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개봉했던 SF영화 <;2012>;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지진과 화산 폭발, 해일 등 각종 재난이 한꺼번에 일어나요. 언뜻 흔한 소재처럼 보이지만, 재난이 일어난 이유가 저 같은 핵물리학자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어요. 바로 ‘중성미자’라는 입자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물질과 잘 반응하도록 성질이 변하면서 지구의 내부 물질과 반응해 지각 등을 붕괴시켜버린다는 설정이었죠.
중성미자, 대체 어떤 입자이기에 이런 상상이 가능했던 걸까요?
내 몸도, 검출기도 유유히 통과하는 ‘유령’, 중성미자!
3화(7월 15일 자)에 나왔던 ‘뮤온’이라는 기본입자*를 기억하나요? 우주에서 쏟아져 양 손바닥을 1분에 약 200개씩 통과하지만, 우리는 전혀 느낄 수 없다고 설명했어요. 뮤온이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과 반응하지 않고 통과해버리기 때문이지요.
뮤온보다 반응을 하는 정도가 더 적어 ‘유령입자’라 불리는 물질이 있어요. 손톱만 한 면적을 1초에 약 700억 개씩 통과해버리는 녀석이지요. 또 다른 기본입자 중 하나인 ‘중성미자’예요. 중성미자는 전하*를 띠지 않고 질량이 매우 작아요. 전자기력과 강한 핵력도 무심하게 지나쳐 지금껏 소개한 검출기로는 중성미자를 찾을 수가 없어요.
중성미자는 표준모형이 설명하는 기본 힘 중 유일하게 ‘약한 핵력’을 통해서만 힘을 받아요. 약한 핵력은 핵을 이루는 물질 중 하나인 ‘중성자’가 붕괴해 양성자와 전자, 중성미자를 내보낼 때 발견되는 힘이에요. 이때 나오는 전자를 ‘베타선’, 중성자 붕괴 과정을 ‘베타 붕괴’라 불러요. 베타 붕괴는 태양에서도 일어나 수많은 중성미자가 태양빛과 함께 지구로 쏟아지지만 우리는 느낄 수 없지요.
문제는 약한 핵력을 관찰하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이유는 약한 핵력을 전달하는 ‘매개입자’의 성질에 있어요. 모든 힘이 그렇듯 약한 핵력도 자기만의 매개입자를 통해 전달돼요. 강 위에 뜬 두 배에서 사람이 공을 주고받으면 서로 밀려나는 힘을 받는 것처럼, 입자는 매개입자로 힘을 주고받지요.
약한 핵력의 매개입자는 독특한 성질이 있어요. 짧은 시간 동안 생겼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가상입자’란 사실이죠. 마치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요. 이런 탓에 우리에게 익숙한 전자기력 등에 비해서 약한 핵력을 통한 물질 간의 상호작용은 매우 드물게 나타나요. 수많은 중성미자가 어떤 물질과 만나도 극히 일부만 물질과 반응하지요. 이런 탓에 여러 반응을 일으키며 질량 등의 특징을 알아내는 실험을 하기가 어려운 거죠. 중성미자가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이유를 알겠죠?
물리학자의 발견, “중성자에서 유령이 나타났다!”
이렇게 찾기 어려운 중성미자는 언제 처음 알려졌을까요? 최근의 물리학적 발견이 대부분 그렇듯 이론을 바탕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입자가 아마 있을 것 같다!”며 예측한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20세기 양자역학에 큰 영향을 끼쳤던 오스트리아 이론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였죠.
파울리가 단서를 얻은 것은 1930년대 이뤄지던 중성자 붕괴 실험에서였어요. 당시 물리학자들은 중성미자가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중성자가 붕괴하면 양성자와 전자만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이전까지 밝혀진 물리 법칙에 따르면 반응 전후 각 물질의 질량과 에너지 총합이 보존돼야 하기 때문에, 실험을 하며 이 점을 꼼꼼히 확인했지요.
그런데 웬일일까요? 아무리 정밀하게 측정해도 질량과 에너지의 총합이 반응 전보다 반응 후에 줄었어요. 특히 전자의 운동에너지가 예상보다 항상 적게 측정됐죠. 혼란스러운 일이었어요. 질량과 에너지가 보존된다는 법칙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입자가 나와 전자가 차지했어야 할 운동에너지 일부를 빼앗았어야 했어요.
파울리는 후자가 맞을 거라 생각해 전하를 띠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없는 입자가 있을 거라 예측했어요. 물리학자들은 이 입자를 찾기가 힘들어 유령 같다는 뜻의 ‘유령입자(ghost particle)’라는 별명을 붙였지요. 그러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핵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1934년에 중성자 붕괴에 대한 이론을 정밀하게 세우면서 이 유령입자가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이고 매우 작다는 뜻에서 ‘중성미자’라는 이름을 붙였답니다.
중성미자, 나는 네가 남기고 간 흔적을 알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1946년에야 중성미자만이 남길 수 있는 흔적을 찾아냈어요. 실험을 이끈 미국 물리학자 프레더릭 라이너스는 이 업적으로 1995년 노벨 물리학상까지 수상했지요. 라이너스는 중성미자가 양성자와 반응하면 중성자와 ‘양전자’를 만든다는 점을 이용했어요. 양전자는 전자의 반입자예요. 전자와 질량을 포함한 모든 성질이 같고 전하만 반대로 양전하를 띠지요.
양전자는 전자와 만나면 소멸되며 빛 알갱이인 광자를 만들어요. 광자가 나온다는 것은 빛이 나온다는 뜻이지요. 즉, 양성자와 전자만 있는 깜깜한 곳에서 빛 한 줄기가 갑자기 마법을 부린듯 나타난다면 중성미자가 양성자와 반응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지금도 물리학자들은 중성미자를 검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캠퍼스를 포함한 국제연구팀은 남극 깊은 곳 지하에 아이스큐브 중성미자 관측소를 짓고 빛을 감지하는 검출기를 설치했어요. 우주에서 온 중성미자가 다른 입자들이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는 땅속에서 양성자와 반응해 빛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거지요. 일본 ‘가미오칸데’는 지하 1km 지점에 거대한 물탱크를 두고 중성미자를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도 2021년 완공을 목표로 강원도 정선군에 중성미자 검출기를 건설하고 있고요.
이처럼 연구가 활발한 이유는 중성미자에 대해 인류가 모르는 게 아직 많기 때문이에요. 가장 기초적인 정보인 질량조차 정확하게 밝히지 못했지요. 이런저런 반응을 일으켜보면서 입자의 성질을 알아내야 하는데, 중성미자는 어떤 물질과도 잘 반응하지 않아서예요. 중성미자의 성질을 밝히기 위한 다음 연구, 여러분이 해보면 어떨까요?
용어정리
*기본입자 : 더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입자. ‘표준모형이론’에 의하면 세계에는 기본입자가 17개 있다.
*전하 : 물질이 지니는 전기적 성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