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생성 이미지(Midjourney), 박주현
스마트폰 지도 앱에는 세상이 그대로 든 것만 같다. 크고 작은 길과 건물의 모양이 있다. 산이 어디에 있는지, 이름은 무엇인지도 나온다. 음식점이나 휴양지 방문 리뷰도 볼 수 있고,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로드뷰에 동네 강아지까지 찍혀 있다. 인간 세포 아틀라스(HCA·Human Cell Atlas)는 우리 몸을 대상으로 똑같은 작업을 하는 프로젝트다. 인간의 세포 30조 개에 대한 정보를 고스란히 기록하는 야심찬 프로젝트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그간의 여정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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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멀지는 않은 미래, 당신은 끔찍한 오한에 자다가 눈을 뜬다. 이유도 모르고 덜덜 떨면서 의사를 찾는다. 의사는 면봉으로 콧구멍을 쑤시더니 당신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설명한다. 이후 그는 화면에 거대한 이미지를 하나 띄운다. 알록달록한 점으로 구성된 추상화 같다. 이 이미지는 당신의 몸속 모든 세포를 디지털 환경에 그대로 옮겨 놓은 ‘세포 아틀라스(Cell Atlas)’다.
의사는 세포 아틀라스 정보가 탑재된 프로그램에 당신을 괴롭히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정보를 입력한다. 프로그램은 세포 아틀라스를 토대로 바이러스가 몸의 어떤 부위에 어떤 순서로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상세히 분석한다. 의사는 이걸 보면서 줄줄 읊는다. “세포 아틀라스를 한번 보시죠. 환자분은 지금 오한을 겪고 계시는데요, 14시간 뒤에는 바이러스가 상기도에서 염증을 일으킬 겁니다. 그리고….” 정교한 예언이다. 의사는 약을 처방한다. “어디 보자, 환자분 몸에는 A 약이 잘 안 듣는다네요. B 약이면 틀림없이 해결될 겁니다. 정확히 7시간 30분 뒤부터 약효가 나타날 거예요.”
박종은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기초과학연구원 시스템바이러스 및 공간면역체 그룹장)가 상상하는 미래다. 5월 7일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세포 아틀라스를 이용한 치료가 활성화된 미래의 모습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기자님에게 코로나바이러스를 감염시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요? 세포 아틀라스를 이용하면 몸이 외부 반응에 의해 시시각각 어떻게 변할지 가만히 앉아서도 알 수 있을 겁니다. 20~30년 뒤 이야기입니다.”
세포지도는 몸을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의 정보를 정리한 데이터 묶음이다. 그 일종인 세포 아틀라스에는 세포 속 유전자 정보와 세포의 위치 등이 기록돼 있다. 박 교수는 “바이러스는 세포의 상태를 가장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 외부 침입자 중 하나”라면서 “세포 아틀라스는 인체의 디지털 트윈이라, 몸이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항하는지 컴퓨터 속 세포 아틀라스만 보고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린 미래의 당신을 다시 예로 들어보자. 세포 아틀라스를 이용하면 당신의 세포 중 어떤 종류가 염증 반응을 특히나 많이 일으키는지 시시각각 알 수 있다. 가벼운 질환뿐 아니다. 암 환자의 세포 아틀라스를 정상인의 세포 아틀라스와 대조하면 문제가 발생한 조직을 찾고 환자의 몸에 딱 맞는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세포 아틀라스를 이용해 신약을 시험하면, 동물실험보다도 인체의 특성을 잘 반영한 결과를 얻는다.
꿈같은 미래를 만들고자 느리지만 큰 걸음을 내딛는 이들이 있다. 인간 세포 아틀라스(HCA·Human Cell Atlas) 컨소시엄에 참가하는 전세계 103개국의 과학자 4041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37조 3000억 개 인간 세포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다. HCA 컨소시엄은 2016년 출범한 국제 공동연구팀이다.
