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나는 미래학을 전공한 공학박사이자 동아방송예술대(DIMA)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과학·인문학·예술을 넘나드는 융합적 접근을 토대로 미래를 연구 중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동아방송예술대는 한국 유일의 방송예술분야 특성화 대학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을 촬영한 DIMA종합촬영소를 보유한 동아방송예술대는 수많은 연예인을 비롯해, 다양한 방송현장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이런 개성 있는 학교이기에, 학교 안팎에서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공학박사는 예술대에서 뭘 가르치나요?”
예술가들에게도 중요한 ‘기술 문해력’
방송현장에서도 과학기술은 필수가 됐다. 생성 인공지능(AI)로 대표되는 최근의 첨단 과학이 방송예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까닭이다. 국내외 각종 기관의 연구 및 보고서는 콘텐츠 작가의 업무 중 절반 이상을 생성 AI가 대체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생성 AI 서비스 중에서도 방송예술과 밀접한 텍스트 생성, 음성·음악 생성 AI 서비스가 가장 활발히 이용 중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내가 동아방송예술대에서 가르치는 과목인 ‘테크놀로지 리터러시’도 이런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다. 과목의 이름은 ‘기술 문해력’ 정도로 옮길 수 있는데, 미래의 가수나 배우, 프로듀서, 촬영기사까지 방송예술계에서 종사할 학생들도 과학기술의 개념과 역할을 배워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SF 영화·소설의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최신 과학과 방송예술의 접점을 쉽게 전하고 있다. 예술은 상상력으로 인간의 가능성을 넓히며, 과학은 이 가능성을 현실에서 구현한다. 현실의 과학기술은 다시 예술과 인문학의 영역에서 해석, 평가되며 대중에게 영향을 미친다. 즉 과학과 예술의 상호 보완적 관계는 더욱 깊어지는 중이다.
과학과 함께 성장한 늦깎이 연구자
과학과 나의 본격적인 만남은 꽤 늦은 편이다. 2017년 KAIST에 입학해 미래학을 공부하기 전의 36년은 과학과 무관했다. 고등학교는 문과, 대학교에선 경영관리학을 전공했고 석사 학위를 받은 분야도 국제관계학 중 자원 정책이었다. 그 후 삼성그룹 공채로 취업해 순조롭게 일하던 중에 과감히 퇴사했다. 이런 결정의 배경엔, 과학기술이 주도할 미래에선 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나만의 역량이 더욱 중요할 것이란 전망과, 나의 여러 경험과 인문학적 소양이 과학적 통찰과 결합하면 고유한 강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 KAIST 대학원에 입학하며 초등학생, 유치원생 아이들과 대전으로 내려갔다.
미래학을 수학한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은 미래연구 전문 기관으로서, KAIST 대학원임에도 인문·사회학의 향기가 강하다. 게다가 내 전공인 미래학과 과학기술 거버넌스(민관협력)는 사회과학에 속하며, 연구 설계도 공대에선 다소 생소한 질적 연구 기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의 교육 과정은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Four T(4T)다. 모든 학생이 과학기술 네 과목인 정보기술, 환경기술, 바이오기술, 융합기술을 예외없이 들어야 한다. 이 필수 과목 규정은 초대 대학원장인 이광형 KAIST 총장의 “KAIST에 왔으면 반드시 과학기술을 알아야 한다”는 지론에서 비롯됐다. 이런 방향성 덕분에 미래학, 과학기술 거버넌스 전공자로서 과학적 사고에 입각한 미래 시나리오와 정책 대안을 설계하고 연구실·산업·정부, 더 나아가 사회와 인간을 잇는 ‘번역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대학원에선 미래학 분야의 권위자인 서용석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충실한 박사 과정을 보냈다. 미래연구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한 덕분에 안정적인 여건에서 서 교수님과 여러 국가과제를 수행했다. 다양한 지식을 배우는 매일이 즐겁고 간절했다. 늦게 시작한 비이공계 출신의 학생을 이끌어주신 지도교수께 감사한 마음이 크다.
특히, 2019년 우리 연구실(랩)이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과 수행한 ‘대한민국 과학기술혁신 미래전략 2045’ 과제가 기억에 남는다. 이 과제는 내가 과학기술을 배우는 학생에서 과학기술 연구자로 나아간 이정표다. 이 과제에서 우리 랩은 미래 과학기술 예측에 통계로 산출되는 정형적 데이터 외에 비정형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유명 SF 소설과 영화에 담긴 기술들을 탐색·분석했다. 정량적·정형적 분석의 비중이 높은 일반적인 미래 과학기술 예측과 차별점을 둔 것이다. 이런 시도를 계속 발전시켜, 이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제6회 과학기술예측조사 연구에도 적용했다.
과학의 미래를 미리 보는 SF
‘과학동아’를 비롯한 과학 관련 매체와 창작물을 접한 것도 이런 국가과제를 수행하던 때였다. 미래학 전공의 사회과학 연구자가 다양한 과학기술 정책과제를 수행하려면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은 필수다. 게다가 박사과정 2년차부터 졸업까지 지도교수님과 수행한 단일 과학기술 정책 과제만 20개가 넘는다. 과학기술에 대한 선행 지식은 부족했던 탓에 최대한 빨리, 폭넓게 지식을 습득해야만 했다.
