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공 챔버에 들어가기 전키블 저울의 모습. 실험할 때에는 금속으로 만든 저울을 진공 챔버에 넣고 뚜껑을 닫아 내부를 진공 상태로 만든다.
6월, 무척 더운 날이었지만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지하 실험실은 고요하고 시원했어요.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자 나타난 실험실 중간에는 육중한 기계 덩어리가 놓여 있었죠. 놀란 기자가 물었어요. “이게 저울이라고요?”
“맞아요. 이 기계가 바로 ‘키블 저울’입니다.”
기자를 안내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김명현 박사가 대답했어요. 사진을 찍기 위해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커다란 강철 상자 안에 든 압력밥솥 같아 보이기도 했지요.
‘키블 저울’은 전자기력을 이용하여 질량을 정밀하게 재는 기계예요. 1975년, 영국의 물리학자인 브라이언 키블이 발명했지요. 이곳의 키블 저울은 오차가 1000만 분의 1kg 정도로 정밀해요.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요? 0.0000001kg, 즉 100㎍*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어요. 머리카락 한 올이 0.002g 정도라 치면, 머리카락 무게의 1/20까지 측정할 수 있는 거예요.
“키블 저울이 워낙에 정밀하다 보니,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건물의 미세한 진동도 측정에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진동이 적고 고요한 지하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죠. 바닥에 진동의 영향을 줄이는 거대한 콘크리트 블록을 깔고 그 위에서 키블 저울을 만들었답니다.”
물론 이 저울이 처음부터 정밀했던 건 아니에요. 다른 나라들이 이미 30~40년 전부터 키블 저울 연구를 해온 데 비해 우리나라는 지난 2012년에야 연구의 첫 삽을 떴지요. 시작이 늦었지만 연구 4년 만인 2016년에 키블 저울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현재의 수준으로 정밀도를 끌어올리는데 4년이 더 걸렸지요.
덕분에 우리나라 연구팀은 올해 세계 최초로 열린 ‘국제 비교’에 참가할 수 있었답니다. 국제 비교는 정확한 질량 측정을 위해 각 나라의 키블 저울로 측정한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을 비교하는 작업이에요. 정밀한 키블 저울을 가진 국가만 참여할 수 있는데, 이번에 우리나라가 미국, 캐나다, 프랑스, 중국과 함께 참가한 것이죠.
용어정리
* ㎍(마이크로그램) : 100만 분의 1g을 나타내는 단위.
* 킬로그램 원기 : 킬로그램의 표준이 되는 금속 기구. 1kg은 130년 간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으로 정의되다가, 지난 해 플랑크 상수를 기준으로 재정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