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가이드마이페이지








편집자 주
과학동아 2022년 9월호, 2025년 7, 9월호에 이어서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기계화 의체가 널리 퍼진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좀 더 인간적으로 조율하려는 인형사 지망생 케이의 모험을 다룬 ‘비오 마리오네트’를 게재합니다.

 

 

“월급을, 다음 달에, 주시겠다고요?”

케이(K)가 세 번째 되묻는다. 튜닝숍 사장인 유리는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저번에 폭주족이 가게 쇼윈도를 박살 내는 바람에 수리비가 많이 들었어.”

“그래서, 월급을, 다음 달에 주시겠다고요? 저는 폭주족 데이터도 뜯어오고, 라보도 구했는데, 월급을, 다음 달에, 주시겠다고요?”

인형사는 어른이 되면 전부 어딘가 이상해지는 걸까? 케이는 인생 첫 임금체불을 통보받자 머리도 텅 빈 듯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 방법은 스승인 제이(J)에게 배웠거나, 제이 때문에 익힌 것들이었다.

“메이―데이―.”

라보를 낚아채 끌고 가는 데는 어떤 가책도 없었다. 오토바이가 한바탕 휩쓸고 갔다는 튜닝숍 메이의 사정 따위야 알 바 아니었다. 케이에게도 자기 사정이 있었다. 케이도 사고 싶은 게 있었고, 비싼 오토마타를 망가뜨리고 그 수리에 여념이 없는 제 스승도 돌봐야 했다.

“케이, 케이!”

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사장이 케이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하지만 케이는 제 어깨를 잡은 사장의 의수를 잡아서 내렸다.

“라보 팔아서 제 월급 떼고 나머지 돈은 돌려드릴게요.”

“케이, 밀린 월급을 받자고 오토마타를 경매에 올리는 건 지나치다고.”

“나머지 돈 돌려드린다니까요?”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케이는 여전히 라보를 옆구리에 낀 채, 마뜩잖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라보는 오래된 태엽들이 맞물리는 소리를 내며 딱딱하게 허우적댄다. “네 월급을 다음 달까지 미루겠다는 소리가 아니야”라며 유리가 침착하게 협상을 시도했다. 그는 케이를 설득하려고 튜닝숍 메이의 현재 재정 상황과 쇼윈도 수리 견적서까지 보여줬다.

튜닝숍 메이의 정면 유리는 아직도 복구되지 않았다. 바야흐로 유리창 시공업체만 풍요로운 시절이었다. 하루에도 튜닝 거리의 가게들을 들이받는 폭주족 오토바이 서너 대쯤은 꼭 있었기 때문이다. 라보가 그런 폭주족에게 납치당한 날, 그 오토바이 운전자가 깨부순 유리창도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 세계의 기계화 의체 시장을 사실상 지배하는 다국적 테크 업체, 쾨르퍼사는 이 사람들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이들에게 보복하고 있었다. 폭주족들은 물류센터에 그래피티를 그리거나, 고가의 물품을 보관해 놓는 창고에 진입해 도둑질하거나, 창고에 불을 지르곤 했기 때문이다.

도심에는 쾨르퍼사 본사도 있지만 정작, 매장 유리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는 드물었다. 그 얼마 없는 시공업체들이 튜닝 거리의 수리 공사들을 도맡자 결국은 모든 공사의 일정이 지연되는 중이다. 튜닝숍 메이의 깨진 유리 사이로 거리의 바람이 들어온다. 만약 겨울이었다면 두 사람은 외투를 입고 담요를 두른 채 대화했을 것이다.

“저는 그 돈이 없으면 곤란하다니까요?” “

어제는 매장 임대료를 지불했고, 모레부터 디튜닝(detuning) 예약이 하루에 다섯 개씩 잡혀 있어. 오늘부터 6일 후면 네 월급을 줄 수 있어. 며칠만 기다려주지 않을래?”

“일주일이나 기다리라고요? 그러면 라보는 우리 집에 가져갈 테니까, 일주일 후에 월급하고 바꿔요.”

“케이, 그건 곤란해……. 네 스승이 라보를 분해하려고 하잖니.

” “메이―데이―.”

