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 28일 KSR(Korea Sounding Rocket)-III 발사 성공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한국 우주 개발 역사상 최초로 액체연료 추진기관으로 로켓을 쏘아 올렸지만, 다음 목표인 인공위성을 우주 궤도에 진입시킬 우주발사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기술이 필요했다.
터보 펌프식 엔진의 필요성
100㎏급 과학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우주발사체 ‘KSLV(Korea Space Launch Vehicle)-I’ (훗날 국민 공모를 통해 ‘나로호’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도약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KSR-III에 적용된 엔진은 터보 펌프 방식이 아닌 가압식이었다. 가압식은 연료 탱크와 산화제 탱크 자체에 압력을 가해 연료와 산화제를 연소기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추진제 탱크가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두껍고 튼튼하게 제작해야 하므로 탱크가 무겁고 발사체의 효율이 낮다.
반면 터보 펌프 방식은 추진제 탱크와 연소기 연결 부위에 따로 펌프를 단 엔진이다. 추진제 탱크에 직접 압력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압력으로 추진제를 연소기로 내보낼 수 있다. 탱크를 가볍게 만들고, 절약한 무게만큼 연료나 위성을 더 실을 수 있다.
가압식 엔진을 터보 펌프 방식으로 개량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제한된 비용과 기간 내에 KSLV-I 개발을 완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기획연구가 이뤄졌다. 그들이 내놓은 조언은 ‘국제 협력’이었다.
크기와 단수(段數)에 따라 다르지만, 우주발사체는 대략 10만~15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된다. 이 모든 것을 한 나라에서 제작하는 것은 경제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떨어진다. 국제적으로 협력해 개발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타당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제 협력을 추진하는 데 제약이 가장 많은 분야 중 하나가 우주발사체 분야다. 우주발사체가 대량살상무기를 실어 나르는 군사용 발사체(미사일)로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1987년 4월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를 구축했고, 선진국 7개국을 중심으로 관련 기술에 대한 국제 협력, 판매 등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우주발사체 개발을 시작하려던 2000년대 초에는 이런 MTCR에 의한 통제가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또 MTCR과는 별개로 우리와 미국 사이에는 탄도 미사일 개발을 규제하는 ‘한-미 미사일 지침’도 체결돼 있었다. 여러모로 국제 협력을 하기에 그다지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국, 프랑스, 중국… 협력 파트너를 찾아서
한국은 2001년 3월 세계에서 33번째로 MTCR에 가입했다. MTCR 회원국이라고 MTCR에서 규정하는 모든 기술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에 투명성을 보이는 조건으로 제한적이나마 기술협력이 가능해진 것이다. 당시 우주발사체 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일본, 중국, 인도, 이스라엘 정도였다. 우리는 이들 국가와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러나 일단 미국은 MTCR을 주도한 국가에 걸맞게 우주발사체 개발 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에게 기술을 제공하는 일에 극히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1970년대 델타 로켓 기술을 일본에 제공한 적이 있었지만, MTCR 출범 이후로는 타국에 기술을 이전한 사례가 없었다. 1997년 이후로는 로켓 관련 장비의 수출 허가마저도 거부했다.
일본의 경우 세미나나 자문, 자료 교류 같은 연구자 개인 차원의 기술교류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업무 협약을 맺는 것은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다른 나라와 공식적인 기술협력을 추진한 사례가 없었고, 우주발사체 기술을 해외에 이전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미국과 동일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중국은 우주발사체 개발을 군(軍)이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협력을 위한 대화부터 원활하지 않았다.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2호’의 발사체로 장정(長征) 발사체(모델명 LM-2C)를 선정한 것을 기회로 기술협력 협상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심지어 다목적실용위성 2호에 미국의 수출통제부품이 실려 있다며, 미국 정부가 장정 발사체로 다목적실용위성 2호를 발사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발사용역 계약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은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중국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우주발사체 상업화에 성공한 선두주자로 브라질과 기술협력을 추진한 사례가 있어 국제 협력을 기대해볼 만한 나라였다. 하지만 미국의 미사일 기술 확산 억제에 대한 강력한 의지 때문에 협력 추진을 중단하고 일관된 규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술협의 및 자문에는 관심을 보였으나 기술이전이나 핵심 부품 수출에는 신중한 입장이었다.
