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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충치가 미생물 탓?! 충치에 관한 다섯 가지 오해

'차라리 양치질 하지 마라'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건강정보 서가에 있는 책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인 치과의사가 양치질이 치아나 잇몸을 손상시키고 구취나 전신 질환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는 책이었습니다. 이유가 구강 미생물이라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과학자들에게는 익숙한데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구강 미생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1. 양치는 식사 직후에 하라?


치과의사들은 식사 직후에 양치질을 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탄수화물이 포함된 식사를 하면 입안의 미생물이 음식을 섭취하며 대사산물로 산성 물질을 내는데, 그 결과로 입안이 pH(산성도) 5.5 이하인 산성이 되면서 치아 표면의 칼슘과 인이 녹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워진 치아 표면은 타액(침)에 의해 30~60분에 걸쳐 원래의 강도로 돌아갑니다.


소위 말하는 ‘333 법칙’에서는 3분 이내에 양치질을 하라고 하죠. 그러나 식사 후 3분 이내에 치아를 칫솔로 세게 문지르면, 게다가 연마제를 포함한 치약을 쓴다면 치아 표면이 마모되기 십상입니다. 심하면 치아 뿌리가 파일 수도 있습니다. 또 침을 치약과 함께 뱉어버리게 됩니다. 침은 하루에 1~1.5L 가량 침샘에서 분비되는데, 소화 작용뿐 아니라 윤활 작용과 자정 작용을 맡고 있습니다. 외부 미생물을 방어하는 항균물질 ‘라이소자임’ ‘히스티딘’ 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1. 치아에 붙어있는 플라크를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1000배 확대해 본 모습. 다양한 미생물이 뒤엉켜 있다. 2. 사용중인 치솔모에 붙어있는 플라그의 모습.

 

 

2. 양치는 하루에 최소 세번?

 

꼼꼼하게 닦는다면 하루 한 번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구강 내 세균을 번식시키는 플라크(치태)가 생기는 데 대략 24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손톱으로 이를 긁으면 하얗게 묻어나오는 플라크를 다들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플라크는 미생물을 치아에 안정적으로 달라붙게 하는 구조물입니다. 과학적인 용어로 ‘바이오필름(biofilm)’이라고도 부릅니다. 내부에는 음식물 찌꺼기와 다양한 미생물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치아에 자리를 잡은 미생물은 증식을 하면서 동시에 세포외중합물질(EPS)이라고 부르는 끈적끈적한 물질을 분비합니다. 여기에 다른 미생물도 함께 붙으면서 일종의 미생물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일단 바이오필름 속에 들어간 미생물은 항생제로도 어쩔수가 없습니다. 항생제의 효과는 바이오필름 맨 바깥쪽에만 겨우 미치니까요. 방법은 우악스럽게 생긴 솔로 문질러 꼼꼼하게 떼어 내는 것뿐입니다. 그것도 떼어내기 쉬울 때나 가능합니다. 바이오필름은 자는 동안 많은 양이 만들어집니다. 타액이 거의 분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칼슘이 침착되면 돌처럼 굳어져 스케일링을 하지 않고는 제거할 수 없습니다.

 

 

3. 충치는 한 번 생기면 절대 안 낫는다?


먼저 미생물이 충치를 어떻게 일으키는지 알아야 합니다. 충치는 뮤탄스(Streptococcus mutans)나 젖산간균(Lactobacillus)같은 미생물이 대사산물로 내놓는 산성 물질에 치아가 부식되는 현상입니다. 그럼 ‘뮤탄스나 젖산간균을 없애면 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충치가 있는 곳에 해당 균들이 없는 경우도 있고, 충치가 없는 곳에 해당 균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충치를 만드는 데 구강에 원래 상주하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관여한다는 뜻입니다. 상주 미생물을 없애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괜히 항생제나 구강세척액을 무리해서 썼다간 다른 유익한 미생물들까지 모두 죽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건강한 사람의 상주 미생물은 구강 점막에 미리 자리를 잡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병적 미생물들을 막기도 하고(먹이 경쟁), 구강 점막세포의 면역기능을 증진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최근 미생물 연구는 충치가 ‘전체적인 미생물 균형’이 깨지면서 발병한다고 보고 충치를 ‘관리’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산성 물질을 내는 미생물들이 급격히 증식하지 않도록 평소 플라크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갖는 겁니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4. 충치와 심장병은 관계없다?

