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과학과 경제, 지정학을 관통하는 키워드, 희토류의 흥미진진한 세계를 안내한 장홍제 교수의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희토류의 발견과 활용은 지각 깊은 곳에 먼지처럼 흩어진 17개의 원소를 정교하게 분리해 낸 여정이었습니다. 지구 전체에서는 희소하지 않지만 곳곳에 묻힌 양이 희박했고, 채굴에 따르는 환경 문제도 수반됐지만 인류는 희토류 원소들의 유용성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Victor Gray(W)
녹색 빛을 쬐어 주면, 다운컨버전을 일으키는 물질은 녹색보다 낮은 에너지의 붉은 빛(가운데)을, 업컨버전을 일으키는 물질은 녹색보다 높은 에너지의 푸른 빛(오른쪽)을 방출한다.
탁월한 에너지 훈련사, 업컨버전 나노물질
여러 어려움이 있더라도, 전자기기의 선명한 디스플레이부터 전기차의 강력한 배터리까지 희토류는 포기하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광물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땅속에 뒤섞인 희토류를 하나하나 더 순수하게 분리하는 데 집중해 왔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희토류 원소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게 됐지요.
그런데 이제 희토류 문명은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지금까지 분리한던 희토류를 다시 섞어야 합니다. 앞으로 희토류 화학의 목표는 희토류들의 본성을 어떻게 ‘잘 섞어야’ 기존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을지를 찾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순수한 단맛과 짠맛이 무엇인지 이해해서 제어하게 됐으니, 다시 이 맛들을 절묘하게 배합하면 단짠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 미래의 희토류를 상징하는 이 흥미로운 배합 기술이 그 이름도 낯선 ‘업컨버전(Upconversion)’입니다. 분리를 넘어, 융합의 연금술이 빚어 낼 미래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업컨버전이 뭘까요? 여러분은 자외선 램프를 비추면 형형색색의 빛을 뿜는 형광 페인트나 형광 스티커를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자외선처럼 에너지가 높고 파장이 짧은 빛을 흡수해서, 에너지가 낮고 파장이 긴 빛인 가시광선이나 적외선을 내뿜는 이와 같은 반응은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고에너지에서 저에너지로 전환하는 일반적인 현상이 ‘다운컨버전(Downconversion)’입니다.
그렇다면 업컨버전은 이와 반대로 저에너지의 빛을 받아 고에너지를 방출하는 특이한 현상임을 직감할 수 있지요. 정확히는 적외선처럼 저에너지의 장파장 빛을 두 번 이상 흡수해 하나로 뭉친 뒤, 가시광선, 자외선처럼 상대적으로 단파장인 고에너지 빛을 내뿜는, 경이로운 에너지 전환 현상입니다.
에너지를 적게 들여 높은 에너지로 뛰어 오르려면 중간 쉼터가 필요합니다. 즉 원자가 흡수한 에너지를 내부에 잠시 머금고 있을 에너지의 중간 계단이지요. 대부분의 물질은 에너지를 받으면 곧바로 바닥 상태로 떨어뜨리면서 빛을 방출합니다. 하지만 희토류 원소들은 f-오비탈이라는 원자핵을 둘러싼 여러 방을 활용해 에너지를 중간 단계에 오래 붙잡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원하는 대로 에너지가 뛰어오르거나 떨어지도록 하려면, 중간 계단들의 높낮이를 맞춰야 합니다. 희토류 원소들의 혼합 비율을 조작하는 목적이지요.
많은 희토류 원소의 용도가 빛과 관련된 것처럼, 업컨버전 나노물질을 구성하는 희토류들의 광학적 특성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희토류 중 빛을 받아들이는 안테나인 감광제는 이터븀(Yb)이 대표적입니다. 어븀(Er), 터븀(Tb), 툴륨(Tm) 등은 이터븀이 흡수한 빛 에너지를 전달받아서 화려한 빛을 방출하는 활성제입니다. 업컨버전 나노물질이 적외선을 흡수하면 이터븀이 적외선 광자를 하나씩 잡아서 활성제 희토류에게 전달합니다. 활성제는 이 적외선 광자의 에너지들을 차곡차곡 쌓았다가 한번에 자외선 같은 고에너지 빛으로 터뜨리는 것입니다.
희토류가 지휘하는 빛과 에너지의 역동성
업컨버전
이터븀이 저에너지의 적외선 광자들을 흡수, 축적하면 어븀 등이 고에너지의 가시광선, 자외선을 방출한다. 오른쪽 사진에선 푸른 가시광선을 방출하고 있다.

다운컨버전
업컨버전과 반대로 어븀 등이 자외선 같은 고에너지 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낮춘 가시광선, 적외선을 방출한다. 오른쪽 사진은 자외선에 반응한 조화가 형광빛을 내고 있다.


