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가이드마이페이지








[주요기사] 챌린저호 참사 40주기 40년 전 참사가 남긴 질문

▲NASA
1986년 1월 28일 오전,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이륙 중인 챌린저호. 하지만 이륙 73초 만에 연료가 새며 공중에서 폭발했다.

 

인류의 발자국이 달에 닿은 지 57년, 미지의 영역이던 우주는 이제 ‘관광’의 무대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면에는 잊어서는 안 될 피의 대가도 존재한다. 40년 전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하며 사라졌다. 우주 개발의 성과 뒤편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과거 비극 속에서 제대로 배웠는지를 짚었다.
 

 

▲NASA
당시 챌린저호에 탑승한 7인의 승무원. 왼쪽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임무 전문가 엘리슨 S. 오니즈카, 조종사 마이클 J. 스미스, 사령관 프랜시스 R. 딕 스코비, 임무 전문가 로널드 E. 맥네어, 임무 전문가 주디스 A. 레스닉, 탑재체 전문가 그레고리 B. 자비스, 민간인 초등교사 크리스타 맥컬리프.

 

고무링 하나가 불러온 참극


1986년 1월 28일 오전 11시 38분, 미국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화염을 뿜으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발사 당일, 미국 전역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이 중단될 정도로 챌린저호는 화제였다. 미국 최초의 민간인 우주비행사로 초등학교 교사 크리스타 맥컬리프가 탑승했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로켓이 상승하자 대중은 일제히 환호했다.


기대에 찬 환호는 2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비명으로 번졌다. 발사 후 73초, 오른쪽 고체 로켓 부스터에서 작은 불꽃이 분출됐다. 곧이어 거대한 폭발음을 남기며 챌린저호는 산산조각 났다. 짙은 연기는 Y자 모양으로 갈라지며 하늘을 가득 채웠다. 로켓 파편들은 대서양 곳곳에 가라앉았다. 이 모든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전 세계인은 충격적인 장면에 그 자리에서 숨을 죽였다.


우주 개발을 소련과의 냉전 경쟁에서 핵심 과제로 추진하던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그날 예정됐던 연설을 취소하고 전 국민 위로 담화를 발표했다. 40년 전 희망을 품고 챌린저호에 탑승한 7인은 그렇게 지금까지도 지구로 귀환하지 못했다.


미국우주항공국(NASA)은 곧장 원인 분석에 나섰다. 그리곤 같은 해 7월, 사고 원인으로 로켓 연료탱크의 이음매 부분에 있는 O자 모양 고무링(O-링)을 지목했다. 고무로 만들어진 O-링은 로켓 연료탱크 이음매를 메워 연료 누출을 막는 역할을 하는데, 고무는 온도가 낮으면 탄성이 약해진다. 발사 당일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 O-링이 얼었고 O-링은 탄성이 약해져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후 연료탱크에서 뜨거운 가스가 새어 나와 폭발한 것이다.


챌린저호 참사는 기술 혁명으로 들뜬 20세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는 인류의 진보라는 미래를 약속할 것만 같던 과학이 우리에게 안긴 대표적 ‘기술재난’으로 거론된다. 인류 과학기술의 정수이자 가장 명민한 집단이라 칭송받는 NASA에서 왜 이런 어설픈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과학동아가 만난 공학자와 철학자, 사회학자들은 기술의 성숙만으로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NASA
챌린저호 발사 전날인 1986년 1월 27일 저녁부터 미국 플로리다주의 기온이 영하로 급강하해 발사 직전 발사대에 고드름이 맺힌 모습. 추위에 O-링이 얼며 고무의 탄성이 줄어들었고, 연료 누출을 막을 수 없었다.


  기술재난 부른 ‘일탈의 정상화’

 


12월 5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챌린저호 참사의 근원으로 ‘일탈의 정상화’를 꼽았다. “몇 번의 안전 확인을 거듭하더라도 명백한 실패 신호가 없으면 굳이 더 점검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거대한 조직 내에서 점점 일탈의 정상화가 일어납니다. 챌린저호도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허술함이 누적돼 왔던 거죠.” 그는 사회재난을 조직 문화의 관점에서 30여 년간 연구해 온 사회학자다.


일탈의 정상화는 1996년 챌린저호 참사를 분석하던 미국의 사회학자 다이앤 본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최초에는 심각한 일로 생각했던 일탈이 계속 반복되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으로 밀려난다는 이론이다. 이 교수는 챌린저호 참사가 “개인의 악의나 기술적 실패가 아니라 일상적 일탈이 축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참사가 발생한 날은 챌린저호의 첫 비행날이 아니었다. 마지막 비행 이전부터 3년간 아홉 차례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NASA는 그동안 다른 우주왕복선까지 포함해 24회 동안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중 O-링 손상은 총 7번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O-링이 안전을 위험할 요주의 부품임을 인지했지만, 시험 비행 중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납득할 만한’ 위험으로 여겼다.


