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오늘 우리는 에너지 대전환기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한 세기 넘게 인류를 지탱한 화석 연료가 저물고, 태양과 바람, 그리고 수소(H) 같은 친환경 에너지가 떠오르고 있지요. 이 큰 흐름 속에서 희토류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에너지원을 길들이는 ‘에너지의 연금술’을 펼치는 중입니다. 연금술사로 나선 이 희토류가 바로 란타넘(La)입니다.
란타넘
발견자 칼 구스타브 모산더(스웨덴)
발견 연도 1839년
주요 용도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촉매
니켈-수소(Ni-MH) 배터리
수소 저장 탱크
특징
매장량이 풍부하지 만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
분리, 정제가 어려워 폐배터리 등의 회수 기술이 주목받고 있음
란타넘이 완성한 석유의 시대
인류의 문명 발달을 이끈 요인은 많습니다. 에너지의 형태와 방식도 문명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죠. 나무를 태워 빛과 열을 만들다가 새카만 석탄을 썼고, 뒤를 이어 질척한 원유를 여러 연료로 정제해서 활용하게 됐습니다. 증기기관과 산업혁명, 전기를 자유자재로 생산하며 시작된 전자 문명과 같은 결정적 변화도 에너지원의 전환과 따로 생각할 수 없지요. 현재의 친환경 에너지 대전환도 그렇습니다. 란타넘(La)은 이 친환경 에너지 중 수소 에너지 생산의 필수 재료입니다.
그런데 친환경 에너지인 수소보다 앞서, 란타넘의 에너지 연금술은 화석 에너지인 석유 산업에서부터 탁월한 활약상을 보였습니다. 란타넘이 에너지 대전환의 양쪽을 아우르는 셈이죠. 오늘날 원유에서 가스부터 휘발유, 경유까지 여러 원료를 효율적으로 증류하는 비결은 란타넘입니다. 원유를 이루는 여러 탄화수소 물질들의 끓는점 차이를 이용해 가스, 휘발유, 경유 같은 연료로 분별 증류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희토류의 연금술이 필요한 겁니다.
채굴 직후의 정제하지 않은 원유는 탄소, 수소, 질소, 산소 등이 섞인 유기화합물로, 끈적대고 무거운 거대 분자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원유를 단지 끓이는 것만으로는 여러 연료로 분별 증류할 수 없습니다. 이 거대 분자들을 화학적 기법으로 정교하게 잘라내야만 가볍고 유용한 연료로 바꿀 수 있지요. 원유의 거대 분자들을 자르는 이 과정이, 현대 석유화학 산업의 꽃인 촉매 분해(CC)입니다. 크래킹(cracking)이라고도 하지요.
크래킹에는 제올라이트라는 광물 촉매가 투입됩니다. 미세한 구멍이 잔뜩 뚫린 광물이지요. 제올라이트는 물을 부어주면 습도를 장시간 유지해서 흔히 천연 가습기라고도 불립니다. 하지만 거실의 가습기가 버티기에 수백 ℃의 고온에 화학 물질들이 들끓는 정유 시설의 조건은 너무 혹독합니다. 이때 제올라이트 촉매 반응을 도와줄 희토류 연금술사, 란타넘이 등장합니다.
란타넘은 제올라이트의 미세 구멍 속에 들어가 원자 단위에서 촉매의 지지대 역할을 합니다. 란타넘 없이는 제올라이트 속의 알루미늄(Al) 원자들이 떨어져나가며 전체 구조가 쉽게 바스러집니다. 다른 원자들과의 결합 능력이 뛰어난 란타넘이 제올라이트 내 촉매의 공간들에 단단히 결합한 덕분에, 고온의 정유 공정에서도 촉매의 사용 수명이 연장됩니다.
정유 산업에서 란타넘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원유를 증류하는 화학 반응의 질도 란타넘이 결정하니까요. 원유 속의 탄소 화합물들이 너무 작게 잘려서 가스로 휘발되거나 너무 크게 잘려서 찌꺼기로 가라앉지 않도록, 란타넘이 완벽한 반응 조건을 유지하는 것이죠. 란타넘은 마지막 한 방울의 원유까지 제대로 증류하는 비결입니다.
거친 수소도 빈틈없이 길들이는 란타넘
에너지 대전환 시대를 책임질 미래의 청정 에너지, 수소로 가보겠습니다. 수소는 우주의 75%를 차지하는 원소로, 가장 흔하고 가벼우며 깨끗한 에너지원입니다. 그러나 지구에서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원자번호 1번인 수소는 이제껏 발견된 118개 원소 중 가장 작고 가벼운 만큼 지구의 중력이 수소를 잡아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탈출하지요. 수소는 부피가 크고 폭발도 쉬운 기체여서 보관도 어렵습니다. 엄청난 압력의 고압 탱크에 경고 표시와 함께 단단히 보관해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과학자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가 많은 양의 수소를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입니다. 지구에 풍부한 물(H2O)을 분해하면 수소를 간단히 얻을 수 있지만, 이걸 다루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요. 인류는 전기를 번개로 처음 발견했지만, 화학 전지에 담게 된 이후에야 전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란타넘의 연금술이 다시 한 번 펼쳐집니다. 우선 란타넘이 니켈(Ni)과 만나면 란타넘-니켈(LaNi5) 합금이 됩니다. 이것이 곧 거대한 수소 창고입니다. 금속들이 결합한 합금은 빈틈없는 덩어리로 흔히 생각되지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자인 수소의 관점에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 특수 합금의 격자 사이사이에는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미세한 공간들이 잔뜩 있는 까닭입니다.
