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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내가 만난 멸종위기종] 흰수마자, 콘크리트 옆 여울에 남은 가만한 삶

    흰수마자의 집은 모래톱이 넓게 펼쳐진 얕은 여울이다. 몸 길이 10cm가 채 되지 않는 이 물고기는 모래톱 바닥에 숨은 다음, 4쌍의 흰 수염을 이용해 작은 유충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맑은 강 아래 빛나는 모래알을 닮은 흰수마자 비늘을 보자면, 한여름 강가에서 바라본 물속 풍경이 떠오른다. 그런데 작은 물고기의 등에 담긴 이 맑은 물속 풍경이 사라질 위기다. 실상을 보기 위해 5월 20일 경기 파주 문산천을 찾았다.

     

    김종우

     

     편집자 주 
    2025년, 이제는 한국의 멸종위기종을 다루는 새 시각이 필요합니다. 이미 성공적으로 복원된 멸종위기종, 기후변화로 새 위기를 맞은 멸종위기종 등 전과 다른 이야기들이 현장에 있기 때문이죠. 과학동아가 한국의 멸종위기종을 새로 만나봤습니다. 

     

     

    한국 어류학자들에게 ‘흰수마자’라는 이름은 안타까움, 속상함, 그리고 애틋함과 동의어다. 흰수마자는 수심 30cm 안팎의,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맑은 강물에서만 산다. 바닥은 작은 모래 알갱이가 깔린 모래톱이어야 한다. 모래톱에 진흙이나 슬러지 등이 끼면 살 수 없다. 까다로운 생물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원래 한반도의 하천은 흰수마자가 살기 무척 좋은 환경이었다. 한국은 산이 많다. 높은 곳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은 가파른 경사를 따라 빠르게 하류로 향한다. 물이 빠르니 모래톱에는 오염물이 쌓일 여지도 없었다.


    맑은 모래 여울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흰수마자를 방해한 건 인간이었다. 하천에 보나 댐 등 인공 구조물을 세우면 물이 흐르는 속도가 느려진다. 모래톱에 슬러지가 끼면, 흰수마자는 자연스레 자취를 감춘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강 사업이었다. 정부가 가뭄과 수해를 예방하겠다는 등의 이유로 2008년부터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과 금강까지 한반도의 주요 강 네 곳에 16개의 보를 설치했다. 이렇게 설치된 보가 정말로 물 부족과 수해 예방에 큰 도움이 됐는지는 아직까지 의견이 갈린다. 확실한 건 이 보 때문에 흰수마자의 서식지가 크게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이 완료된 2012년 이후, 보의 영향권에 속한 지역에서는 더이상 흰수마자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어류학자들의 설명이다.


    4대강 사업의 결과로 생태계가 크게 파괴되고, 퇴적 양상이 뒤바뀌면서 강의 모습이 바뀌었다. ‘녹조 라떼’라는 말로 대표되는 수질 오염 문제도 심각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거세졌다. 이에 따라 4대강 사업이 끝난 지 5년 만인 2017년부터 4대강의 보를 일부 개방하게 됐다. 그래도 흰수마자는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와주곤 했다. 금강의 공주보와 세종보의 경우 전면 개방한 지 1년 만인 2019년 4월, 인근 수역에서 다시 흰수마자가 발견됐다는 희소식이 들렸다. 물론 언제라도 보를 다시 닫는다면 다시 흰수마자의 삶이 위협받을 것이란 불안이 남아있다.

     

    국립생물자원관

    흰수마자를 위에서 바라본 모습. 네 쌍의 흰 수염과 등의 무늬가 특징적이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한강의 흰수마자

     

    보를 열거나 또는 닫거나. 인간의 선택에 따라 멸종위기종 I급 생물인 흰수마자의 삶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운데, 2024년 9월엔 뜻밖의 경사가 전해졌다. 하천 개발과 도시화 탓에 2004년 이후로 흰수마자가 자취를 감췄던 한강 유역에서 20년 만에 흰수마자가 다시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흰수마자가 발견된 경기 고양 창릉천과 파주 문산천은 한강 하류와 연결된 지류다.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기 위해 5월 20일 아침, 발견자인 성무성 물들이연구소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 소장은 민물고기 전문 민간연구소인 물들이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를 하는 한편, 환경단체, 시민과학자 등과 함께 민물고기 보호 활동을 활발히 진행 중인 독립연구자다. 그에게 개발 압력이 강한 수도권 하천에서 흰수마자가 잘 버티고 있는지 질문하려 했는데, 성 소장이 대뜸 “사실 오늘도 파주 문산천에 흰수마자 모니터링을 하러 갈 예정”이라며 합류를 권했다. 마침 비도 오지 않고 하늘이 흐려 하천에서 생태조사를 하기에 제격인 날씨라고 했다.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문산천으로 향했다.  