추후 진행된 사고조사 보고서에서는 챌린저호 발사를 두고 내부 갈등이 있었단 게 드러났다. 챌린저호 발사 전날 밤, NASA에 로켓 부품을 조달하던 로켓부품기업 ‘모턴 사이어콜’의 엔지니어 로저 보졸리는 NASA에 필사적으로 발사 중단을 요청했다. 발사 예정일 온도가 뚝 떨어져 “추운 날씨에 O-링이 얼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NASA 운영진은 다음 날 챌린저호는 발사를 강행했다.


이 교수는 챌린저호가 대표적인 일탈의 정상화 사례였다고 지적한다. “엔지니어들은 매일 업무에서 수많은 선택을 합니다. 데이터를 상부에 보고할 것인가, 이 정도 오차는 무시할 것인가 등이죠. 이런 선택 과정에서 더 이상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작은 일탈들이 쌓여 전체적인 조직 문화를 형성합니다.”


이어 그는 “챌린저호 사고는 강력한 냉전을 배경으로 한 체제 경쟁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며 일탈을 묵인하게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사회주의 진영보다 우월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력이 강하게 내려오면서 실무자들은 안전을 타협하는 문화가 고착된 거예요. 우주 비행을 실패할 수 없었던 미국은 발사 시점을 당겼고, 미국 의회는 NASA에 비용 문제를 꾸준히 거론했죠. 결국 경제적 압박, 정치적 일정, 조직 내 위계 구조가 모두 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을 높이는 쪽으로 작동하며 폭발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 겁니다.”

 

▲NASA
컬림비아호 추락 당시 모습. 컬럼비아호는 이륙 직후 외부 연료탱크에서 발생한 결함으로 발포단열재 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떨어진 조각은 우주왕복선의 왼쪽 날개를 손상시켰고, 이후 대기권 재돌입 과정에서 손상된 날개의 균열 부분이 대기와의 마찰로 과열돼 공중에서 폭발했다.

 

배우지 못한 교훈, 되풀이된 참사


NASA는 사고 원인 발표와 동시에 해결책 공모에 나섰다. 개선책 중 하나를 제시한 인물은 다름 아닌 한국인이었다. 미국 우주선 부품 제조업체 테이코엔지니어링의 정재훈 CEO(당시 부사장)는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발사 당시 TV로 흰 연기를 보고도 처음엔 폭발한지도 몰랐죠. 해결해 보겠다고 마음먹은 뒤 머리를 싸맨 어느 날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열 조절 장치였어요.”


그는 특수 O-링이 들어간 열 조절 장치 아이디어를 정리해 NASA에 보냈다. 이 장치는 40개의 공모 아이디어 중에서 최종 2안으로 선정됐다. 정 부사장의 기술을 채택한 NASA는 열 조절 장치가 개선된 O-링을 1988년 9월 디스커버리호에 장착해 발사했다. NASA는 이후 모든 우주선에 새로운 열 조절 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시켰다. NASA의 의사결정 과정이 안전성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조직 개편도 나섰다. 하지만 안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7년 후, NASA에는 또 다른 비극이 발생했다. 2003년 2월 1일,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대기권 진입 중 폭발한 것이다. 발사 당시 연료탱크 파편이 날개에 부딪혀 단열재에 균열이 갔고, 임무를 마치고 대기권 재진입 도중 균열이 난 곳에 불이 붙었다. 그렇게 미국은 또다시 7명의 우주비행사를 잃었다.


정 CEO는 “여러 부서에 연락해 우여곡절 끝에 NASA 총책임자 론 디트모어를 만났다”며 “해결책이 거의 끝났다며 냉담한 반응이었지만 그럼에도 거듭 찾아가 설계도를 입수했다”고 회상했다.


정 CEO에 따르면 폭발의 원인은 영하 183℃의 액체 산소 연료를 주입하는 파이프의 배관 부분이었다. “0.2in(인치) 틈새로 습기 찬 공기가 접촉하는 순간 얼음이 생기며 연료가 가열되지 않았던 겁니다. 공기 접촉을 차단할 0.007in 두께의 실리콘 고무막을 최초로 개발했죠. 2003년 12월 12일 NASA에 완성품을 보냈어요.” 


2005년 7월 26일, 결빙 위험을 줄이는 기술적 보완을 거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는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다만 그는 “기술적 결함을 막는 데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며 “기술을 넘어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지점들이 조직 내부에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챌린저호 발사 73초 뒤,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고 하늘은 나선형의 짙은 연기로 가득 찼다. 이 장면은 당시 TV를 통해 생중계되며 전 세계인에게 충격을 안겼다.

