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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노벨화학상 우드워드

자연을 통제하는 매직 핸드 유기화학


유기합성의 예술가로 칭송되는 로버트 우드워드.


우드워드는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던 천연물질을 실험실에서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연 것이다. 키니네를 비롯한 천연물 합성과 비타민 ${B}_{12}$의 합성으로 대표되는 유기합서오하학의 새 장을 연 우드워드의 연구를 통해 유기화학의 세계에 다가가 보자.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물질을 얻어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로 약사, 의사, 연금술사 및 화학자들은 오늘날 유기화합물(탄소화합물)이라고 부르는 물질들을 다루었다. 처음에는 동식물의 조직이나 체액 등을 사용했지만 차츰 설탕이나 알코올 등의 몇몇 화합물들을 분리해 그 용도에 맞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탄소의 다양함에서

유기화학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이스트, 곰팡이, 버섯, 버드나무, 고래 및 인간을 포함해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명체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생명체로부터 인류는 비타민 B6, 페니실린, 무수카린, 아스피린, 세틸 알코올 등의 유기화합물질을 얻었다. 연료, 해열진통제, 항생제 등이 모두 탄소의 화합물인 것이다. 이러한 물질들이 구조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이들로부터 만들어지는 유도체는 어떤 것이 있는지, 또한 이들이 생체 내에 흡수됐을 때 부작용을 최소로 하는 것들이 모두 유기화학의 중요한 탐구대상이다.

유기화합물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성은 탄소의 특성에서 유래한다. 공유결합을 하고 있는 탄소는 삼차원의 정사면체, 이차원의 삼각형, 선형 등 다양한 결합을 만든다(탄소의 외곽 전자의 특성과 탄소 결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과학동아’ 98년 6월호 ‘노벨상 따라잡기’ 참조). 탄소는 자신뿐 아니라 산소, 질소, 황, 할로겐 원자들, 그리고 더 나아가 금속원소들과 다양한 반응을 통해 엄청난 개수의 유기화합물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탄소의 다양성이 현재 알려진 30만개 이상의 유기반응과 약 2천만개에 이르는 유기화합물로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경지

유기화학은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1차대전 동안 연합국들은 독일에 의존하던 합성염료, 의약품, 유기용매 등의 많은 화합물을 짧은 시일내에 자체 조달하기 위해 집중적인 연구와 투자를 했다. 그 결과 1차대전 이후 유기화학의 주도권은 독일로부터 스위스, 영국, 미국으로 옮겨가게 됐다.

1940년대 이전에는 유기화학자의 양적인 증가와 함께 합성 방법의 개선이 있었지만, 유기합성은 20세기 초와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 복잡한 구조를 가지는 화합물의 합성은 여전히 기피대상이었고, 유기화학자들은 그저 자기만의 좁은 전공분야에 머물러 있었다. 복잡한 구조의 유기화합물의 합성은 수많은 반응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합성 단계마다 새로운 이론을 적용하고 분석장비를 사용해 그 구조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한 유기화합물의 합성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1940년대에 하버드대학의 우드워드(Robert Burns Woodward, 1917-1979)가 동료 도링(Doering)과 공동연구로 키니네(quinine, 퀴닌이라고도 함)의 합성을 보고하면서 유기화학자는 이러한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경지를 맞이하게 됐다. 유기합성화학은 비로소 발전의 가속이 붙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화합물의 구조를 확인하는 기초가 다져지기 시작했다.


(그림1) 키니네 합성 경로


키니네 합성

키니네는 진토닉을 마시거나 보드카토닉을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친근한 화합물이다. 키니네는 토닉워터에 들어있는 물질인데 쓴 맛을 낸다. 또 이것은 근육 경련의 전통적인 치료제로 사용돼 왔다. 남미의 안데스 산맥지역에 분포된 신코나 나무 껍질로부터 얻어지는 키니네는 페루의 예수회 수도사가 발견해 말라리아 치료제로 1640년경에 유럽에 소개됐다. 이후 네델란드가 볼리비아로부터 밀반출해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 신코나 나무를 이식한 후, 키니네를 전세계에 독점으로 공급했다. 1942년 일본이 자바섬을 점령하게 돼 연합국은 키니네 공급에서 곤란을 겪게 됐다. 이때 우드워드의 키니네 합성이 성공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나 생각된다. 오늘날 키니네는 부작용이 작은 합성 항말라리아제(클로로퀸 등)에 의해 대체돼 사용되고 있다.

키니네의 합성은 우드워드 이전 약 40년간 추구돼온 전통적인 주제였다. 그러나 최종적인 성공은 1944년의 우드워드와 도링에 의해 달성됐다. 이들의 합성 이후 1970년에 들어서 호프만-라로쉬(Hoffmann-La Roche)사에서 합성 방법을 개선할 때까지 근 25년간 이 분야에서 특별한 진전이 없었다는 점을 보면 이 합성이 얼마나 핵심적이고 중요한 공로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드워드는 (그림1)과 같이 아이소퀴놀린으로부터의 몇가지 경로를 거쳐 키니네를 합성하는 경로를 택했다. 특히 우드워드는 이미 12세때 키니네의 합성을 계획했었다고 한다.

