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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평화를 위한 화학 | 1. 더 안전한 미래를 위한 새 과제, 노비촉

    ▲milly, Shutterstock

     

    2018년 3월 4일 일요일, 영국 남부의 소도시 솔즈베리. 전 러시아군 정보 장교이자 이중간첩이었던 세르게이 스크리팔, 그의 딸 율리아가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이들은 극심한 동공 수축, 과다한 침 분비, 심한 호흡 곤란, 근육 경련을 보였다. 전형적인 신경작용제 중독 증상이었다. 이후 스크리팔의 집을 수색한 형사 닉 베일리도 갑자기 같은 증상을 보이며 중태에 빠졌다. 이 사건 뒤에는 세계 평화를 좌우해 온 화학의 역사가 있다. 

     

    편집자 주
    국제 정세가 여러모로 심상치 않은 요즘,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위한 과학의 역할을 더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육군사관학교 교수이자 한국 육군 장교로서 국가 안보를 위해 연구해온 정근홍 서강대 화학과 교수가 치열하게 평화를 준비하는 군사 분야 화학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영국 수사 당국은 세르게이 스크리팔의 영국 솔즈베리 자택을 조사했고, 현관문 손잡이에서 채취한 의심스러운 물질을 영국 국방과학기술연구소(DSTL) 포턴다운연구소 분석팀에 넘겼다. 세계 최고 수준의 화학무기 분석 역량을 갖춘 포턴다운 팀이 핵자기공명(NMR) 분광법, 고분해능 질량분석법(HRMS), 적외선(IR) 분광법 등 수 주에 걸친 다중분석기법으로 내린 결론에 전 세계는 경악했다.


    그것은 구소련(현재 러시아)이 비밀리에 개발한 4세대 신경작용제, 노비촉(Novichok)이었다. 솔즈베리 사건으로 구소련 및 러시아의 비밀 화학무기 프로그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세계 평화를 고민하는 과학, 화학무기금지기구

     

    5월, 필자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과학자문위원회(SAB)에 참석해 OPCW가 지원한 연구과제의 결과를 발표했다. OPCW는 화학무기의 개발, 생산, 비축, 사용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군축 조약인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의 이행 기구로서 1997년에 설립됐다. 필자는 2025년 OPCW 사무총장의 유일한 자문 기구인 SAB 위원(총 25인)으로 선정돼 헤이그에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화학무기는 일시적, 영구적인 인체 손상이나 사망을 목적으로 제조된 독성 화학 물질이다. 노비촉, VX와 같은 신경작용제는 가장 많이 쓰이고 개발돼 온 독성이 매우 강한 화학무기다. 스크리팔 사건처럼 경쟁국의 핵심 인물만 노리는 수단으로 쓸 수 있어, 최근 국제 사회가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따라서 유사시에 화학물질의 특성과 해독 원리를 보다 빠르게 파악하고, 앞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 가능한 화학물질의 후보까지 예측하는 새로운 분석 방법론이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 더 안전한 세계를 위해서 새로운 분석 방법을 적용해 노비촉 후보 물질의 특성, 해독 메커니즘 등을 연구 중이다. 신경작용제와 같은 화학무기의 비밀을 빠르게 밝히는 것은, 안전한 세계를 만드는 화학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악순환이 불러온 새로운 자, 노비촉

     

    노비촉을 이해하려면, 먼저 신경작용제가 인체에 작용하는 원리와 그 개발 배경을 짚어야 한다. 모든 신경작용제의 메커니즘은 온몸의 근육을 수축시켜 최종적으로 횡격막, 늑간근 마비에 따른 호흡 정지로 사망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경작용제가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AChE)라는 효소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AChE는 근육을 수축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ACh)을 아세트산과 콜린으로 분해해서 근육을 이완시킨다. 호흡, 심장 박동을 비롯한 인간의 생명 활동은 초당 수천 번 반복되는 ACh와 AChE의 정교한 조절, 수축-이완 작용에 의존한다. 신경작용제가 이 조절을 파괴하면, 사람은 ACh가 분해되지 않고 계속 쌓여서 근육 수축만 일어나고 결국은 호흡 중추 억제, 의식 소실을 거쳐 호흡 정지에 이른다. 


    이런 신경작용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살충제에서 시작됐다. 1936년 유기인 성분 살충제를 연구하던 독일 화학자 게르하르트 슈라더와 동료가 그의 합성 화합물에 극미량 노출돼 동공 수축, 호흡 곤란을 겪고, 이 물질이 포유동물에게도 매우 유독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화합물이 최초의 신경작용제 타분(Tabun, 군 분류명 GA)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구소련은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더 강력한 신경작용제를 경쟁적으로 개발했다. 그 와중에 영국이 발견한 화합물을 미국이 무기화한 신경작용제가 현재의 VX다. VX는 피부 침투력이 매우 강해 방독면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상온에서 높은 점도의 액체로 존재해 일상 환경에서 최대 수 주까지 잔류한다. 빗방울보다 작은 10mg 정도만 피부에 닿아도 성인이 사망할 수 있다. 1995년 일본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2017년 김정남 VX 피살 사건은 신경작용제의 확산 방지가 우리 일상의 평화와 직결된, 화학자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이렇게 미국의 VX는 반세기 넘게 최강의 신경작용제로 알려졌고, 구소련은 VX를 넘어서기 위해 극비 개발 프로그램 ‘폴리안트’를 가동했다. 폴리안트의 목표는 구소련, 러시아에 대응하는 유럽의 집단안전보장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첨단 방호장비(방독면, 방호복)와 표준 해독제를 무력화하는 신개념의 신경작용제 개발이었다. 그 결과로 1970년대 초~1990년대 초에 개발된 물질이 바로 노비촉이다. 노비촉은 러시아어로 ‘새로운 자(newcomer)’라는 뜻이다.


