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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SUB2 달성…기술 도핑이다?”
세바스티안 사웨 선수가 런던 마라톤에서 인류 최초로 두 시간의 벽을 넘어 ‘SUB2(서브2)’를 달성했다. 마라톤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림과 동시에 전세계 언론의 시선은 신발로 향했다. 사웨 선수의 기록은 단지 신발 덕분일까? 하지만 과학동아가 만나본 전문가들은 ‘신발이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도움받을 수 있을만큼 역량을 끌어올린 선수들에게 돌아갈 영광’이라고 입 모아 말했다.

TCS London Marathon
SUB2 기록
35년 만에 넘은 2시간의 벽
2026년 4월 26일(현지시간), 케냐의 마라토너 세바스티안 사웨가 1시간 59분 30초로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인류 최초로 마라톤을 2시간 이내 완주(서브2)한 것이다. 서브2 기록을 달성한 사람이 사웨뿐만이 아녔다. 에티오피아 선수 요미프 케젤차도 사웨보다 고작 11초 늦은 1시간 59분 41초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두 명이 2시간의 벽을 깼다는 사실은, 서브2가 마라토너의 재능은 물론 오랫동안 동안 쌓여온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 마라톤 기록이 지난 한 세기 동안 약 한 시간이나 당겨졌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1991년, 미국의 응용 생리학자 마이클 조이너 당시 메이요 클리닉 연구원은 인간의 생리학적 한계치를 계산했을 때, 이상적인 조건에서 마라톤 완주가 1시간 57분 58초까지 가능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며 서브2 논쟁에 불을 붙였다. 당시 마라톤 세계 신기록은 2시간 6분 50초. 조이너 연구원은 그 기록을 9분이나 단축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doi: 10.1152/jappl.1991.70.2.683
그는 ‘최대산소섭취량’, ‘젖산 역치’, 그리고 ‘러닝 경제성(러닝 이코노미)’이라는 세 개의 요소를 변수 삼아 마라톤 퍼포먼스를 측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는 이후 마라톤 과학의 기본 틀이 됐다.
최대산소섭취량
엔진 배기량: 느리고 크게 뛰는 심장
최대산소섭취량(VO2max)은 몸이 운동 중에 산소를 얼마나 많이 받아들이고, 운반하고, 실제 에너지 생산에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엔진 배기량’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마라토너뿐만 아니라 조정처럼 지구력이 핵심인 스포츠 종목에서 선수의 수준과 역량을 운동생리학적으로 따졌을 때 가장 먼저 보는 지표가 최대산소섭취량입니다.” 한국스포츠과학원에서 만난 박원일 스포츠과학연구실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산소는 영양분을 분해해 몸에서 쓰는 에너지원인 ATP(아데노신 삼인산)를 만들 때 필요하다. 마라톤은 산소를 사용해서 ATP를 만드는 ‘유산소 운동’이다. 최대산소섭취량이 중요한 이유다. 이 최대산소섭취량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두 가지다.
첫 번째, 1분 동안 심장이 내보내는 혈액의 양인 심박출량 최대치다. 일반인이나 운동선수나 안정 상태에서 1분당 약 5L의 피가 돈다. 차이는 심박수다. “일반인의 안정 시 심박수가 보통 60~100회 정도라면 한국의 마라토너는 50회 초반대, 세계 정상급 마라토너 심박수는 30회 초반도 나옵니다.” 이유는 마라토너 심장, 특히 좌심실 크기 차이 때문이다. 마라토너 심장은 일반인 기준 약 1.5배 크기다. 좌심실이 크고 강할 수록 한 번에 내보낼 수 있는 혈액의 양이 많다. 소위 말하는 스포츠 심장이다. 마라토너는 이미 엔진의 크기부터 다른 것이다.
