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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우리는 즐거운 과학을 선물한다” 과학동아 40년, 전환점을 돌며

편집자 주
인공지능(AI)이 정보를 쏟아내는 시대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홍수 속에서 근거를 가려내고 과학을 일상적 판단과 의사결정에 연결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를 ‘과학자본’이라 부릅니다. 과학동아 40주년 특별연재 ‘과학자본’은 세계의 현장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시대를 헤쳐갈 과학자본 축적법을 살펴봅니다. 세 번째 화는 한국 과학자본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ROYAL GREENWICH OBSERVATORY / SCIENCE PHOTO LIBRARY
1986년 1월 10일 지구를 스쳐지나가던 핼리혜성을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의 프랭클린-아담스 망원경으로 포착한 이미지다.

 

1986년 1월, 과학동아 창간호 표지. ‘핼리혜성 다시 오다’란 기사 제목이 눈에 띈다.

 

11월 10일 오후 2시, 10년 넘게 과학동아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2014년 ‘양자역학 좀 아는 척’ 연재를 통해 양자역학의 다채로운 면모를 대중에 소개한 그다. 김 교수는 방송 프로그램 ‘알쓸신잡’ 출연 등을 통해 이제는 ‘한국 과학자’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떠올리는 유명 인사가 됐다.


“과학동아가 2026년이면 창간 40주년을 맞습니다. 그다음 40년은 과학동아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보시나요?” 기자의 질문에 김 교수가 간단히 답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죠. 과학동아는 이미 오랫동안 잘해왔잖아요.”


과학사학자가 분석한 ‘불혹’의 과학동아


김 교수가 말한 “그냥 하던 대로”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이어 오후 3시에 현재환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만나 함께 분석해 보기로 했다. 연구실에 들어서자 타자기와 한자가 적힌 고문서 등에 파묻혀 있던 현 교수가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과학기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과학사학자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40년 치 과학동아를 살펴보다가 느낀 게 있어요. 과학동아는 한국 과학 커뮤니케이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잡지였어요. 과학사의 관점에서 과학동아를 연구해 볼 가치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 교수가 말했다.


과학동아가 탄생한 1986년은 전국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정보화사회가 성큼 다가온 해였다. 국내에선 과학 저널리즘의 역할이 한층 강조되고 있었다. 과학동아에 창간 축사를 보낸 이자현 당시 체신부(정보통신 전반을 담당하던 정부 부처) 장관은 “지금 세계 여러 나라들은 정보혁명의 물결을 타고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범국민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과학동아는 이런 책임을 훌륭히 수행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썼다.


40년이 지난 지금, 과학동아는 또다시 중요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이제 정보화사회를 넘어, 인공지능(AI)의 시대다. AI를 이용해 능력을 확장할 줄 아는 사람, AI로부터 좋은 정보를 얻을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이 경쟁력을 얻는 시대다. 과학동아는 그런 오늘날 과학 미디어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있다.

 

정재승 KAIST 교수는 대학원생 시절, 과학동아에 영화를 주제로 한 ‘시네테크: 스크린과 함께 하는 과학 여행’ 코너를 기고하며 과학 글쓰기를 시작했다. 사진은 과학동아 2019년 4월호에 소개된 그의 모습.

 

40년의 과학동아, 40년의 과학대중화


1986년 1월호부터 2025년 12월호까지, 그동안 발간된 과학동아는 총 480권이다. 표지를 장식한 이슈들만 봐도 최근 40년간 과학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현 교수는 “과학동아의 40년, 그리고 한국 과학대중화의 40년에 일정한 방향성이 보인다”고 말했다.


1980년대는 정부와 엘리트가 과학대중화를 이끌어가던 시기였다. 이 시기 벌어진 과학대중화 활동을 ‘과학화 운동’이라고 말한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기에 시작돼,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기까지 이어진 과학화 운동에서 대중은 수동적 대상이었다. 대중에게 과학을 가르쳐 ‘계몽’하고, 이렇게 깨어난 대중 가운데 과학기술 인력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이 과학화 운동의 맥락이었다.