 

구강 미생물은 입을 통해 몸 곳곳에 침투합니다. 면역세포들이 모여 있는 편도만 지나면 구강 미생물에게는 소화관이라는 ‘천국’이 열립니다. 또한 구강 미생물은 혈관을 통해 소화관이나 호흡기로는 도달할 수 없는 심장, 췌장, 신장 등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혈관으로 미생물이 침투하는 것을 ‘균혈증’이라고 합니다. 칫솔질 후 출혈이 발생하면 균혈증 발생빈도는 8배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침투한 미생물은 몸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심혈관 질환입니다. 오늘날 심혈관 질환의 가장 중요한 위험 요인으로 염증이 대두되는데, 혈관 염증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세균이고, 그 근원이 구강 미생물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혈관을 막는 죽종(동맥벽에 세포 부스러기, 지질, 칼슘, 결합조직 등이 쌓여 커진 동맥경화의 한 형태)에서 치주질환을 일으키는 병원균이 발견되고, 얼굴과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경동맥의 죽종에서 치주염과 관련된 세균이 발견되곤 하니까요. 면역세포들이 마냥 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퇴치하고 남은 잔해물도 혈관 내 독소로 작용해 동맥경화 위험을 높입니다. 잇몸이 건강해야 혈관도 건강합니다.

 

 

5. 충치는 예방 못 한다?

 

충치는 30세 이상 성인에게는 잘 생기지 않습니다. 대체로 어린이에 비해 법랑질이 단단하고 치아 표면이 편평하기 때문입니다(좋아하긴 이릅니다. 30세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치주질환이 급증합니다). 어쨌든 어릴 때 충치가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하면 어른이 돼서는 충치로 고생할 확률이 적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충치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요. 오범조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한동헌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 김봉수 한림대 생명과학과 교수 등 공동연구팀은 재밌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영구치가 막 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 50명의 타액(침)을 채취했다가 4년 뒤의 상태와 비교한 겁니다. 50명 중 12명에게는 충치가 생겼고, 38명에게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doi: 10.4014/jmb.1710.10028

 

1 충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치실 등을 사용해 플라크를 잘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 불소를 치아에 도포하면 불소 이온이 법랑질 속으로 들어가 법랑질 결정 구조가 안정화되고, 충치균이 내는 산성 물질에 내성을 갖게 된다. 사진은 불소를 바른 용구를 아이들이 물고 있는 모습.

 

 

연구팀은 충치가 생긴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의 4년 전 구강 미생물 조성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충치가 생긴 그룹은 4년 전 그라눌리카텔라 속, 스트렙토코커스 속(연쇄상구균), 스타필로코커스 속(포도상구균) 미생물이 풍부했던 반면, 생기지 않은 그룹은 이런 미생물의 비율이 적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라눌리카텔라는 박테리아의 상피세포 침투, 스트렙토코커스는 당수송 인산전달계에 관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4년 뒤 충치가 생긴 그룹은 구강 미생물 내 코리네박테리움 속 미생물의 비중이 높았고, 생기지 않은 그룹은 나이세리아 속, 렙토트리키아 속 비중이 높았습니다. 나이세리아는 박테리아가 한 곳에 머물지 않도록 활동성을 주고, 렙토트리키아는 충치 진행 속도를 늦추는 플라보노이드를 합성하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학생들의 생활 습관(1일 양치질 횟수, 간식을 먹는 횟수 등)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 교수는 “분석한 미생물 중에는 충치 유발균으로 알려지지 않은 흔한 세균들도 있었다”며 “어릴 때 구강 미생물의 균형을 잘 잡으면 향후 충치가 생길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 “어릴 때 구강 미생물의 다양성을 검사해, 다양성이 낮은 경우 불소 도포, 식습관 개선 등을 하면 충치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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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 도움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오범조 가정의학과 교수, 이호 구강악안면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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