인도는 개발도상국으로는 최초로 우주발사체를 개발했고, 프랑스, 러시아 등과 기술협력을 추진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타국과의 기술협력에 부정적이었다. 인도는 상단용 극저온 엔진의 하드웨어와 관련 기술을 러시아로부터 도입하려는 과정에서 MTCR 위반으로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았고, 결국은 엔진의 하드웨어만 도입하는 것으로 계약을 변경했다. 우리는 다목적실용위성을 쏘아 올릴 발사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인도와의 기술협력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러시아와 협력, 우리의 전략은 ‘엔진’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지는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MTCR 체제에서도 인도와 기술협력을 추진한 사례가 있었고, 발사체 기술을 상업화하려는 의지 또한 매우 컸다. 보유하고 있는 기술도 다양했다. 우주개발 초기부터 미국과 함께 우주개발의 한 축을 담당했으며, 특히 추진기관(액체엔진) 부분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도 러시아 엔진을 구입해 활용하는 실정이었다.
본격적인 기술협력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정부 간 합의가 필요했다. 우주발사체가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2001년 5월 30일, 유희열 당시 과학기술부 차관과 유리 꼽체프 러시아 항공우주청(현 러시아 연방우주청·ROSCOSMOS) 청장이 만나 기술협력을 위한 기본적인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위성발사체 개념설계’ 연구, ‘발사체 구성에 따른 추진기관 시스템 분석’ 연구 등을 수행하면서 구체적인 기술협력 내용과 범위를 검토했다.
우리가 러시아와 협력하며 확보하고자 했던 기술 1순위는 발사체 시스템 기술이었다. 러시아가 가진 모든 기술을 한 번에 다 이전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중점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엔진 기술은 원천적으로 기술이전 협력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했다. 러시아의 엔진 회사를 접촉하며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러시아는 발사체 시스템과 발사대를 포함한 지상 장비를 공동개발하는 종합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국제사회에서 발사체 관련 기술과 물품을 수출하는 것은 엄격히 통제되기 때문에 기술이전이 포함된 협력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발사체를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개발하는 협력 방안은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는 러시아측 제안을 수용했다.
나로호 프로젝트 본격 가동
다음 고민은 러시아의 어떤 회사와 손을 잡는가였다. 당시 대표적인 발사체 체계 종합 업체는 흐루니체프와 에네르기야가 있었다. 흐루니체프는 과거 군용 발사체 개발에 주력했던 회사였다. 이후 군용 발사체를 상용화했으며, 정부의 지명을 받아 러시아의 차세대 주력 발사체인 ‘앙가라’를 개발 중이었다.
에네르기야도 발사체 개발 경험이 풍부했다. 그러나 당시엔 위성 발사체보다는 유·무인 우주 프로그램에 주력하는 상황이었다. 최근 20년 동안 새로운 발사체를 개발한 경험이 없었다. 또 에네르기야의 발사체 설계국(Salyut)이 1993년 흐루니체프로 흡수됐다. 때문에 흐루니체프가 최적의 우주발사체 기술협력 대상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러나 선택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에네르기야를 협력 대상으로 선정하라는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막무가내로 하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더니 기술협력 자체를 없던 일로 할 수 있다고 협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과의 기술협력을 통해 이득을 보고자 하는 사업가가 공직자에게 부정 청탁을 한 결과였다.
다행히 이 일이 러시아 내에서 공론화되면서 문제는 해소됐다. 러시아 정부는 2003년 7월 행정명령으로 KSLV-I에 대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흐루니체프 사이의 협력을 공식 승인했다. 2004년 4월 19일 러시아 연방우주청은 “러시아 정부는 KSLV-I 사업의 공식적인 협력 기관이 흐루니체프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 보내왔다.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정부 차원의 협상, 열여섯 차례에 걸친 계약 당사자 간의 실무협상을 진행하고 나서야 마침내 2004년 10월 26일 KSLV-I에 대한 한러 기술협력 계약이 체결됐다. 나로호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조광래
1988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의 전신인 천문우주과학연구소에서 과학로켓 개발을 시작해 이후 30년 넘게 발사체 개발에 몸담았다. 1993년 1단형 과학로켓 KSR-Ⅰ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90년대 후반 KSR-III 사업부터 2002~2013년 나로호 사업까지 총 책임자를 맡았다. 2014~2017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을 맡아 2021년 발사 예정인 한국형발사체 누리호(KSLV-Ⅱ) 개발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