1980년대 과학잡지로는 ‘사이언스’와 ‘월간 과학’ 등이 있었다. 대부분 해외의 과학잡지 기사를 번역해 낸 것이다. 현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때 생태계 교란종처럼 등장한 게 과학동아였습니다. 1986년 발행된 과학동아만 분석해 봐도, 50% 이상이 기자가 직접 생산한 기사였어요. 나머지 50%는 외부 필진에게 청탁해서 제작한 기사였죠. 국내 목소리를 담은 과학잡지, 과학동아가 시작점이었습니다.” 이런 창간 배경에는 동아일보의 사시가 있다. 동아일보는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사시로 삼았다. 과학동아는 그중 문화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과학동아는 과학전문지로서 과학뉴스를 보도하는 역할 외에도 한국의 과학 저술가를 양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한국의 1세대 과학저널리스트로 꼽히는 고 현원복과 이인식 칼럼니스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등이 과학동아에 기고했다. 이 흐름이 21세기까지 이어져 정재승 KAIST 교수와 김상욱 교수 등 인물이 과학동아를 거쳤다.


김상욱 교수는 “과학동아는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과학잡지였고, 그 당시로서는 과학동아에 연재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연재 내내 양자역학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비유를 활용하는 등 많은 고민을 했었다”고 회상했다. 즐거운 과학을 전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고민은 과학동아에, 그들이 이후 만든 콘텐츠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2004년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으로 선정된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과학동아 2004년 8월호 지면에 소개됐다(왼쪽). 오른쪽은 과학동아가 마련한 대중 과학강연 행사 ‘2019 사이언스 바캉스’에서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가 강연하는 모습. 과학동아 2019년 9월호에 실렸다.

 

격변의 시대, 과학을 시민에게로


현 교수는 “창간 초반에는 한국의 자연, 한국의 대학 등 한국 과학계의 면면을 소개하던 과학동아였다”면서 “그런데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과학기술이 가진 사회적 함의와, 과학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 등을 다루기 시작했다”고 했다.


1998~1999년 사이 환경 호르몬의 유해성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가 과학동아를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생명 복제 또한 이 시기 중요한 이슈였다. 황우석의 ‘복제 소 영롱이 탄생’ 발표가 대표적이었다. 과학동아 기자들은 이런 이슈가 가진 사회, 문화, 윤리적 함의를 고민했다. 그 결과가 1998년 7월호 기획 ‘환경호르몬 공포’와 1999년 2월호 특집 ‘인간복제 계기로 살펴본 생명’등을 통해 드러났다.


“2000년대 들어서 흥미로운 점이 보였습니다, 과학동아가 과학을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렌즈로 활용하기 시작했더라고요.”


현 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2000년 7월 ‘과학으로 이뤄야 할 남북통일’이란 기사가 등장했던 일을 예로 들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는 월드컵 생중계를 위해 사용됐던 대형 전광판 속 과학을 알리는 기사가 나왔다. 2007년 11월호의 ‘과학으로 본 대선 X파일’ 기사도 눈에 띈다.


현 교수는 “창간 초기엔 이공계 인재를 키우려는 목적이 두드러지던 과학동아가, 1990년대에는 과학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매체, 2000년대 들어선 사회와 정치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과학을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매체가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선 2005년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이 드러나고, 2008년엔 미국산 소고기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시사기획 ‘광우병의 진실’은 2008년 6월호 표지를 장식했다. 샛노란 배경에 소 머리가 떡하니 들어간 표지를 기억하는 이는 기자만이 아니리라. 당시 과학동아 편집장을 맡았던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대표는 “광우병 이슈를 다루는 모든 언론사에 시민들의 관심과 질책이 쏟아지던 때였다”고 말했다. “‘~도’ ‘~는’과 같은 조사 하나도 조심스럽게 데스킹했고, 팩트를 중심으로 중립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직접 연구자료를 확인하며 기사를 썼죠. 한참 뒤에 이렇게 쓴 기사를 누군가 사진 찍어 포털 사이트 다음의 인터넷 게시판 ‘아고라’에 올렸다고 들었어요. ‘역시 과학동아가 제대로다’란 반응이 있었다고 해 안도했습니다.”


2010년대 이후로도 많은 사건이 있었다. 과학동아는 언제나 독자와 함께 있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소식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전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사태와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을 다뤘다.

2020년엔 코로나19 대유행과 백신 개발, 2022년 생성 AI 챗GPT 출시 소식을 시시각각 업데이트했고, 2023년 상온·상압 초전도체 개발 논란을 과학이 내놓은 최선의 답과 함께 전했다. 2025년엔 기후변화로 인해 높아진 산불 위험성을 한발 앞서 전했다.


