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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킁킁 과학] 싱그러운 풀 깎는 냄새

▲Shutterstock

 

편집자 주
우리를 둘러싼 공기와 빛, 소리만큼이나, 세상은 냄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름다운 향기부터 코를 찌르는 악취까지 ‘킁킁과학’은 냄새의 근원을 향한 오디세이입니다.

 

6월은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다. 이상한 말이지만, 군인들만큼 이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사람도 드물다. 초여름이면 풀들이 미친 듯이 자라나고, 불행한 군인들은 끝없는 제초 작업에 동원되기 때문이다.


내가 군 복무했던 부대는 부산에 있었다. 추위는 덜했지만, 더위는 더했다. 6월이면 병사들은 회색빛 군대 트레이닝복에 챙 넓은 모자를 쓴 차림으로 제초기를 든 채 흩어졌다. 코끝으로 땀을 뚝뚝 흘려가며 풀을 깎다 보면 전투화는 물론 팔뚝, 얼굴에까지 깎인 풀이 튀어 초록물이 들었다. 오래된 기억이 생생하게 남은 이유는 온몸에 묻혀온 풀 향 때문이다. 비가 갓 내린 여름 아침이 떠오르는 풋풋한 냄새.


깎아낸 풀의 단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은 통칭 ‘녹색 잎 휘발성 물질(GLV·Green Leaf Volatiles)’이라 불린다.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GLV에는 아세트알데히드, 아세톤, 메탄올 등 다양한 유기화합물 분자들이 섞여 있다. 이 중 ‘풀 냄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물질은 ‘시스-3-헥세날’이다. 시스-3-헥세날은 매우 뚜렷한 깎은 풀 냄새를 풍긴다. 그래서 ‘싱그러운 냄새’를 내세우는 향료, 방향제 등에 널리 쓰인다.


자연의 세계에서 시스-3-헥세날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풀잎이 손상됐을 때 세포 안에 갇혀있던 효소가 식물 세포막을 분해한 후 산소에 노출되면 시스-3-헥세날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방출된 GLV는 주변의 다른 식물에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시스-3-헥세날은 주변의 많은 포식성 곤충을 유인하는 작용을 한다. 만약 이파리를 꺾은 범인이 만찬을 시작한 초식성 곤충이라면, 이들을 내쫓기 위해 포식자를 끌어들이는 셈이다. 이제는 깎은 풀의 냄새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가 잔디밭에서, 향수에서 맡던 싱그러운 냄새는 풀들의 비명이었던 것이다. 

 

시스-3-헥세날(cis-3-Hexenal)
▲PubChem
1962년 발견된 불포화 지방족 알데히드다. 구조가 불안정해 열이나 산소에 노출되면 금방 트랜스-3-헥세날로 변하는데, 이는 풀 깎은 냄새가 금방 사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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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창욱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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