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해, 2006년 병술년(丙戌年)이 밝았다. 새해는 이미 밝지 않았냐고? 무슨 말씀. 60갑자는 음력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진정한 개의 해는 1월 29일 설날부터다.
개는 12간지를 대표하는 동물 중에서도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개는 집을 지키고, 양떼를 몰고, 맹인을 안내하고, 마약을 검색하고, 심지어 병을 찾아내면서 맹활약하고 있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개만큼 사람과 마음을 잘 나눌 수 있는 동물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는 한 가지 의미를 더 갖고 있다. ‘가을부터 키워서 여름에 잡아먹는다’는 식용견이다. 어떤 이들은 “복(伏)날은 사람(人)이 개(犬)를 잡아먹는 날”이라는 한자 어원까지 들어가며 보신탕 예찬을 펼친다(사실 원뜻은 여름의 더운 기운을 굴복시킨다는 뜻이다).
애견인들은 마냥 귀여운 개를 잡아먹는 사람들이 영 못마땅하다. 그래서 동호회 사이트에 올라오는 개 사진에 ‘멋있다’는 댓글을 달지만, ‘맛있겠다’로 살짝 바꾼 댓글에는 울화통을 터뜨린다. ‘개 잡아 먹는다’는 뜻의 ‘된장 바른다’는 말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개와 늑대는 13만5000년 전 사촌
개는 어떻게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 됐을까? 개는 늑대를 데려다 키웠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늑대는 개와 달리 예측할 수 없는 공격 성향을 드러내기 때문에 인간과 가까워지기 어렵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개의 화석은 인간이 아직 농경을 시작하지 않았던 1만4000년 전의 것으로 턱이 짧고 이빨이 촘촘해 늑대와는 많이 다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로버트 웨인 교수팀의 DNA 분석에 따르면 늑대와 개가 유전적으로 갈라진 시기는 약 13만5000년 전이다. 개는 늑대가 바뀐 것이 아니라 공통조상에서 나온 사촌형제인 셈이다.
개처럼 품종이 다양한 동물도 드물다. 당당하고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아이리시 울프하운드나 세인트 버나드, 티베탄 마스티프처럼 커다란 개가 있는가 하면 몸길이가 18cm밖에 안 되는 치와와처럼 아주 작은 애완견까지 400여 품종에 이른다. 미국애견협회에는 150여개 견종이 7개 그룹으로 나눠 등록돼 있다. 그러나 이들의 유전적 차이는 아주 작아 1%도 되지 않는다.
‘말귀 알아듣는 개’는 오해다
우리는 개를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많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 과학 저술가 스티븐 부디안스키가 쓴 ‘개에 대하여’는 다양한 연구 사례를 들어 잘 알려지지 않은 개에 대한 상식을 소개한다.
위협을 느낄 때 개는 왜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릴까. 동물학자들은 “개를 비롯한 많은 동물들의 머릿속에는 ‘큰 동물일수록 낮은 소리를 낸다’는 인식이 박혀있다”고 말한다. 개가 낮고 거친 소리를 내는 것은 결국 상대에게 크고 위압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다.
개가 주인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도 사실은 오해에 가깝다. 물론 “내 강아지는 ‘손!’하면 앞발을 내 손에 올려놓는다”고 반박할 사람도 있지만 사람의 기준에서 생각했을 때만 맞는 얘기다. 실제로 훈련받은 개는 10개 이상의 단어를 쉽게 구별한다.
그러나 부디안스키는 “개는 다만 특정한 소리를 특정한 행동과 연결할 뿐”이고, 이런 연결은 “우리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맥락과 단서에 상당히 많이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개에게 손짓을 쓰지 않고 인터폰을 통해 목소리로만 명령을 내리면 거의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증거다. 그는 “개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 소리가 자신을 의미한다는 것을 개가 이해한다는 증거도 없다”고 말한다.
개는 늑대와 갈라지기 오래 전 공통조상에서 물려받은 형질을 많이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시력이다. 미국 위스콘신 의대 제이 니츠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개는 영장류를 제외한 다른 포유류처럼 눈에서 색을 인식하는 원추세포가 두 종류뿐이다. 이 원추세포는 노란색에 가까운 초록색과 보라색을 인식하기 때문에 개는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적록색맹이다.
니츠 박사는 “주로 밤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포유류는 색채보다 명암 구별이 생존에 더 중요했고, 그 결과 진화과정에서 빛의 세기에 민감하지만 색깔을 구별할 수 없는 간상세포가 원추세포보다 더 많아졌다”고 설명한다.
시력이 약한 대신 개의 청각과 후각은 사람보다 우수하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2만Hz가 한계인데 개는 6만5000Hz의 고음까지 들을 수 있다. 부디안스키는 “개의 청각 범위가 넓은 이유는 설치류처럼 고음을 내는 작은 동물을 포식하기 위해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한다. 냄새를 맡는 후각망울의 수도 개가 사람보다 20배나 많다. 개는 살짝 지문을 묻힌 유리조각을 밖에서 한달 동안 방치한 뒤에도 5분 만에 같은 사람이 만진 것을 찾아낸다.