현 교수는 “원자력 발전이나 감염병과 같은 이슈에서는 과학적인 사실과 대중의 불안,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충돌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학동아는 이런 논쟁 속에서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을 맡으며 사회 속에서 기능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란, 발생 가능한 위험에 대한 정보를 전해 사회가 이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1980년대 전두환 집권 당시 과학동아는 최루탄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하고, 최루탄이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루탄 공해’라고 이름 붙였어요. 이 이름은 민주화 운동을 이끈 환경운동단체들에 의해 주요한 문제로 떠올랐죠. 1988년엔 전파 공해라는 말을 대중에게 처음 전한 매체 중 하나였고, 이후엔 빛 공해, 미세먼지 등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환경 문제를 소개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시민과학의 형태로 함께 해결하도록 한 것 또한 과학동아만의 특별한 유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동아 표지로 보는 한국 과학대중화의 역사
대중과 과학 사이의 소통 방식은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과학동아 40년과 함께 성장한 한국 과학대중화의 역사를 과학동아 표지와 함께 각 단계별로 정리했다. 한국 과학대중화의 흐름을 함께 살펴보자.
1 대중의 이해(public understanding

 

대중이 과학지식을 잘 쌓도록 돕는 단계다. 1980년대 과학동아는 금강산댐으로 대표되는 북한의 위협, 그리고 KAIST 설립 소식 등 한국의 과학 소식을 민족주의적 시점에서 다뤘다.
2 대중의 인지(public awareness)

 

대중이 사회 속 과학 이슈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 콘텐츠를 선택하는 단계다. 1990~2000년대 과학동아는 생명 복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논란 등 주목받는 과학 뉴스를 전하며 과학기술이 가진 사회적 함의를 전했다.
3 대중의 참여(public engagement)

 

대중이 일상 속의 전문가로서 과학과 양방향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단계다. 2010~2020년대 과학동아는 인공지능 쇼크, 코로나19 등 대중이 삶 속에서 만나고 경험한 주제를 과학의 관점에서 심도 깊이 다루며 대중과 소통했다.

 

과학자본의 성장, 과학을 주체적으로 찾는 시대


과학동아와 한국 사회가 함께 겪은 지난 40년의 역사 속에서 한국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트렌드도 달라졌다. 과학학에서는 대중과 과학 사이의 소통 방식을 세 가지 단계로 정리한다. 우리는 지난 40년간 이 세 가지 단계를 모두 겪었다.


우선 ‘대중의 이해(public understanding)’ 단계다. 대중이 과학 지식을 잘 쌓도록 돕는 단계다. 이 단계는 정부나 전문가가 대중에게 과학을 전하는 일방향으로 이뤄진다. 1980년대 과학동아가 과학 지식을 쌓는 역할을 주로 수행했던 것과 연결된다.


다음은 ‘대중의 인지(public awareness)’ 단계로 이어진다. 이 단계에서 대중은 사회 속 과학 이슈를 이해하고, 선택하는 주체가 된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 과학동아가 국내외의 과학 뉴스를 전하면, 독자는 이를 선택해 자신들의 의사 결정에 참고했다.


마지막으로 ‘대중의 참여(public engagement)’다. 이 단계에서 대중은 일상 생활 속에서 얻은 지식을 통해 자신 또한 ‘전문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과학자와 동등하게 소통한다. 과학자가 대기오염과 소음 공해, 빛 공해 등을 연구할 때 대중이 일상 생활을 통해 목격하고 겪은 데이터가 활용된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을 보호하는 데에도 시민은 ‘시민과학자’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과학동아는 1992년부터 독자와 함께 시민과학 활동을 해왔다. 1992년 처음 시작한 ‘대기오염측정 전국 별자리 관측회’는 전국 대학생 아마추어 천문회원들과 함께 밤하늘의 별을 관측해 대도시의 빛 공해와 대기오염을 측정하는 행사였다. 2000년 분사를 거쳐 독립 법인으로 자리 잡은 동아사이언스는 2013년부터 시민과학 프로젝트 ‘지구사랑탐사대’를 운영하며 해마다 4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시민과학 활동의 장을 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40년간은 어떤 키워드에 집중해야 할까요? 요즘은 AI를 통해 손쉽게 지식을 습득하는 시대인데 말이죠.” 이번에는 현 교수에게 물었다. 현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과학자본과 시민과학”이라고 답했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과학 콘텐츠와, AI의 눈부신 발전 속에서도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과학동아의 역할은 현장에서 소통하며 과학을 하는 경험을 준다는 점이죠. AI는 결코 쌓아줄 수 없는 과학자본을 과학동아는 지난 40년간 쌓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이 방향으로 쭉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25년 10월호부터 과학동아는 40주년 특별연재 ‘과학자본’을 통해 AI 시대를 헤쳐갈 과학자본 축적법을 살펴보고 있다. 10월호와 11월호에서는 과학자본이란 개념이 출발한 영국 현지를 찾아,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공동의 노력을 통해 어떻게 과학자본을 쌓는지 살폈다. 이제는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대 루이스 아처 교수팀이 처음 제안한 과학자본은 개인, 나아가 사회에 축적된 과학과 관련된 지식, 태도, 경험, 그리고 관계의 총합을 담은 개념이다. 과학과 관련해서 무얼 알고, 이해할 수 있는가(지식), 과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태도), 과학과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하는가(활동), 과학과 관련된 누구와 연결돼 있는가(관계)의 네 가지 기준으로 과학자본이 얼마나 축적됐는지 판단한다. AI가 지식을 즉시 제공하는 시대에는 무한히 생성되는 정보의 신뢰성을 가려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 즉 과학자본이 핵심 자원이다. 