최근에 스승은 전쟁 전 구시대에 제작된 오토마타를 분해하다가 박살 내고 말았다. 그 탓에 수리비는 수리비대로 못 받고 욕은 욕대로 먹었으며, 복잡한 오토마타를 무료로 수리해줘야 하는 처지가 됐다. 케이의 스승 제이는 뛰어난 인형사였지만, 그도 어디까지나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인형사의 세계에 발을 들인 사람이다. 전쟁으로 제작 기술이 단절된 구시대의 오토마타는 현대의 인형사가 그 실물을 보더라도 구조나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상한 데서 집요한 스승은 결국 돈 되는 의뢰는 전부 제쳐두고 옛 오토마타 분해와 재조립에 몰두했다.

케이는 돈이 필요했다. 스승이 굶어 죽든 말든 쓰러지든 말든 상관없이, 케이 자신은 먹고살아야 했다. 월급을 받으면 살 식료품 목록까지 진작 짜놨다. 나머지 돈은 어디에 쓸지도 계획을 적어놓았다. 그러고도 남은 돈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쓸 생각이었다.

그렇게 오늘만 기다렸더니 임금체불이라니, 케이는 휘몰아치는 분노로 라보를 당장이라도 산산조각 내고 싶었지만, 곧 이성이 돌아와 라보를 팔아서 그 돈으로 체불 임금을 충당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유리 사장이 정말로 돈이 없다면 케이는 라보를 데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월급을 받는다면 무사히 돌려줘야 하니까 라보에게 드라이버를 들고 달려들 스승 정도는 막아줄 테지만.

“잠깐만, 케이. 라보는 튜닝숍 메이의 사장인 나, 유리가 소유주야.”

“네, 구시대 오토마타의 소유주이시고 알바생에게 월급 줄 돈도 없으시죠. 돈 생기면 부르세요, 그때부터 일할게요. 라보, 가자.”

“메이―데이…….”

“케이! 라보를 네가 데리고 나가면 위험해!”

위험하기는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 몽키 스패너로 뒤통수라도 갈기려는 거야? 케이는 슬슬 짜증이 났다. 임금체불한 사장에게 한마디 하려고 홱 돌아서자마자, 사장은 유리가 있어야 할 정문 프레임으로 나가려는 케이의 뒤통수를 붙잡더니 바닥으로 세게 눌렀다. 그대로 케이는 허리가 접혀 주저앉았다.

“아이, 씨!”

“섹터 3 치안유지대입니다. 도난 방지 시스템이 작동해 즉시 출동했습니다.”

“도착 시간 22초. 괜찮으십니까?”

“아무 일도 아닙니다. 오토마타가 스스로 밖에 나가려고 해서 아르바이트하는 청소년이 붙잡은 것입니다.”

“예, 알았습니다. 치안유지비 청구서는 모레까지 등록된 계정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 달 내에 지불하십시오.”

무광 검은색의 인간형 로봇 다섯 기는 대오를 맞춰 돌아갔다. 중무장 로봇들이 걸을 때마다 콘크리트 바닥에 금이 갔다. 그렇게 바닥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여기서 일하며 처음 본 로봇들이었다. 유리 사장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케이에게 좋은 일은 없었을 듯했다.

“월급은 열흘 안에 마련해서 줄게. 치안유지대는 쾨르퍼사의 유료 서비스여서 한 번 출동하면 그 회사에 돈을 내야 하거든.”

근처 시장이 아니라 자동차로 가야 하는 마트에서 비싼 스파게티 소스를 사는 사장이, 케이의 월급만큼 모아둔 돈도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신의 스승을 생각하면, 유리 혹은 입실론이라는 이 사람도 어느 방향으로는 대책 없는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나쁜 예감이 케이의 목뒤를 스쳤다.

“신고도 안 했는데 왜 들이닥쳐요?”

“그게 쾨르퍼사가 돈을 버는 방식이니까. 조만간 서비스 해지하려고. 생체칩 해킹 범죄가 계속 일어나고 있어. 섹터 3에선 포맷 범죄라고 하던가.”

해킹 범죄가 일컫는 범법 행위의 영역은 넓었다. 무선 주파수 식별(RFID) 방지 처리가 되지 않은 가방 속의 카드 정보를 몰래 빼내는 스키밍부터 그래픽카드 수천 개가 병렬 연산 중인 섹터 3 심해의 데이터센터에 침입해, 채굴 중이거나 채굴한 암호 화폐를 탈취하는 일까지 수많은 일들이 해킹 범죄로 불린다.

