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이 갑자기 빛을 잃기 시작한다. 빛이 에너지원인 외계 미생물에 태양이 감염된 것이다. 이대로 태양의 빛을 외계 미생물이 먹어 치우면 지구가 얼어붙고 인류는 멸망한다. 게다가 태양 주변의 별들까지 전염돼 빛이 사라지고 있다. 인류는 주변 우주에서 아직 빛나는 유일한 항성, 고래자리의 타우 세티로 과학자 그레이스를 보낸다. 지구 최후의 희망, 그레이스는 사라진 빛을 찾을 수 있을까.
3월 개봉을 앞둔 SF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진 과학자의 고군분투이자 예상 못한 만남과 공감의 여정이다. 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SF 영화 ‘마션’과 같이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우리가 외계인을 만난다면, 그의 ‘직업’은 뭘까? 그리고 그 외계인이 우리 앞에 나타난 동기는 대체 뭘까? 이 질문은 외계 문명과의 조우를 현실적으로 상상할 때 유용한 출발점이다. 외계인이 고도로 발전한 기술 문명과 정치 체제를 갖췄다면, 그 사회에도 여러 직업이 있을 것이다. 타인이 영양소를 섭취하도록 미각 기관을 자극하는 직업, 즉 요리사도, 덩치가 작은 동종의 어린 개체들을 모아서 제도화된 훈련을 이끄는 직업, 즉 교사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직업의 외계인이, 어떤 방식으로, 고향 행성을 떠나 머나먼 우주 속에서 우리와 마주할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우리가 만날 외계인을 향한 구체적, 과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처음 만난 외계인이 과학자인 이유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나서, 우리가 처음 만난 외계인의 직업은 과학자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게 됐다. 수십, 수백 광년을 가로지르는 성간 항해는 그 문명의 자원과 시간을 대규모로 요구하는 도전이다. 그래서 이런 성간 이동이 실현되려면 공동체가 합의할 수 있는 ‘분명한 동기’가 필요하다. 사회 전체의 매우 절박한 사건이나, 누구나 흥분할 만큼 매력적인 목적 말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동기는 생존이다. 외계인의 행성에 종말이 임박했고, 유일한 해결 수단은 머나먼 우주 어딘가에 있다면 성간 항해가 사회적으로 승인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우주선에 아무나 태우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탑승하는 이유, 수행할 임무, 감수해야 할 위험을 정확히 이해한, 믿을 만한 개체가 뽑힐 것이다. 이 선발의 중심엔 문제를 정의하고 가설을 세워서 관측과 실험으로 검증하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판단력을 지키는 직업이 놓인다. 따라서 ‘가장 먼저 올 외계인’은 사명감을 갖춘 과학자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외계인 과학자가 하필 지구에 ‘직접’ 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구는 분명 아름다운 행성이지만 외계 문명의 위기를 해결할 정도로 ‘자원적’ 가치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구보다 금속, 에너지 자원이 많은 천체는 우주에 널려 있다. 따라서 우리와 다른 존재의 조우는, 각자의 절박한 동기로 고향 행성을 떠난 두 문명이 우주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바로 그런 만남을 그린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발단은 우주적 재난이다. 태양은 물론, 지구에서 보이는 별들이 일제히 빛을 잃었다. 지구의 과학자 그레이스는 아직 빛나는 유일한 별인 고래자리의 타우 세타로 머나먼 성간 이동에 나선다.
발전한 문명이 발견‘당하는’ 우주적 역설
우리가 서로 다른 두 우주 문명의 만남을 묘사할 때, 오래 의지해온 편견이 있다. 늘 한쪽이 이동 수단을 타고 다른 쪽의 별로 찾아간다. 즉 지구가 외계 문명의 침공을 당하거나, 반대로 우리가 외계 행성에 발을 딛는다. 이런 상상엔 인류 역사의 영향이 짙다. 지구에선 상대적으로 발전이 늦은 문명이 더 발전한 문명에게 발견‘당하는’ 역사가 반복됐다. 같은 행성 안에서 대륙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리는 현실적이다. 이동 수단을 먼저 개발한 문명이 돌아다니면서 다른 문명과 만나는 ‘능동적 조우’가 가능하다.
하지만 우주는 차원이 다르다. 즉 우주 규모에서 행성들 간의 조우는, 행성 규모에서의 만남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광속을 극복하고 시공간을 접어 가로지르는 문제는 물리 법칙과 정면충돌한다. 따라서 별과 별 사이의 조우는 ‘멀리서 울린 흔적을 먼저 듣는 수동성’이 ‘직접 찾아가는 능동성’보다 우선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전파가 등장한다. 고등 문명은 의도와 무관하게 전파를 흘린다. 기술 문명에 더 빨리 도달한 행성이 신호를 더 오래, 더 멀리 퍼뜨렸을 것이다. 즉 ‘라디오 버블’이 더 크고 버블에 들어오는 별들도 늘어난다. 문명이 먼저 발전한 행성은 ‘발견될 확률’도 크다.