이때 논문과 전문서적을 읽는 틈틈이 과학동아에서 여러 분야의 최신 연구와 흥미로운 이슈들을 접하며 숨을 돌리곤 했다. 실은 ‘어린이 과학동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과학동아’를 읽게 됐다. 최신 연구와 실험을 쉽게 풀어준 기사들이 이공계 출신이 아닌 내게 큰 도움이 됐다. 이제 내 삶에서 과학동아는 ‘우유’와 같다. 어릴 땐 내 성장을 도와줬고, 어른이 돼도 칼슘 섭취를 위해 꾸준히 옆에 둔다.
특히 미래전략 2045 연구과제를 한창 수행하던 2019년, 5월호 과학동아에 실린 SF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속 과학 기사는 미래 과학을 연구하는 새로운 접근의 단서가 됐다. 과학을 대중적으로 전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하며 과학이 바꿀 미래를 전망하는 데 있어서 SF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더 나아가 SF 콘텐츠를 제작하는 영상·방송예술인의 역할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동아방송예술대에서 가르치는 ‘테크놀로지 리터러시’ 수업은 미디어, 즉 SF 영화·소설·방송 콘텐츠 속의 과학기술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룬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도디의 1883년 작품인 ‘피노키오’로 인간과 기계의 경계, 사용자인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설명하고,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일반인공지능(AGI)에 대한 고민에 이 작품이 주는 시사점도 살펴본다. 인간이 만든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 때 코가 늘어나는 설정은, 생성 AI의 한계로 대두된 할루시네이션 현상의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단서가 된다.
학생들은 수업에서 SF를 미래 사회에 대한 통찰을 주는 자료로 읽을 수도 있다. SF는 과학기술 발달이 인간의 가치관과 인식의 지평을 얼마나 넓힐 수 있는지 탐구하는 장르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일반·특수상대성 이론, 영화 ‘앤트맨’은 양자역학과 양자컴퓨터, 영화 ‘오펜하이머’를 핵분열과 핵융합에 잠재한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사례로서 보는 것이다.
사회와 과학의 미래를 이어줄 가교, 예술
과학의 언어가 숫자라면, 사회가 간직한 메타포(metaphor)는 예술의 언어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의 연구가 사회에서 지속성을 가지려면, 예술의 목소리를 사회의 경고로서 경청해야 한다. 기술을 향한 편안함, 분노, 두려움 같은 여러 감정은 통계의 숫자로 과학에 포착되기 전에, 먼저 예술의 서사로 흘러나온다. 첨단 기술이 ‘멋진 것’으로 소비될 때부터 이면에서 생기는 윤리적 의문과 문화적 반발이 예술 작품에 한발 앞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과학자와 예술가는 문화예술, 미디어 콘텐츠가 소비되는 맥락 속에서 시대의 변화와 인간적 가치를 이해하는 데 더욱 협력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예술은 다가올 미래에 더욱 촘촘히 융합될 것이다. 이 흐름을 먼저 이해하고 가교가 될 준비가 된 사람은 미래에 큰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나도 이를 위해 미래지향적 사고와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을 제공하는 동시에, 미래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에 유연하게 대응할 사회 거버넌스 모델을 지속적으로 연구할 것이다.
새로운 분야에 늦게 들어온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이 있다. 간절함에서 비롯한 도전정신이다. 독자 여러분도 앞으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때, 과감히 나아가길 바란다. 특히 비이공계 독자들도 언제든 과학기술 분야에 뛰어들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늦게 출발해도 얼마든지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고, 그 시간은 남들보다 훨씬 값질 것이다.
나만의 과학동아 활용법
Q.과학동아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기사가 있나요?
KAIST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생으로 여러 연구과제를 수행하며 읽었던 과학동아 기사들이 생각납니다. 특히 2019년 5월호에 실린, 중국 SF 소설 원작의 영화 ‘유랑지구’의 과학기술에 대한 기사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후로 중국 SF 작가 류츠신의 ‘삼체’도 읽으며 SF와 과학기술에 관심을 키우게 됐죠.
Q.과학동아를 실제로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구독 중인 전자책 플랫폼에서 매월 과학동아를 읽으며 최신 과학뉴스와 연구 트렌드를 공부합니다. 과학동아의 기사를 매학기 ‘테크놀로지 리터러시’ 강의에서도 활용 중입니다.
Q. 과학동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 연구 분야인 미래학에서 꼽는 주요 미래 동인 중 하나가 과학기술입니다. 과학기술의 흐름을 알아야만 불확실성과 복잡성으로 점철된 현대사회에서 주도적인 활동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각자의 연구 분야와 함께, 과학기술의 변화에 주목한다면 더욱 큰 성과를 거둘 것입니다. 아울러 인류의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예술의 상상력과 통찰을 적극적으로 연구에 적용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