포맷 범죄도 넓게 보면 해킹 범죄이긴 했다. 인형사들이 만든 기계화 의체와 더불어 쾨르퍼사의 기계화 의체인 비오-아우토(Bio-Auto)를 구동하는 생체칩을 탈취하는 행위니까. 이 경우에는 다른 해킹과는 달리 해커가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타인의 몸을 마음대로 조종해 골탕 먹이는 것도 범죄라면 어쩔 수 없지만…….

“생체칩 해킹을 왜 포맷 범죄라고 부르죠?”

케이는 라보를 매장 안쪽에 다시 갖다 놓았다. 스스로 걷지 못하는 라보는 유리에게 안아달라는 듯 제 두 팔을 들었다. 사장은 라보를 안아서 오토마타가 늘 앉아 있던 자리로 옮겼다.

“너도 디튜닝을 해봐서 알겠지만 쾨르퍼사의 비오-아우토는 착용자의 뇌에 직접 작용해. 그러니 해커가 생체칩을 해킹하면 그 사람의 팔다리를 멋대로 움직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해커가 자신의 의지를 그 사람의 의지에 덮어쓸 수 있는 거야.”

“쾨르퍼사 보안이 그렇게 쉽게 뚫린다고요?”

“어차피 사람이 만든 시스템이야, 컴퓨터가 스스로 구축한 세계에도 빈틈은 반드시 있는데, 사람의 시스템이 완벽할 리가.”

인형사 입실론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라보의 흐트러진 머리칼과 옷매무새를 말끔히 가다듬어줬다.

“인형사들이 만든 기계화 의체가 해킹당하면 착용자는 떼어내면 그만이야. 하지만 비오-아우토는 다르지, 팔을 떼어내면 그 팔이 잘리는 고통을 느껴. 다리의 작은 튜닝 부품을 폭주시키거나 전원을 꺼버리면 착용자의 뇌는 그 의체의 기능이 사라졌다고 인지하지. 이 도시에서 포맷 범죄는 인형사들의 장난과는 차원이 달라. 엄연히 실재하는 큰 고통이야.”

“그렇다면 뇌에 직접 연결된 비오-아우토는 해킹당했을 때 뇌에 미치는 영향도 크겠네요. 만약 이 착용자가 뇌에 메모리 포트를 튜닝했다면, 생체칩 해킹으로 그의 기억에 직접 접속할 수도 있어요.”

튜닝숍 메이의 쇼윈도를 박살 낸 폭주족도 메모리 포트가 있었던가? 케이는 모른다. 그들은 얼굴 전체를 가리는 풀 페이스 헬멧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메모리 포트 튜닝은 섹터 3에선 누구나 하는 기본 튜닝이었다. 메모리 포트에 칩을 넣으면 사람들은 기억력과 학습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 메모리칩의 기능도 다양했다. 사람들은 뇌 성능의 효율을 올려 감각을 더 예민하게 할 수도, 또는 운동 능력을 아주 크게 높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간단한 상호작용만으로 서로의 기억이나 정보를 공유할 수도 있었다.

케이는 메모리 포트를 만들어서 칩 몇 개 넣어보겠다고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다는 행위 자체가 소름 끼쳤지만 섹터 3의 거의 모든 사람이 이 튜닝을 했다. 만약 그 폭주족도 메모리 포트 튜닝을 했다면, 심지어 메모리칩까지 넣었다면…….

폭주족들이 구시대 오토마타인 라보를 납치해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간 사건은, 단순히 섹터 3의 지배자인 나이아(NIA)에게 강제 집행당했던 불량배들의 소행이 아닐지 모른다.

‘만약 생체칩을 해킹당한 상태였다면?’

이 사건에 불량배들이 아니라, 불량배와 섹터 3의 지배자가 엮인다. 이 지배자는 쾨르퍼사의 핵심 임원. 쾨르퍼사 외부 세력이 생체칩을 해킹하는 것보다, 쾨르퍼사가 특정 개인의 생체칩을 직접 해킹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쉽다.

“사장님, 저, 그 언덕 끝까지 가봤잖아요.”

“응. 거기서 본 것들도 얘기해줬지. 꽤 펑키(funky)했고. 쾨르퍼사 오토마타 창고를 박살 내는 아주 큰 사고를 쳤다지? 나이아가 나설만 했어. 카운터컬쳐(counterculture)도 그 정도면 예술이야. 네 스승도 꽤 좋아했잖아?”