HCA는 과거 생명과학 분야의 대표적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로 꼽혔던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는 인간의 DNA 속 염기쌍 32억 개의 서열을 분석해, 유전자 지도를 완성한 프로젝트다. HCA 컨소시엄 홈페이지에는 “인간 세포 아틀라스를 만드는 건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보다도 더 거대한 작업”이라면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생명의 책’을 줬다면, HCA는 몸속 세포들이 각각 이 책을 어떻게 읽는지 알려준다”고 쓰여 있다.
우리 몸속 모든 세포에는 같은 내용의 유전체가 있다. 세포들은 유전체 속 정보를 부분부분 읽으며 생명 활동을 한다. 유전체의 정보 중 어디를 읽느냐에 따라 세포는 폐세포로서, 신경세포로서, 근육세포로서 제각기 분화돼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세포가 유전체의 어느 부분을 읽었는지는 RNA를 보면 알 수 있다. 세포가 DNA 속 유전 정보를 토대로 생명 활동을 할 때는, 정보를 mRNA(메신저RNA)라는 형태로 ‘복사’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가 어떻게 생명 활동을 하는지 알기 위해선 모든 세포의 mRNA를 추출해 분석하면 된다. 이렇게 세포 하나하나에 있는 mRNA의 종류와 양을 분석하는 기술을 ‘단일세포 RNA 시퀀싱(Single Cell RNA Sequencing)’이라 한다. 세포 아틀라스의 첫 단추가 RNA에서 끼워지는 것이다.
Grace Burgin, Noga Rogel & Moshe Biton, Klarman Cell Observatory, Broad Institute
인간 세포 아틀라스(HCA·Human Cell Atlas)에서 공개한 소장 세포 아틀라스. 세포가 활용하는 유전자가 제각기 다른 색으로 표시돼, 조직 속 어떤 세포에서 어떤 유전자가 발현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세포를 하나하나 떼 놓지 않고도 세포 각각의 RNA를 분석하는 ‘공간 전사체’ 기술을 활용했다.
세포 아틀라스를 활용한 암 치료 방법
항암제인 항체-약물 접합체는 항원과 결합하는 항체와 암세포를 죽이는 약물로 구성된다. 항체-약물 접합체가 암세포의 항원에 결합한 다음, 암세포 속의 효소를 이용해 항체와 약물이 분리되는 식으로 작용한다. 간혹 암세포까지 항암제가 잘 전달됐지만, 정작 암세포 내에 항체와 약물을 분해할 효소가 없는 경우가 생긴다. 세포 아틀라스를 활용하면 항체-약물 접합체가 분리되지 못하는 세포들을 구별해, 이런 세포에서도 작용할 항암제를 설계할 수 있다.

포트래이, AI 생성 이미지(Nanobanana), 박주현
세포 아틀라스가 가능했던 배경,
RNA 분석
HCA 컨소시엄을 공동 창립한 사라 테이크만 영국 케임브리지대 줄기세포연구소 교수(영국 웰컴트러스트생어연구소 세포유전학 책임자)는 5월 8일 과학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단일세포 RNA 시퀀싱 기술이 나왔을 때, 나는 이 기술이 유전체학의 혁신을 불러올 중요한 기술이 될 거라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저는 2012년 경 동료들과 함께 단일 세포 RNA 시퀀싱 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몸 전체를 분석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유산을 바탕으로, 유전체 속 정보가 어떻게 몸 속 모든 세포 상태를 결정하는지 실제로 이해해 보자는 목표였죠.”
