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부는 1월은 맑은 날이 많다. 몸이 절로 움츠러들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계절이지만 맑은 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은 여느 때보다 우리를 유혹한다. 겨울밤을 수놓는 별들 중 주황색 별 하나가 반짝인다. 황소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인 알데바란이다. 겉보기등급 0.9 등급의 알데바란은 하늘의 별 중에서 13번째,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별 중에서 9번째로 밝은 별이다.
별들의 지도자 알데바란
알데바란은 아라비아어로 ‘뒤따라오는 자’라는 뜻이다. 알데바란이 뒤쫓는 천체는 알데바란보다 약간 서쪽에 떨어져 있는 황소자리의 플레이아데스라는 밝은 성단이다. 모든 별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므로 알데바란은 플레이아데스성단을 뒤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데바란에는 이름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별자리로 하늘의 구역을 나누면서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 주변을 별자리 12개로 나눴다. 이처럼 12개로 나눈 이유는 달의 모양이 대략 1달을 주기로 변하고, 1년은 약 12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황도는 하늘에서 특히 중요한 곳으로 취급하지만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에서 바로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밤하늘에 태양이 지나가는 길이 선으로 표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도를 쉽게 찾는 이정표가 필요했는데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선택한 별이 바로 황소자리 알데바란과 전갈자리 안타레스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황도 근처에 있는 수많은 별 중 왜 알데바란과 안타레스를 이정표로 선택했을까. 천구 상에서 황도를 그리려면 기준이 되는 밝은 별은 항상 밤하늘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두 별은 황도 부근에 있는 몇 개 안되는 밝은 별이면서 서로 정반대에 자리잡고 있다. 황소자리 알데바란은 겨울하늘에 반짝이는 반면, 전갈자리의 안타레스는 여름하늘에 반짝인다.
따라서 두 별은 황도를 구분하고 나누는 기준으로 삼기에 제격이다. 게다가 알데바란은 황도에서 가장 북쪽에 있고 안타레스는 가장 남쪽에 있어, 황도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일등성인 사자자리 레굴루스나 처녀자리 스피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황도의 이정표이면서 가장 높이 떠 있는 알데바란을 특별히 ‘사타브스’(Sataves, 별들의 지도자)라고 불렀다.
1000년 전 폭발한 초신성의 잔해
알데바란에서 시선을 조금 위로 올려보면 황소 머리 끝부분에 제타별이 있다. 이 별 바로 옆에는 매우 작고 희미한 성운이 하나 있는데 메시에 목록의 첫 번째에 올라있는 M1인 게성운이다. 이 성운은 프랑스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가 성운성단목록을 만들 동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 깊은 성운이다.
이 성운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영국의 과학자 존 베비스였다. 그는 1731년 이 성운을 발견했는데, 27년 뒤인 1758년에 메시에가 다시 발견했다. 사실 게성운은 매우 작고 희미한 성운으로 다른 성운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약 200년 뒤 밝혀졌다.
1921년 미국 릭천문대의 칼 람플란드는 42인치 반사망원경으로 게성운의 사진을 연속으로 찍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찍은 사진들을 순차적으로 비교해보다 사진에 나타난 성운의 세부 구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이어 윌슨산천문대에서 게성운이 1년에 0.2″만큼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게성운의 거리를 감안해보면 성운이 초속 1000km로 사방으로 퍼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1942년 천문학자들은 성운이 퍼지는 속도와 현재 크기를 역으로 계산해 이 성운의 나이를 760년 정도로 추정했다. 그 후 심층적인 연구를 거친 결과, 현재 게성운은 약 950년 전 발생한 초신성의 폭발 잔해로 간주되고 있다.
