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말은 사실일까, 허구일까? 또 혈액형마다 걸리기 쉬운 질병이 있다는데…
사람의 혈액은 크게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으로 구성되는 혈구성분과 수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혈장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혈액형은 각 혈구성분에 모두 다 표현되므로 적혈구, 백혈구 및 혈소판에 모두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적혈구에 있는 것을 중요시하는데, 이는 수혈에서 알아야 하는 부분이 적혈구에 포함된 혈액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적혈구에 들어 있는 혈액형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혈액형과 성격관계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 없어
흔히 혈액형은 성격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가까운 일본에서는 혈액형과 성격을 연관시킨 갖가지 학설과 주장들이 번지고 있기도 하다. 이 가설에는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지난 1983년 영국의 '네이처'지에 사회계층과 혈액형 분포에 연관관계가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창조적 직종에는 A형이 많았고 이는 A형을 정하는 유전자의 능력에 의한 것이므로 유전적인 능력차가 직종에 반영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이에 대한 비판논문이 게재되어 이 통계는 우연의 산물이고 일관성이 없으며 유전자의 능력에서 원인을 찾을 정도의 수치는 아니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네이처'지에서는 더이상의 논의는 없었던 듯하다.
수혈의학을 비롯한 다른 의학분야에서는 혈액형과 사람의 성격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한 바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혈액형만을 가지고 사람의 성격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성격은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서 좌우되는데 후천적인 것이 사람의 성격형성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현대의학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그나나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각 혈액형군별로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이 연구한 A B O AB 혈액형 소유자의 특성과 수혈의학에서 취급하는 혈액형 항원의 종류, 빈도 및 그들의 특징을 비교 분석해보면 아주 재미있는 점들을 알 수 있다.
1) A형 : 우리나라 인구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혈액형 특성으로는 항원이 각 혈구당 1백20만개까지 있어서 혈액형검사에서 가장 강한 반응강도를 나타내므로 자기임을 나타내는 주관(항원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또 ABO혈액형중 아형(우리가 통상 A형이라고 하는 혈액형은 ${A}_{1}$을 말하는데 변종으로 ${A}_{2}$, ${A}_{3}$, ${A}_{Int}$, ${A}_{m}$, ${A}_{x}$ 등이 있다. 이것을 아형이라 한다)이 가장 많으므로 창의성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일의 성취력과 창조력이 필요한 발명가와 연구자가 A형에서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통계에 의하면 A형은 성격이 날카로우며 외곬인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일에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모든 면에 치밀하고 실수하는 일이 적은 반면, 너그러움과 이해심이 부족하여 사람을 사귀는 폭이 좁다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2) O형 : 미국의 백인, 흑인, 인디언에서 각각 45%. 49%, 79%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혈액형이며 우리나라 사람에서는 두번째로 많은 혈액형(27.3%) 인구분포를 나타내고 있다. O형 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피를 줄 수는 있지만 정작 본인은 다른 형의 혈액을 전혀 수혈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희생정신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O형의 성격적 특성은 의지가 굳고 의협심이 있으며 독립심이 강하고 외향적이라고 말한다. 지배욕이 있고 용맹하고 대범한 반면에, 단순하고 급하고 부드러운 면이 적다고 한다. 서부개척시대를 거친 미국인들에 O형의 분포가 가장 많다는 점 또한 혈액형과 성격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주장의 한 예가 될 듯 하다.
3) B형 : B형 소유자는 우리나라 사람의 27.1%를 차지한다. B형들은 내성적이고 온화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으며 감정이 예민하면서도 겉으로는 잘 나타내지 않으므로 상대방에게 불쾌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매사를 신중하게 생각한 뒤 움직이므로 적극성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기도 하나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진행하여 실수를 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4) AB형 : 수혈의학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적은(11.3%) AB형은 다른 모든 혈액형의 혈액을 수혈 받을 수 있으므로 가장 욕심이 많은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AB형은 A형과 B형의 혈액형 항원을 동시에 표현하므로 A형과 B형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회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이런 형의 소유자는 행동이 민첩하고 직감력이 빠르며 매사에 자신감을 표출한다. 그러므로 임기응변에 능하고 사람을 잘 사귀며 말솜씨가 좋아서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우수하다고 한다.
앞서도 밝혔듯 혈액형과 성격과의 관계는 의학적인 면에서는 연구된 바가 거의 없고, 단지 혈액형의 종류와 빈도에 따라 성격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사람의 성격이란 일생을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처한 환경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고 개인의 노력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혈액형에 따라 특정 질병에 걸리는 확률이 다르다
왜 우리는 혈액형을 갖고 있는가? 혈액형은 질병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궁금증은 혈액형의 역할을 이해하면 알 수가 있다. 혈액형은 자아 및 타아를 인식하고, 질병에 대한 감수성을 결정하기도 하며 세포의 통합성과 기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혈액형은 자기와 다른 것을 인식하고 또한 다른 것에 대하여 자기를 인식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다. 타인으로 부터 자기를 구별하는 능력은 면역학적으로는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이다. 즉, 자신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항체를 만드는 조직으로 하여금 자가항체를 만들지 못하게 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유지하며, 타인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이물질에 대한 항체를 만들게 하여 이물질과 결합하여 이를 파괴하고 제거하는 자기방어 역할을 한다. 적혈구에만 4백가지 정도의 항원이 있어서 자기와 타인을 구별하는데 필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하여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자기를 가지고 있는 혈액형(항원)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이를 파괴하는 항체를 자신이 만듦으로써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이 생기기도 한다. 자신의 적혈구를 파괴하여 빈혈증세를 초래하는 질병이다.
