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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마를 조선 팔도에 퍼뜨려라”

250년 전 고구마가 부산 영도에 도착한 사연




뜨거워 손가락 델라, 조심스레 검게 그을린 껍질을 벗긴다. 노란 속살이 드러나자 호호 불며 입에 넣는다. 달콤한 것이 입에서 살살 녹아내리며 목을 넘어가고, 또다시 한 입을 베어 문다. 엄동설한 먹는 군고구마처럼 맛난 게 어디 있을까. 맛도 맛이지만 영양가가 높아, 고구마는 우리 민족에게는 비상식량 역할을 해왔다.

고구마가 우리 민족의 배고픔을 달래준 것이 아주 오래 전은 아니다. 고구마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이 아니다. 딱 250년 전인 1763년 10월 부산 영도를 통해 들어왔고,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감자, 옥수수와 함께 대표적인 구황작물로 자리매김했다.







250년 전 영도로 배달된 ‘고구마’ 택배

영조 39년(1763년) 10월 초, 조엄 선생은 조선통신사를 이끌고 일본으로 떠났다. 당시 조선은 흉년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공리공론보다 실질적인 산업경제에 관심이 많던 조엄은 첫 기항지인 대마도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물건’을 목격한다. 바로 고구마다.

대마도는 산이 많고, 토양도 척박해 곡식 재배가 잘 안 되는 곳이라 식량 대부분을 우리나라와 일본 본토에서 들여왔던 곳. 일본은 이미 1600년대에 중국에서 고구마를 들여와 재배를 시작했고, 대마도에서도 식량 자급을 위해 정책적으로 고구마를 심었다.

조엄은 배에 고구마를 실어 보냈고, 10월 중순경 부산 영도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엄은 고구마 종자만 보낸 것이 아니라 보관과 재배할 수 있는 자료도 보냈다. 동래 부사와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그는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혼란 속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던 백성들을 위해 고구마를 도입하고 재배법을 연구한 것이다.

조엄 선생의 백성 사랑은 그가 저술한 통신사 사행록 ‘해사일기’와 범어사 입구의 ‘조엄감사 송덕비’에 잘 기술되어 있다. 조엄은 해사일기에서 “고귀마(古貴麻·고구마의 한문 표기)는 생으로 먹을 수도 있고, 구워서도 먹으며, 삶아서 먹을 수도 있다. 곡식과 섞어 죽을 쑤어도 되고, 떡을 만들거나 밥에 섞어도 된다. 고귀마를 넣어 되지 않는 음식이 없으니 이 고귀마가 조선팔도에 퍼진다면 굶주리는 백성이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고구마는 식량뿐만 아니라 가축사료, 전분처럼산업소재로 사용된다. 고구마 전분은 소주를 만드는 주정(酒精), 냉면과 당면의 재료, 바이오에탄올의 원료로 이용된다. 척박한 토양에서도 비교적 잘 자라며 농약과 비료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고구마는 태풍, 폭우 등 자연재해에 강한 식물이다. 토양을 덮고 자라기 때문에 장마에 의한 토양유실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농업기반이 약한 가난한 나라나 전쟁이 잦은 나라에서 쉽게 재배돼 왔다.

특히 고구마는 대충 심어도 잘 자란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베트남 전쟁에서 패한 이유가 베트남 사람의 성실성과 고구마 때문이라고 할 정도다. 오랜 기간 전쟁을 치루기 위해서는 식량이 필수인데, 고구마를 잘 몰랐던 미군으로서는 베트남군의 식량조달이 궁금했을 것이다. 야산 등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는 고구마는 땅굴이나 숲속에서 숨어 지내는 베트남군에게는 귀한 식량원이 되었다. 현재 베트남에는 약 12만ha에서 139만t (전 세계 생산의 약 1.33%)의 고구마가 생산된다.







고구마라는 명칭 역시 이때 같이 들여왔다. 한자로 ‘감저(甘藷)’라고 불리는 고구마는 당시 먹을 것이 부족했던 일본에서는 효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는 뜻에서 ‘효자마(孝子麻)’로 불렸다. 고구마의 어원은 효자마의 일본어 발음인 ‘고귀마’를 한자로 쓴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어원에서 보듯이 고구마는 정말 고마운 작물이다.