천연물 합성의 길

이후 우드워드는 파툴린과 콜레스테롤계 화합물의 합성에 이어서 맥각병(밀, 보리에서 발생하는 깜부기)에서 발생하는 알칼로이드(alkaloid, 천연에 존재하는 염기)인 리서그산(Lysergic acid)이라는 천연물 합성에 매달렸다. 이 리서그산의 아미드 유도체를 LSD라 부르는데, LSD는 환각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든 천연물의 합성이 그러하듯 그 과정은 매우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는데, 우드워드는 이 합성에 자그마치 5년을 매달려 1954년에야 성공했다.

다음으로 우드워드는 식물의 광합성에 작용하는 클로로필-α의 합성에 과감한 도전을 했다. 먼저 그는 클로로필을 합성하기 위한 중간체로 포피린 유도체를 합성했다. 간단한 화합물로부터 출발해서 복잡한 물질을 합성할 때,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결정적인 단계가 나중에 이루어지는 것은 가급적 피한다. 앞선 단계의 반응이 성공하더라도 나중에 결정적 단계가 실패하면 모두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드워드는 여러 문헌을 자세히 검토한 다음, 반응경로의 종반기에 결정적인 화학적 조작을 하겠다는 자신의 계획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1960년 그가 포피린 유도체로부터 클로로필의 합성에 성공하자 과학계는 물론 사회에서도 우드워드의 명성은 높아졌다. 1961년 1월호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란에 15인의 미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중 화학자로 라이너스 폴링과 우드워드를 선정해 표지에 실었다.

우드워드는 1965년 지금까지의 유기합성에 대한 기여로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노벨강연에서 세팔로스포린C의 합성에 관하여 강연하였다. 그러나 유기합성에서의 그의 가장 큰 공로는 노벨상 수상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비타민 B12의 합성과 오비탈 대칭 보존의 원리이다.


(그림2) 비타민 B12의 구조^중앙의 푸른색 공은 중심금속인 코발트를 표시한다. 회색은 탄소, 흰색은 수소, 붉은색은 산소, 푸른색은 질소, 오렌지색은 인을 나타낸다.


비타민 ${B}_{12}$의 합성

비타민 ${B}_{12}$는 신경을 보호해주고 골수에서 적혈구의 형성에 관여하며 결핍시에는 악성빈혈을 일으킨다. 비타민 ${B}_{12}$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는 화합물이다. 이 화합물은 64개의 원자와 9개의 비대칭 원자를 가지고 있다. 이의 구조는 도로시 호지킨에 의해 X-선 결정분석법으로 밝혀졌다. 호지킨은 이 공로로 1964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비타민 ${B}_{12}$의 기본 얼개는 중앙에 코발트 금속이 위치하고 그 둘레를 A, B, C, D 4개의 오각형 고리가 붙어있는 형태이다.

(그림2)에서 화합물의 중앙의 푸른색 공은 중심금속인 코발트를 표시하며 그 주위의 막대는 A-D의 오각형고리 4개로 구성된 코린고리를 표시하고 있다. 나머지 구조는 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회색은 탄소, 흰색은 수소, 붉은색은 산소, 푸른 색은 질소, 오렌지색은 인을 표시한다.

우드워드가 세운 전체적인 합성 계획은 먼저 4개의 오각형 고리를 따로 합성한 다음, 이들을 합쳐 완전한 구조를 갖는 전체 분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과정을 정리하면 간단해 보이지만, ${B}_{12}$의 합성은 우드워드가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의 에셴모저 교수와 공동연구로 1백명 이상의 박사후과정 학생들을 동원해 11년이나 걸려 완성한 너무나 힘들고 오랜 작업의 결실이었다. 이 합성에는 90가지 이상의 개별적인 반응이 이용됐다. 1973년 우드워드가 코비르산을 합성했기 때문에 이때를 기준으로 삼아 비타민 B12는 형식적으로 1973년에 합성이 끝났다고 간주한다. 왜냐하면 이미 1960년에 번하우어 연구진에 의해 비타민 ${B}_{12}$가 코비르산으로부터 합성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드워드는 이미 합성된 코비르산으로부터 새로운 반응경로로 다시 비타민 ${B}_{12}$를 합성하기를 고집해 1976년에 완결했다.

합성을 축하하기 위한 모임에서 우드워드는 “이러한 일은 결과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실험상의 세부적인 내용 및 반응물의 결정(結晶)들만이 그러한 노력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만큼 이 합성은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내야하는 험난한 과정이었다.