    오후 세 시, 문산천에는 기자와 성 소장을 비롯해 이완옥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장과 환경단체 ‘자연의 벗’ 관계자까지 네 명이 모였다. 주섬주섬 가슴장화를 입으며 바라본 문산천의 첫 인상은 ‘공사장’이었다. 흙으로 된 임시 교량이 하천을 가로지르는 가운데, 콘크리트 기둥 두 개가 솟아 있었다. 족대를 챙겨 앞서가는 성 소장은 “교량을 짓기 위해 기반 공사를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왜 기자를 문산천으로 불렀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작년 추석 연휴, 경기 김포 농수로에서 민물고기 조사를 나갔어요. 충분히 조사를 했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낯선 물고기가 한 마리 눈에 띄었죠. ‘어, 이거 흰수마자 아니야?’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농수로는 한강 유역의 하천 물을 직수로 끌어 쓰고 있었더라고요. 그렇다면 한강 유역에 흰수마자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일주일 뒤, 인근 창릉천과 문산천을 다니며 흰수마자를 찾았어요. 이곳 문산천 일대에서는 거의 무더기로 발견됐죠.”


    한강에서 흰수마자가 발견된 건 희소식이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문산천 하류에서부터 흰수마자를 찾으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이곳 공사 현장을 만났어요. 다리 공사를 하다 보니 하천 바닥을 파헤치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펄이 내려와 모래톱에 쌓이면 하천의 미소 생태계가 달라집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직까지는 흰수마자가 잘 살아주고 있네요.”


    현재 문산천 하류에서는 한강유역환경청의 주도로 교량 건설이 한창이다.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과학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문산천 하류에 펄을 유입시킬 수 있는 과정은 다 끝난 상태”라면서 “흰수마자 서식이 확인된 이후, 2024년 10월 21일 국립생태원과 합동 생태조사를 진행했고, 이후로도 하천 생태를 보전하기 위해 모니터링과 관련 시설을 설치해두는 등 주의를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문산천 하류 교량 건설은 올해 11월 말 경 끝날 예정이다. 

     

    김소연

    5월 20일 경기 파주 문산천 흰수마자 서식지 인근 모습. 교량 건설 현장과 채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흰수마자가 산다.


     
    모르는 채 사라질 뻔한 모래톱의 요정

     

    전체적인 문산천의 하천 생태계를 파악하기 위해 채집 작업이 시작됐다. 솔직히 문산천이 그리 깊지도 않고, 그물을 쳐 물고기를 잡으면 되니 쉽겠거니 얕보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하천에 발을 내딛는 순간 싹 사라졌다. 취재 전 한동안 이어진 봄비에 하천 색은 흙색이었고, 수량도 많았다. 기자는 겨우 무릎까지 닿는 물가를 허우적허우적 걸어다니느라 바쁜데, 성 소장은 벌써 기자보다 수십 미터 앞에서 부지런히 족대를 놀리고 있었다. 이 흙탕물 어디에 생물이 서식할지 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 할 수 있는 일은 허리에 손을 짚고 혀를 내두르는 것밖에는 없었다.


    이윽고 성 소장의 족대에 뱀장어, 가숭어, 민물두줄망둑 등 어류가 걸려들었다. 함께 있던 이 회장은 “이 세 종이 관찰된다는 건, 이곳 문산천의 생태계가 한강 하구와 잘 연결돼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 뱀장어는 상당히 많이 자란 개체예요. 아마 작년에 실뱀장어(뱀장어의 치어 단계) 상태로 한강 하류에 들어왔다가 이곳까지 올라온 걸 겁니다.”


    뱀장어는 원래 바다에 알을 낳는다. 바다에서 부화한 치어들은 강을 따라 올라와 성장 단계를 거치다가 다시 바다로 가 알을 낳고 죽는다. 그런데, 최근 하천에 댐이나 보 등 인공구조물이 많이 건설되다 보니 강을 따라 올라오지 못하고 하류에서만 맴돌다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뱀장어 개체가 많아졌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아직 문산천과 한강 하류는 뱀장어가 잘 오갈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건강하게 퍼덕이는 손가락만 한 어린 뱀장어가 그 증거였다.


    “여기 보세요! 흰수마자입니다.”


    성 연구원의 외침에 물 속을 살펴보니,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물고기 한 마리가 가만히 바닥에 붙어 있었다. 흰수마자의 이름은 흰 수염이 달린 마자(바닥에 붙어 사는 작은 물고기)라는 뜻이다. 이름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색 수염이 네 쌍, 탁한 물 속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2년 정도 됐을 겁니다.” 성 연구원이 조용히 설명했다. 수염이 없었다면 거기 있는 게 물고기라는 것도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모래톱과 구분이 가지 않는 비늘은 흰수마자가 사냥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양현 생물다양성연구소장이 2014년 한국어류학회지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북 구미 감천에서 포획된 흰수마자의 위장에서는 깔따구와 각다귀 유충, 실지렁이 등이 발견됐다. “흰수마자는 수서곤충의 개체수 조절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게 성 연구원의 설명이다.


