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이들과 국립중앙과학관의 천체관에 갔습니다. 천체관에는 머리 위를 가득 덮는 돔 화면이 있는데, 3D 영화를 틀어주거나 밤하늘 별자리 해설을 해 주죠. 별자리 해설을 하는 시간이 되자, 돔 화면이 어두워지더니 별들이 빛을 냈습니다.
밤하늘의 잡티는 잡티가 아니다
“여기 있는 별들은 모두 반짝이는 점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점처럼 보이지 않는 별도 있어요. 혹시 찾으셨나요?”
별자리를 해설해 주는 선생님이 갑자기 물었어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보니 별과 별 사이에 무언가 흐릿한 빛 덩어리가 보인 것도 같았습니다. 단지 제 눈이 잠시 흐릿해서 잘못 보았거나, 돔 화면 자체에 있는 잡티라고 생각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죠.
아주 먼 옛날 사람들도 이런 별빛을 봤다면 처음에는 잘못 본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아니면 깨끗하고 완전한 줄 알았던 하늘에 잡티 같은 흠집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죠. 실제로 당시 사람들은 처음에 반짝이는 점처럼 보이지 않는 별빛들을 별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어요. 시간이 꽤 지나서 많은 사람이 똑같은 현상을 확인한 뒤에야 하늘에도 잡티, 즉 ‘별구름’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죠.
별구름을 최초로 기록한 책은 1000년 전 페르시아의 ‘붙박이별의 서’예요. 10세기 페르시아의 천문학자 압드 알라흐만 알수피가 지은 책이죠. 책에는 밤하늘의 조그만 별구름이 안드로메다 자리에 있다고 적혀 있어요. 알수피는 별구름을 물고기의 입 주변에 있는 작은 점 모양으로 표시해 놓기도 했죠.
약 800년 후, 18세기 프랑스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는 특이한 천체 110개를 정리해 목록을 만들었어요. 여기에는 별이 잔뜩 모여 있는 성단, 별이 폭발한 뒤의 흔적인 성운도 있었습니다. 알수피의 책에 나오는 것과 같은 별구름도 여럿 있었죠. 제가 천체관에서 봤던 흐릿한 빛 덩어리도 바로 그 별구름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안드로메다 은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천체예요.


잡티인 줄 알았던 은하의 비밀
지금은 은하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이 단어가 처음 나오던 때인 192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은하는 원래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은하를 가리키는 말이었어요. 다른 말로는 은하수라고 하죠. 지구에서는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띠 모양으로 보여요.
19세기 말 사람들은 은하수가 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습니다. 은하수 바깥의 세상은 더 없다고 생각했죠.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를 포함한 몇 명만이 은하수 바깥에 또 다른 은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1923년,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안드로메다 별구름까지의 거리를 재면서 이 별구름이 은하수의 지름보다도 수십 배는 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동시에 안드로메다 별구름도 은하수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별이 모여 있는 은하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이때부터 은하는 은하수 하나를 뜻하는 게 아닌, 수많은 별구름을 가리키는 말이 됐습니다. 은하수의 이름 또한 우리은하로 바뀌었어요.
안드로메다 은하가 갖는 의미는 무척 큽니다. 우리은하만 해도 반지름이 5만 2850광년●이나 되고, 별이 1000억 개가 넘어요. 안드로메다 은하의 반지름은 11만 광년으로, 우리은하 근처의 은하 중 가장 크죠. 이처럼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기존에 생각하던 것에 비교할 수도 없이 훨씬 넓고 크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에 2조 개 정도의 은하가 있다고 추측합니다. 만약 별구름을 얼굴의 잡티처럼 생각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이처럼 놀라운 사실을 절대 알 수 없었을 거예요.
필자소개
홍성욱(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