박 교수는 이 시기 테이크만 교수의 연구실에 있었다. 그는 “당시 단일세포 RNA 시퀀싱 기술에는 사람이 일일이 세포를 분리해 용기에 담은 다음, 그 속 RNA를 추출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면서 “하루에 세포 200~300개 하는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2015년, 드롭시퀀싱(Drop-Seq)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나왔다. 조직에 있는 세포를 분리한 다음 얇은 관을 통해 세포를 흘려보내서, 관에서 나오는 미세한 기름방울이 세포를 하나하나 감싸도록 하는 방법이다. 굳이 세포를 하나씩 용기에 분리해 담을 필요가 없어졌다. “한 번에 세포를 5000~2만 개씩 분석할 수 있게 됐죠.” 박 교수의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조직에서 세포를 하나하나 떼 놓지 않고도 세포 각각의 RNA를 분석할 수 있는 공간 전사체(Spatial Genomics) 기술이 나오면서 인간 세포 아틀라스란 목표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기술이 무르익은 2015년, 테이크만 교수는 미국의 생명정보학자인 아비브 레게브와 함께 HCA 컨소시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2016년 10월 영국 런던, 100여 명의 과학자가 모여 HCA 컨소시엄을 출범했다. 올해는 그로부터 꼭 10년째가 되는 해다.

포트래이
테크바이오기업 ‘포트래이’에서 제작한 세포 아틀라스를 종합했다. 다양한 조직의 세포 아틀라스가 점묘화 작품처럼 화려하게 나타난다.
종양 속 세포 아틀라스로 보는 면역세포 연관관계
스페인의 국립 유전체 분석센터(CNAG-CRG) 단일세포 유전학 그룹에서 2020년 발표한 종양 내 면역세포 아틀라스.
암환자 217명에게서 모은 13종 암세포 50만 개를 분석해 제작했다. 세포 아틀라스를 구현한 방식이 조금 다르다. 이미지 속 점 하나하나가 모두 한 개의 개별 세포다. 세포 내 유전자 발현 양상을 보고, 비슷한 종류의 유전자가 발현되는 세포일수록 서로 가깝게 배치했다. T세포, 대식세포 등 같은 종류의 세포들이 더 가까이 뭉쳐 있는 걸 볼 수 있다.

Holger Heyn
18개 핵심 장기·조직 다룬 HCA 초안,
2027년 공개된다
HCA 컨소시엄은 현재 심장, 간, 면역계 등 18개의 핵심 장기와 조직에 대한 고품질 통합 지도를 토대로 HCA의 초안을 제작하고 있다. 2024년 11월에는 이 과정의 주요 이정표가 공개됐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HCA 특별호를 내며 이들의 연구를 소개했다. 당시 네이처엔 인간의 발생 단계별 세포 아틀라스와 피부, 장 세포 아틀라스, 그리고 윤리와 형평성 등을 다룬 핵심 연구를 포함해 45편이 넘는 논문이 발표됐다. 이 논문들은 전 세계 공여자 9100명에게서 받은 인간 세포 6200만 개의 데이터를 토대로 나왔다. 테이크만 교수는 “그 외에도 HCA가 미친 영향은 많다”고 했다. “HCA의 연구자들은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19(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자, 빠르게 힘을 모아 대응에 나섰습니다. 우리는 코와 눈, 침샘 안에 바이러스의 수용체를 가진 세포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바이러스의 인체 침입 경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연구는 바이러스 전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고, 공중보건 정책 수립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2025년엔 한국인에게 특히나 의미가 깊은 성과도 나왔다. 아시아 면역 다양성 아틀라스(AIDA·Asian Immune Atlas)는 아시아인의 정상 면역세포 아틀라스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기존 면역세포 연구는 주로 서구 인구 집단 자료를 이용해 진행됐다. 아시아인의 몸을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AIDA는 한국, 인도, 태국, 싱가포르 등 5개국, 7개 인구 집단의 건강한 공여자 619명으로부터 말초혈액 면역세포 약 126만 개를 받아 진행됐다. AIDA 연구를 이끈 박웅양 삼성유전체연구소장은 5월 7일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은 아시아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통칭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동남아시아·남아시아 내부의 세부 인구 집단 차이와 나이, 그리고 성별이 면역세포의 조성과 세포 상태, 유전자 발현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차이는 질병 위험, 병의 원인, 진단에도 연결됩니다.”
한국인은 5개국 중에서 ‘조절T세포’란 면역세포 비율이 가장 낮았다. 조절T세포는 다른 면역세포가 과도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막아주는 세포다. 이런 자료는 환자와 건강한 사람을 비교해 진단할 때 인종, 지역, 연령, 성별에 따른 차이를 정확히 보정해 준다. 그러면 우리의 몸에 더 가까운 치료법이 나온다.