950년 전에 만들어진 성운이라면 폭발한 초신성에 대한 당시의 기록이 남아있을 법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 송나라 시대의 역사문헌을 살펴보면 1054년 7월 황소자리의 천관성, 즉 오늘날 제타별 부근에 객성(客星)이 나타나 찬란히 빛났으며 약 1년 동안 보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 별은 약간 붉은 빛을 띤 흰색이었으며 새벽 동쪽하늘에서 금성처럼 밝게 빛났다고 한다. 가장 밝았던 23일 동안에는 대낮에도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유럽에는 이 별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데 그 이유에 대한 견해가 여러가지다. 어떤 사람은 이 별이 새벽하늘에 낮게 떠 있어 사람들이 보기 어려웠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또 다른 학자는 하늘에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중세의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로운 별을 발견했다 해도 교회의 억압 때문에 이를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날 인디언들은 초신성을 봤을까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북아메리카 인디언 유적의 그림에서 황소자리 초신성으로 추정되는 별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애리조나주 화이트메사에서 발견된 인디언 유적에는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초승달과 함께 그려진 밝은 별 그림이 여러 장 있다.
컴퓨터 계산에 따르면 초신성이 출현했던 1054년 7월 5일 새벽에 그믐달이 초신성의 2。 북쪽에 위치해 있었다. 새벽하늘에 출현한 초신성은 달과 함께 매우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고, 이에 놀란 인디언들이 그 모습을 그렸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인디언의 그림에 있는 초승달 옆의 별이 초신성이 아니라 금성이라는 반론도 있다. 사실 초승달과 금성이 만나는 장면은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 그림의 소재로 많이 쓰였다. 고대 로마의 동전이나 십자군의 방패 등에서 이런 문양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오늘날에는 말레이시아, 모리타니, 터키, 튀니지, 파키스탄 등의 국기 문양으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그림이 그려진 시기가 초신성이 폭발한 때와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인디언 그림 속에 있는 별이 초신성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부터 약 1000년 전에 초신성이 폭발했으며, 고대 중국인이나 아메리카 인디언이 보았을지도 모르는 초신성의 폭발 잔해를 지금 우리가 망원경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긴 흐름을 가지며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보았던 알데바란과 약 1000년 전 폭발했던 초신성의 잔해를 보며 별에 대한 인류의 상상을 추측할 수 있다. 또 시공을 뛰어넘어 같은 대상을 본다는 동질감도 느낄 수 있다. 오늘밤 별을 보며 고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은 어떨까.
이달의 천문현상_ 전갈자리의 목성과 화성
1월 동틀 무렵 새벽하늘에는 여름철 별자리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 겨울에 무슨 여름철 별자리냐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새벽하늘은 계절을 앞서간다. 여름철 별자리는 겨울철 새벽에 뜨기 시작해 한여름이 될 때까지 점차 뜨는 시간이 빨라지며 천정부근으로 이동한다.
전갈자리는 별자리 특유의 모습 때문에 뜨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전갈의 머리 부분에 있는 세 개의 밝은 별이 먼저 떠오르는데, 전갈이 하늘 위로 머리를 치켜들며 떠오르는 모습을 연출한다. 그 뒤를 이어 떠오르는 전갈의 심장인 안타레스는 유난히 붉게 보이는 빛 때문에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안타레스는 붉은색의 밝은 별이다. 1월 초순 동트기 직전 새벽하늘에는 안타레스와 함께 밝은 행성 두 개가 뜬다. 안타레스의 약간 왼쪽 위, 새벽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하얀색 천체가 바로 목성이다. 또 목성의 왼쪽 아래 지평선 가까운 곳에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밝은 붉은색 천체는 화성이다.
안타레스와 목성, 화성은 2007년을 시작하는 1월 새벽하늘을 밝게 빛내는 주역이 될 전망이다.
안타레스와 화성의 색깔 싸움도 볼만하다. 이 무렵 화성의 밝기는 1.5등급으로 평소의 화성에 비해 다소 어둡지만, 0.9등급의 안타레스의 밝기와 비슷해서 둘은 좋은 경쟁자가 된다. 화성과 안타레스 중 어느 것의 색깔이 더 붉은지 비교해보자.
2007년 새벽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화성은 앞으로 점점 더 밝아지고 하늘의 중앙으로 자리를 옮긴다. 약 1년이 지나 12월이 되면 화성은 가장 주목받는 행성이 될 것이다. 앞으로 1년 동안 화성을 목표 삼아 그 움직임과 변화를 추적해보는 일도 꽤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