    눈에 잘 띄지 않아서 더 애틋하다. 도시 곁을 흐르는 한강 하류는 지속적으로 개발이 이뤄지는 곳이다. 성 연구원이 발견하지 않았다면 한강의 흰수마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 회장은 “한강 유역의 흰수마자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에서 환경부의 허가를 받아 흰수마자 복원 사업을 진행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 약 30개체 정도를 확보해서 키우는 중입니다. 아직은 너무 작아요. 2년은 더 키워서 한강 유역의 흰수마자 개체수 복원이 필요할 때 다시 방류할 계획입니다. 방류를 통해 개체수를 보충하는 것만큼이나, 방류한 개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소연

    김소연

    문산천에서 만난 이완옥 한국 민물고기 보존협회장(왼쪽)과 성무성 물들이연구소 소장.

     

    동네 하천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당신에게

     

    하늘과 물은 (그나마) 사람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하늘을 보거나, 동네 하천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놀랄 정도로 많은 야생동물을 마주치게 된다. 하천 속 물고기가 괜히 예뻐 보이고, 이름이 궁금해진다면, 거기서 멈추지 않길. 당신과 시선이 비슷한 사람이 꽤나 많다. 성 연구원의 ‘민물고기 시민과학자 사관학교’에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문산천에서 재미있는 장면 하나를 목격했다. 성 소장이 자꾸 자연의 벗 관계자에게 “관찰 기록을 몇 개 올렸냐” “오늘 본 것도 꼭 기록해달라”며 재촉하는데, 숙제 검사를 하는 선생님 같았다. 무슨 일인지 슬쩍 묻자 자연의 벗 관계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유, 성 소장 말은 꼭 들어야죠”라며 웃었다.


    사실 이들은 사제 관계다. 이 회장은 한국 민물고기 연구의 대부로 불리는 이다. 그를 비롯한 원로 민물고기 연구자들이 성 소장에게 민물고기 연구를 가르쳤다. 성 소장은 그 다음 세대를 맡는다. 그는 민물고기에 관심을 가지는 후배 시민과학자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후배 중 하나가 취재에 함께한 자연의 벗 관계자였다.


    성 소장은 후배 시민과학자들에게 민물고기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올바르게 종을 동정한 다음, 온라인 자연관찰 커뮤니티인 ‘네이처링’에 발견한 장소와 종을 기록해 공유하는 방식을 교육하고 있다. 이렇게 성 소장의 교육을 받고 있는 이만 70여 명이 된다. “신규 서식지를 찾아낼 때 시민과학자들이 큰 역할을 합니다. 울산 형산강에서 주로 발견되는 민무늬둑중개가 인근 태화강에서도 서식한다는 사실을 시민과학자가 밝힌 적도 있어요.” 성 소장의 설명이다.


    봄과 가을은 민물고기 연구의 대목이다. 환경부가 주도하는 전국 자연환경 조사가 봄과 가을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정된 인력으로 전국의 생물을 조사하기 때문에 한강 유역의 흰수마자처럼 자칫 모르는 채 사라질 수 있는 생물을 세심히 살피기는 어렵다. 이럴 때 시민과학자의 눈이 도움이 된다.


    콘크리트 구조물 하나에 하천의 흐름이 바뀌고, 흰수마자의 삶이 흔들린다. 낮에는 고운 모래 속에 몸을 숨겼다가, 밤에 슬쩍 나와 작은 곤충을 먹는 조용한 삶이다. 아마 수백, 수천, 수만 년을 그렇게 살았을 거다. 한편, 보를 만들었다가 또 5년 만에 열었다가. 새로 다리를 놓고, 물길을 막는 사람의 삶도 흰수마자가 보기엔 이해하기 어렵겠다.


    “정치 논리에 따라 보 가동 여부가 결정되잖아요. 민물고기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조마조마 합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두면 될 텐데요.” 돌아오는 길, 성 소장이 한 말이다. 

     

    공존을 위한 Tip!

    1. 멸종위기종은 함부로 포획하면 안됩니다! 허가 없이 흰수마자를 포획한다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만약 우연히 흰수마자를 만난다면, 절대 잡지 말고 눈으로 관찰하기!
    2. 흰 수염 4쌍은 흰수마자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예요. 아래 사진은 실제로 흰수마자가 사는 서식지입니다. 얕은 모래 여울이 흰수마자의 집이자 은신처죠.
    3. 동네 하천에서 흰수마자를 만난 것 같다면? 사진을 찍어 온라인  자연관찰 커뮤니티 ‘네이처링’에 공유해보세요. 시민 과학자들의 관찰 기록은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는 기초 자료가 됩니다.

     

    성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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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7월 과학동아 정보

    • 경기 파주=김소연 기자
    • 디자인

      박주현,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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