와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이 지나간 흔적을 남겨요. 마치 눈이 쌓인 운동장에 발자국이 남는 것처럼요. 핵물리학자는 탐정 수사를 하듯 입자들이 검출기에 남긴 그 흔적을 따라가며 범인을 찾아야 하지요.
입자의 정체를 밝힐 두 번째 단서, 질량
마트에서 바코드를 찍으면 상품의 이름과 가격을 알 수 있어요. 바코드가 상품의 이름표인 셈이지요. 가속기에서 생겨나는 입자는 너무 작아 눈으로 볼 수 없으므로, 이름표가 있어야 충돌로 무슨 입자가 나왔는지 알 수 있어요. 입자의 이름표는 질량이에요. 서로 다른 입자는 제각기 다른 질량을 지니고 있어 입자 하나의 질량을 알아내면 그 정체를 알 수 있지요. 문제는 크기도 질량도 매우 작은 입자가 빠르게 움직여 저울로 질량을 측정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다행히도 물리학자들은 입자가 움직인 경로를 통해 질량을 계산할 수 있는 공식을 알고 있어요. 바로 ‘운동량’이라는 물리량을 이용하는 거예요. 물체의 운동 상태를 나타내는 운동량은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계산돼요(운동량=질량×속도). 즉, ‘입자 탐정’은 입자가 검출기에 남긴 발자국의 모양으로 속도와 운동량을 알아낸 뒤, 운동량을 속도로 나눠 질량을 구하면 입자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지요.
입자의 속도를 알아내는 방법은 간단해요. 속도는 입자가 이동한 거리를 이동 시간으로 나눈 값이거든요(속도=이동 거리÷이동 시간). 입자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얇은 검출기 두 개를 특정한 거리를 두고 차례로 설치하면 입자가 첫 번째 검출기를 지나고 나서 두 번째 검출기를 지날 때까지의 시간을 잴 수 있어요. 두 검출기 사이의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속도가 나오지요.
입자의 운동량은 검출기에 자석을 설치하면 구할 수 있어요. 가속기에서 만들어진 입자 일부는 전자와 양성자처럼 전하를 띠어요. 전하를 띠는 입자는 자석이 근처에 있으면 특정한 방향으로 휘는 ‘로렌츠 힘’을 받지요. 예를 들어 앞으로 움직이던 전자의 왼쪽에 N극이, 오른쪽에 S극이 있으면 전자는 위로 휘어요. 이때 운동량이 작을수록 많이 휘고, 클수록 적게 휘어요. 따라서 입자가 휜 정도를 분석하면 운동량을 계산할 수 있답니다.
속도와 운동량을 알아내는 검출기는 다르다!
실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등의 가속기에서 사용하는 검출기는 어떤 모습일까요? 검출기는 측정해야 할 물리량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부분으로 나뉘어 각각이 서로 다른 구조와 물질로 이뤄져 있어요. 제가 참여하는 CERN의 앨리스(ALICE) 실험은 무거운 핵의 충돌로 만들어지는 쿼크와 글루온이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하는지 알아보고 있는데, 입자의 속도를 측정하는 곳은 동그란 원통 검출기의 바깥쪽이에요. 약 30cm 간격을 두고 설치된 두 검출기는 약 100억 분의 1초까지 시간을 잴 수 있어 순식간에 지나가는 입자의 이동 시간도 정확히 잡아챈답니다.
한편, 원통 안쪽 입자의 운동량 측정하는 부분은 최대한 적은 양의 물질로 만들어요. 입자가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면 경로가 조금씩 바뀌며 휜 정도가 달라져 운동량을 계산할 때 오차가 생길 수 있거든요. 입자의 경로를 알아내는 데 필요한 만큼만 상호작용을 하도록 검출기를 만들어야 해요.
최근에 CERN에 설치된 검출기에는 50~300μm* 두께로 매우 얇게 만든 실리콘 센서가 겹겹이 쌓여 있어요. 이 센서들은 바둑판처럼 작은 칸들로 나뉘어 있지요. 이처럼 센서를 얇게 만들고 칸을 나누는 이유는 각 입자가 검출기의 어느 부위를 지나갔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예요. 입자가 특정한 층과 칸을 지날 때마다 발자국을 기록하거든요. 따라서 센서의 두께가 얇을수록, 칸이 작을수록 입자의 경로와 속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어요. 앨리스 실험에서는 한 칸의 가로와 세로가 각각 30μm로 매우 작은 실리콘 검출기를 설치할 예정이랍니다. '
용어정리
* μm : 마이크로미터. 1μm는 1m 보다 100만 배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