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촉수를 늘어뜨리고 흐느적거리며 바다를 유영하는 해파리의 삶은 평화로워 보인다. 실제로도 그렇다. 성체의 경우 몸의 94~98%가 물인 해파리는 바다의 일부인 양 물과 함께 흘러 다닌다. 이 방식으로 약 7억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극지에서 적도, 해수면에서 심해까지 온 바다에서 살아남았다. 매 순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콘크리트 숲속에서 온몸에 잔뜩 힘을 주고 살아가고 있다면, 한 번쯤 해파리처럼 힘을 빼 보자. 해파리의 느슨하고 단순한 삶이 오히려 당신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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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원양해파리 ㅣ Chrysaora pacifica
대서양이나 인도태평양 등 아열대 바다에 서식하는 해파리인데, 최근에는 남해안에서도 관찰된다. 크기는 10~30cm 내외이며, 갈색의 줄무늬가 특징이다.
“강아지보다 난 느슨한 해파리가 좋아.”
K팝 그룹 ILLIT(아일릿)이 2025년 발표한 노래 ‘NOT CUTE ANYMORE’의 가사다. 노래 속에서 화자는 더 이상 귀엽게만 보이고 싶지는 않다며 ‘진짜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하고많은 생물 중 왜 해파리였을까. 2026년 1월 28일, 김경연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 연구사와 그 이유를 함께 궁리해 봤다.
국립수산과학원 홈페이지에는 ‘수산정보 지원방’이라는 게시판이 있다. 수산물에 관한 한, 어떤 질문이든 다 올려도 되는 곳인데, 이 중 해파리에 관한 질문이 올라올 때면 어김없이 김 연구사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해파리 담당자”로 소개하며 척척 답해 준다. “처음엔 해파리가 너무 예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여기에 이끌려 해파리 인공 번식을 연구하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해파리를 전공했고, 관련 연구를 지금까지 하고 있죠.” 그런 김 연구사라면 아일릿이 왜 느슨한 해파리가 좋다고 말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움직이는 해파리의 모습이 심장박동과 유사하다고들 해요. 이 모습이 현대인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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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부레관해파리 ㅣ Physalia physalis
삼각형 모양의 공기주머니 덕분에 수면 위를 둥둥 떠 다니는 해파리다. 해변에 떠밀려온 비닐봉지 등 플라스틱 쓰레기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은데, 맹독성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힘차게 헤엄치지 않고도 잘 산다
아일릿이 말하는 해파리의 느슨한 매력은, 자신만의 속도로 바다를 유영하는 모습에서 온다. 해파리에게는 뇌가 없다. 눈도, 코도, 입도 없다. 젤라틴으로 이루어진 몸은 대부분이 물이다. 사실상 움직이는 젤리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다. 해파리의 몸은 크게 머리처럼 보이는 ‘우산’과 먹이를 잡아 입에 넣는 ‘구완(입다리)’, 그리고 몸 이곳저곳에 달린 ‘촉수’로 구성된다. 해파리의 우산 안쪽에는 근육이 있다. 이 근육으로 우산을 접었다 펴며 앞으로 나아간다.
해파리는 물고기처럼 먹이를 향해 힘차게 헤엄치진 못한다. 대신 스쳐 지나가는 먹이를 잘 붙들며 먹고산다. 플랑크톤부터 작은 물고기, 심지어는 같은 해파리도 먹는다. 해파리의 촉수 표면에는 ‘자포’라는 세포가 있다. 독침이 달린 세포인데, 독침에 먹이가 스치면 자포 자체가 발사된다. 그다음 독침을 통해 자포 속에 있던 독을 먹잇감에 주입하는 식이다.
해파리의 독은 꽤 강하다. 맹독성 해파리인 작은부레관해파리의 경우, 만지기만 해도 전기에 지져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그보다 독성이 조금 약해 강독성 해파리로 분류되는 야광원양해파리의 경우에도 작은 물고기 정도는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독을 갖고 있다. 해파리는 독에 기절한 먹잇감을 구완을 이용해 입으로 끌어당겨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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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광원양해파리 ㅣ Pelagia noctiluca
몸 크기가 10cm 내외인 작은 해파리다. 몸 색이 분홍색, 노란색 등 다양하다. 밤에는 빛을 낼 수 있다. 우산 표면에도 자포가 있어서,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상상의 영역을 유연하게 벗어나기
김 연구사는 “해파리라는 동물은 제각기 생활사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 다른 데다가 같은 종이라도 환경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연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해파리는 보름달물해파리다. 보름달물해파리는 한반도 연해에서 태어나고 죽는 자생종이다. 김 연구사는 “보름달물해파리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수온이 낮은 전남 해역에 사는 보름달물해파리가 수온이 높은 경남 해역의 보름달물해파리보다 낮은 온도에서 더 잘 버티는 경향도 관찰됩니다.”