조엄이 통신사행을 마치고 1764년 6월 부산포로 귀환할 때 다시 가져온 고구마는 최종적으로 신임 동래부사 강필리에게 전달한다. 강필리는 조엄이 전해 준 보관법, 재배법, 증식법을 이용해 2차에 걸쳐 자신이 직접 재배한 뒤 이를 다시 보완, 전국에 널리 전파했다.

특히 고구마는 남부 도서지방이나 해안지방의 토양에 잘 맞고, 수확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야산에서도 쉽게 재배가 가능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구마는 장기보관이 가능하고 말리면 분말이나 과자로 만들어 주식 대용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다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 잘 맞아 인기 있는 구황작물로 손쉽게 자리잡았다.


3가지 고구마 로드

고구마는 8000년 전 베네주엘라 저지대에서 처음 재배됐고, 이후 점차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고구마가 세계로 확산된 경로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가설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고구마를 가져다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일대에 소개했다는 가설로 ‘바타타 루트(Batatas Rout)’라고 불린다. 다른 두 가지는 하와이 등 폴리네시아 지역을 거쳐 확산됐다는 것으로 ‘카모테(Kamote) 루트’, ‘쿠마라(Kumara) 루트’ 등이 있다. 바타타 루트설에 따르면 콜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하고 스페인으로 귀환할 때 옥수수, 담배 등과 함께 고구마를 서부 유럽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이 당시에는 남부 유럽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됐다. 이후 1565년 스페인이 필리핀을 식민지화하면서 선원들이 비상식량으로 가져왔던 고구마가 필리핀으로 전파됐다.







1594년 필리핀을 방문한 명나라 상인 진진용은 고구마를 보게 된다. 그는 고구마를 중국 남부지방 복주(福州)지방으로 들여왔다. 이후 중국은 세계 최대의 고구마 생산지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일본으로 전파된 것은 1601년으로 추정된다. 일본 류큐(현재 오키나와)에서 명나라로 사신으로 간 노쿠니 쇼칸이 고구마를 식량사정이 어려운 류큐 지방에서 재배하면 좋겠다고 판단하고 수입을 했다. 1612년 류큐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던 고구마는 규수 사츠마 지방으로 퍼져나갔다. 일본에서는 고구마를 지금도 ‘사츠마이모’로 부른다.

이후 규수 가고시마에서 널리 재배되어 나가사키로 전해지고 오사카, 도쿄 등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고구마가 대마도로 들어온 것은 1715년이며 콜럼버스가 유럽으로 가지고 온 지 271년 만에 1763년 조엄 선생에 의해 부산에 상륙하게 된다.

카모테 루트는 16세기 이후 스페인 사람에 의해 멕시코에서 하와이, 괌, 필리핀으로 전파됐다는 설명이다. 콜럼버스 이후 항해자들이 중남미 일대로 진출했고, 이들이 항해를 거듭하면서 태평양의 여러 섬들에 차례로 퍼졌고 결국 필리핀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가설은 유럽인들의 신대륙 발견 이전에 이미 고구마가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쿠마라 루트다. 남미 페루에서 이스터섬, 뉴질랜드, 화와이로 전파된 뒤, 폴리네시아, 뉴기니아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고구마를 전수받은 하와이 등 폴리네시아 지역 사람들이 항해를 하면서 고구마가 같이 퍼졌다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 국제농업협력연구센터 연구팀은 오래된 고구마 표본과 현재 고구마의 유전체를 분석해 근대 이전에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남미 사람들과 접촉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종합해보면 아마도 1000~1100년경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남미에서 고구마를 가져다가 태평양 일대에 퍼뜨렸고, 16세기 이후 스페인 사람들은 멕시코 서부에서, 포르투갈 사람들은 카리브해 동쪽에서 각각 고구마를 가져다 유럽에 공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세 가지 루트 모두가 맞다는 것이다.











고구마는 이제 아시아의 작물

고구마는 중국, 동남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지역에 많이 재배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 기구(FAO) 2011년 통계에 따르면 고구마는 전 세계 795만ha에서 1억 426만t이 생산된다.