HCA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계승자이지만, 연구 문화는 조금 다르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에 처음으로 쓰였던 유전체는 프로젝트를 이끈 크레이그 벤터 본인의 것이었다(그래서 ‘자아 과잉’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HCA 내에서는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몸에 관한 세포 아틀라스가 만들어진다. 박 교수는 “HCA는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보다 더 열려있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데이터를 맡기고 함께 세포 아틀라스를 만들 수 있다. 모든 데이터는 대중에게 공개된다. 그 덕에 필요에 따라 다양한 프로젝트가 동시에 여러 곳에서 진행된다.
박 교수는 “기술의 접근성 자체도 다르다”고 덧붙였다.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경우, 유전체를 분석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정교하고 완벽하게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라, 누군가가 책임지고 주도해야 했죠.” 실제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는 두 그룹에서 거액의 돈을 쏟아부으며 경쟁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에 비해 HCA는 기술적인 접근성이 낮아서, 어느 연구실이나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제각기 만든 세포 아틀라스를 묶어 정돈해야 할 필요는 있다. 이런 표준화 작업도 HCA 내에서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발전 덕에 세포 아틀라스 데이터를 더 쉽게 정돈하게 됐다.
테이크만 교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지금은 아주 흥미진진한 시기”라고 했다. “향후 9~12개월 안에 HCA의 첫 번째 초안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다음 단계인 ‘HCA 2.0’에서는 아틀라스를 대폭 확장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는 이 아틀라스를 전 세계 인구를 대표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건강과 질병 상태의 공간 정보까지 포함해, 개별 조직, 장기의 아틀라스를 하나의 통합해 나갈 계획입니다.”
세포지도가 현장에서 사람을 치료하기까지
세포지도로 현장의 환자들을 치료하려는 기업들이 속속 나온다. 박웅양 삼성유전체연구소장이 대표로 있는 ‘지니너스’도 그 중 하나다. 지니너스는 한국과 일본을 기반으로 아시아인의 세포지도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이 데이터를 글로벌 제약사의 신약개발과 환자 맞춤치료에 연결하는 것이 지니너스의 목표다. 박 소장은 “앞으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은 질병과 치료반응의 아시아 세포지도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5월 6일 방문한 테크바이오 기업 ‘포트래이’에는 데이터 센터, 실험실, 그리고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포트래이는 세포지도를 이용해 약이 조직의 어느 부분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 살핀다. 이런 정보를 신약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포트래이의 일이다. 이대승 포트래이 대표는 “암 표적치료에서 암 조직을 이해하는 지도는 필수적”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 포트래이는 자체적으로 암 조직을 분석해 세포지도를 만든다. 암 조직을 분석하는 실험실과 세포지도의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데이터 센터가 함께 있는 이유다.
세포지도 상용화의 핵심은 ‘정보’다. 세포지도를 만드는 기술기업들은 병원에서 관리하는 정보를 토대로 세포지도를 만들어 치료와 진단 솔루션을 만든다. 그리고 이 정보를 제약사에 전달한다. 결국 병원, 기업, 제약사 간의 정보 공유망이 중요하다.
박 소장은 “한국은 대형 병원에 환자 샘플, 병리자료, 유전체 데이터, 치료결과가 비교적 잘 정리돼 있다”면서 “이런 임상 정보는 한국이 세포지도 연구에서 갖는 경쟁력이라고 본다”고 했다. “세포지도 연구는 어느 한 주체가 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닙니다. 환자 개인정보와 생명윤리를 지키면서도 연구자와 기업이 데이터를 원활히 활용할 수 있는 안전한 데이터 공유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김소연
5월 6일 이대승 포트래이 대표가 포트래이에서 제작한 암 조직 세포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Wellcome Library, London. Wellcome Images
2016년 10월, HCA 컨소시엄 출범식에 참가한 과학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