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과학동아 본문의 글자 크기는 가로세로 2mm다. 초파리 성체의 뇌 지름은 1mm, 이 글자의 반의반만 한 크기다. 이 조그만 뇌에 든 신경세포(뉴런)는 무려 13만 9225개. 7년 동안 이 좁쌀만 한 우주에 수백 명의 과학자가 달라붙어 수천, 수만 시간 동안 모든 신경세포의 모습과 연결성을 3차원 지도로 그려낸 프로젝트가 있다. 2024년 발표된 ‘플라이와이어(Flywire)’다.
5월 3일 일요일 오전 2시, 플라이와이어(Flywire) 웹사이트에 접속했다. 사이트에는 24명의 접속자가 있었다. 이름을 살펴보니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유럽 등 출신지가 다양해 보였다. 화면에는 나뭇가지처럼 복잡하게 얽힌 뇌 신경세포(뉴런)가 그려져 있다. 기자와 함께한 전 세계 24명의 동지들은 수십, 수백 시간 동안 컴퓨터를 붙잡고 신경세포를 그려온 시민과학자다.
5월 3일 화상으로 만난 김승수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분자, 세포, 발생생물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대체 그 24명은 왜 주말에 신경세포를 그리고 있었던 건가요?” 김 교수는 플라이와이어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재밌다더라고요. 뇌의 신경세포를 모두 그리는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신경세포는 뇌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다. 그래서 신경세포 각각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연결되는지 아는 것은 뇌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첫 발짝이다. 이를 위해 뇌 속 신경세포가 3차원 공간 속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 땀 한 땀 그린 세포지도가 바로 ‘뇌 연결지도(Brain Connectome)’다. 플라이와이어에선 여러 생물 중에서도 가장 많이 실험용으로 연구되는 초파리의 뇌 연결지도를 만들었다.
김 교수는 “신경세포의 연결은 뇌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뇌 영역에 따라 신경세포의 연결 패턴이 달라요. 제각기 다른 뇌 영역에 있는 신경세포를 하나씩 잠재워 보면서 뇌의 세부 영역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알아낼 수 있죠.”
우리가 생각하는 뇌의 고차원적인 기능은 신경세포의 연결 방식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실제 생물의 뇌 속 신경세포의 연결을 그려보는 과제로 넘어갔다. 처음은 1982년, 예쁜꼬마선충이란 실처럼 가느다란 벌레로 시작됐다.
초파리 뇌 연결지도
2024년, 걸을 수 있는 동물의
연결지도가 최초로 나왔다
김 교수는 “40년 전 예쁜꼬마선충 신경세포 연결지도 발표는 과학계에 큰 충격을 줬다”고 설명했다. 예쁜꼬마선충의 신경세포는 고작 302개다. 하지만 302개에 불과한 신경세포 연결지도는 이후 과학자들이 예쁜꼬마선충이 어떻게 먹이를 찾고, 장애물을 피하는지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 사용됐다. 과학자들은 이후 나온 수많은 연구성과를 보며 뇌 연결지도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예쁜꼬마선충 다음 목표는 더 크고 더 복잡한 두뇌였다. 초파리 성체의 뇌에는 신경세포가 13만 9225개 있다. 인간의 뇌에 대략 900억 개 정도의 신경세포가 있으니 인간에 비해서는 아주 적은 수준이다. 그러나 초파리는 인간과 60%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인간이 겪는 유전질환의 75%는 초파리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초파리의 뇌를 연구하면 사람의 뇌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얻는다.
플라이와이어는 2024년 10월 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초파리 뇌 연결지도에 대한 논문 9편을 공개했다. 완성된 초파리 뇌 연결지도를 토대로 쓴 이 논문들에는 플라이와이어에서 그린 초파리 뇌 연결지도 자체에 대한 설명부터, 초파리가 걷다가 멈추는 모습 뒤에 숨겨진 신경 회로의 작동 메커니즘, 초파리가 색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밝힌 연구까지 다양한 발견들이 담겨있다.
13만 9255개의 신경세포, 5450만 개의 시냅스, 8453종의 세포로 구성된 초파리 뇌 연결지도에는 새롭게 밝혀진 신경세포 4581종도 포함됐다. 걷고 볼 수 있는 동물의 전체 뇌 연결지도가 완성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doi: 10.1038/s41586-024-07558-y
신경세포 조각 쌓아 올린
수백 명의 시민들, 역사를 만들다
좁쌀만 한 우주의 지도는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초파리 뇌 전체의 연결지도를 완성하려는 노력은 대략 15년 전 미국 버지니아에 위치한 자넬리아 리서치 캠퍼스의 다비 박이라는 그룹 리더가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자넬리아 리서치 캠퍼스(이하 자넬리아)는 미국 최대 민간 의과학 연구재단 중 하나인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가 2006년 설립한 민간연구소다.
다비 박 연구소장을 필두로 한 연구팀은 2018년, 초파리 뇌 전체를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데이터를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초파리 신경과학계의 기념비적인 논문입니다.” 김 교수의 표현이다. 논문과 함께 ‘FAFB’라는 이름의 초파리 뇌 전체 데이터가 공개됐다. 이 데이터를 얻기 위해 연구자들은 암컷 초파리의 뇌를 꽁꽁 얼린 뒤 40nm(나노미터·1nm는 1억분의 1m) 두께의 얇은 박편으로 잘랐다. 전체 7050여 장의 뇌 조각을 이후 고해상도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해 뇌의 단면 이미지를 얻었다. 이미지의 용량만 전체 100테라바이트(1조 바이트)였다. 노트북 100대의 저장 용량에 필적하는 양이다.
