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과학사 전공인 대학원생 공구성은 조선시대로 무한회귀 하며 과학혁명을 일으켜 보는 현장실습을 하고 있습니다. 1, 2주차 현장실습 성적은 F. 실패를 곱씹던 구성은, 이번에는 1630년 조선의 군수물자 제조를 담당했던 군기시로 떠납니다. 3주차 과제는 이곳에서 ‘화약조선’의 토대를 만드는 겁니다.


편집자 주
시간을 되돌려 조선시대에 떨어진다고 해도, 설계도만 있다면 증기기관차를 만들 수 있을까요? 현재환 한양대 철학과 교수의 소설 ‘내 손으로 조선에서 과학혁명?!’을 통해 이 물음에 답해보려 합니다. 서양과학사 전공자인 대학원생 공구성이 조선시대로 떠난 강제 현장실습 이야기입니다.
과제
염초 대량 생산을 통해 군사혁명을 완수하기

“아, 산신령은 무슨 이런 시대에 날 보내는 거야!”
잠에서 깨자마자 역정을 내는 공구성, 성근의 모습에 공구성을 흔들어 깨운 장인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구성은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다. 머릿속에 16세기 조선 군기시의 염감관(焰監官), 성근이 갖고 있던 정보가 쏟아졌다. 염감관은 무기를 제조하던 관청인 군기시에서 화약 제조의 핵심 원료인 염초를 관리하는 실무직이다. 당대 화약은 유황, 목탄, 그리고 강력한 산화제인 염초(질산칼륨, KNO3)로 만들었다. 1620년대 중반 이래 조선의 상황은 절박했다. 명나라와 후금 사이의 전쟁으로 요동 항로가 막혀 염초 수입이 끊겼기 때문이다.
1630년, 정묘호란의 불길이 꺼진 지 겨우 3년이 지난 조선은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서 있었다. 지는 해인 명과 뜨는 해인 후금(청) 사이에서 조정은 명분 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염초 조달 문제는 자연히 뒤로 밀려났다. 미래에서 온 구성은 지금의 고요함이 시한부 평화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정확히 6년 뒤, 인조가 남한산성 밑 삼전도에서 청 황제 홍타이지, 아니 숭덕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맛보게 될 병자호란의 결말을 말이다. ‘조선왕조 최악의 시기’로 불리는 1590년대 임진왜란, 1670년대 경신대기근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성이 풍전등화의 시대에 떨어진 건 분명해보였다.
‘이대론 조선은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역사의 궤적을 비틀기 위해 필요한 건 입만 산 척화파 선비들의 말잔치가 아니라 적의 기마병을 박살 낼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비극을 막아낼 유일한 치트키는 바로 자신의 손으로 일궈낼 염초의 자급자족뿐이었다.
구성 옆에 선 장인은 군기시 소속의 무명 기술자로, 가지런히 모은 손에는 수십 년간 흙을 만져온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구성에게 그는 현대적 가르침이 필요한 ‘무지한 노동자’일 뿐이었다. 공구성은 그를 무시한 채 벌떡 일어났다.
구성의 머릿속은 채 10분도 되지 않은 과거에 서울의 한 카페에서 하던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는 카페의 소음을 배경으로 미국의 과학사학자 파멜라 스미스(Pamela H. Smith)의 저서 ‘장인의 몸’을 신경질적으로 넘기고 있었다. 지난주, 구성은 연산군에 빙의해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다. 질젤 테제, 즉 지식인과 장인의 결합을 강조하는 주장에 따라 장인과 학자를 함경도로 보내, 은광을 개발하려다 대차게 망한 것이다. 구성은 마음이 급했다. 책의 갈피마다 적힌 장인적 인식론(artisanal epistemology)이란 단어가 공구성을 유난히 긁어댔다.
“장인이 물질과 투쟁하며 몸으로 얻는 지식이 근대 과학의 뿌리라고?” 공구성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아직도 지식은 고결한 이론에서 나오는 것이지, 땀 흘리는 신체적 경험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구성에게 파멜라 스미스가 주장하는 손의 지식이라는 것은 그저 숙련된 요령을 학문적으로 있어 보이게 한 표현 그 이상은 아니었다.
“연산군 때의 실패는 내가 왕이라는 높은 위치에서 명령만 내렸기 때문이야. 내 믿음이 틀린 게 아니라.” 공구성은 장인과 학자 집단 간의 신뢰 형성의 중요성은 인정했다. 한편, 더 정교한 시스템을 설계하고 장인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관리자의 위치에서 장인을 조종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구성은 입가에 고이는 침을 닦지도 않은 채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만약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이 시대에 염초를 대량생산할 수만 있다면? 압도적인 화력을 구축해 명나라의 처분만 바라는 비굴한 처지에서 벗어나고, 비극으로 치닫는 이 역사의 물줄기도 완전히 뒤바꿀 수 있을 터였다. 단순히 후금의 침입을 막아내는 수준이 아니었다. 화약조선의 포성이 만주 벌판을 뒤흔들고, 나아가 간도와 요동까지 조선의 깃발이 꽂히는 광경이 눈앞에 선했다.
