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전국의 영화관을 휩쓴 봄, 중국 홍콩침례대 역사학과의 젊은 연구자는 차분히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의 중요한 연구대상 또한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뺏은 계유정난이었다. 최동혁 홍콩침례대 역사학과 연구원은 10여 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뒤져가며 조선의 권력 지도를 그렸다. 이 결과물이 4월 발표됐다. 러닝타임 2시간에 못다 담은 500년 조선 역사 속 권력자들의 진짜 이야기를 소개한다.
올해 초 큰 흥행을 거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사건, 계유정난을 소재로 제작됐다. 관객들은 단종과 엄흥도라는 두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며 계유정난이란 거대한 사건 속 객체로 여겨진 이들에게 마음을 쏟았다.
한편, 계유정난을 거대한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읽은 연구가 4월 1일 국제학술지 ‘피지카 A: 통계 역학 및 응용(Physica A: Statistical Mechanics and its Applications)’에 발표됐다. 논문에는 단종을 돕거나 위협했던 인물 간의 권력 지도가 들어 있다. 영화가 전체 사건의 한 점이었던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게 했다면, 이번 연구는 그 시대를 이룬 여러 사람의 점을 모아 ‘권력 지도’로 만들어 사건의 전체 모습을 보여준다. doi: 10.1016/j.physa.2026.131353
연구팀은 권력 지도를 만들기 위해 통계이론물리학적 접근법을 활용했다. 통계이론물리학은 작은 구성요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계적 방법으로 해석해 큰 현상을 설명하는 분야다. 연구팀은 통계이론물리란 과학 도구가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큰 현상’을 그 속에 살아가던 인간이라는 ‘작은 구성요소의 상호작용’으로 풀어내는 데 적격이라고 봤다.
이런 분석방법이 실제로도 효과적인지 살펴보고자, 연구팀은 우선 계유정난 당시 인물 간의 권력 지도를 그렸다. 그러자 수양대군, 안평대군, 단종 등 주요 인물과 연결된 관리들의 모습이 직관적인 이미지로 드러났다. 지도 속 관리들의 연결망만 봐도 주요 인물의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통계이론물리는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좋은 도구라는 점이 입증됐다.
이어 조선 전체의 흐름을 보기 위해 과거에 급제한 관료 1만 4638명의 생애를 분석했다. 그 결과 계유정난, 나아가 조선왕조 500년을 움직인 ‘작은 점’들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었다. 조선의 흥망성쇠는 한 명의 왕, 한 명의 신하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연구를 진행한 최동혁 중국 홍콩침례대 역사학과 연구원과 그를 지도한 박주용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만나 설명을 들었다.
데이터로 본 ‘왕과 사는 남자’ 계유정난 권력지도
25명 왕이 아닌, 1만 4638명 신하의 이야기로 풀어낸 조선
조선은 과거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했다. 하지만 관료들의 인생은 성적순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논문에서는 “조선시대 관료들의 성공은 과거 성적보다는 그들의 배경에 달려 있었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같은 패턴은 더더욱 굳어졌다”고 설명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우리가 짐작했던 ‘쉬운 성공의 비밀’을 숫자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흔히 조선을 ‘지독한 기록의 나라’라고 말한다. 조선시대 작성된 수많은 기록물 중, 왕 25명(제1대 태조부터 제25대 철종까지)이 472년간 재위하는 동안 벌어진 사건을 모조리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은 단연 백미로 꼽힌다. 6월 4일 만난 박 교수는 “과거에 하지 않았던 연구를 해 보고자 고민하다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방대한 데이터를 떠올렸다”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실록은 왕의 이야기입니다. 왕은 신하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므로 실록에 등장하는 신하들을 보면 조선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흐름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최 연구원은 실록 속 관료들을 하나하나 분석하기 위해 10년의 시간을 들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다. 그의 구슬은 총 1만 4638알이었다. 1만 4638명 과거 급제자라는 데이터는 또 다른 거대한 기록물인 ‘방목’에서 왔다. 방목은 과거에 합격한 사람들의 목록이다. 과거 시험을 실시한 해, 그 해 과거 급제자의 수, 그리고 이들의 석차가 나타나 있다.