이해할 수 없는 말의 연속이었지만 입실론은 케이의 이야기를 확실히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 사건을 잊기 어려운 사람이기도 했다. 구시대의 귀한 오토마타를 비싼 돈 주고 구해왔더니,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들이닥쳐 인형을 가로채가고, 수습생이 자전거를 타고 부두를 가로질러 오래된 발전소에서 오토마타 라보를 구해온 사건이었으니까.

“이번에 유리창을 깬 폭주족이 그때와 같은 무리라면 이번 폭주족은 자기 의지로 운전한 걸까요, 아니면 급하게, 억지로 운전했을까요?”

“억지로 운전한다기에는 꽤 잘하던걸.”

“저는 그걸 모르겠어요. 그곳을 기지로 삼은 무리는 나이아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구시대 오토마타 창고에 불을 질렀으니까요? 오토바이를 탄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테고요. 그리고 나이아는 인형사가 제작한 인형을 원해요. 아무리 폭주족이어도 이곳이 사장님 공방이란 사실은 모를 거 아니에요.”

“쾨르퍼사에서 이미 내 소재, 정체를 파악해 오토바이 폭주족을 이쪽으로 보냈다는 추론이구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사람에게 의식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워.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케이는 튜닝숍의 창고에서 바로 그 오토바이에서 뜯어온 블랙박스를 가져왔다. 사장은 폭주족의 바이크에서 전리품처럼 챙겨온 그 블랙박스를 케이의 집에 두면 위험할 거라면서 튜닝숍 메이의 창고에 두기를 권유했었다.

“사장님, 컴퓨터 좀 쓸게요.” “도와줄까?”

“됐어요, 도와줄 시간 있으면 제 밀린 월급이나 벌어오세요.”

어쨌거나 케이는 손에 닿는 형태를 만드는 인형사였다. 스승은 기계화 의체에 생체칩을 연결할 때만,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사용했다. 그나마도 그 소프트웨어는 본인의 스승인 아이(I)의 유산이었다. 케이는 그 컴퓨터를 만지는 일이 더 즐거웠다. 스승의 스승이 남긴 소프트웨어를 좀 더 간단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고치기 시작했는데, 그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새 케이는 꽤 복잡한 해킹을 할 수 있게 됐다.

“케이, 해가 지고 있어. 더 늦으면 치안유지대에게 시달릴 수도 있어.”

“예? 벌써 저녁이라고요?”

암호화된 블랙박스를 거의 다 해독한 참인데. 사장의 말대로 서쪽으로 성큼 해가 기울었다.

“저 여기서 마무리하고 갈게요. 스승님께 오늘 못 들어갈 수도 있다고 연락 좀 해주세요.”

월급을 못 준 사장은 아르바이트 직원의 당돌한 요구를 받아칠 권리가 없었다. 그는 제이에게 전화해, 당신 제자가 오늘 여기서 초과근무하게 됐으니 이해해 달라는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케이는 마치 심해로 잠수하듯, 데이터 세계에 몰입했다. 블랙박스 데이터에 마침내 접속해, 가장 최근에 기록된 데이터를 자신이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언어로 변환해 코딩을 시작했다.

 

[10월 24일, 검증: BIO-ARMCQ112 등록된 의체입니다. 검증 완료, 튜닝 의체 검증: TUN-ARM0912CC, TUN-HEA155PO 등록된 튜닝 의체입니다. 검증 완료: 인증된 사용자입니다. 구동 준비 완료. 자율 주행 목적지 입력 취소. 책임 운전 모드로 전환합니다. 목적지: 튜닝숍 메이. 목적지로 최단 거리 안내.]

 

“사장님! 찾았어요!”

불 켜진 상점에 아무도 없다. 케이는 두리번거리다 자기 옆의 쪽지를 알아챘다.

[늦은 밤에 돌아다니지 말고, 잠은 안쪽에서 자도록 해요.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퇴근합니다. 유리.]

케이는 사장의 크림 스파게티를 양껏 먹었다. 사장이 퇴근했다면, 케이도 집에 가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아무리 따뜻한 음식을 먹어도 온기가 스미지 않는 기계화 의체 왼팔을 비오-아우토로 갈아 끼워보고 싶었다.

