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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일상 침투한 로봇, 우리가 설 자리는? | 한국 휴머노이드

▲박동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11월 13일 한국형 휴머노이드 ‘케이팩스(KAPEX)’를 공개하며, “국내 휴머노이드 연구자들을 위한 플랫폼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11월 13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한국형 휴머노이드 ‘KAPEX(케이팩스)’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키 175cm, 체중 80kg의 케이팩스 곁에 다가서자 ‘건장한 남성’의 기운이 느껴졌다. 케이팩스의 팔을 살짝 들어 올리니, 묵직한 팔뚝의 무게감이 전해졌다.


케이팩스는 KIST가 LG전자, LG AI연구원과 공동 개발한 휴머노이드로, KIST가 20여 년간 축적한 휴머노이드 기술의 집약체다. 2005년 한국 최초로 네트워크 기반 휴머노이드 ‘마루’, ‘아라’를 개발한 이후, KIST는 이족보행 로봇 연구를 꾸준히 이어왔다.


케이팩스는 국내 연구자 모두가 공통으로 쓸 수 있는 ‘플랫폼’을 목표한다. 한국 휴머노이드계에선 아직 ‘표준’이 될 휴머노이드가 없다. 연구자들은 여전히 제각기 다른 로봇으로 각자 따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이에 케이팩스는 중국 유니트리의 ‘G1’처럼 전국 각지의 연구자가 공통된 플랫폼으로 훈련하며 모인 데이터를 함께 공유하려는 목적으로 등장했다.

 

▲박동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개발한 한국형 휴머노이드 플랫폼 ‘케이팩스(왼쪽)’. 아직 본격 가동 전 단계지만, 다섯 손가락과 두 개의 발 관절 등 인간의 동작을 한 층 더 자연스럽게 모방하기 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한국 휴머노이드계 ‘흑역사’,
잃어버린 10년

 

한국의 휴머노이드 역사는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KIST의 마루와 아라, KAIST의 휴보, 삼성전자의 로보레이 등 세 개의 대표적인 플랫폼이 2010년까지 개발됐다. 마루-아라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악수하고 인사하는 시연을 선보일 정도로 주목받았다. 특히 2015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개최한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KAIST의 ‘휴보’가 미국과 일본 등 쟁쟁한 경쟁 상대를 제치고 우승하며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우승의 기쁨도 잠시, 현실적인 문제가 시작됐다. 양성욱 KIST 휴머노이드연구단 책임연구원은 “당시 휴머노이드가 꿈의 로봇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항상 마지막엔 질문을 던졌다”며 “그래서 이것(휴머노이드)으로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옆에서 듣던 이 단장의 말은 더 직설적이었다. “(연구비를 받기 위한) 과제 지원서 제목에 ‘휴머노이드’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과제가 떨어진다는 말이 돌았어요. 휴머노이드의 사업성과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던 거죠. 그 뒤로는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이 ‘잃어버린’ 기간이 돼 버렸어요.”


이 단장은 2015년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한국 휴머노이드 연구는 사실상 ‘동면’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최근 자신이 개발한 로봇 ‘아르테미스(ARTEMIS)’의 기밀 데이터를 무료로 공개하며 화제가 된 데니스 홍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 또한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같은 의견을 전했다. “DARPA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한국 팀이 우승했을 때, 한국은 세계 최고의 연구력을 증명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 ‘우리가 이미 충분히 앞서 있다’는 자만과 정체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성공이 산업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후속 투자가 끊겼습니다. 로봇 개발은 본질적으로 실패를 통한 학습의 연속인데, 한국에서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가 강하니 연구 지원도 미비했던 거죠.”