방목엔 개인정보도 상세히 정리돼 있는데, 이름, 출생지, 생년월일, 경력과 가족의 이름까지 적는다. 요즘 국가공무원시험 합격자의 인적 사항을 이렇게까지 정리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최 연구원은 방목에 기록된 804회의 문과 과거 시험을 통과한 1만 4638명의 과거 급제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실록에서 찾아 정리했다. 이렇게 정리된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면 한 급제자가 과거 시험에서 어떤 성적을 거뒀고, 그 사람의 배경은 어땠고, 그 사람이 실제로 왕과 얼마나 가깝게 활동했는지, 그의 품계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제거당하거나, 살아남거나, 수양대군이 그린 피의 지도
1453년 있었던 계유정난은 왕과 사는 남자 등 수많은 작품의 소재가 될 만큼 충격적이었다. 박 교수는 “계유정난 같은 권력의 대변동은 조선 역사 속에서 흔치 않은 사례”라고 했다. 연구팀은 이 대변동을 한 눈에 이해하기 위해 계유정난 당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관료들의 사회연결망을 분석했다. 실록에 함께 대화를 나눴다는 이야기가 나온 관료들을 선으로 잇는 식이다. 그리고 계유정난 이후 관료들의 운명을 색으로 표시했다. 수양대군의 편에 서서 승승장구했던 한명회, 신숙주 등 인물은 붉은 색으로 표시됐다. 혼란의 주모자로 지목돼 벌을 받은 김종서, 이개 등은 푸른 색으로 표시됐다. 푸른 색으로 표시된 이들이 대부분 수양대군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점을 떠올려 보면 계유정난 사회연결망은 ‘살생부’라고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사회연결망 속 안평대군의 위치다.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 아들이다. 안평대군은 문종이 죽고 난 뒤, 세를 불려 가는 수양대군을 견제하며 조카 단종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역시 계유정난 때 세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사회연결망 속 안평대군과 상호작용한 관료의 연결망이 수양대군의 것 만큼이나 촘촘하다. 이를 통해 안평대군이 당시 수양대군과 동등할 정도로 큰 정치적 결사체의 중심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안평대군과 연결된 이들이 모두 푸른 색으로 색칠된 점도 눈에 띈다. 붉은 색과 푸른 색. 형제의 운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최 연구원은 “사회연결망 지도는 역사 속 사건들을 사람 사이의 관계로 풀어낼 효과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고 의의를 밝혔다.
500년 역사를 무너뜨린 ‘0.78’의 불균등성, 오늘에 전하는 메시지
연구팀은 이어 관료의 성공을 정량화 했다. 연구팀은 관료의 성공은 그의 지위에서 드러난다고 봤다. 그래서 실록에 기록된 품계를 활용한 수치인 ‘총성공지표(Total Success Index)’를 통해 관료가 얼마나 높은 지위에서 얼마나 오래 활동했는지 숫자로 나타내기로 했다. 품계는 신하들의 계급을 나타내던 등급 체계다. 가장 낮은 종9품부터 가장 높은 정1품까지, 더 높은 관직에 있을 수록 숫자가 작다. 이에 따라 총성공지표는 높게 나타난다.
연구팀은 정말 과거 성적이 좋은 사람이 더 큰 권력을 가졌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출신 지역, 그리고 가문으로 구분되는 ‘특정 집단’이 사회의 권력을 얼마나 가져가는지도 함께 보고자 했다. 분석 결과, 과거 성적과 총성공지표 사이의 상관계수는 0.0894 안팎이었다. 상관계수가 0에 가까울수록 두 지표 사이에는 연결성이 약하다. 즉 과거 성적은 입궐 후 성공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권력이 특정 집단에 얼마나 쏠려 있는지 측정하기 위해선 지니 계수를 활용했다. 지니 계수는 원래 소득 불평등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치다. 권력, 부, 업적 등 자산이 얼마나 균등하게 분포됐는지 나타낼 때도 활용된다. 연구팀은 총성공지표를 활용해 지니 계수를 산출했다. 지니 계수가 0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양의 권력이 배분된다. 1이라면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연구 결과, 조선시대는 초기부터 중기까지 약 4세기 동안 0.52 안팎의 지니 계수를 나타냈다. 조선의 권력이 역시나 특정 집단에 쏠려 있었다는 의미다.
박 교수는 “수치 뒤에 숨겨져 있는 인과를 조심해서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0.52라는 수치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이 의도적으로 다른 집단이 권력을 얻는 걸 방해했을 수도 있으나, 다른 이유가 작동했을 수도 있다.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서 좋은 스승을 얻었던 경우, 가문의 인맥이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된 경우가 여기 포함된다. “지니 계수는 불균등을 보여주는 지표지, 불평등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다”라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오히려 연구의 핵심은 지니 계수가 급변하는 시기다. 연구팀은 400여 년간 비슷한 수치를 유지하던 지니 계수가 조선 후기인 19세기 중반부터 0.78로 급등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시기 조선은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소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 정치’ 시대였다. 왕권이 약해졌고, 관직을 사고파는 불공정 행위가 발생했다. 부정부패도 심화돼 백성의 삶이 피폐해졌다. 조선 몰락의 시작이 불균등 수치의 변화로 드러난 것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19세기 급증한 권력의 불균등성은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조선의 균형을 급속도로 붕괴시켰고, 이후 조선 왕조가 몰락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이렇게 풀이했다. “그러므로 시스템을 바꿀 때는 변화 자체보다는 변화 이후의 방향성을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합니다. 500년 뒤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를 같은 방법으로 평가할 때, 그 평가는 상당히 냉혹할 수도 있어요. 지금 도입하려는 변화들이 미래에도 좋은 선택으로 여겨질까요? 역사적 평가는 다를 수도 있죠.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역사를 보며 오늘을 되짚어봐야 합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비슷한 결을 유지하니까요.”
최 연구원은 “500년 뒤 후손들은 우리 사회에서 양반을 찾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재벌, 정치인, 또는 저명한 학자를 양반으로 볼까요? 오늘날의 양반들이 초래할 사회의 불균형은 세상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요?” 그는 앞으로 총성공지표 등 방법론을 이용해 기존 역사학계에서 연구된 주제들을 다시 살펴볼 계획이다. 역사는 점점 더 높은 해상도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숫자로 재해석된 역사를 보며,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방법, 그리하여 500년 뒤 후손에게 떳떳할 방법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