사람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개
개는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존재와 함께 있으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다. 주인에게 애정을 구하고 장난을 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옷이나 신문을 물고 달아날 때 주인이 따라오며 고함을 치는 것도 개에게는 놀이가 된다. 따라서 자꾸 장난치는 개를 그만두게 하고 싶으면 그냥 무시하는 것이 제일 좋다.
개의 친근한 성격은 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미국 세인트 루이스대 윌리엄 뱅크스 박사팀은 요양소의 노인들에게서 개와 단둘이 있을 때 다른 노인들과 개를 함께 만났을 때보다 외로움이 더 줄어들었다는 대답을 얻었다. 연구팀은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주는 개와 함께 있을 때 유대감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개를 통해 심리적 치유효과를 얻는 사례도 보고됐다. 지난 1월 1일 SBS의 ‘개가 사람을 살린다’에서는 영국인 알렌의 사례를 소개했다. 해군으로 복무하다 전쟁에서 다리를 잃고 기억상실과 언어장애를 겪던 알렌은 ‘엔돌’이란 골든 리트리버와 생활하면서 증세가 크게 호전됐다. “평생 말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뒤집고 말문을 연 것이다.
아이들 곁에 개나 고양이가 있으면 알레르기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과 조지아대 연구팀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집안에 개나 고양이 두 마리 이상을 두고 1년 이상 함께 지내면 6~7년 뒤 알레르기 발생확률이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결과를 ‘미국 의사회지’에 발표했다.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원인은 개나 고양이의 피부와 침 속에 있는 세균 때문이다. 아기가 개와 접촉할 때 세균의 독소에 노출되면서 몸속에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림프구를 줄이고, 알레르기 반응을 억제하는 다른 림프구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개가 바깥에서 묻혀 들어오는 것들 중엔 꽃가루나 먼지, 진드기 등도 포함돼 있는데, 어릴 때부터 이런 알레르기 유발 물질과 접촉하게 되면 면역이 생겨 성인이 됐을 때 알레르기로 고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질병 진단하는 신통한 견공들
뛰어난 개의 후각을 이용해 암을 진단하는 방법도 개발되고 있다. 지난 1월 17일 미국 파인스트리트연구소의 마이클 맥컬러크 박사팀은 ‘종합 암 요법’ 최신호에 실린 논문에서 개를 이용해 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폐암 환자, 유방암 환자, 정상인의 호흡을 채취해 개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 암 환자에서 채취한 샘플 앞에서 그 자리에 서거나 누워있도록 하고 정상인의 샘플은 무시하도록 훈련시킨 개들이었다. 건강한 세포와 달리 암세포에서는 탄화수소인 알칸과 벤젠에서 유래한 물질들이 나온다는 점을 이용했다. 그 결과 훈련받은 개들은 99%의 정확도로 폐암환자를 찾아냈고, 유방암 환자도 84%나 찾아냈다.
개를 이용해 오줌 냄새로 방광암을 진단하는 방법도 개발됐다. 영국 애머샴 병원 캐롤린 윌리스 박사팀은 지난 2004년 9월 개의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오줌에 섞인 암 조직에서 나오는 휘발성 물질의 냄새를 구별하는 실험 결과를 ‘영국 의학저널’에 발표했다. 개들은 7개월 동안 훈련받아 평균 41%의 진단 성공률을 보였다.
20개월 된 코커스패니얼 종인 파코(Paco)는 최초로 당뇨병 환자를 위해 훈련된 개다. 파코는 주인의 입김이 변화하는 것을 감지해 혈당치가 갑자기 내려가는 것을 알아채고 주인에게 알린다. 주인이 자고 있을 때 위급 상황에 빠지면 비상벨을 눌러 구조를 요청하는 훈련도 받았다.
사실 이런 능력은 인슐린 치료를 받는 당뇨병 환자와 생활하는 개들에게서 이미 관찰된 적이 있다. 이 개들 중 약 1/3은 주인의 혈당이 감소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인다. 호주 당뇨병전문의 앨런 스토크스 박사도 설문조사를 통해 주인이 저혈당 발작을 일으켰을 때 옆에 있던 개의 68%가 행동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해 ‘하이포글리세미아지’에 발표했다. 그는 개가 저혈당 환자의 땀에 포함된 아주 적은 양의 ‘카테콜아민’이란 물질을 구별하는 것으로 추측했다.
사람과 개, 유전자 75% 공유한다
사람과 침팬지에 이어 개 유전자의 염기서열 분석도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 2003년 6월 미국 화이트헤드 연구소는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 일레인 오스트랜더 박사를 책임자로 삼아 총사업비 5000만 달러를 들여 복서(boxer)종 개를 대상으로 개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국 유전체학진흥센터와 유전체연구소는 지난 2003년 9월 검은색 푸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전체의 약 80%에 이르는 염기서열을 규명하고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개는 인간과 약 75%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8억개 DNA 염기쌍을 갖는 것으로 추측되는 개 게놈 지도 초안이 완성되면 앞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하기 어려운 암이나 심장질환, 자가면역질환의 치료법 개발에 속도가 붙는 동시에 개 질병의 메커니즘과 치료법을 찾는데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