정상인에서는 자가항체가 생기지 않는 이유는 '억제성 T임파구'가 자가항체 생성을 못하도록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억제성 T임파구가 모자라거나 기능상의 장애가 오면 자가항체가 생기게 된다. 악성종양환자, 면역결핍증환자, 특정한 약제(methyldopa)로 치료하는 환자 그리고 노인들에 이러한 이유로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이 잘 생긴다.
산모와 태아의 혈액형이 서로 다를 때 일어나는 '신생아 용혈성 빈혈'도 혈액형이 야기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산모에는 없는 항원을 태아가 가지고 있어 이것이 산모의 몸 속으로 들어가서 항체를 생성시키고 이 항체가 다시 태아 몸속으로 되돌아와서 태아의 적혈구를 용혈시켜서 일어나는 이 질환은 대개의 경우 Rh혈액형 중의 Rho(D)항원에 의해서 발생한다. 즉 Rh음성이 산모가 Rh양성인 남자와 결혼하여 Rh양성 아기를 낳을 때 발생하게 된다. 이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 Rh음성 산모가 아기를 가지게 되면 산부인과 의사들은 임신 28주와 출산후 3일 이내에 로감(Rhogam)주사를 맞도록 권한다.
■ 강직성 척수염과 조직적 합성항원 HLA-B27 : 백혈구에 HLA-B27(조직적 합성항원)을 갖고 있는 사람은 강직성 척수염이라는 질병을 앓을 위험성이 많다. 이 병을 앓는 환자의 90%가 이 항원을 갖고 있으며 정상인의 10% 정도가 이 항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이 항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모두 병을 앓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항원이 없는 사람에 비해서는 병을 앓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이를 상대적 위험도라고 한다).
■ 위암과 A형, 십이지장궤양과 O형 : A형인 사람은 위암과 관계가 있고, O형인 사람은 십이지장궤양과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의학통계에 의하면 A/O형인 사람은 일반인보다 20% 더 위암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O형인 사람과 십이지장궤양 사이에도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A형은 위암, O형은 십이지궤양 걸릴 확률 높아
■ 혈전색전증과 A형 : 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중 특히 A형인 사람에서 혈전색전증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혈관 일부가 막혀 부분마비증세가 생기거나 심장의 관상동맥에 혈전증도 흔히 생겨 심근경색까지 이르게 된다. 또 혈우병인자인 8인자(Factor VIII)의 수치가 O형보다 A형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 호지킨병과 Rh음성 : 초기에는 경부임파절의 양측성 종창으로 시작되어 다른 임파절 및 비장으로 번지며, 전신 임파계를 침범하는 무통의 진행성 질환인 호지킨병을 앓고 있는 환자중에는 Rh음성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천2백명 이상의 가계조사에서 7예의 호지킨병 환자가 있었고, 이중 Rh음성자에서는 일반인의 2배였다.
■ 비뇨기계 감염과 비분비성 B형 및 AB형 : 키난(Kinane) 등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 B형과 AB형중 비분비성인 ABH혈액형의 소유자에게 비뇨기감염이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비뇨기감염을 잘 유발하는 세균이 혈액형의 B항원과 유사한 물질을 세균의 항원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O형이나 A형은 정상적으로 항B항체를 갖고 있고 이 항B항체에 의해서 비뇨기감염을 유발하는 세균이 정화되어 감염이 방지된다.
■ 악성혈액종양에 의한 혈구이상 : 조혈기관이나 임파구망상조직의 악성종양을 앓는 환자는 적혈구항원성이 약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항원성약화는 모든 적혈구를 침범할 수도 있고, 때로는 조혈전구세포의 하나 혹은 두 가지 클론을 침범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B형인 사람이 이러한 종양을 앓게 되면 적혈구의 일부가 항원성이 소실되므로 전체적으로는 B형과 O형의 혈액이 섞여서 모자이크성의 혈액형을 나타낸다.
■ 세균 및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숨겨진 적혈구항원의 출현 및 일부 적혈구항원 소실 : 세균이 가지고 있는 효소인 뉴라민 분해효소에 의하여 적혈구막의 구성성분인 시알리산이 소실되기 때문에 숨겨져 있던 T혈액형 항원이 나타나서 정상적으로 혈청중에 존재하는 T항체와 반응을 하여 모든 사람의 혈청과 응집을 보이게 되고, 시알리산이 중요한 구성물을 차지하는 M, N항원은 없어지게 된다. 이러한 세균 및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은 정확한 혈액형의 판정이 곤란하여 수혈 등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 암과 혈액형 항원 : 암조직은 점진적으로 A B H항원을 소실시킨다. 소실의 정도는 질병의 양과 정도에 따라 다르며, 항원이 완전히 소실되는 경우는 암세포가 다른 기관으로 전이(전파)될 때 일어난다. 치료를 하면 점차 원래 혈액형으로 회복된다. 다시 혈액형이 소실되는 것은 질병의 재발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관찰을 환자의 예후측정인자로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저감마글로불린혈증이 야기되는 만성골수성백혈병환자에서는 혈액형 항체 생성도 억제되므로 O형인 만성골수성백혈병환자의 병세가 심해지면 항A, 항B와 같은 정상 O형에서 검출되는 혈액형항체가 나타나지 않는 때가 있다.
이상에서 아주 조마한 적혈구들이 어떤 종류의 혈액형 항원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질병에 걸릴 수 있는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혈액형과 질병과의 관계 연구를 통한 상대적인 위험도를 말하는 것이므로 어떤 질환과 관련성이 있는 혈액형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불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보다 건강하게 살고자하는 인간의 욕구는 진단의학과 치료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와 예전에는 불치의 병이었던 많은 질병들이 정복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