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태양을 만들어 풍부한 청정 에너지를 만드는 미래 기술 ‘핵융합 에너지’와 SF가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2026년 2월 27일,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과 과학동아가 20명의 고등학생과 함께 ‘SF 미래스케치 워크숍’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직접 강연을 듣고 연구실을 돌며 핵융합 에너지의 미래를 그렸다. 과학과 SF의 만남, 그 뜨거운 현장을 돌아봤다.

대전에 뜬 은색 인공태양, KSTAR
아파트 3층 높이(약 9m)에 달하는 거대한 은색 장비를 올려다본 학생들은 벌어진 입을 바로 다물지 못했다. “이것이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KFE)(이하 ‘KFE’이 개발하고 운영 중인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입니다!” 학생들을 인솔한 고진석 지능화진단그룹 그룹장(이하 ‘그룹장’)이 KSTAR를 소개했다.
핵융합 연구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 참가자 20명은 이날 KFE와 과학동아가 함께 하는 ‘SF 미래스케치 워크숍’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대전으로 모였다. 핵융합 기술의 미래를 상상한 SF를 창작하기 위해 연구자들의 강연을 듣고 랩투어에 참석했다.
“한국은 2007년 세계에서 6번째로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를 완공한 나라입니다.” 랩투어는 핵융합 기술의 최전선인 KSTAR를 둘러보며 시작됐다. KSTAR는 태양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과정을 모방해 만든 ‘인공태양’으로, 한국이 독자 개발했다. 핵융합 반응은 태양에서 수소 원자핵들이 충돌하면서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핵융합로가 생산할 핵융합 에너지는 화석 연료와 달리 에너지 생성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이론상 1g만의 연료로 석유 8t(톤)에 준하는 에너지를 생산한다.
AI로 에너지의 안정성 지킬 현장 들여다보다
태양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을 지구 위에서 일으키기 위한 필수 장치는 KSTAR 내부에 탑재된 도넛형 용기, 토카막이다. 토카막은 자기장을 이용해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플라즈마 상태 중수소를 가둔다. 중수소를 플라즈마 상태로 만들려면 태양보다 뜨거운, 1억 ℃로 가열해야 한다. 2024년, KFE는 KSTAR 속 플라스마를 48초 동안 1억 ℃로 유지해 세계 최장 시간을 기록했다.
KSTAR의 핵융합 제어를 감독하는 ‘주제어실’에서 고 그룹장은 학생들에게 “핵융합의 핵심 기술은 뜨거운 플라즈마를 제어하는 능력”이라 설명했다. 핵융합 장치는 자기장으로 플라즈마를 제어한다. 토카막을 둘러싼 코일을 타고 전류가 흐르면 토카막에 자기장이 생긴다. 강력한 자기장을 사용하지만, 플라즈마의 불안정성은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에 정밀한 제어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필수다.
최근에는 플라스마 제어 도구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랩투어에 앞서 진행된 강연에서, 권재민 인공지능연구본부 본부장(이하 ‘본부장’)은 핵융합로 제어 AI 기술을 자율주행 운전에 비유했다. “자율주행 AI를 개발할 때 물리 세계의 법칙과 공간을 이해하는 ‘월드 모델’을 만들어 최적 경로를 파악하듯이, 핵융합로 역시 운전 상황을 파악한 뒤 어떤 방식으로 플라즈마를 제어할지 월드 모델이 결정한다”는 설명이었다. 이어 권 본부장은 “그래서 핵융합로 제어에는 물리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STAR는 한국형 토카막이지만, 전 세계 연구자에게 열려 있다. 제어실의 한 컴퓨터를 가리키며 고 그룹장은 “매년 연구 제안서를 받고, 선정된 연구자들이 이 자리에 앉아 KSTAR 실험을 진행한다”며, “여러분도 제안서가 채택된다면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이 말에 미래의 핵융합 연구자를 꿈꾸는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워크숍에 참가한 우인태(주엽고 2학년) 학생은 “KSTAR 실제 규모를 보고 깜짝 놀랐고, 투어를 하면서 상상력을 자극받았다”고 말했다.