두 번째 변수는 근육이 동맥이 보낸 산소를 얼마나 많이 꺼내 썼는지를 알려주는 ‘동정맥 산소차’다. 마라토너는 피가 공급한 산소를 남김없이 꺼내 쓰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 결과 마라토너의 최대산소섭취량은 70~85mL/kg으로, 약 30~40mL/kg인 일반인보다 무려 2배의 최대산소섭취량을 보여준다. 체중 1kg 당 1분 동안 70~85mL의 산소를 소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라토너의 달리기 강도에 따른 젖산 증가 그래프

자료: Sports Medicine
달리기 강도가 증가함에 따라 혈중 젖산 농도는 두 단계에 걸쳐 증가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젖산은 생성되긴 하지만 몸이 이를 충분히 처리할 수 있어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농도가 유지된다. 하지만 역치 구간을 지나며 농도는 점점 높아진다. 이후 혈중 젖산 농도 4mmol/L를 지나는 시점에서 젖산은 급격하게 축적된다.
젖산 역치
엔진의 지구력: 무너짐을 결정하는 경계선
‘젖산 역치’는 엔진을 얼마나 오래 고출력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젖산은 에너지를 더 만드는 과정에서 근육에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긴급 상황에는 산소없이 ATP를 만드는 비상 경로가 발동되는데 젖산은 이때 생성된다. 젖산이 축적되면 근육 내부 환경이 산성화되고, 이로 인해 통증과 피로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젖산 역치의 정의는 여러 가지다. 2009년 독일 파더보른대 스포츠의학 연구소와 자를란트대 스포츠예방의학 연구소팀은 당시 25개의 젖산 역치 정의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당시 이 역치들을 3개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젖산 농도를 고정한 값, 젖산이 처음 증가하는 시점, 젖산이 급격히 증가하는 시점이다. 지금도 젖산 역치는 하나의 개념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다만 젖산 역치가 마라토너가 한계 전까지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라는 점은 모두 동의한다. doi: 10.2165/00007256-200939060-00003
젖산 축적 그래프는 지수함수 그래프처럼 그려진다. 완만한 경사를 그리던 선은 어느 순간 가팔라진다. 일반인의 경우 젖산은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증가한다. 최대 운동 강도의 50~60% 수준에서 젖산이 눈에 띄게 상승한다. 반면 엘리트 마라토너는 최대 운동 강도의 약 87~90% 수준에 도달해서야 젖산이 급격하게 치솟는다.
SUB2의 가능성을 보여준 킵초게의 비공식 기록 챌린지
2019년 10월 12일, 케냐의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초게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NEOS 1:59 Challenge’에서 1시간 59분 40초로 마라톤 완주에 성공하며 서브2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킵초게의 기록은 공식 세계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당시 도전은 마라톤 경기가 아닌, 서브2 달성을 위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챌린지 내내 차량이 킵초게에 앞서 달리며 레이저로 이상적인 속도를 바닥에 표시해줬다. 이는 페이스를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줬다.

INEOS 1:59 Challenge
여러 명의 마라토너들이 선수의 목표 속도를 유지하도록 리듬을 맞춰주는 보조 주자 역할을 맡아 교대로 투입돼 킵초게를 보조했고, V자 대형으로 바람막이 역할까지 맡았다.
러닝 이코노미
엔진 연비: 더 적은 에너지로 달리는 능력
마지막 러닝 이코노미는 그 엔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를 나타내는 ‘연비’ 지표다. “같은 속도로 달리더라도 산소를 많이 쓰는 선수보다, 적게 쓰는 선수가 훨씬 유리해요.” 박 연구위원이 말했다.
러닝 이코노미는 보통 일정한 속도에서 소비되는 산소량으로 측정한다. 예를 들어 시속 16km로 달릴 때 한 선수가 분당 50ml/kg의 산소를 쓰고, 다른 선수가 분당 55ml/kg 산소를 쓴다면 전자가 더 뛰어난 러닝 이코노미를 가진다. 특히 러닝 이코노미는 선수들 사이의 실력을 가름하는 변수로 각광받는다.
