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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인공태양 KSTAR, 캔버스에 옮기다

 

 

캔버스 전체를 채운 건 짙고 강렬한 빨강이다. 그 위로 은빛과 푸른빛이 도는 혈관인지 뿌리인지 모를 파이프와 코일이 곡선을 그리며 얽혀있다. 가장 진한 빛의 빨강이 뭉쳐있는 한가운데는 고동하는 심장처럼 뜨겁고 역동적이다. 이 그림을 그린 이사벨라 오제다 작가를 9월 5일 광주비엔날레 행사장에서 만났다.

 

이사벨라 오제다 작가의 ʻ우리가 불 속에 남겨둔 것들’ 시리즈 중 ʻ트럼펫’이다. 불에 탄 재를 주사전자현미경을 사용해 촬영했다.

 

브라질 예술가, 인공태양 KSTAR를 그리러 한국에 오다

 

9월 5일, 광주비엔날레 브라질 전시관에서 만난 이사벨라 오제다 작가는 상기된 표정으로 벽에 걸린 자신의 작품 ‘토카막(왼쪽 이미지)’을 바라보고 있었다. 완성된 작품을 직접 보니 무슨 생각이 드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큰 해방감 같은 것’이라고 답했다.  

 

“작업하는 동안엔 이 그림이 꼭 뱃속의 아이 같거든요. 실제로 태어나기 전까진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어요.”

 

토카막은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초고온 플라즈마를 도넛 모양의 공간에 가두는 장치이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이 운용하는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 ‘KSTAR’ 내부 핵심 장치기도 하다. 외부에서 본 KSTAR는 각종 배관들이 얽힌 거대한 기계 구조물에 가깝다. 그러나 이사벨라 작가가 그린 토카막은 차가운 금속성의 크롬색이 아닌, 생물의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색으로 가득하다.

 

전통 회화에서는 따뜻한 색이 앞으로, 차가운 색이 뒤로 물러나 보이는 원근법에 따라 색을 쓴다. 이사벨라 작가는 이를 뒤집어, 뜨거운 빨강이 배경을 채우고 차가운 크롬빛 형태가 눈앞으로 튀어나온다. 실제로 작품을 보면 코일 정글 뒤로 숨겨진 토카막을 찾아낸 느낌이 든다. 첨단 기계를 유화라는 예술로 낯설게 창조해 낸 셈이다.

 

‘토카막’을 그리는 과정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브라질 태생의 이사벨라 작가는 올해 5월, 핵융합연에 직접 연락해 KSTAR를 보고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핵융합연 측에서는 이를 받아들였고 이사벨라 작가는 이틀에 걸쳐 대전의 핵융합연 연구소를 방문했다. 연구자 면담과 시설 투어, 강연이 이어졌다.

 

이사벨라 작가는 KSTAR의 진공용기 내부를 본 행운도 얻었다. 진공용기 내부는 정밀 장비 보호를 위해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지만, 마침 이사벨라 작가가 방문했을 때는 내년 실험 준비를 위해 플라즈마 대면 타일 점검·유지보수 작업이 한창이었다. 담당 연구자와 함께 장치를 둘러보던 그는 정해진 안전 절차와 연구자의 안내에 따라 진공용기 내부를 직접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그는 진공용기 내부로 직접 들어가 장치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들어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 저를 포함해 모두가 놀랐어요. 그곳에서 가장 강렬했던 것은 냄새였습니다. 은은하게 그을린 듯한, 살짝 스모키한 금속성 냄새가 났어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이사벨라 오제다 작가가 2026년 8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KFE)에 방문했다. 작가가 KFE 연구원과 함께 KSTAR 구조물을 둘러보고 있다. 

 

박물관 잿더미에서 과학이라는 새 언어를 찾다    

 

이사벨라 작가가 과학을 자신의 예술 작업에 끌어들이게 된 건 ‘상실’ 때문이었다.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아트&스페이스 석사 과정을 밟던 2018년, 그는 고국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 화재 소식을 들었다.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은 200년의 역사와 2000만 점 이상의 소장품을 보유한 브라질의 대표적인 자연사·인류학 박물관이었지만, 이 대형 화재로 소장품 상당수가 소실됐다.

 

“그 박물관은 브라질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 기관이면서 동시에 미술관이기도 했어요. 이미 그 장소 자체가 예술과 과학, 기억이 만나는 곳이었던 거죠.”

 

그는 이 상실을 그림 한 장으로만 다루고 싶지 않아 파리 고등사범학교의 화학, 생분자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탄생한 연작 ‘원초적 물질(Materia Prima)’에서 그는 박물관 소장품이 타고 남은 재의 미세구조 이미지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해 화면에 담고, 이를 인공지능(AI)으로 재구성해 소실된 유물의 형상을 되살렸다.

 

이후 이사벨라 작가는 과학적 소재를 표현하는 작업을 더 진행하기 시작했다. 2024년에는 아르헨티나 남부 파타고니아의 암석 시료를 분석하는 지질학 실험실에 직접 들어갔다. 암석 시료의 방사성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암석 표면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표에 노출됐는지, 나아가 그 지역의 지형이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해왔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이사벨라 작가는 시료 처리의 전 과정을 지켜보며 드로잉과 사진, 영상 자료로 남겼다. 이는 현재 퍼포먼스 필름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는 이 여정을 과학과 예술 사이의 대화로 본다.