 

▲KAIST
KAIST의 ‘휴보’는 2015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재난 대응 시뮬레이션 대회(DARPA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전 세계 24개 팀을 제치고 우승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테슬라가 보여준 피지컬AI의 비전

 

분위기가 바뀐 건 2021년이었다. 테슬라가 휴머노이드 ‘옵티머스’ 프로젝트를 공개하며 “인간 노동을 대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단장은 “일론 머스크가 정체돼 있던 휴머노이드의 가능성을 열어줬다”며 “공상으로 치부되던 휴머노이드가 현실로 올 수 있다는, 일종의 ‘쓸모’를 보여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테슬라의 선언이 큰 역할을 한 건 기술적 완성도보다 ‘비전’에 관해서였다. 이 단장은 “미국에서 백만장자급 사람들이 DARPA 챌린지 우승팀을 찾아다니며 휴머노이드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테슬라가 보여준 휴머노이드는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저 정도라면 미래에 내 옆에 있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가능성을 열어준 겁니다. 그때부터 한국에서도 다시 휴머노이드 연구가 시작됐죠.”


기술적으로도 두 가지 큰 전환점이 있었다. 홍 교수는 액추에이터 기술의 혁신을 첫 번째로 꼽았다. 액추에이터는 로봇을 움직이거나 제어하는 데 쓰이는 기계 장치다. “가장 큰 전환점은 액추에이터 기술의 혁신과 인공지능(AI)의 통합입니다. 최근 QDD(준직접구동· Quasi-Direct Drive) 액추에이터가 등장하면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기존 무거운 모터를 제거하고, 가볍고 효율적인 모터를 구동하니 자연스럽게 걸으면서도 충돌에 안전한 로봇이 가능해졌죠.” 어색하던 로봇의 동작이 액추에이터의 발전으로 한결 자연스러워졌던 것이다.


홍 교수는 두 번째 전환점으로 AI의 진화를 꼽았다. “방대한 멀티모달(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등 여러 종류의 데이터를 함께 이해하고 처리하는 것) 데이터를 학습해 휴머노이드가 스스로 세상을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프로그래밍된 기계를 넘어 진정한 자율적 지능체로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새로운 구동 기술이 로봇의 몸을 인간처럼 진화시켰다면, AI는 그 몸에 들어갈 지능을 약속하는 개념”이라며 “이 두 흐름이 결합될 때 비로소 우리는 피지컬AI, 즉 실제 세상 속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진정한 AI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휴머노이드의 특이점 ‘돌봄 로봇’ , 우리 곁엔 언제쯤?
세계 휴머노이드 전문가들은 돌봄 로봇이 현실화되는 시점을 각자 다르게 바라봤다. 그럼에도 반세기 안에는 도래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과거 영광 찾을까
휴머노이드 ‘놀이터’ 될 K-공장

 

미국과 중국이 자본과 데이터로 휴머노이드 연구의 선두를 달리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이 단장은 ‘제조 현장’을 꼽았다. 한국은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다.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 현장이 국가 전체에 걸쳐 있다. 이 단장은 “피지컬AI는 결국 데이터 싸움”이라며 “휴머노이드가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를 획득할 공간 인프라가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이 무너진 나라보다 훨씬 유리합니다. 우리는 경남, 전남 등 지역별로 특화된 산업 현장이 있고, 그곳에서 휴머노이드가 행동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필드’를 제공할 수 있어요.”


홍 교수도 한국의 제조업 기반을 가장 큰 강점으로 꼽았다. “한국이 현실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전략은 제조 현장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우수한 인재 기반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력과 자동화 경험을 가지고 있어요. 수많은 공장과 생산 라인, 로봇 시스템이 매일 방대한 양의 동작·환경 데이터를 생성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데이터를 단순한 생산 관리가 아닌 로봇 학습 자원으로 활용한다면, 한국은 자연스럽게 제조 분야 특화형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접근은 미국처럼 막대한 투자나, 중국처럼 국가 주도의 대규모 데이터 수집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산업 인프라를 활용해 현실 세계의 데이터를 가장 잘 이해하는 로봇을 만드는 거죠.”