1980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연구팀은 엘리트 장거리 선수 12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최대산소섭취량과 러닝 이코노미 사이 관계를 비교했다. 당시 기록은 놀라웠다. 최대산소섭취량은 10km 기록과 상관관계(r=-0.12)가 거의 없었지만, 러닝 이코노미는 매우 강한 상관관계(r=0.8)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상관계수(r)의 절대값이 0.7보다 크면 강한 상관관계, 0.3미만이면 약하거나 거의 없는 관계로 본다. 즉 엘리트 경쟁 내에서는 산소를 많이 쓰는 것의 구분력이 떨어지는 반면, 효율적인 산소 활용은 기록 및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doi: 10.1249/00005768-198012050-00010 2004년 호주 스포츠연구원, 로열멜버른공대 등 공동연구팀도 엘리트 선수 간 경기력 차이에 러닝 이코노미가 핵심 변수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엘리트 선수들 사이에서도 산소 소비 효율성이 최대 30%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doi: 10.2165/00007256-200434070-00005
호주 공동연구팀은 러닝 이코노미를 단순한 체력 지표가 아니라,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전신 효율 시스템’으로 설명했다. 연구팀은 시스템을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눴다. 첫째는 생리학적 요인으로, 근육의 에너지 대사 효율, 근섬유 구성, 미토콘드리아 밀도 등이다. 둘째는 생체역학적 요인이다. 달릴 때의 자세, 보폭, 상하 움직임 등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움직임의 효율성 등이다. 셋째는 힘줄과 근육의 탄성 에너지 활용이다. 달릴 때 착지 과정에서 저장된 탄성 에너지가 다시 추진력으로 재사용되면 추가적인 산소 소비 없이도 움직임을 이어갈 수 있는데, 이 메커니즘이 러닝 이코노미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이 세 가지 요인이 이번 서브2를 만들었다. 생리학적 요인은 마라토너들이 타고 나는 ‘재능’이라면, 생체역학적 요인은 개선할 수 있는 ‘훈련’의 단계다. 마지막 탄성 에너지는 신발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 혁신’의 영역이다. 바로 2017년, 마라톤에서 ‘기술 도핑’이란 표현을 만들어 낸 ‘슈퍼슈즈’ 카본화의 기본 작동 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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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3 구조
❶ 바깥을 감싸는 초경량 갑피는 미풍에도 하늘에 떠 있어야 하는 카이트서핑(Kite surfing) 연의 소재에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끈과 박음질까지 최소화했다. ❷ 중창은 충격을 흡수하는 것이 아닌 밀어내는 소재로 만들어졌다. 높이는 39mm, 아디다스가 개발한 라이트스트라이크 프로 에보(Lightstrike Pro Evo) 폼이 사용됐다. 폼은 기존 대비 50% 더 가볍다.
❸ 탄소섬유판이 지렛대처럼 휘어졌다 펴지면서 힘을 앞으로 밀어준다. 아디다스는 탄소섬유판을 말발굽 형태로 설계해 전작 대비 러닝 효율을 1.6% 향상시켰다. ❹ 밑창의 고성능 합성 고무 소재는 지면과 많이 접촉하는 앞부분에만 전략적으로 배치해 고무의 양을 최소화했다.

탄성의 시대
에너지를 돌려주는 슈퍼슈즈
마라톤화에서 탄성이란 개념이 중요해진 것은 2017년의 일이다. 나이키가 ‘줌 베이퍼플라이 4%’를 출시한 것이다. 신발은 고반발의 발포 소재인 ‘줌X’ 폼과 탄소섬유판을 결합해 탄성 에너지를 보존하고, 러닝 이코노미를 향상시킨다는 콘셉트를 삼았다.
2017년 워터 후그카머 미국 콜로라도대 운동학 연구원이 이끈 연구팀은 선수 18명을 대상으로 베이퍼플라이와 기존 러닝화를 비교했다. 당시 베이퍼플라이는 프로토타입 상태였다. 선수들은 시속 14~18km로 달렸고, 연구팀은 이들의 산소 소비량과 에너지 소비량을 직접 측정했다. 그 결과 베이퍼플라이가 기존 러닝화 대비 평균 약 4% 낮은 에너지 비용으로 같은 속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키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신발 이름에 4%란 숫자를 붙여 정식 출시했다. doi: 10.1007/s40279-017-0811-2
“마라톤에서 말하는 탄성은 정확하게 말하면 ‘반발 탄성’입니다.” 5월 4일 부산 한국소재융합연구원에서 만난 김정수 탄성소재연구본부장이 말했다. 반발 탄성이란 얼마나 잘 튀어오르느냐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고무공을 떨어뜨렸을 때 반발 탄성이 100%에 가까울수록 에너지 손실없이 처음 공을 떨어뜨린 위치 가까이 되돌아온다. 러닝화는 열로 손상되는 에너지가 있어 이론적으로 반발 탄성이 100%일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출시되는 러닝화 일부는 80%대에 이르는 높은 반발 탄성을 구현하고 있다.