인천 강화도 인근에선 ‘영생 해파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작은보호탑해파리도 관찰된다. 작은보호탑해파리는 지름이 최대 약 5mm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생물이다.
해파리는 알을 낳는다. 알은 자라서 물속을 둥둥 떠다니는 유생이 된다. 유생은 곧 바닥에 붙어있는 ‘폴립’ 형태로 몸을 바꾼다. 폴립 상태에서 더 자라면 바닥에서 떨어져 나와 ‘에피라’라는 부유 유생으로 떠다니다가 성장해서 ‘메두사’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해파리의 형태로 바닷속을 유영한다.
작은보호탑해파리는 이 과정을 거슬러, 메두사 단계에서 수명이 다하거나, 외부 스트레스를 받으면, 폴립 단계로 되돌아간다. 사람으로 치면 노인이 어린 아기가 되는 격이다. 이 기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전환분화(Transdifferentiation)’다. 전환분화는 이미 분화가 완료된 세포가 다른 종류로 기능을 바꾸는 현상이다.
생물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제각기 역할이 다르다. 근육세포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신경세포는 전기 신호를 전달한다. 이렇게 세포들이 제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받는 과정을 ‘분화’라고 부른다. 전환분화는 근육세포가 신경세포가 되고, 표피세포가 근육세포로 바뀌는 식이다. 이를 통해 메두사 단계의 체세포들이 제각기 역할을 바꿔 폴립 단계의 몸을 이룬다. 주변 환경에 적응해 보다가 적응이 어렵다면 다시 태어나는(!) 경이로울 정도로 유연한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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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물해파리 ㅣ Aurelia coerulea
접시처럼 편평한 형태의 몸을 가지고 있다. 크기는 10cm 내외이며, 한국 전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종이다. 몸 가운데에 4개의 고리 모양으로 있는 부분이 위와 생식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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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보호탑해파리 ㅣ Turritopsis nutricula
죽지 않는 해파리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해파리를 대상으로 노화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전세계 바다에 널리 퍼져 있으며, 지름 약 5mm 내외로 몸집이 아주 작다.
마음 속 해파리가 유영하는 삶
김 연구사와 해파리 이야기를 1시간여 나눴다. 알면 알수록 더 종잡을 수 없는 생물이었다. 이야기를 마치며, 김 연구사에게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해파리가 무엇인지” 물었다. 김 연구사는 유령해파리(사자갈기해파리)를 꼽았다. 연한 우윳빛 몸에 촉수가 수백 개씩 달린 해파리다. 한국에서 발견되는 경우엔 우산 지름이 대체로 30~50cm 내외이지만, 북극해, 북태평양 등 해역에서는 우산 지름은 2.5m이고 촉수 길이는 30m까지 자라기도 한다.
김 연구사는 “수산 피해를 많이 일으키는 종이라,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연구용으로 키우는 중”이라면서 “아직 성체까지 키우는 데 성공하지 못해서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생김새도, 살아가는 방식도 다양한 해파리다. 특히나 애정이 가는 해파리를 한 종 정도 마음에 품고 살아가도 좋겠다. 취재를 하며 기자에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해파리는 2026년 1월 5일 아르헨티나 해안의 열수 분출구 인근에서 발견된 거대 해파리 ‘스티기오메두사 기간테아(Stygiomedusa gigantea)’다. 미국 슈미트해양연구소가 해저 253m 지점에서 발견했는데, 우산 지름은 1m, 구완 길이는 10m 이상이었다고 한다. 스티기오메두사 기간티아는 심해에서 살아가는 종이다. 1899년 최초 발견된 후 스티기오메두사 기간테아를 촬영한 사례는 단 12건뿐이다.
아래 QR코드를 스캔하면 이번에 촬영한 스티기오메두사 기간테아의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구완의 모습이 심해에 너울거리는 거대한 갈색 커튼처럼 보인다. 이 커튼 사이에 물고기가 숨어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미국의 몬테레이 만 수족관 연구소 홈페이지에는 “심해에는 물고기가 쉴 곳이 많지 않아, 작은 생물들이 (스티키오메두사 기간티아처럼) 거대한 젤라틴 동물에 숨어 산다”는 설명이 쓰여 있다. 해파리가 의도했든 아니든, 그 넉넉함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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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해파리 ㅣ Cyanea capillata
조명을 쪼여서 붉은 색으로 보이지만, 원래 몸체는 연한 흰색이다. 가는 촉수가 여러 개 달려 있는 모습이 특징이다. 강독성 해파리로 쏘이면 붉은 반점이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