이런 역설을 반영하면 많은 SF 영화가 지구를 외계인의 주요 침공 대상이나 방문지로 설정하는 건, 지구의 자의식 과잉이 반영된 상상일 수 있다. 지구가 우주에 흔적을 남긴 영역은 발견됐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좁아서다. 그래서 ‘프로젝트 헤일메리’ 속 그레이스와 로키의 조우야말로 현실적인 서사라고 본다.

NASA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제작한 고래자리의 타우 세티 항성 이미지. 이 항성과 그 주위의 5개의 행성이 타우 세티 행성계를 이루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선 성간 여행
우리는 지구 밖의 다른 생명체를 만나려면 우주의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조차 아직 모른다. 우주선으로 임의의 별에 가더라도, 마침 그곳에서 다른 문명이 우리를 기다릴 확률은 거의 없다. 우주의 특정한 한 점이 아니라, ‘프로젝트 헤일메리’처럼 각자의 이유로 우주 공간을 떠돌던 두 문명이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이 더 자연스럽다.
‘헤일메리’는 미식축구에서 단 한 번의 패스로 역전하는, 가장 극적인 전략을 뜻한다. 2015년 12월 3일, 미국 내셔널풋볼리그(NFL) 경기에서 명장면이 펼쳐졌다. 그린베이 패커스의 애런 로저스는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와의 경기 종료 직전에 무려 약 56m 거리의 패스를 성공시켰다. 경기장 끝 엔드존까지 날아간 공을, 그 위치에 있던 동료 선수가 낚아채 기적 같은 터치다운을 만들었다.
미식축구에서 헤일메리 패스가 성공하면 터치다운 6점에, 상황에 따라 추가 점수까지 올리면 최대 8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헤일메리는 너무 대담한 도박이어서 가장 희귀한 장면이다. 이 표현은 ‘아베 마리아’, 즉 성모 마리아에게 올리는 기도에서 유래했다. 기도에 가까운 최후의 발악이란 의미도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그런 절박함에서 출발한다. 태양이 빛을 먹고 사는 외계 미생물이 감염돼 캄캄해진다. 불 꺼진 태양 곁의 차디찬 지구와 인류 종말이 임박한다. 태양 주변의 별들까지 이 외계 미생물에 감염돼 빛을 잃는다. 작품 속 과학자들은 이 우주 팬데믹을 일으킨 외계 미생물을 ‘아스트로파지’라고 부른다. 별을 뜻하는 아스트로(astro)에, 박테리오파지의 파지(phage)를 더한 이름이다. 지구 과학자들의 희망은 밤하늘에 빛나는 유일한 별, 고래자리의 타우 세티다. 지구는 실낱같은 마지막 가능성을 믿고, 과학자인 주인공 그레이스를 뽑아 타우 세티로 보낸다. 헤일메리의 기도 같은 선택이다.
우주를 가로지를 공감의 가능성
그런데 타우 세티로 향하던 그레이스가 거대 우주선을 발견한다. 거기서 자신과 목적지도, 가는 이유도 같은 외계인 과학자 로키를 만난다. 로키는 고향인 에리다누스자리 40번 별을 구해야 한다. 이 만남이 중요한 건,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아서다. 호기심은 과학자의 본능이기에 그레이스와 로키는 우주의 가장 보편적 지식인 수학과 물리학을 공용어 삼아서, 서로의 언어를 해독해 간다. 번역의 단서를 힘들게 찾고 대조하며 의사소통이 매끄러워진다. 이 과정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주 어딘가의 신호를 기다리고 또 신호를 보내려 애써온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SETI) 과학자들을 연상시킨다.
그레이스와 로키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고향을 살리겠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공유한다. 이 감정은 이해가 불완전한 언어 너머로 깊이 전해진다. 자신과 똑같은 재앙을 맞은 로키를 만나서 그레이스는 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나와 같은 처지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버티는 존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위로받는다.
과학자들의 만남이기에 그레이스와 로키 사이엔 경이로움과 설렘의 자리가 혐오보다 훨씬 넓다. 외계 문명을 상대할 평화 사절단이 필요하다면, 과학자가 가장 적합한 직업이란 생각도 이 지점에서 구체적인 설득력을 얻는다. 상대를 정복하거나 굴복시킬 기술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할 기술이 필요해서다.
결국 이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핵심은 다채로운 ‘조우’에 대한 상상이다. 외계 문명과의 만남이 침공이나 정복의 서사에 갇힐 이유가 없다. 오히려 우주라는 물리적 조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일수록 조우는 우연에 가깝고, 동기는 절박해지며, 그 만남의 주역은 과학자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과학적 만남은 경이와 협력의 가능성을 넓게 열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