“케케케…” 어느덧 파시스트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괴상한 웃음소리를 흘리던 구성은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지난번과는 달랐다. 지금의 그는 단순한 몽상가가 아니라 실제로 그 일을 실행할 실무 책임자였다. 구성의 머릿속에는 이미 16세기 보헤미아의 광산 전문가 라자루스 에르커(Lazarus Ercker)가 설계했던 거대한 인공 염초 공정 설계도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에르커는 보헤미아의 광산 책임자였다. 그는 1574년, 대규모의 인공 염초밭과 배수조, 결정화 도표를 포함해 염초 제조 공정을 방대하게 정리한 ‘시금법과 광물에 관한 보고서’를 출판했다. 수업 시간에 문헌들을 탐독해 그 내용을 샅샅이 꿰고 있던 구성이었다. 실무자를 맡은 이번이야말로 그가 과학의 보편성과 기술적 진보에 관한 자신의 믿음을 증명할 최고의 기회였다.

CJ엔터테인먼트
1636년 청이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조선 군대는 조총, 천자포 등 화약 무기로 항전했다. 사진은 병자호란을 다룬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보고서
세 번째 실패? 장인들을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
‘좋아, 이번엔 실무자로서 질젤 테제를 완벽히 증명해주지. 이론이 장인의 손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똑똑히 보여주마.’ 공구성은 자신만만하게 장인들을 집합시켰다.
“다들 똑똑히 들어라! 이제부터 우리는 염초를 ‘재배’할 것이다!”
구성은 지린내 진동하는 마구간 흙과 퇴비 더미를 가리키며 열변을 토했다. 장인들은 코를 쥐어짜며 의아해했지만, 구성의 머릿속엔 현대적 화학식이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화약의 핵심인 염초는 사실 미생물이 빚어내는 연금술의 산물이다. 똥오줌 속의 단백질이 썩으며 나오는 암모니아가 질산화 박테리아의 먹이가 되고, 이후 질산화 박테리아가 질산염을 뱉어내는 과정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아무 흙이나 쌓지 마라! 가축의 분뇨와 장정의 소변, 그리고 석회를 층층이 쌓아 지기(地氣·땅의 기운)를 돋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만물의 기운을 응축시키는 서역의 법도다! 잘 조성된 밭에는 맑고 투명하며 속이 빈 육각 기둥 모양의 결정이 맺힐 것이다. 곧, 염초이니라!”
구성은 영롱한 육각형의 결정체들이 흙더미 속에서 보석처럼 솟아오를 때, 장인들이 그의 발치에 엎드려 서역의 ‘격물치지’에 경탄하는 순간을 상상했다. 하지만 장인들은 ‘서역의 법도’니 ‘지기’니 하는 구성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눈치만 살폈다. 한 노련한 장인이 조심스럽게 항변했다. “나리, 서역은 어떨지 모르오나 우리 조선의 흙은 성질이 차고 여름엔 습기가 골을 메웁니다. 이리 밀폐된 곳에 쌓아 두면 흙이 숨을 쉬지 못해 썩어 문드러질 것이옵니다…”
구성은 그의 말을 단칼에 끊었다. “천조에서도 인정하는 서역의 성인의 말은 천하의 보편적인 이치다! 무지한 네 놈보다는 책에 적힌 법도가 정확하니 시키는 대로나 하거라!” 구성은 이론이 물질을 지배해야 한다는 믿음에 빠져 늙은 장인의 충고를 무시했다.
당연히 결과는 처참했다. 서북방의 건조한 기후에 맞춰 설계된 염초밭은 한 달도 안 되어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썩기 시작했다. 조선의 눅눅한 땅기운과 여름철의 고온다습함을 간과한 결과였다. 염초밭은 맑고 투명한 ‘육각의 결정’ 대신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오물 더미로 변했고, 독한 암모니아 가스에 질식해 쓰러지는 자들까지 생겨났다. 결정적으로 장마가 시작되자 배수 설계가 잘못된 염초밭이 무너져 내려 군기시 마당 전체가 인분과 오물로 뒤덮였다. 공구성은 그 오물 한복판에 서서 망연자실했다. “성근이 악귀에 씌여 군기시를 똥통으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서구 염초밭에 관한 구성의 지식은 조선의 토양에는 결코 스며들지 못한 채 겉돌았고, 조선의 물질적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처참하게 깨졌다. 이론은 책 속에서만 완벽했다. 현실의 흙은 수식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관리자로서의 공구성의 체면은 똥물과 함께 씻겨 내려갔고, 그는 비로소 자신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던 지식이 현장의 맥락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오물이 묻는 줄도 모르고, 구성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세 번째 실패의 맛은 썼다.