 

“과학이라는 영역은 예술과 다른 지식 생산 영역 사이의 대화를 펼쳐 보이는 방식이에요.”

 

물질에 담긴 시간의 기억을 추적해 온 그의 관심은 에너지의 근원으로 향했다. 핵융합은 가벼운 원자핵들이 서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질량 일부가 에너지로 바뀌는 현상이다.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것도 같은 원리다. 핵융합에너지를 실현하려면 중수소와 삼중수소 같은 수소 동위원소를 높은 온도로 가열해 플라즈마 상태로 만들고, 원자핵들이 융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KSTAR는 1억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고, 이를 초전도자석이 만드는 강력한 자기장으로 가둬 안정적으로 유지·제어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장치다. 아주 작은 원자핵 세계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별을 빛나게 하는 거대한 에너지의 근원이 된다는 역설이 이사벨라 작가의 관심을 끌었다. “KSTAR는 이 모든 걸 하나로 이어준 매개체 같았어요. 거대함과 극도의 작음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게 크게 와닿았습니다.”    

 

▲남윤중
9월 5일 광주비엔날레 브라질 전시관에서 이사벨라 오제다 작가를 만나 인터뷰했다. 2년마다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전시에서 브라질관은 올해 처음 열렸다. 

 

예술가와 과학자, 같은 절차를 다른 언어로 

 

이사벨라 작가는 KSTAR가 사람이 만든 기계 장치이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생명체를 닮았다고 표현했다. 플라즈마는 워낙 불안정해서 가만히 두면 금세 흐트러지는데, KSTAR는 수많은 센서로 그 흔들림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자기장을 미세하게 조절해 다시 균형을 잡는다. 이는 세포가 몸 안팎의 물질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항상성과 닮아있다. 겉보기엔 차갑고 딱딱한 금속 구조물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생명체가 스스로를 유지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연구자들이 KSTAR의 부위를 신체에 빗대 부르는 것도 인상 깊었어요. 제어실을 ‘머리’, 플라즈마를 가두는 핵심장치를 ‘심장’ 또는 ‘위장’이라 부르는 식이죠.”

 

이사벨라 작가는 이 비유를 그림 속에서 시각화했다. 이사벨라 작가가 그린 ‘토카막’은 KSTAR의 도넛 모양 진공용기 내부를 화면 가득 담은 그림이다. 그는 “그림 속 배관과 코일이 붉은 혈관이나 뿌리처럼 느껴진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이렇게 기계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이 한 장치 안에서 뒤섞여 보이는 현상을 ‘대립하는 것들의 결합’이라 불렀다. 원래는 완전히 정반대라고 여겨지는 두 세계가, 사실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이 결합을 자신과 KSTAR 연구자들의 관계에도 그대로 대입한다. 화가가 작업실에 홀로 틀어박혀 캔버스와 씨름하는 일과, 연구자가 실험실에서 정해진 절차를 따라 실험을 되풀이하는 일은 얼핏 보면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는 이 둘을 본질적으로 같은 절차로 본다. 둘 다 혼자, 반복적으로 물질을 만지고, 그 끝에서 이전에는 없던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점에서다. 그림 한 점을 완성하는 일과 실험 하나를 완수하는 일이, 그에게는 같은 종류의 창작 행위인 셈이다.

 

“예술가와 과학자도 마찬가지죠. 둘 다 ‘자연적인’ 요소를 변형시키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그것을 구부리면서, 자연 홀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요.”

 

이사벨라 작가는 이번 그림을 연작의 시작이라 말했다. 다음 작품에서는 토카막의 ‘외부’ 전체를 담고, 촬영해 온 영상으로 별을 상징하는 몸을 그리는 퍼포먼스 작업도 준비 중이다. KSTAR에서 본 대형 기술 도식을 아상블라주(일상용품이나 폐품 등 다양한 기성물을 한데 모아 3차원 입체 작품으로 만드는 미술 기법 및 그 작품) 작품으로 옮기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다.

 

“제게 KSTAR는 핵융합 연구와 에너지 생산으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예요. 앞으로 KSTAR가 어떤 길을 걸어가고, 그 안에서 제 작업이 또 어떻게 변해갈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리고 계속 이 곁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언젠가 한국에서 사진과 회화, 영상까지 이 모든 과정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드리는 전시를 여는 게 제 가장 큰 바람이에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토카막’을 제작 중인 이사벨라 오제다 작가. 이 작품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KSTAR의 안팎에서 받은 인상을 한 화면에 재구성했다.
오른쪽 위는 영감이 된 KSTAR 진공용기 내부 사진이다. 이사벨라 작가는 앞으로도 KSTAR 연구를 소재로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제작지원을 받았습니다.

 

용어 설명
방사성 동위원소
방사선을 방출하며 붕괴해 안정한 상태로 변하는 동위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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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글

    김미래
  • 사진

    Isabella Ogeda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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