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탄소 제로 도시’(Zero-Carbon City)가 붐이다. 지난 5월 세계 3위의 석유 수출국인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수도 아부다비 정부는 220억 달러(약 22조 원)를 들여 아부다비 인근에 신재생에너지로만 전기를 공급하는 탄소 제로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탄소 제로 도시는 이름 그대로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도시라는 뜻. 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 청정에너지를 생산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효과를 상쇄시키는 도시도 포함된다. 그래서 ‘탄소 중립 도시’(Carbon-Neutral City)라고도 불린다. 현재 중국과 캐나다, 덴마크 등도 잇달아 탄소 제로 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세계 각국이 탄소 제로 도시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마스다르 시티’부터 ‘H2PIA’까지
아부다비 인근에 들어설 ‘마스다르(Masdar) 시티’는 세계의 탄소 제로 도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도시 넓이는 약 7km2로 여의도(8.35km2)보다 조금 작다. 주민은 5만 명 가량 거주할 수 있다.
마스다르 시티는 박막 태양전지를 지붕과 벽의 소재로 사용해 건물에 필요한 에너지를 태양에서 얻고, 자연 통풍이 잘되도록 건물과 길, 녹지를 배치할 계획이다. 대부분의 에너지는 태양광(82%)에서 충당하고, 일부는 쓰레기에서 얻은 재생에너지(17%)나 풍력에너지(1%)에서 공급받는다.
대중교통수단으로는 배터리로 움직이는 무인 전기자동차가 사용된다. 전기자동차는 행선지를 입력하면 자동운전시스템에 따라 승객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 전기자동차는 재생에너지에서 얻은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한다.
시민들의 에너지 사용량을 체크하기 위해 도시 전역에 유비쿼터스 센서도 설치된다. 이 센서는 에너지 사용량을 초과한 시민에게 벌금을 내야 한다고 실시간으로 경고해 에너지 절약을 유도한다. 도시 설계에 참여한 미국 MIT의 찰스 쿠니 교수는 “이 도시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최신 기술을 실험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마스다르 시티는 이르면 2012년 완공된다.
중국은 2050년을 목표로 상하이 충밍섬에 인구 50만 명이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동탄 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빅토리아시는 지난 2005년 9월 ‘녹색 선창가’(Dockside Green) 프로젝트를 시작해 약 6만m2에 이르는 선창가 지역을 친환경 지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 지역에 들어서는 건물은 바이오매스를 이용해 냉난방을 해결한다. 프로젝트 완료 시점은 2015년.
덴마크는 지난 2007년 세계 최초의 수소 도시인 ‘H2PIA’ 건설을 시작했다. H2PIA는 ‘수소’를 뜻하는 H2와 ‘이상향’을 뜻하는 utopia를 합친 말이다. 건물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는 물론 자동차 연료도 수소로 공급받는다. H2PIA 중심부에는 태양에너지와 풍력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연료전지 센터가 있고, 이 센터에서 자동차의 수소연료전지를 충전할 수 있다. 수소는 태양열이나 풍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얻는다.
최근 국내에서도 탄소 제로 도시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윤종호 한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태양열을 주로 사용하는 제로 에너지 시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로 에너지 시티’(ZeC)의 목표는 태양열과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100%까지 높이는 것. 윤 교수는 “인구 2만~3만 명 규모의 혁신도시 후보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제로 에너지 시티의 주택과 건물도 탄소 제로를 표방해야 한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도 탄소 제로 도시의 전단계로 ‘탄소 제로 주택’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영국의 주택건설업체인 바라트는 지난 5월 3층짜리 탄소 제로 주택을 내놓았다. 지붕에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전기를 공급하고 녹지를 조성해 단열 효과를 높였다. 외장재로는 두께 18cm인 고성능 단열물질을 사용하고 바닥도 두텁게 만들어 열 낭비를 최소화했다. 영국 정부는 2016년부터 새로 짓는 모든 주택에 탄소 제로를 달성하도록 의무화했다.
일본은 지난 7월 G8 정상회의 기간에 ‘탄소 제로 주택’(Zero Emission House)을 공개했다. 이 주택은 4인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단층 건물로 지붕의 태양전지판과 건물 옆 소형 풍력발전기가 15kW의 전력을 생산한다. 이 정도면 일본 주택이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전력의 5배에 이른다. 주택 안에도 물을 전혀 쓰지 않는 세탁기와 전력 소모량이 일반 에어컨의 절반인 지능센서 에어컨 같은 에너지 절약형 가전제품을 갖췄다.
국내에는 지난 2005년 대전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내 태양동산에 건립된 ‘제로 에너지 타운’이 있다. 제로 에너지 타운은 태양열 단독주택(제로에너지 솔라하우스, ZESH) 1동과 아파트 주거용 4동, 연구실 등으로 구성됐다.