결론
반성은 학점에 도움이 된다: 장인들과 부대끼는 현장의 실험주의
공구성은 얼굴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고 장인들 앞에 섰다. 오만한 구성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나왔다. “내가 틀렸다. 공식은 잊어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한다.” 공구성은 장인들을 지식으로 지배하는 관리자가 아닌 장인들의 인식론을 배우고 함께 발전시키는 학습자가 되기로 했다. “어유, 저 도깨비 같던 이가 웬일로 새 사람이 됐대?” 수군거리는 소리가 군기시 담을 넘어 구성의 귀에도 꽂혔다. 평소라면 냅다 호통을 칠 구성이었지만, 장인들과의 일이 바빠서 대꾸할 여유도 없었다.
일이 풀리려는지, 때마침 조정에서 선물도 내려왔다. 명나라에 다녀온 사신 정두원이 허베이 지방에서 흰 염초 결정 샘플, 즉 견양(見樣)을 가져왔다. 깨끗한 종이에 소중히 감싼 견양과 정두원이 비밀리에 수집한 명의 염초 제조 공정에 대한 단편적인 내용들이 군기시에 함께 도착했다. 백수정같이 희고 투명한 견양의 자태에 구성 주위로 몰려든 장인들이 탄복했다.
공구성은 샘플을 목표로 삼아 조선의 흙에서도 같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지난한 시험에 착수했다. 구성은 더 이상 서구의 수식만 들이밀지 않고, 주어진 견양과 명나라의 지식을 바탕으로 장인들과 함께 시험을 거듭했다.
우선 자연 염초를 소금 끓이듯 졸여내는 중국의 방법은 조선의 재료와 맞지 않아 계속 실패했다. 이전과의 차이라면, 구성이 정두원 사신단의 정효길이 서역인들에게서 얻어온 똥오줌 배합 지식과 장인의 축적된 경험에 귀를 열었다는 점이었다.
“성근 나리, 여식들이 겨울에 띄우는 메주처럼 우리도 계절을 고려해 가열하면 어떻겠습니까?” 구성은 장인의 손에 축적된 경험, 그 감각에 기대 인분, 오줌, 아궁이 재를 섞어 흙더미를 쌓아 발효열을 내는 배합 과정을 찾아나갔다.
장장 5년에 걸친 고된 현지화 끝에, 마침내 꽃이 피었다. 건조한 겨울에 흙을 말똥으로 덮고 가열하여 증기를 쐬자, 메주에 하얀 곰팡이가 피듯 흙 위로 하얀 염초 결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장인들은 학자들이 으레 하듯 염초 결정에 고상한 이름을 붙이진 않았다. 대신 메주를 띄워서 나오는 것처럼 “흰 이끼”가 폈다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론이 손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장인의 손이 조선의 흙에서 새로운 지식을 빚어내고 있었다.

유튜브 국립진주박물관 JINJU NATIONAL MUSEUM 캡처
국립진주박물관이 유튜브에 공개한 숏다큐 시리즈 ‘화력조선’에는 조총 사용법이 자세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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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초, 즉 질산칼륨은 자연에선 동물의 배설물이 땅 위의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질산이 되고, 이 질산이 토양 속 칼륨 화합물과 만나면서 생겨난다. 사진은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석호에 자연적으로 피어난 흰색 질산칼륨 결정.
후일담
역사를 따라잡았지만 바꾸지는 못하다
이제 새 방법을 다른 장인들에게 널리 공유해 퍼트릴 차례였다. 공구성은 ‘신전자가취염초방언해(新傳煮取焰硝方諺解)’라는 제목의 염초 생산 매뉴얼을 출판했다. 양반과 같은 지식인들을 독자로 겨냥하고 한문으로 쓰던 대부분의 책과 달리, 구성은 “띄워”나 “부희게”와 같은 표현들을 통해 장인들의 몸에 밴 감각적 경험을 다른 장인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목적으로 언해(한글)로 매뉴얼을 썼다.
“성근 나리가 언문으로 정리해주시니 익히기가 쉽구먼!” 지식의 보급은 느렸지만 확실했다. 한글 매뉴얼이 소리 내어 읽히고 반복되면서 군기시에는 독자적인 지식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글을 전혀 읽지 못하는 노비 출신 장인들도 모두 한글 매뉴얼의 내용을 같이 암송하며 염초 제조의 비결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쯤 되니 장인들은 더 이상 구성을 전처럼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물론 구성 또한 장인들을 그저 ‘손’으로만 보지 않았다.
말똥과 여러 발효취에 둘러싸인 공구성이 노력 끝에 얻은 염초 결정을 바라보던 순간, 허연 수염의 산신령이 다시 나타났다.