다시 만난 희토류들의 눈부신 케미
예전에는 여러 희토류가 뒤섞인 혼합물 상태는 각 희토류의 순도가 낮은 골칫덩이였습니다. 그러나 희토류들이 잘 혼합된 업컨버전 나노물질은 에너지 교환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케미입니다. 업컨버전 나노물질을 구성하는 희토류들이 서로 다른 빛을 흡수, 발산하는 과정에서 낮은 에너지를 모아서 높은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덕입니다.
이런 이유로 업컨버전 나노물질은 발전 효율을 높일 신소재로 먼저 에너지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업컨버전 나노물질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해, 그동안 버려졌던 낮은 에너지의 적외선을 모아서 고에너지의 가시광선으로 바꾸는 태양전지를 현재 한국에서도 연구 중입니다. 또한 업컨버전 나노물질로 오직 특정한 파장의 적외선 빛에서만 드러나는 문양을 제작해 지폐 등에 삽입하는 위조 방지 기술도 가능합니다.
수술 없이 암을 제거하는 광역학(Photodynamic) 치료와 같이, 업컨버전 나노물질은 첨단 의료 분야에서도 핵심 소재입니다. 가시광선을 받으면 파괴적인 활성산소를 뿜는 포르피린 유도체와 업컨버전 나노물질을 결합시켜 봅시다. 광역학 치료의 목표는 포르피린 유도체로 활성산소를 방출시켜서 암세포만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 결합 물질을 투여해서 암세포가 있는 부위에 축적한 후, 해당 부위에 근적외선을 쬐어줍니다.
근적외선은 인체에 무해한데다 깊은 피부 속까지 투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온 적외선을 이터븀이 흡수하고, 활성제인 어븀이 상대적으로 고에너지인 가시광선으로 발산합니다. 그러면 가시광선과 포르피린 유도체가 반응하면서 암세포 부위에서만 활성산소가 방출되죠. 따라서 업컨버전 나노물질을 사용하는 광역학 요법은 종양이 발생한 좁은 부위만 더욱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업컨버전 기술은 원소 간 조합의 시너지로 희토류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뒤섞인 재료들을 정확히 분리해야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듯, 순도 높은 희토류를 정제해 온 그동안의 노력 덕분에 이 희토류들을 다시 조합해 혁신적인 물리 현상에 적용하게 됐지요.
환경 파괴 없이 희토류 채굴할 미래
업컨버전 나노물질이 성장하면서 앞으로도 희토류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증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동시에 희토류가 적은 양이 넓은 곳에 매장된 자원인 까닭에 채굴을 위해 넓은 땅을 파헤쳐야 하고, 채굴한 희토류의 정제 과정에서 사용하는 대량의 물과 화학 물질이 수질·토양 오염을 유발하는 등의 문제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희토류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활용하려면, 우리 인간이 희토류의 순환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땅속이 아닌 폐기물에서 희토류를 채굴하는 도시 광산은 이 순환 체제의 한 축이 될 수 있습니다.
연소되면 기체로 흩어지는 화석 연료와 달리, 희토류는 고장 나고 버려진 전자기기 속에서도 고유한 특성을 가진 채로 남아 있습니다. 폐기된 스마트폰, 스피커, 전기차 모터 등에 묻힌 희토류를 다시 추출하는 기술은, 땅 속을 파헤치며 환경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도 디지털 문명의 핵심 자원을 공급하는 현대의 연금술입니다.
특히 이미 용도에 맞게 고농축된 희토류 덩어리에서 희토류들을 분리하는 순환 체제는, 재활용할 수 있는 희토류 자원의 밀도도 압도적입니다. 땅 속에 조금씩 넓게 퍼진 희토류를 직접 분리, 추출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 덕분입니다. 현재 폐가전제품 등에 들어간 폐자석에 고온에서 전류를 가해 희토류를 추출하는 기술이 개발됐고, 한국에서는 이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 폐가전에서 폐자석 원료를 수집하는 시스템을 비롯한 재자원화 산업 구조를 수립하는 중입니다. 위험한 산성 물질, 화학 물질을 사용하는 방식을 벗어나, 미생물로 원하는 희토류 원소만 모으거나 원소의 화학 구조를 활용해 특정 원소만 분리하는 혁신적인 친환경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요.
앞으로 고갈의 우려 없이 희토류를 사용하려면 어떤 낭비도 없이 순환시키는 닫힌 고리 형태의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 시스템은 자원 안보를 넘어 환경보호와 윤리적 책임까지 충족시킬 미래 산업의 표준이기도 합니다. 결국 희토류는 일회성 소모품이 아닌, 발전하는 인류 문명과 함께 순환하며 가치를 더해 갈 불멸의 자산입니다.
우리는 스웨덴 이테르비의 작은 돌덩어리에서 시작된 17개의 원소가 어떻게 인류의 삶을 바꿔 놓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희토류는 주기율표 아래쪽에 방치된 부록이 아닙니다. 일상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을 조율하고, 동력을 만들며, 생명을 지탱하는 우리 문명의 숨은 설계도이자 톱니바퀴들입니다.
과학의 역사는 모르던 것을 알아내고, 알아낸 것의 본질을 규명하며, 이 본질을 딛고 한계 너머로 걸음을 옮기는 과정입니다. 희토류가 땅속에 있을 때처럼 다시 섞여 새로운 빛을 발하는 업컨버전 나노 소재 이후에도, 희토류는 계속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며 인류 문명의 미래를 환히 비출 것입니다.

Kevnmh(W)
중국 남부 간저우성에서 산에 매장된 희토류를 현장에서 바로 추출하기 위해, 땅에 구멍을 뚫고 황산암모늄 등의 화학물질을 직접 주입해서 흙을 녹이는 현지 침출이 진행 중이다. 현지 침출 공법은 흙 속의 희토류만 신속하게 추출할 수 있지만, 추출에 사용한 화학물질도 토양과 지하수에 직접 침투해서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