언젠가 스승은 쾨르퍼사와 인형사의 생체칩은 호환되지 않으니, 케이 본인의 기계화 의체에 쾨르퍼사의 칩을 직접 연결하거나, 의체의 감각을 튜닝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인형사와 쾨르퍼사의 생체칩이 서로 달라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케이도 그 말에 동의했다. 인형사가 만든 생체칩은 기계화 의체가 뇌와 연결돼 작동하는 데만 관여할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케이가 자기 기계 왼팔을 뚝 떼어낸들 케이는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쾨르퍼사의 생체칩은 다르다. 이 세계의 기계화 의체를 사실상 독점 중인 쾨르퍼사의 칩은, 연결된 팔을 떼어내면 그만한 고통을 느끼도록 설계돼 있다. 이 감각하는 기계화 의체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보다 더 나은 몸으로 튜닝하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무거운 물건을 들 때에 비오-아우토 다리가 버티도록 바꾸는 작업은 기본 튜닝이다. 요즘은 메모리 포트 분야에 투자가 늘면서 불면증을 없애는 메모리칩도 나왔다.

케이는 입실론의 일을 도우며 쾨르퍼사 생체칩을 수없이 접했다. 입실론은 매장 영업이 끝난 후에 쾨르퍼사 칩을 분해해 재조립하며 이것을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했고, 그 사실을 케이에게 숨기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쾨르퍼사의 칩 회로가 인형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케이도 알게 됐다. 그저 쾨르퍼사는 인간의 몸을 재생하고, 인형사는 인간을 따르는 마리오네트의 부품을 제작한다는 점만 달랐다.

케이는 가지런히 정리된 창고에서 쾨르퍼사의 의체, BIO-ARMCQ112를 찾아냈다. 카탈로그를 살펴보니 가장 싼 기본형 비오-아우토였다. 폭주족이 튜닝한 TUN-ARM0912CC는 승하차 자동 인식 지문, TUN-HEA155PO는 비상 상황에서 비오-아우토 의체를 고통 없이 파괴할 수 있는 절단기였다.

케이가 이 의체 팔을 쓰려면 먼저 자기 왼팔을 뽑아야 했으므로, 그 일을 저지르기 전에 쾨르퍼사의 의체에 튜닝부터 시작했다. 두 튜닝 모두 어렵지 않았다. 자동 인식 지문은 열 손가락 마디를 하나씩 뽑아 자동 인식되는 마디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비오-아우토 절단기는 어깨와 최대한 가깝게 부착했다.

“후우…….” 자기 왼팔을 떼어낸 케이는 일단 크게 심호흡을 했다.

‘설마 별일 있겠어. 인형사 생체칩이 목뒤에 삽입됐으니, 기껏해야 기절 정도 하겠지. 기절할 때 앞으로 자빠져서 앞니 부러지면 안 되는데.’ 케이는 비오-아우토 팔을 몸에 연결했다. 그때 갑자기 퓨즈 나가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일단 기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절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듯한 세상이 케이에게 몰려온다.

“케이! 정신 들어? 케이! 잠들지 마! 눈떠!”

분명 세상이 몰려오는 느낌이었는데, 걸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멀리서 스승의 목소리가 들린다. “밤이 깊어도 안 오길래 한참 찾았잖아! 정신 차려! 케이!” 스승은 강철로 만들어진 오른손으로 케이의 뺨을 때리려다 겨우 이성을 되찾았는지 왼손으로 톡톡 쳤다.

“일어나! 팔은 다시 만들면 그만이지만 제자는 다시 키우기 어렵다고!”

“으으…….”

“내가 만든 팔은 어디 가고, 이 추한 비오-아우토를 붙였어? 사장이 네 팔을 뽑아갔니?”

“그 사람한테 받을 돈이 있는 건 저예요…….”

케이는 몸을 겨우 일으켰다. 입실론의 튜닝숍 메이에 있었다. 긴 코트를 입은 스승이 케이에게 찬물이 든 컵을 내밀었다. 왼팔을 들려 했지만, 온몸이 감전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뼈 형태의 기계화 의체만 써온 케이에게 비오-아우토는 너무 무거웠다.

“돈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정신 좀 들었네.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네 팔은 어딨어?”

“저 카탈로그 위요. 쾨르퍼사 생체칩도 같이 챙겨주세요.”

“일단 업혀, 너 지금 못 걸을 것 같으니까.”