 

기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실이 홍보보다 우선돼야 한다.
자연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에 관한 대통령위원회 보고서’에서


‘정상사고’의 함정, 극복하려면


컬럼비아호 사고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NASA는 챌린저호 사고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개선을 약속했음에도 참사는 왜 재발했던 걸까. 12월 8일 화상으로 만난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 ‘정상사고(normal accident)’ 개념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물리학과 과학철학을 전공한 철학자로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정상사고는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미국 사회학자 찰스 페로가 제시한 이론이다. 원자력 발전소, 로켓, 화학 공장처럼 고도로 복잡하고 긴밀하게 연결된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철저히 관리해도 사소한 실수나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으로 사고가 ‘정상적’으로, 즉 피할 수 없이 발생한다. 이 교수는 “거대 기술 시스템을 우리가 완전히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불확실성이 있단 걸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NASA는 우주왕복선의 내구성을 낙관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부족했단 걸 사고를 통해서야 알게 된 거죠. 그들은 수십 번 왕복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사실 터무니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자기가 만들었으니 그 시스템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종종 빠집니다. 그러나 만든 이들조차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모르는 인공지능(AI)처럼, 복잡한 시스템은 그 속을 모르는 게 일반적이에요. 두 차례의 비극은 기술력을 확신하면서 발생한 거죠.”


챌린저호는 ‘Criticality 1’ 등급의 부품이 740개에 달하는 우주왕복선이었다. Criticality 1 등급이란 고장 날 경우 승무원과 비행체를 잃을 수 있는 부품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완벽한 안전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며 “문제는 수용 가능한 위험 수준을 어디에 설정하느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기술이든 규모가 커지면 너무나 복잡해지기에 정상사고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위험하니 안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라는 입장 또한 막대한 기회비용을 초래하죠. 따라서 기술을 사용할 때 엔지니어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외부 집단인 사회학자, 철학자, 윤리학자 등과 함께 논의하며 사회적 합의점을 치밀하게 찾아가야 합니다.”


정상사고를 극복하는 문화는 현실에서 가능할까. 이재열 교수는 해법으로 ‘상생형 문화’를 내놨다. 그는 미국의 화학회사 듀폰의 안전 곡선을 예로 들며 조직 문화의 네 단계를 설명했다. “1단계는 사고가 나면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2단계는 안전에 대해 ‘시키니까 한다’는 태도예요. 3단계는 ‘나에겐 문제가 없다’는 협소한 생각입니다. 4단계는 내 문제를 넘어 주변 문제도 함께 파악해서 알려주는 거죠. 4단계까지 가려면 심리적 안정감이 가장 중요합니다. 서로 자기가 못 보는 사각지대 위험을 보면서 소통하는 문화가 가장 바람직한 안전 문화입니다.”


이상욱 교수는 무엇보다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을 꼽았다. “우리는 거대 기술 시스템 앞에선 무지합니다. NASA는 컬럼비아호 참사 전까지만 해도 우주왕복선이 수십 번은 왕복 운행 가능할 거라 믿고 단정했어요. 그런 불행을 최소화하려면, 과학기술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걸 인정해야 하죠. 즉, 우리는 노력하되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NASA
미국항공우주국(NASA) 추모공원의 챌린저호 추모 비석(왼쪽)과 컬럼비아호 추모 비석(오른쪽). NASA는 전시관과 추모공원을 통해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있다.

 

민간 우주 시대, 잊지 말아야 할 40년


21세기 들어 우주 개발의 주도권은 정부에서 민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로켓 재사용 기술을 처음으로 성공한 미국 우주기업 SpaceX는 NASA보다 빠르게 달과 화성을 향한 일정을 앞당기고 있다.


2025년 11월, 한국 역시 민간 우주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도로 누리호 4차 발사에 성공했다. 2032년 달 착륙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낙관이 만연한 때 질문을 던져야 함을 과거 미국의 두 차례 참사를 통해 배웠다. 이재열 교수는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고 어떤 조직 문화, 시스템적 특징이 결합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면서 “우주 개발이 정치적 상징성으로 활용될수록 내부 압력은 더 커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챌린저호 참사 40년, 기술은 발전했다. O-링은 개선됐고, 결빙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장치가 개발됐다. 로켓은 더 강력해졌고, 우주정거장이 건설됐다. 민간우주기업이 등장했고, 한국도 우주 강국을 꿈꾼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과학기술력으로도 선진국 반열에 들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럼에도 대소경중한 사고와 참사는 여전히 끊이질 않는다. 불과 1년 전, 181명의 승객을 태운 채 국내 공항에 착륙하던 비행기가 둔덕을 들이받고 전소했다.


NASA는 챌린저호와 컬럼비아호 사고 이후 ‘영원히 기억하기’ 전시관을 만들었다. 케네디우주센터에는 챌린저호의 동체 일부가 전시돼 있다. 매년 추모의 날을 지정해 희생자를 기린다. 밥 카바나 NASA 안전센터장은 2023년 추모식에서 “챌린저호와 컬럼비아호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누구도 승무원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그들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고 남겼다.


재난은 결국 잊힌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앉는 먼지처럼 점차 시야에서 흩어진다. 불과 1년도 안 된 재난조차 이미 대중의 기억 저편으로 묻히곤 한다. 망각에 저항하는 일부의 관심과 노력만이 재난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우리는 정녕 미래로 나아갈 준비가 됐을까. 우주 개척을 품는 우리에게 40년 전, 73초 만에 사라진 우주왕복선은 지금도 질문을 던진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박동현
  • 디자인

    박주현

🎓️ 진로 추천

  • 사회학
  • 철학·윤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