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만 년 전, 해저지각의 틈새로 뜨거운 마그마가 분출되면서 독도가 탄생했다. 덩치 큰 제주도, 울릉도가 생기기도 전이었다. 이런 독도에게, 풍화와 침식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운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대한 오래, 변함없이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과학자들이 나섰다.
“여기가 ‘깔딱 고개’예요. 여기만 넘으면….” 앞서가는 사람의 응원은 바람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독도 서도의 깎아지른 절벽. 168m 정상까지 이어지는 계단은 경사가 수직에 가까웠다. 한 계단 오를수록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없던 고소공포증이 생겨나는 듯했다. 동행하는 연구원이 목장갑을 건네준 이유를 그때야 알 수 있었다.
기자는 광복절을 일주일가량 앞둔 지난 8월 9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하 지질연) 연구원들의 독도 조사에 동행했다. 배를 타고 강릉에서 울릉도를 거쳐 꼬박 5시간 반. 파고가 높아 배가 접안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안내방송이 있었지만, 운이 좋은지 오전 11시에 무사히 독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고생은 내려서부터였다.
조금씩 깎여나가는 우리의 독도
“여기 없는데요? 갈매기가 여기에 굴을 파놨어요!” “5cm만 내려가 보세요!” “없어요!” 서도의 암벽을 20분 넘게 기어오르던 지질연 지구환경연구본부 송영석 책임연구원과 최정해 책임연구원이, 가파른 서도 사면에 멈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두 연구원이 겨우 발견한 것은 손바닥 한 뼘 정도 길이의 측정계였다.
지질연은 서도와 동도에 각각 6개씩 총 12개 지점에 토층의 침식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측정계를 설치해 3년째 관찰하고 있다. 흙이 유실되는 정도를 보면 독도의 토층이 어느 정도 속도로 침식되는지, 낙석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의 평균 토층은 두께가 10~15cm로 육지에 비해 훨씬 얇다. 게다가 흙 입자가 주로 ‘롬질 모래(loamy sand)’로 이뤄져 있어 풍화나 침식에 취약하다.
이날 조사에서도 독도 전체에 미세한 침식이 관측됐다. 한 측정 지점에서는 3개월 전 마지막으로 측정했을 때보다 흙의 두께가 1cm나 줄었다. 놀란 기자에게 송 책임연구원은 “독도는 워낙 바람이 세고 경사가 심하다”며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침식이 급격히 심해지면 별도의 조치를 하기 위해 토층 변화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도 곳곳의 낙석방지책에는 흙뿐만 아니라 돌멩이도 가득 쌓여 있었다. 낙석으로 흘러내려온 것들이었다. 특히 서도 주민 숙소 뒤쪽에 있는 사면은 암반의 균열과 절리가 심해서 한 눈에도 움푹 패여 보였다. 이성순 지질연 국토지질연구본부 선임연구원은 이런 서도 사면을 가시광선 및 근적외선 초분광 분해기를 장착한 카메라로 촬영했다. 암석의 풍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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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 풍화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식생, 염분, 수분 등이 있습니다. 각각의 요소가 암석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육안이나 일반 카메라로는 알 수가 없죠.” 이 선임연구원은 여행용 가방에 담긴 거대한 장치를 꺼내면서 말을 이어갔다. 여러 번 배를 옮겨 타는 와중에도 애지중지 품어온 가방에 무엇이 들었나 했더니 정체는 카메라였다.