신발은 갑피, 중창(미드솔), 밑창(아웃솔)로 구성된다. 갑피는 발등부터 발꿈치 뒤쪽을 감싸는 천이다. 중창과 밑창은 발바닥 아래 순서대로 위치한다. 카본화에선 중창이 기술의 핵심이다. 중창의 폼과 폼 사이에 탄소섬유판이 샌드위치처럼 끼워져 있다.
“보통 카본화라고 불리기 때문에 탄소섬유판이 핵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반발 탄성을 만드는 것은 탄소섬유판을 위아래로 감싸고 있는 발포 소재의 폼이에요.” 김 본부장이 설명했다. 대부분 신발에서 중창은 에너지를 많이 흡수하는 소재로 만들어진다. 신발을 신었을 때 푹신한 느낌을 받거나, 오래 걸어도 발이 아프지 않았다면 ‘쿠션감’이 좋은 소재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반면 카본화는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이 아닌 다시 밀어내는 소재로 중창을 만든다.
폼이 에너지를 튕겨낼 때 탄소섬유판은 지렛대의 역할을 한다. 발이 지면을 딛는 순간 휘어졌다가 다시 펴지면서, 힘의 방향을 앞으로 밀어준다. 때문에 전상우 이화서울의료원 정형외과 교수는 “카본화가 종아리 근육이 하던 일을 일부 대신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두꺼운 고반발의 중창과 탄소섬유판이 종아리 근육처럼 압축됐다가 다시 펴지면서 에너지를 앞쪽과 위쪽으로 돌려주고, 추진력을 내는 것이다.
나이키가 러닝화 시장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 무색하게, 사웨는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에보3’을 신고 서브2를 달성했다. 에보3은 반발 탄성과 초경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제품이다. 신발 한 짝 무게는 고작 97g, 작은 크기의 날계란 2개 수준이다. 앞서 출시된 프로 에보 제품은 137g이었다. 아디다스는 폼의 배합을 완전히 바꿔 무게를 50%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사웨는 기록 달성 후 “깃털처럼 가볍고 지지력이 뛰어난 최고의 신발”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웨의 기록을 신발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본질을 놓친 것”이라고 지적한다.

TCS London Marathon
2026년 4월 런던 마라톤 여성부에서도 세계 신기록이 경신됐다. 에티오피아의 티지스트 아세파가 2시간 15분 41초로 우승했는데, 그도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카본화를 신고 달렸다.
축적된 몸
정교한 장거리 마라톤 훈련
“서브2 기록은 신발이나 전략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이런 성과에 도전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능과 수년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스테판 세일러 노르웨이 아그데르대 운동생리학 교수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현대 지구력 스포츠 과학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운동생리학자 중 한명이다.
사웨와 그의 코치인 클라우디오 베리델리도 “서브2 달성 훈련이 1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세일러 교수는 “서브2 수준의 선수들은 주당 최대 240km에 달하는 훈련량을 소화한다”고 설명했다. 훈련의 약 80%는 낮은 강도의 장거리 달리기로 구성하고 나머지 20%를 고강도로 구성하면 높은 훈련량을 유지하면서도 과훈련과 피로 누적을 막을 수 있다. 사웨도 런던 마라톤을 준비하며 최적화된 훈련을 소화했다. 사웨는 훈련 주기를 10일로 늘려, 하나의 주기 안에 고강도 훈련을 3회 배치하면서 충분한 회복과 저강도의 훈련 시간을 확보했다.