창간 초기, 과학동아는 ‘지식’을 쌓아주는 역할을 주로 수행했다. 사회의 분위기도 그랬다. 과학은 교양이었고, 지식을 습득하는 식으로 교양을 쌓아야 했다. 그런데 서서히 ‘과학은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나의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과학을 생각하는 ‘태도’가 바뀐 것이다. 과학동아 애독자들이 직접 쓴 ‘과동키즈’ 코너를 살펴보면 “지식을 쌓기 위해 과학동아를 보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과학을 사랑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살펴볼 수 있다.


멀리 살펴볼 필요도 없다. 11월호 과동키즈 코너에서 만난 이두희 애경산업 덴탈케어연구팀 선임연구원은 “과학동아에서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위한 세계의 많은 연구를 접하며, 저도 이렇게 인류에 기여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10월호 과동키즈 코너에 기고한 송보영 (주)셀리드 책임연구원은 “과학동아를 읽으며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과학기술을 늘 궁금해하게 됐다”는 말을 전했다.


과학동아, 나아가 동아사이언스를 통해 과학을 ‘경험’한 이들도 많다. 2001년엔 동아사이언스가 주관하고 과학기술부가 후원한 ‘극장식 과학강연’이 서울 강남에서 진행됐다. 2007년 개관한 국립과천과학관의 설계 및 제작에도 동아사이언스가 깊게 관여했으며, 2013년 개관한 과학동아 천문대를 방문해 서울의 밤하늘을 누리는 시민도 많았다. 2015년 8월, 과학동아 30주년을 기념해 열린 사이언스 바캉스는 2022년까지 8년간 독자들이 여름을 과학과 함께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줬다. 


잡지 40년의 세월 속에서 2000년 탄생한 동아사이언스는 비록 작은 미디어 스타트업으로 출발했지만,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과학자본을 쌓을 수 있도록 과학 미디어의 지평을 꾸준히 넓혀왔다. 내년엔 AI 시대에 맞춘 참여형 프로그램과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더 확대해 과학자본을 함께 쌓는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과학사학자인 현재환 부산대 교수는 “2005년 언론의 대대적 주목을 받았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사실이 2006년 밝혀졌다”면서 “이 시기 과학동아 지면에는, 한국 사회가 황우석을 바라본 민족주의적 시각과 사건 이후 과학 저널리즘의 성찰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했다. 아래는 황우석 사건을 보도한 과학동아 2006년 1월호 지면.

 

2013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시민과학 프로젝트 ‘지구사랑탐사대’ 대원들이 2025년 여름 서울 청계천에서 민물고기를 관찰하고 있다.

 

함께 ‘Stay Curious, Build the Future’

 

과학동아의 오랜 캐치프레이즈는 ‘과학을 느끼는 즐거움, 미래를 보는 창’이었다. 과학을 느끼는 즐거움을 전하는 것도, 미래를 보는 창을 마련해주는 것도, 과학동아 스스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함께 협업하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장 대표는 “동아사이언스와 외부 기관이 협업해 과학문화 확산에 기여한 프로젝트 중,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선정 및 홍보사업’과 ‘과학기술 앰배서더 사업’을 가장 큰 프로젝트로 꼽는다”고 말했다. 2002년, 오늘날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전신인 한국과학문화재단은 동아사이언스와 함께 청소년들이 예비 과학기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장 대표가 언급한 사업들이 여기에 속했다.