케이는 제 팔을 들고 순순히 스승의 등에 업혔다. 어두운 거리는 고요했다. 골목을 지키는 치안유지대 휴머노이드뿐이었다. 분명 고요해야 했는데, 케이의 귓속은 전자음악이 들리고 눈앞에 알록달록 빛나는 세계가 펼쳐졌다.

“스승님, 저 이 팔 잘라 버릴까요?”

“자르지 마, 최대한 그대로 돌려줘. 너 그 사람한테 못 받은 돈 있다며. 그거 잘라버렸다가는 영영 못 받을걸.” 밑으로 스르르 흘러내리는 제자를 제이는 한 번 치켜올렸다.

“너, 팔은 왜 뗐어? 사춘기야? 왜 멀쩡한 팔을 떼고 자폭이냐?”

“……멀쩡할 줄 알았어요.”

“바보냐? 내가 호환 안 되니까 위험하다고 했지.”

“스승님도 바보짓 해봤어요?”

스승은 더 말하지 않았다. ‘했네, 했어.’ 케이는 알록달록하고 이상한 세계와 머리를 맴도는 악상을 견디며 집으로 업혀 갔다.

제이는 집에 오자마자 케이를 작업대에 눕히고 공구를 꺼냈다. 작업실 한구석에는 재즈바 플라시보에서 수리를 맡긴 오토마타가 놓여 있다.

“감각 있어?” 제이가 케이의 팔을 드라이버로 퉁퉁 건드렸다. 케이는 고개를 저었다. 팔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에 묵직한 감각만 있다.

“그럼 그냥 뗀다.” 스승은 비오-아우토를 쉽게 떼어냈다. 원인이 제거되자, 케이의 인지 능력도 돌아왔다. 멀리서 들리던 이명이 사그라들었다.

“스승님, 포맷 범죄 아세요?”

“응. 생체칩 해킹해서 사고 치는 거라며. 너는 직접 네 몸에 그 짓을 했고.”

“제가 그 짓 하고 알아낸 게 있는데요.” 제이는 먼지 앉은 비오-아우토를 마른 천으로 깨끗이 닦아냈다.

“포맷 범죄의 주범이 쾨르퍼사 같아요. 쾨르퍼사 생체칩에 기록되는 정보들은 쾨르퍼사 클라우드에 모여 있을 테니까요. 한 명이 단지 몇 명을 해킹하는 정도가 아니라, 요즘처럼 한 집단의 생체칩을 해킹할 수 있는 건 쾨르퍼사뿐이에요.” 제이는 생체칩을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 생체칩, 인형사 기술도 들어간 것 같은데? 쾨르퍼사 생체칩은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독자 기술 제품이 아니라 하이브리드 생체칩인 셈이지.”

쾨르퍼사의 칩은 인체를 만든다. 인형사의 칩은 마리오네트가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이게끔 한다. 하지만 진짜 마리오네트는 따로 있다. 쾨르퍼사에 통제권을 넘겨주고 기계 팔마저 신체로 여기는 사람들? 아니면 인형사의 작품을 몸 어딘가에 붙이고 사는 사람들?

“나 젊을 때보다 정교해졌네. 네가 바보짓 하고도 멀쩡할 줄 알았을 정도로 비슷하긴 하다.”

점점 케이의 의식이 흐려졌다. 긴장이 풀리고 잠이 몰려왔다. 이제는 스승이 깨우지 않았다.

‘사람은 많은 것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다고 믿어. 하지만 어떤 선택도 쾨르퍼사가 만든 길을 따를 뿐이야.’ 잠의 장막 너머로, 케이는 자신이 처음으로 디튜닝했던 손님을 떠올린다. 일하기 위해서 양쪽 다리를 너무 많이 튜닝해, 도리어 이제는 일을 못 하게 된 아저씨. 그는 살기 위해 일했을 터, 어째서 뇌에 과부하가 걸릴 때까지 계속 튜닝을 했을까.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나 일할수록 죽어간다.

불현듯 찾아온 세계 한가운데, 케이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사는 거야?’ 

 

저자 소개
조현아
2019년 브릿G 작가 프로젝트로 데뷔했다. 소설 ‘확장윤회양분세계’ ‘밥줄광대놀음’을 출간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글

    조현아

🎓️ 진로 추천

  • 컴퓨터공학
  • 메카트로닉스공학
  • 의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