이 중 ZESH는 전기를 제외한 냉방과 난방, 급탕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태양열에서 얻는다. 윤 교수는 “오는 9~10월 전기까지 태양열로 공급하는 제로에너지 솔라하우스를 한 채 더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지난 2월 완공한 ‘플러스50 환경공생빌딩’도 한국형 탄소 제로 주택의 하나다. ‘플러스50’이란 말은 에너지 소비를 50% 줄이고 수명은 50년 늘린 데서 딴 것. 특히 환경공생빌딩은 건물 자체에 ‘내복’을 입혀 에너지 사용량을 원천적으로 줄였다.
가령 벽의 단열재를 10cm 두께로 두껍게 만들어 열 낭비를 줄였다. 주택에서 에너지 손실이 가장 큰 창문 바깥에는 덧창을 달았고, 창문은 창과 창 사이에 블라인드를 넣은 이중외피를 적용했다. 일반 마감재 대신 태양열집열판으로 벽을 만들어 외벽의 활용도도 높였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현수 박사는 “집이 소모하는 에너지양 자체를 줄여야 현재 신재생에너지 기술 수준에서 탄소 제로 주택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개념을 토대로 김 박사는 새로운 형태의 탄소 제로 도시를 구상 중이다. 그는 “탄소 제로 도시는 단순히 화석에너지를 절감하는 차원이 아니라 생태라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2011년 6월을 목표로 경기도 남양주시에 생태 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탄소 제로 주택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태양열, 풍력, 지열 같은 신재생에너지로만 에너지를 충당한다.
국내의 ‘제로에너지 솔라 하우스’(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와 ‘플러스 50 환경공생빌딩’(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탄소 제로 주택의 전 단계에 해당한다.
지난 6월 2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를‘탄소 중립 도시’로 만들기 위한 각종 방안이 발표됐다. 도시 면적(72km2)의 절반을 공원 같은 녹지로 꾸미고, 태양열, 지열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10%를 공급하며, 정부 청사 옥상에 정원을 설치하는 식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나왔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건호 박사와 한밭대 윤종호 교수의 도움을 받아 한국형‘탄소 제로 주택’과 ‘탄소 제로 도시’를 구성했다.
‘제로에너지 솔라하우스’는 100점 만점에 90점
2005년 12월 5일. ‘제로에너지 솔라하우스’(ZESH)에 이사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에너지란 막연히 전기나 석유라는 아주 일반적인 생각만 갖고 있던 나는 ZESH에서의 생활을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했다. ZESH에서 살게 된 일은 운명 같은 우연이었다. 인하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에너지연구원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하게 된 필자는 대전에서 보금자리를 찾아야 했다. 마침 필자가 태양열 연구팀에 소속이 됐고, 연구팀의 배려로 ZESH에 둥지를 틀었다. 대신 ‘미션’이 주어졌다. ZESH를 구석구석 잘 관찰하는 것.
ZESH의 첫인상은 펜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연구원 안에 이런 집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지만 그보다 ZESH에 사용되는 모든 에너지가 화석연료가 아닌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ZESH에 사용되는 신재생에너지는 태양열, 태양광, 지열이다. 태양열은 온수와 난방을, 태양광은 전기를, 그리고 지열은 냉방과 난방을 책임진다. 이들은 ZESH가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70%를 충당한다.
3년 가까이 ZESH에 살면서 일반 주택이나 아파트와는 다른 차이점 몇 가지를 발견했다. ZESH는 연중 실내 온도를 평균 26℃로 유지한다. 대개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여름철이나 겨울철에 실내 온도를 이 정도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냉·난방에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하지만 ZESH는 단열이 뛰어난 외피와 공기 차단 능력이 우수한 슈퍼윈도우를 적용해 아주 적은 양의 냉·난방에너지만으로도 26℃를 유지할 수 있다. 돈으로 따지면 연간 300만 원 정도 에너지를 절약하는 셈이다. 또 ZESH가 태양광에서 전기를 얻기 때문에 일사량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을 감안해 장마철이나 흐린 날에 전기를 쓸 수 있도록 축열조를 달았다. 축열조에는 일반 가정에서 온수를 3일 정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전기가 저장된다.
물론 흐린 날이 연속해서 3일을 넘으면 온수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지난 2005년 12월 ZESH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10일간 눈이 내렸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며칠 동안 찬물로 씻어야했다. 그러나 이는 보조보일러가 없는 ZESH에만 있는 일이며 ZESH가 실험 주택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실제 태양열주택에는 보조보일러를 달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ZESH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필자에게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ZESH에 살면 정말 좋은 점이 있나요?” 그 질문에 필자는 “앞으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면 꼭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고 답한다. 개인적으로는 ZESH에 100점 만점에 90점을 주고 싶다. 만점을 받지 못한 이유는 ZESH의 경제성이다. ZESH는 건설될 당시 건축 비용이 평당 약 530만 원으로 일반 고급 주택(약 420만 원)보다 약 25% 정도 비쌌다. 앞으로 기술이 더 개발돼 ZESH의 경제성만 보장된다면 아파트형 제로에너지 솔라하우스에 사는 일도 허황된 꿈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