두 사업 모두 이공계 기피가 심하던 당시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롤모델이 될 과학자들을 선정했다. 그리고 이들이 초·중·고등학교에서 직접 청소년을 만나 강연하도록 했다. 특히나 과학기술 앰배서더 사업은 과학자 500명을 모았고, 이들이 총 1만 2326회의 강연을 진행하며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정우성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역시 ‘지난 40년간 재단에서 진행한 과학문화사업 중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례’를 묻는 말에 과학기술 앰배서더 사업을 꼽았다. 정 이사장은 서면 인터뷰로 “이런 활동을 통해 과학자가 시민과 직접 대화하는 문화가 일상화됐고, 연구현장에서도 과학소통에 적극적인 과학자가 늘었다”고 답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2010년도부터 동아사이언스와 협력하며 우리 사회의 과학문화 기반을 함께 만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과학기술계를 이끄는 인재들 중 많은 이들이 ‘과학동아 세대’라고 불릴 만큼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정 이사장의 말처럼 동아사이언스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협업은 민관이 함께 청소년들이 과학과 더 가까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사례다.


한편 기업이 앞장서 과학자본을 쌓기 위해 노력한 사례도 많았다. LG그룹은 1987년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자체적인 과학관인 ‘LG 사이언스 홀’을 열었다. 그리고 2003년에는 과학 교육 사이트 ‘LG사이언스랜드’를 열어 과학송, 과학게임, 과학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어린이들을 과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서울 마곡에 2021년 개소한 LG디스커버리랩은 국내 최초 청소년 AI 교육기관이다.


LG그룹이 설립한 공익재단 LG 연암문화재단의 박산순 교육사업팀 팀장은 “올해부터는 AI 시대를 살아갈 청소년이 일상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AI를 활용해 그 문제를 해결하는 ‘LG AI 청소년 캠프’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LG AI 청소년 캠프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서울대 교수진 및 재학생 멘토들과 소통하며 자신들의 팀 프로젝트를 발전해 나간다. 학생들은 직접 과학을 실천하고, 과학자와 관계를 맺는 중요한 경험을 통해 과학자본을 축적한다.


학계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한양대는 ‘체험하고 즐기는 과학’을 전하기 위해 2002년 ‘한양대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를 열었다. 11월 11일 한양대에서 만난 황북기 한양대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장은 “IMF 이후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센터를 개소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도 이미 한양대 이동과학교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의 청소년을 만나고 있었지만, 여기에 더해 과학캠프를 열고, 과학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한양대 이동과학교실은 언제, 어디서든 과학공연을 열 수 있는 장비를 거대한 트럭에 실은 ‘움직이는 과학극장’이다.


황 센터장은 “현대모비스, 포스코, LS 등 기업과도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임직원들이 센터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배우고, 실제로 기업 인근 지역의 아이들과 만나 수업을 하는 식이다. 포스코의 경우에는 철강산업과 연계된 과학 지식을, 현대에서는 자동차와 관련된 수업을, LS 전선은 전력 송신을 가르친다.


아이는 온 마을이 함께 키운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한국의 과학자본도 그렇다. 과학동아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 과학 대중화에 활발히 참여하는 과학자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 학창 시절 과학관에 가 보지 않은 사람. 교과 외 과학 체험활동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 이 모든 항목에 해당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기자도 고등학교 시절, 학교를 찾아온 한양대 이동과학교실에서 즐거운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엔 LG 사이언스홀에 방문한 기억이 생생하고, 과학관은 거의 집처럼 드나들었다. 과학자의 강연을 들은 경험도 수차례다. 학교 도서관 구석에 앉아 ‘광우병 소’가 표지를 장식한 과학동아를 읽었던 기억도 있다. 당신에게도 과학을 만났던 순간이 살면서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자 황 센터장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과학이 곳곳에 함께한다는 것, 자신이 그 일부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전과 다른 시야로 세상을 보게 되죠.”


다른 눈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당신들을 떠올리며 과학동아는 40주년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정했다. ‘Stay Curious, Build the Future(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미래를 쌓아가자)’. 40주년의 문턱에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과학동아와 함께할 당신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언제나 가슴 속에 호기심을 품고 있기를, 과학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기를. 

 

▲LG 연암문화재단
서울 마곡의 ‘LG디스커버리랩’에서 학생들이 인공지능(AI)을 적용한 로봇을 실제로 만지며 탐구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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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 사진

    동아사이언스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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