아시아가 세계 재배면적의 53%(420만ha), 전체 생산량의 약 80%(약 8340만t)를 차지해 고구마는 아시아작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세계 생산량의 72.5%를 생산하고 있다.

중국은 잦은 전쟁과 흉년으로 손쉽게 재배할 수 있는 고구마가 구황작물로 인기리에 재배되었을 것이다.

한국은 지금은 약 26만t(0.24%)을 생산하고 있지만 식량이 부족한 1965년도에는 약300만t을 생산하여 국민들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고구마가 해법이 될 수 있다. 감자를 주로 재배하는 유럽과 북미는 고구마를 거의 재배하지 않는다.







다이어트에도 최고, 21C 슈퍼푸드 고구마

고구마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발도상국가의 가난한 사람이 먹는 구황작물 정도로 선진국 연구자들에게는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건강식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구마가 현재는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2007년 미국 공익과학단체(CSPI)는 고구마, 방울토마토, 저지방 우유, 브로콜리, 자연산 연어 등 건강에 좋은 10가지 슈퍼 푸드를 선정했다. 슈퍼 푸드란 보통 맛이 있어야 하고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하며, 오랜 기간 검증된 음식물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고구마를 첫 번째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고구마가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평가 받는 이유는 비타민C, 비타민E 뿐만 아니라 황색을 띠는 색소인 베타카로틴과 자색의 안토시아닌 등 항산화 물질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고구마는 GI지수가 55로 감자(90) 보다 낮다. GI(Glycemic index)지수는 음식을 섭취한 후 소화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혈당이 올라가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포도당을 100으로 했을 때 비교한 수치다. GI지수가 낮은 음식은 혈당이 천천히 올라가기 때문에 오히려 식용억제 및 포만감까지 주어 당뇨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다이어트에도 유리하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고구마에 관심을 둔 까닭

최근 홍수 가뭄 등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일어나면서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다. 게다가 곡물을 이용해 바이오에탄올 등 바이오 에너지를 개발하려는 열풍이 불면서, 기존에 사람 또는 가축이 먹었던 옥수수 등이 에너지로 쓰인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마는 믿을 만한 구원투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미국 농무성(USDA)이 감자, 고구마, 카사바, 옥수수, 사탕수수, 사탕무 등 대표적 전분작물의 단위면 적당 탄수화물 생산량을 조사했는데, 고구마가 가장 높았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최근 아프리카의 기근과 가난 해결을 위해 ‘유전체 기반 고구마의 육종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하여 고구마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아프리카용 신품종 개발과 합리적인 재배법 보급이 매우 시급하다.

고구마 연구자들은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고구마를 개발하고 있다. 재배되고 있는 고구마는 6배체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고 유전체 길이가 약 2.6GB로 사람과 비슷한 정도로 매우 커서 유전체 해독이 만만하지 않다. 2012년 9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5차 한중일 고구마 워크숍에서 한·중·일 고구마연구협의회를 결성해 유전체를 해독하기로 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1994년부터 고구마 유용유전자 발굴을 비롯해 각종 형질변환 고구마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베타카로틴을 생산하는 황색고구마에서 베타카로틴 축적에 관련된 ‘고구마 오렌지 유전자’를 분리한 뒤, 안토시아닌을 생산하는 고구마에 적용했다. 고구마 하나로 몸에 좋은 베타카로틴과 안토시아닌을 동시에 섭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중국과는 사막화지역에 적합한 고구마를 중국농업과학원 고구마연구소와 함께 개발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과 고구마 재배를 위한 협력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사막화의 원인 중 하나는 현지인들이 빈곤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서 과다하게 방목을 하는데다, 연료 확보를 위해서 인근 식물들을 사용한다. 사막화지역에서 잘 자라고 고부가가치 유용소재(의약품, 항산화물질 등)를 생산하는 고구마를 개발해 재배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풀 수 있다.



곽상수

곽상수 박사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식물시스템공학연구센터 센터장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를 맡고 있다.
그는 중국의 사막화와 빈곤국 식량문제를 고구마로 해결하기 위해 뛰고 있다.
이 글도 우리나라, 카자흐스탄, 중국을 오가며 썼다
sskwak@kribb.re.kr

 

201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에디터 김규태 | 글 곽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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