FAFB 데이터는 말하자면, 잘라 놓은 김밥과 비슷하다. 전체 뇌를 김밥 한 줄이라고 생각해 보자. 김밥을 잘라 단면을 보면, 네모난 단무지, 동그란 햄, 납작한 시금치가 보인다. 이 단면을 보고 김밥 속 재료 전체의 모양을 알아내려면 김밥 조각 여러 개의 잘린 단면을 차례로 쭉 쌓아 올리면 된다. 노란 단무지의 사각형 단면을 쌓으면 사각기둥 모양의 단무지가, 초록 시금치의 납작한 단면을 쌓으면 길고 납작한 시금치잎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FAFB 데이터 속 초파리 뇌 단면에는 신경세포들이 김밥 단면처럼 나타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김밥에서 단무지, 햄, 시금치는 서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색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초파리 뇌 단면에는 색이 없다. 여러 층의 단면을 서로 비교해 가며 불규칙한 신경세포의 단면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구분하는 고된 작업이 필요하다.
플라이와이어는 이 문제를 재치 있게 풀어냈다. 플라이와이어는 한국계 미국인 이론신경과학자인 세바스찬 승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말라 무르티 프린스턴대 교수와 함께 시작한 프로젝트다. 연구팀의 손을 덜기 위해, 승 교수는 이 프로젝트를 시민과학으로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전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전 세계 누구라도 간단한 연습을 한 다음 신경망 재구성 작업을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수백 명의 시민 과학자가 이 프로젝트에 재미를 위해서 뛰어들었으며,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5월 3일 새벽, 기자와 함께 전 세계에서 플라이와이어 홈페이지에 접속해 신경세포를 그리던 24명의 사람이 그 주인공들 중 일부였을 것이다.
자넬리아도 초파리 뇌 연결지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플라이와이어와 자넬리아는 초파리 뇌 완성을 두고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2010년대 후반은 인공지능(AI)이 과학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던 시기입니다. 자넬리아와 플라이와이어 모두 AI를 사용해 속도를 붙였습니다. 2020년대 초반에 들어서는 AI의 성능이 많이 향상돼, 사람의 역할이 AI가 재구성한 신경망을 검증하는 역할로 바뀌게 됩니다.” 김 교수가 말했다.
김 교수는 “자넬리아는 수십 명의 전문 인력을 양성해 신경망 재구성에 투입했다”고 했다. 그 결과, 자넬리아의 방법은 신경망 재구성의 질이 매우 높았지만 만드는 속도가 느렸다. 결국 플라이와이어가 시작 5년 만에 먼저 논문을 발표했다. 자넬리아는 플라이와이어보다 1년 늦은 2025년 자신들의 데이터를 공개했다.
플라이와이어에서 발표한 논문에는 작업에 참여한 시민과학자들 287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승리는 어느 한쪽의 것은 아니다. “플라이와이어도 자넬리아에서 데이터를 공유해 줬기 때문에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자넬리아는 사실 데이터를 잘 정돈한 다음에 공유하려는 기조를 갖고 있었죠. 신경과학은 원래 다 같이 함께해야 가능한 분야입니다.”
뇌 연결지도 제작 과정
뇌 조직에 신경세포 2개(회색 원통)가 있다 상상하자. 겉면만 보면 신경세포 각각의 모양을 구분하기 어렵다.
이 뇌 조직을 아주 얇게 잘라 박편을 만든다. 그러면 조직 속 신경 세포의 단면을 관찰할 수 있다.
뇌 조직 박편 여러 장을 비교해 보며, 같은 신경세포의 단면을 같은 색으로 칠해 구분한다.
같은 색으로 칠한 신경세포 단면을 쭉 쌓아 올리면 전체 신경세포의 모양을 재구성할 수 있다.
신경세포 조각 쌓아 올린
수백 명의 시민들, 역사를 만들다
“뇌 연결지도 연구는 이제 시작입니다.” 김 교수의 말대로다. “플라이와이어 다음 단계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어요. 초파리가 걸을 때, 배가 고플 때, 짝을 찾을 때 등 상태에 따라 신경세포의 연결 강도도 달라집니다. 연인에게 차인 초파리와 그렇지 않은 초파리의 행동도 달라요. 뇌 연결지도를 이용해 이런 변화를 설명할 더 믿음직한 가설을 만들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쥐의 뇌 연결지도를 만드는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 ‘마이크론스(MICrONS)’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마이크론스는 쥐의 시각피질 조각 약 1mm2 안에 있는 뉴런과 시냅스 연결을 전부 재구성한다. 2025년 마이크론스는 쥐 시각피질 조각 속 뉴런 약 7만 5000개의 연결지도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마이크론스는 신경세포가 어떻게 연결됐는지에 대한 해부학적 정보만 정리했던 플라이와이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포유류 뇌 연결지도 중에서 가장 정밀하다고 꼽히는 이 지도엔 살아있는 쥐의 뇌에서 각각의 신경세포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함께 기록돼 있다. doi: 10.1038/s41586-025-08790-w
뇌 연결지도를 통해 뇌의 활동을 이해하면,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사람의 뇌 연결지도가 나온다면, 건강한 뇌와 그렇지 않은 뇌를 비교해 구체적으로 어떤 신경이 잘 작동하지 않는지 특정해 치료할 수 있다. 뇌를 보고 질병을 예측하는 일도 가능하다.
물론 900억 개 인간 뇌 신경세포를 하나하나 디지털 환경 속에 재구성하는 일은 근미래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그러나 예쁜꼬마선충에서 시작된 뇌 연결지도 작성을 위한 여정은 천천히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다.
쥐의 뇌 연결지도를 만드는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 ‘마이크론스(MICrONS)’에서 제작해 2025년에 발표한 쥐 뇌 세포 연결지도. 색칠된 구조물 하나하나가 모두 신경세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