“허허. 이제야 좀 장인의 손맛을 알겠느냐? 이론이 손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손이 이론을 빚어낸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비웃음은 이전보다 부드러웠다. 산신령이 구성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미소 지었다. “수고했다. 비록 시작은 오만했으나 장인들과 무릎을 맞대고 수년간 흙바닥을 뒹군 정성이 가상하니 이번 성적은 C다.”
“아니, C라뇨?! 5년 넘게 고생해서 조선만의 과학을 세웠는데!”
구성의 이의 신청에 산신령은 조용히 허공에 영상을 띄웠다. 공구성이 조선의 흙에 맞는 염초 제조법을 세상에 내놓은 것은 1635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공들여 쓴 책의 먹이 다 마르기도 전인 고작 1년 뒤에 병자호란의 불길이 기어이 조선을 덮쳤다. 영상에는 처참한 전장의 기록이 흘렀다. 말을 타고 노도처럼 내달리는 청의 기병대와 그들에 맞서 매캐한 화약 연기 속에서 필사적으로 조총을 쏘아대는 조선군의 모습이었다.
먼지와 핏물로 얼룩진 광경을 지켜보며 구성은 할 말을 잃었다. 그와 장인들의 ‘손’으로 빚어낸 염초는 화약조선으로 나아가는 길에 분명히 기여했다. 하지만 밀려오는 적을 모두 물리치기에 1년은 너무나 짧았다. 화약을 자체 제조할 기반을 마련했음에도, 거대한 전쟁을 감당할 만큼 염초를 충분히 비축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던 것이다. 청 황제 홍타이지 앞에서 차가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굴욕적인 항복을 선언하는 인조의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세상의 흐름을 바꾸는 일이 쉬운 줄 알았더냐. 네가 한 일은 원래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했을 뿐이니, 더욱 정진하거라. 그리고 곧 조선 땅에 하늘이 노하는 추위와 굶주림이 닥칠 터인데, 그때는 그 귀한 화약 가루를 씹어 먹으며 버틸 테냐?”
산신령의 말에 좌절해 있던 구성의 눈이 번쩍 뜨였다. “굶주림? 설마... 경신대기근?! 영감님, 다음엔 무조건 먹을 겁니다. 고구마! 감자! 구황작물 치트키 간다니까요!”
현재환 교수와 소설 뜯어보기
장인의 손맛으로 조선의 염초 과학을 빚어내다
해초 신화를 깨트린 임몽
임진왜란 중 조선 조정은 바닷물을 끓여 무한한 염초를 얻는다는 ‘해초’의 소문에 매료됐습니다. 하지만 이는 중국 연안의 지면에 눈처럼 피어난 자연 염초 채취 과정을 소금 생산으로 착각한 오해였습니다. 1595년, 장인 임몽은 이 신화를 깨고 비법은 바닷물이 아니라 사람과 말이 밟고 지나간 염전의 흙, 즉 해토에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는 배합 비율을 달리한 샘플들을 비교하는 조선 장인들의 ‘시험’ 전통을 통해 이를 확인하고, 비교 샘플인 견양을 조정에 제출했습니다. 그 결과, 염초 생산에서 생물과 뒤섞인 흙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습니다.
글로벌 염초 지식과의 조우와 현지화
조선이 배설물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인공 염초 생산 기술을 받아들인 데에는 1630년 정두원 사신단의 활동이 결정적이었다고 이야기됩니다. 당시 포도장 정효길은 중국 덩저우에서 포르투갈 포병대장과 예수회 선교사를 만나 서양의 염초 제조 지식을 습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1635년 성근의 주도로 편찬된 ‘신전자취염초방언해’의 공정은 15세기 유럽의 염초 제조 방식과 유사하지만, 과학사학자 강혁훤은 이 매뉴얼이 서구 지식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조선 장인들이 주체적인 재창조에 가까운 현지화 노력을 한 결과임을 강조합니다. 장인들은 이 기술을 자신들에게 익숙한 메주 띄우기(발효)와 같은 토착적인 요리 개념들과 결합시켜 조선 특유의 염초 제조 공정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공구성이 몸으로 깨달은 지식들
Hyeok Hweon Kang, “Cooking Niter, Prototyping Nature: Saltpeter and Artisanal Experiment in Korea, 1592-1635”, Isis, 2022.
Pamela H. Smith, The Body of the Artisa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GIB
조선의 장인들은 손에 익은 감각을 토대로 메주에 흰 곰팡이가 피듯, 배설물 위에 질산칼륨 결정을 피웠다.
필자 소개
현재환
한양대 철학과(사학과 겸직) 부교수. 전공은 과학사철학 및 과학기술학(STS)이다. 과학기술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를 희망하며 과학사철학과 STS의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다. jhwanhyun@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