일반 카메라는 사물에 반사된 빛을 R(빨강), G(초록), B(파랑) 세 영역대로 분해해 기록하지만 초분광 카메라는 최고 519개 영역대로 세분화한다. 찍을 수 있는 파장도 가시광선 영역을 비롯해 400nm~1000nm로 넓다. 이런 분광특성을 이용하면 유기적인 풍화와 화학적인 풍화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 즉 암석마다 식생이 얼마나 자라고 있는지, 염분이나 수분을 얼마나 함유하고 있는지를 알아내 풍화에 취약한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생이 많이 자란 곳은 적외선 영역의 붉은색 파장이 많이 검출된다. 붉은색 파장이 이전보다 세진 곳은 식물이 뿌리를 내려 암반이 약해진 곳이다. 초분광 카메라는 암질도 최고 11가지로 구분해낼 수 있어 지질조사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그런데 이 중요한 촬영은 정작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걸 하자고 장장 5시간 반 배를 타고(왕복 11시간!), 1kW 배터리로 카메라를 충전하고, 대여섯 개나 되는 배선을 한 시간 넘게 연결했단 말인가. 허탈한 표정을 짓는 기자에게 이 선임연구원은 “원래 분석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이 걸린다. 1년 가까이 걸릴 때도 있다”며 위로(?)를 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이런 촬영을 3개월마다 한 번씩, 3년 동안 해왔다고 했다. 사면은 위성으로도 촬영할 수 없어 연구자가 직접 일정한 시기에 맞춰 방문해야만 한다. ‘왕도가 없다’는 말이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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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석이 발생하면 곧바로!
만약 독도 사면에 낙석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그럴 경우 육지에서도 즉시 지반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다. 동도 주요 구조물의 지반 움직임을 대전에 있는 지질연에서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원경 지구환경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모니터링 장치가 설치된 장소에 직접 가봤다(이번에는 동도 등반이 시작됐다).
모니터링 장치는 거대한 균열이 있는 암석에 설치돼 있었다(2005년 한 신문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된 균열이다). 균열은 지금 봐도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폭이 10cm 정도 되는 금이 정상으로부터 10m 이상 뻗어 있었다. 하지만 송 책임연구원은 “암석 끝이 떨어져 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바위의 뿌리 부분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균열 지점에 설치된 모니터링 장치, 즉 경사계와 균열계가 매우 안정적인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사계는 암석이 x축, y축, z축 방향으로 움직이는 각도를 측정하고, 균열계는 틈새가 얼마나 벌어지는지 거리를 측정한다. 각도 0.1° 이상, 거리 1mm 이상 벌어지면 연구소로 즉시 주의 신호가 간다. 모니터링 장치는 암반에 균열이 있는 3개 지점을 비롯해 케이블카와 등대 등 주요 구조물에 설치돼 있었다.
동행한 박찬 지구환경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은 “경사계와 균열계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낙석과 같은 작은 충돌에도 데이터에 노이즈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의심스러운 데이터를 보내는 경사계를 교체했다.
“과학자로서 할 일이 있어 기쁘다”
오후 3시 독도에서 배가 나가는 시간까지 임무를 마치지 못할까봐 긴장한 탓일까. 연구원들은 밥을 먹지 않고 쉬지도 않았다. 결국 챙겨온 점심 도시락 뚜껑을 1시를 훌쩍 넘겨서 열었다. 풍경 탓인지, 허기 탓인지 평소 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나물 반찬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독도의 절경도 이때에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문득 굳이 독도에 와서 이렇게 힘들게 일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 생겼다.
“독도가 부릅니다.” 이번 조사에 함께한 연구원들과 10년 넘게 독도 조사팀을 꾸려온 송원경 책임연구원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고 가기 힘들고 다른 일도 바쁘지만 사무실에 있으면 문득 독도가 궁금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일반인들은 독도에 온다고 해도 30분 정도 선착장에 머무르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마저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독도 주변을 선회만 한 번 하고 돌아가야 하죠. 그런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계속 찾는다는 건 독도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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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조사팀은 해양수산부 연구사업으로 1년에 2~3번씩 10년 넘게 독도를 연구해 왔다. 그 덕에 독도의 3차원 지형도가 완성됐고, 탄소연대를 측정해서 독도의 형성 과정을 조사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송 책임연구원은 아직 독도에 대해 알아야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에 비해서는 아직 부족한 게 많다는 것이다. 연구 역사가 훨씬 짧으니 그럴 만도 하다. 최정해 책임연구원은 “침식이나 풍화에 대한 지표 변화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최대한 많이 쌓아나가야 한다”며 “이런 중요한 시기에 과학자로서 할 일이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