수소 기체가 란타넘-니켈 합금과 만나는 순간, 이 수소 분자(H2)가 원자 단위(H)로 쪼개져서 합금 틈새로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안정한 분자가 저절로 쪼개져서 원자들이 되다니 정말 경이롭지요. 란타넘 합금이 수소 창고로 바뀌는 셈입니다. 잘 마른 스펀지가 순식간에 물을 빨아들이듯, 이 란타넘 합금은 자기 부피의 1000배가 넘는 수소를 안전하게 보관합니다.
이 란타넘 수소 창고의 진가는 수소를 꺼낼 때 드러납니다. 합금 주위의 온도나 압력을 약간만 조절해서 수소를 편하게 넣고 꺼낼 수 있지요. 친환경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핵심 동력원 중 하나인 니켈-수소(Ni-MH) 배터리의 음극재를 이 란타넘 합금으로 제작합니다. 운전자가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며 에너지를 제어하는 순간마다 배터리 속 란타넘이 수소를 넣고 꺼내는 과정도 반복됩니다. 자동차는 란타넘 덕분에 거친 수소를 길들여서 에너지원으로 제어하게 된 셈입니다.
희토류를 타고 오는 재생 에너지의 시대
이제는 지속 가능하게 전기를 생산하는 재생 에너지의 대표 주자, 풍력 발전으로 시선을 옮겨 보지요. 바람이 불어 풍력 발전기가 회전하며 운동 에너지를 일으키면, 내부의 전자석이 이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한다는 원리는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이 발전 과정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려면 여러 신소재와 첨단 기술들이 필요합니다.
먼저 풍력 발전의 효율을 혁신적으로 높인 초강력 전자석의 원료, 네오디뮴(Nd)이 있습니다. 전자석은 별도의 변환 과정 없이 풍력 발전기 날개의 회전력을 바로 전기로 바꾸는 핵심 부품입니다. 이전 연재에서 만난 적 있는 네오디뮴의 초강력 전자석은 그 이름답게 날개의 회전력 대비 발전량을 향상시켰습니다. 네오디뮴 전자석의 강한 자성이 더 적은 회전력에서 더 많은 전기를 뽑아낸 것이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네오디뮴 전자석의 등장으로 풍력 발전기의 회전 속도를 높이는 정교한 기어 박스가 사라지면서, 발전기가 더 작고 가벼워진데다 유지 보수까지 편리해졌습니다. 희토류가 풍력 발전의 시대를 크게 앞당긴 것입니다.
이처럼 재생 에너지의 가능성이 만개한 데는 또 다른 희토류인 이트륨(Y), 스칸듐(Sc)의 역할도 컸습니다.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풍력 발전기, 발전소의 가스 터빈 등의 내부 온도는 1000℃를 훌쩍 넘는데, 이런 고온을 견디는 초고강도 합금의 재료가 이 두 희토류입니다. 보통고온에 놓인 물질은 부풀면서 흐물흐물해지는 변형을 일으킵니다. 이런 변형이 섬세한 기기들의 고장을 유발하므로, 고온을 견디는 내열성이 중요하지요.
이트륨은 입자 사이를 단단히 결속시켜 고온에서도 기기의 표면 코팅을 지탱합니다. 이 얇은 이트륨 막 덕분에 가스 터빈이 높은 온도에서도 변형 없이 작동하지요. 여기에 희토류 중 가장 가볍고 강한 스칸듐이 더해지면 내열성과 에너지 효율이 더욱 향상됩니다. 알루미늄 같은 가벼운 금속에 소량의 스칸듐을 더하면 강철만큼 단단하면서도 훨씬 가벼운 초고강도 합금이 탄생합니다.
이처럼 희토류는 에너지를 생산, 저장하는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합니다. 희토류가 화석 연료 시대의 산업적 효율성을 완성시켰고, 이제는 탄소 중립, 기후 위기라는 목표를 향한 발판이 됐지요. 동시에 희토류의 역할이 커질수록 환경 위기도 함께 깊어지고 있습니다. 희토류의 채굴, 정제 과정에서 사용하거나 발생하는 중금속, 방사성 물질, 독성 화학물질이 유발하는 토양과 수질 오염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폐배터리, 전자폐기물 등의 희토류 재활용(재자원화) 기술은 국가 차원의 공급망 안정과 지구 차원의 환경 보호를 위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희토류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은 많다는 사실이 에너지 분야에서도 다시 한 번 드러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