    구소련과 러시아의 화학자들은 수백 종의 신규 유기인 화합물을 합성하고 동물 실험으로 독성을 평가했다. 그중 가장 유력한 후보가 각각 노비촉 A-230, A-232, A-234 등의 코드로 분류됐다. 1992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국립유기화학기술연구소의 분석화학자 빌 미르자야노프의 내부 고발로 그 정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미르자야노프는 러시아에서 반역 혐의로 기소됐지만, 국제적 압력과 언론의 관심 속에 결국 석방돼 미국에 망명했다. 미르자야노프의 증언과 이후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노비촉 계열에 수십~수백 종의 변종이 있고 이 중 일부는 독성이 최대 VX의 10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근육 이완을 막는 신경작용제
    ❶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ACh)은 근육의 수축을 유도한다.
    ❷ 아세틸콜린에스테라제(AChE) 는 아세틸콜린을 분해하는 물질이다. AChE의 작용으로 근육이 이완된다.
    ❸ 신경작용제는 AChE를 못쓰게 막아버린다. 그 결과 몸에 쌓인 ACh가 근육을 수축만 하도록 유도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국제적 감시까지 피하는 잠재된 위협

     

    그렇다면 노비촉이 다른 신경작용제보다 더 위험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압도적 독성이다. 기존에 알려진 주요 신경작용제의 개괄적 독성 비교에 따르면 노비촉 A-232, A-234 등의 독성은 VX의 5~10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 물질들은 VX 용량의 10~20%만으로도 같은 살상력을 보인다. 필자의 연구팀이 머신러닝 모델로 노비촉 후보 물질군의 독성을 예측한 연구에서는 독성이 A-230, A-232, A-234 순서로 높아졌다. doi: 10.1021/acs.chemrestox.1c00410 노비촉의 이런 극단적 독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수준의 화학물질 탐지와 방호를 요구한다.


    둘째 국제적인 화학무기 감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다. 노비촉 설계의 핵심 원리는, 개별적으로는 독성이 낮거나 거의 없는 두 가지 물질(전구체)을 현장에서 혼합해 최종 신경작용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독성이 낮은 전구체들을 활용하는 화학무기를 이진무기라고 한다. 콜라와 멘토스가 섞이면 폭발적으로 가스를 만드는 것처럼, 감시를 피하기 위해 독성이 없는 두 물질을 자유롭게 갖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합쳐서 그 화학반응으로 노비촉 같은 독성물질을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각 전구체는 단독으로는 규제 목록에서 빠질 수 있는 각종 산업의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셋째, 기존 해독제에 대한 저항성이다. 기존의 신경작용제 표준 치료법은 아트로핀과 옥심을 함께 쓰는 것이었다. 아트로핀은 ACh를 차단해 기관지 수축 등을 완화한다. 옥심은 신경작용제와 AChE 효소의 결합 부위를 공격해서 이 효소가 억제되기 전에 재활성화한다. 그러나 노비촉의 일부 변종은 AChE와의 결합 구조가 기존 신경작용제와 달라서, 옥심의 효소 재활성화가 매우 어렵다. 특히 노비촉이 AChE를 억제시키는 과정이 매우 빨라서, 옥심의 투여 전에 AChE가 완전히 억제될 수 있다. 이처럼 독성이 다른 물질과 다르므로, 훨씬 더 강하거나 새로운 치료제·해독제가 필요하다.


    넷째, 탐지와 식별의 어려움이다. 노비촉 계열 화합물은 정확한 화학 구조가 수십 년간 기밀이었다. 따라서 화학물질 탐지 장비의 기존 데이터베이스 등에 이 물질들의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기존 장비로 탐지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뜻이다.

     

    ▲Green Cross Switzerland, 정근홍
    1 화학무기의 보관 상태를 정기 점검 중인 러시아 군인.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 시절부터 화학 무기를 경쟁적으로 개발했다. 사진에 나온 화학무기는 2009년 5월부터 폐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2026년 5월 네덜란드 헤이그의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과학자문위원회(SAB)에 참석해 연구 결과를 발표 중인 필자.

     

    새로운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화학의 신념

     

    노비촉은 기존의 화학무기금지협약인 CWC 체제에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1997년에 서명된 CWC 규제 목록에는 노비촉 계열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CWC에는 화학물질을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일반 목적 기준이 있지만, 규제 목록에 없는 물질은 OPCW의 정기 사찰, 신고 의무에서 벗어나므로 실질적 검증, 집행에 한계가 있다. 2018년 솔즈베리 사건이 이 공백을 메우는 국제적 행동을 촉발시켰고 2019년 CWC 회의(CSP-24)에서 노비촉 계열 일부가 규제 목록에 올랐다.


    그러나 노비촉의 변종들과 구조가 유사한 미지의 화학물이 존재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화합물을 일일이 목록에 추가하는 기존 접근법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AI)으로 새로운 신경작용제의 제조가 훨씬 쉬워졌고, 앞으로의 화학무기는 전혀 새로운 구조의 독성 화합물, 즉 비전통적 작용제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CWC의 기준이 더 중요해졌으며, 현대 과학은 규제 구조를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화학은 인류가 발명한 매우 강력한 도구이다. 화학자의 양심과 국제 사회의 의지가 이 힘의 방향을 결정한다. 따라서 과학자와 우리 사회는 화학이 생명을 지키는 데 쓰여야 한다는 원칙을 항상 재확인해야 한다. ‘새로운 자’라는 노비촉의 뜻도 화학무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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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7월 과학동아 정보

    • 정근홍 서강대 화학과 교수
    • 에디터

      라헌
    • 디자인

      박주현,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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