SF로 상상한 핵융합 에너지의 미래
“AI가 핵융합 발전소를 자율적으로 운행하는 미래, 핵융합 연구원인 아도민은 어느 날 플라스마의 불안정성을 포착합니다. 그런데 AI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요. 인간과 AI 사이의 신뢰와 갈등을 다뤘습니다.” 문지로(부산 해강고 2학년) 학생이 조원들과 창작한 시놉시스를 SF 평론가인 이지용 단국대 인문사회융합연구사업단 교수에게 들려줬다. 강연과 랩투어가 끝난 오후, 학생들은 보고 들은 바를 토대로 SF 시놉시스를 제작하기 위해 조별로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씨줄과 낱줄을 교차해 천을 만들 듯 흡수한 핵융합 지식을 상상력과 엮어 SF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단순한 학습을 넘어 본격적인 학문 융합이 진행되는 시간인 셈이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온 가운데, 문 학생이 속한 조는 미래에 닥칠 인간과 AI의 갈등을 상상했다. 시놉시스의 초안을 듣던 이 교수는 예리한 눈빛으로 “갈등에 설득력이 있어야 하고, 위험이 쉽게 해결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아이디어를 떠올린 학생들은 이야기에 과학적인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술 콘텐츠 플랫폼에 관련 내용을 검색해 보기도 하고, 시놉시스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AI로 이미지를 생성하기도 했다. 박준이(대전 대신고 2학년) 학생은 ‘20살의 연구복 차림의 남성이 여러 컴퓨터를 조작하는 그림을 그리되, 컴퓨터 화면에는 꼭 핵융합 토카막 장치를 그려줘.’라고 나노 바나나에 요청했다.
두 시간의 조별 창작 후 워크숍 마무리로 SF 시놉시스를 발표하고, 연구자와 SF 평론가의 조언과 감상을 듣는 시간이 진행됐다. 위서준(대전 대덕고 2학년) 학생은 ‘핵융합 에너지가 상용화된 미래’에 대해 발표했다. “전국의 핵융합 발전소를 관리하던 AI에 자아가 생기면서 AI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핵융합로를 부숴버립니다. 핵융합 에너지에 의존하던 인류는 전기가 끊겨 일상에 큰 불편함을 겪습니다. 과거에 핵융합을 연구했던 청소부 데이비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 AI 시스템을 해킹하고 AI와 대화하면서 오히려 핵융합 에너지를 발전시킬 방안을 마련해 나갑니다.”
시놉시스를 들은 권 본부장은 “AI는 인간이 주는 보상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에, AI의 반응을 통해 학습한 데이터와 훈련 과정을 짚어볼 수 있다”며 “이러한 과정을 인간과 AI의 대화로 표현한 점이 재밌었다”고 평했다. 고 그룹장은 “AI가 자신에게 전력을 제공해 주는 핵융합로를 굳이 파괴할 동기가 있을지 조금 더 설득력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감상을 들려줬다. 이 교수는 “로봇이 노동에 불합리함을 느끼고 공장을 파괴하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어 왔다”며 “인간을 모사한 대상을 다룰 때 새로운 것을 상상하려면, 머릿속으로만 상상하기보다는 이전에 나왔던 이야기에 대한 정보부터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KFE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 과학동아
기술과 문학의 만남, 미래를 향한 상상의 씨앗
기술과 문학, 한참 떨어진 듯 보이는 두 분야가 SF라는 단어로 합쳐지자 새로운 미래가 열렸다. 총 다섯 팀의 SF 시놉시스는 평론가와 연구자의 조언을 거치며 핵융합 에너지를 향한 더욱 깊은 상상의 씨앗을 만들어냈다. 임채영(천안 북일여고 1학년) 학생은 “평소 상상만 했다가 지식이 부족해 폐기해 버렸던 아이디어를 전문가 도움을 통해 되살릴 수 있었던 자리였다”며 “또래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었다”고 워크숍 참여 소감을 밝혔다. 워크숍은 연구자들에게도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기회였다. 고 그룹장은 핵융합의 미래를 본 기분이라 밝혔다.
“AI 시대에 핵융합 기술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학생들이 미리 상상해 볼 수 있었어요. 앞으로 우려되는 점을 미리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