세일러 교수는 지난 20년간 엘리트 마라톤에서 가장 큰 변화로 선수 각자에 맞춘 개별화된 훈련을 꼽았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적용하며 훈련법이 정교해졌다는 것이다. “슈퍼 슈즈는 이런 훈련 위에서만 의미가 있어요.” 세일러 교수는 서브2 달성 요소를 피라미드로 구조화했을 때 신발은 최상단에 있을 뿐이며, 그 아래 요소가 하나라도 빠진다면 슈퍼 슈즈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30년간 세계 정상급 마라토너들의 기본 생리학은 극적으로 변하지 않았어요. 이제는 훈련과 수면, 영양, 사회적 관계 등을 모두 포함하는 총체적 과정을 이해하고 있죠. 선수와 지도자 사이의 신뢰조차 결과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슈퍼 슈즈’ 카본화 내가 신으면 잘 뛸 수 있을까?
기자도 10km 달리기 대회에 참가한 적 있는 아마추어 러너다(개인 최고 기록 56:16, 부끄럽지 않은 기록이다). 과연 슈퍼 슈즈를 아마추어가 신는다면 개인 기록 경신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엘리트 마라토너들은 앞발로 착지하는 ‘포어풋’ 주법을 쓰고, 대부분의 슈퍼슈즈는 포어풋을 유도하는 형태로 앞코가 디자인돼 있다. “포어풋 주법은 기본적으로 종아리 근육과 아킬레스건이 계속 긴장된 상태예요. 카본화를 신으면 추진 단계에서는 도움이 되지만 착지 단계에서는 인체 부담이 증가합니다.” 전상우 이화서울의료원 정형외과 교수가 말했다. “과거에는 뒤꿈치로 착지하는 주법이 유행했을 때는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슈퍼슈즈와 함께 포어풋 주법이 유행하면서 아킬레스 부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아졌습니다.”
카본화는 중창이 두꺼운 것도 특징이다. 반발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세계육상연맹은 2020년, 마라톤 등 도로 경기용 신발의 경우 밑창 두께가 40mm를 초과할 수 없고, 탄소섬유판은 1장만 허용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40mm의 중창도 발목의 불안정성을 증가시켜 훈련이 충분히 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 부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동아DB
경쟁 구도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한 2위
“사웨 선수 바로 뒤에 고작 11초 늦게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에 주목해야 합니다.” 박 연구위원이 주목한 서브2 경신의 숨겨진 공신은 달리기 선수의 페이스 조절을 돕는 동료 달리기 선수, ‘페이스메이커’였다. “인간은 극한의 강도로 오래 달릴수록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져요.” 마라톤 중에는 혈액과 산소가 하체 근육에 집중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뇌로 가는 양이 줄어 판단력이 둔화될 수 있다. 즉 옆에서 적절한 속도로 달리며 페이스 조절을 즉각적으로 돕는 페이스메이커는 선수들이 마라톤 전략을 실제 경기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이다.
박 연구위원은 2위 케젤차가 사웨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했다고 봤다. 보통 페이스메이커는 25km에서 30km 지점까지 끌어주고 빠진다. 대회 주최나 선수와 사전에 협의된 지점이다. 그런데 이번 런던 마라톤에서는 사웨의 페이스메이커가 빠진 뒤에도 경쟁자인 켈제차 선수가 41km 지점까지 함께 달리면서 속도 유지에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웨 선수와 코치도 “케젤차 선수같은 강력한 경쟁자들과 함께 뛰며 서로 밀어붙인 것이 세계 기록 달성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마라톤 기록은 하나의 요소로 설명할 수 없다. 신체적·생리학적 재능, 데이터 분석과 체계적인 훈련 그리고 페이스 전략이 이를 정교하게 다듬는다. 슈퍼슈즈는 서브2 대기록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일 뿐이다.
인간은 어디까지 기록을 줄일 수 있을까. 세일러 교수는 “향후 10년 안에 남자 1시간 57분, 여자 2시간 7분까지 기록이 단축될 것같다”고 답했다. “서브2라는 상징적인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으니 더 큰 발전이 촉진될 거예요. 서브2 안에서 다시 한번 세계 신기록이 경신될 겁니다.”

TCS London Marathon
세바스티안 사웨(오른쪽)에 이어 두 번째로 서브2를 달성한 에티오피아 마라토너 요미프 케젤차(왼쪽)는 42.195km 레이스 중
41km 구간까지 나란히 달렸다. 전문가들은 페이스메이커가 빠진 뒤에도 두 선수 간 경쟁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