이는 기술 1등 미국조차도 부족한 부분이다. 미국은 제조업 기반이 약해 실제 공장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공장이 많지만, 서방 국가들이 보안 우려로 중국에 로봇을 보내는 걸 꺼린다. 중국 역시 서방 경쟁사에 자국 공장을 개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 단장은 “5년 뒤쯤 휴머노이드 기술이 고도화되면, 해외 기업들이 한국의 공장 현장을 빌려 데이터를 모으려 할 수도 있다”며 “그 자체가 하나의 열린 시장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다른 전략은 ‘데이터 효율화’다. 이 단장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처럼 무작정 데이터를 쏟아붓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대신 데이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적은 학습만으로도 다양한 상황에 일반화할 생성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생성 모델’은 최근 엔비디아가 개발을 공언한 생성 모델 기반 데이터 합성 기술처럼, 적은 데이터로도 높은 성능을 내는 AI 모델이다. 사람이 직접 2개의 동작만 시연하면, AI가 나머지 998개의 동작 데이터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양 책임연구원은 “예전에는 1000개를 다 모아야 했다면, 앞으로는 몇 개만 넣어주면 AI가 합성 데이터를 만들어 줄 것”이라며 “이제는 단순 데이터 양보다는 효율성이 핵심”이라고 부연했다. 생성 모델이 본격적으로 휴머노이드에 보급되면, 휴머노이드의 두뇌도 한 차원 더 발전하는 셈이다.

 

▲1X
미국 스타트업 1X는 2025년 10월  가정용 휴머노이드 ‘NEO’를 공개하며 사전 주문을 받았다. 이들은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전 세계 가정에 보급할 계획이다.

 

휴머노이드 ‘특이점’ 온다…
인류의 미래는?

 

휴머노이드는 이제 우리 곁을 넘보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1X는 2025년 10월, 가정용 휴머노이드 ‘네오(NEO)’를 세계 최초로 일반 소비자에게 예약 판매했다. 2026년에 보급하겠단 계획이다. NEO는 집안일을 돕고 노인을 돌보는 용도로 설계됐다. 휴머노이드가 더 이상 실험실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신호탄이었다.


장밋빛 전망과 치열한 경쟁이 공존하는 현재가 휴머노이드 산업의 ‘티핑 포인트’라면, 휴머노이드가 집집마다 들어와 가사노동을 하는 ‘특이점’은 언제쯤 올까. 기자가 만난 세계 각지 연구자들은 다양한 수치를 내놨다. ‘짧으면 5년, 길면 30~40년.’ 당장 몇 년 안에 급격한 변화가 있진 않겠지만, 이들은 대부분 특이점의 시기를 ‘한 세대’ 안으로 점쳤다.


휴머노이드가 정말 예견된 미래라면, 우리는 휴머노이드가 바꿀 사회 이면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할 테다. 휴머노이드는 고령화로 향하는 지구촌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주목받지만, 동시에 일자리 감소 우려도 낳는다. 나아가 휴머노이드가 노동부터 가사, 돌봄과 교감까지 다 해내는 미래가 오면 사람의 존재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따를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단장은 “기술은 시작된 순간 막을 수 없다”며 “중요한 건 사람이 로봇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에요. 노동에서 해방되는 한편, 존재 가치를 좀 더 고민하는 거죠.”


홍 교수는 이를 위해 젊은 휴머노이드 연구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무엇보다도 기술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단순히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에요. 좋은 연구자는 기술자가 아닌 탐구자입니다.”


그는 앞서 2025년 9월, ‘사람을 위한 휴머노이드’란 자신의 철학을 위해 그동안 개발한 휴머노이드의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기업 기밀과도 같은 오픈소스를 공개한 목적은 단순한 기술 공유가 아니라 생태계 확장을 위해서였습니다. 앞으로의 경쟁은 한 나라 대 다른 나라가 아니라, 열린 협력 생태계 대 폐쇄적 구조의 싸움이 될 거예요. 서방을 필두로 한 생태계에서 한국도 그만의 전략을 찾아 나서야 하는 거죠.”


다가오는 피지컬AI의 시대, 한국은 기술 주권을 지키며 데이터 필드를 무기로 승부를 걸고 있다. 한국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자본과 데이터에서 밀리지만, 휴머노이드 협력 생태계 내에서 데이터 필드라는 독보적인 강점과 뛰어난 인재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적 협력의 무대가 될 휴머노이드 연구에서 ‘빠질 수 없는 감초’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미국과 중국을 거쳐 돌아온 한국 휴머노이드,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할 시계는 이미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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