아쉬운 노벨 2관왕

비타민 ${B}_{12}$의 합성과정에서 우드워드가 이룩한 중요한 또한가지 업적은 천연물 합성이 화학적 구조를 규명하는 것과 함께 반응성을 연구하는 체계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확립했다는 점이다.

비타민 ${B}_{12}$ 합성의 초기 단계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원하지 않는 화합물만이 생성된 것이다. 우드워드는 이 반응을 철저하게 연구해 반응물과 생성물간에 반응과정을 지배하는 전자 오비탈 구조와 대칭성의 관계를 알아냈다. 그는 이론적인 도움을 받기 위해 당시 하버드에서 갓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이론가인 호프만(Roald Hoffmann)을 동반자로서 동원했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1965년도 ‘우드워드-호프만 오비탈 대칭 법칙’을 만들어 냈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전이상태가 닫힌 고리형 반응의 경우, 반응물과 생성물간의 오비탈의 대칭성에 따른 상호관련을 고려하면, 열반응 혹은 광화학적 반응조건 하에서 반응이 일어날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하는 점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이전에 설명할 수 없었던 수많은 입체화학적 결과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우드워드는 천연물 합성이 합성과 화학적 구조를 규명하는 것 뿐만 아니라, 반응성도 함께 연구하는 체계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한 것이다. 이 이론이 인정돼 호프만은 1981년 노벨상을 받았다. 우드워드는 1979년 62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만일 그가 3년만 더 생존했더라면 반응성 연구에 대한 공로로 틀림없이 두번째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다.

유기화학의 예술가

우드워드의 과학적인 업적은 유기화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특히 우드워드의 천연물의 전합성(간단한 화합물로부터 출발해 복잡한 물질을 합성하는 것)에 대한 기여는 전설적이며 누구도 비교할 수 없다. 그의 유기화학적 재능은 신(神) 다음에 위치한다는 극찬도 있다. 그는 대상물의 복잡성, 전략적인 합성의 미묘함, 장애에 직면해서의 변통성, 각 합성단계에서의 능란한 입체화학적 조절, 예술가적인 완벽성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때문에 그를 유기화학의 건축가요, 예술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전합성에 성공해 보고한 대표적인 화합물은 키니네, 파툴린, 콜레스테롤, 코티존, 라노스테롤, 리서그 산, 클로로필, 테라사이클린, 콜히틴, 세팔로스포린 C, 비타민${B}_{12}$, 에리트로마이신 등이 있다.

또한 그가 구조를 해결한 천연물의 종류는 항생제만 하더라도, 1945년의 페니실린, 1948년의 스트리키닌, 1949년의 테라마이신, 1952년의 오리오마이신, 1954년의 세빈, 1956년의 매그나마이신, 1958년의 글리오톡신, 1960년의 올린도마이신 등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 외 항암제인 스트렙토니그린(1963년 구조 해명)과 복어의 난소와 간에 존재하는 독성 성분인 테트로도톡신(1964년 구조 해명) 등도 그의 손에서 구조가 밝혀졌다.

특히 그는 인돌 알칼로이드, 스테로이드, 커다란 고리형 에스터 화합물인 매크롤라이드 등 유기화합물이 생체내에서 합성되는 과정을 탐구하는 생합성에도 큰 공헌을 했다. 하버드 대학의 동료 교수 콘라드 블로크가 1952년에 스테로이드가 중간체 스쿠알렌으로부터 생합성됨을 발표했지만 그 생성 메커니즘은 확실하지 않았다. 이때 우드워드는 메커니즘상으로 보아 원자들이 전위돼 생합성이 된다는 가설을 제시했는데, 후에 이 가설이 옳은 것으로 밝혀졌고, 블로크 교수는 나중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탐험가이며 전략가

1970년대에 들어서자 유기합성은 단순한 합성 목표물의 정복에서 벗어나 다단계의 전략적 변환에 기초한 논리적인 합성법을 도입했다. 따라서 유기합성은 보다 정교해져서 새로운 순수 화합물의 합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도입된 핵자기공명분광기는 1970년대에 푸리에변환 핵자기공명 분광기로 다시 발전해 1980년대에는 분광학의 2차원적인 자료를 토대로 유기화합물의 미세한 구조분석에 매우 큰 진전을 불러왔다. 가장 큰 변화는 논리적인 합성 방법에 따라 컴퓨터로 합성경로를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1990년대에는 천연물의 합성으로부터 벗어나 인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화합물을 디자인하고 합성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유기 합성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근거에서 합성 반응 단계를 검토하고 효율적으로 디자인한다. 실험 중에도 실험 조작을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합성화학자는 논리학자이며 전략가로 불려진다. 합성화학자는 사색하고 상상하며 또한 창조하는 데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탐험가이다.

또한 합성에서는 천재성과 창조성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우드워드의 경우에서 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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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효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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