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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 “제3세계 여성, 에이즈를 넘어라”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



올해 7월 18~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더반에서 국제에이즈콘퍼런스가 열렸다. 콘퍼런스에 앞서 열린 언론브리핑에서 남아프리카 국립에이즈위원회는 “남아공에서만 매주 약 2000명의 젊은 여성들이 HIV에 감염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전체에서는 매년 38만 명에 달하는 16~24세 여성들이 HIV에 신규로 감염된다. 이는 같은 나이대의 남성보다 8배 더 높은 수치다. 남아공 에이즈연구프로그램센터(CAPRISA)의 살림 압둘 카림 국장(미국 콜럼비아대 마일만공중보건대 임상역학과 교수)이 “어린 여성들의 신규 HIV 감염을 줄이는 것이 남아공의 중대한 도전과제”라고 말한 이유다.


 

이 콘퍼런스에서 CAPRISA 연구팀은 여성 생식기에 사는 일부 박테리아가 HIV 감염을 크게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이 남아공 여성 119명의 질 내 미생물군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프레보텔라 비비아(Prevotella bivia)라는 미생물이 많으면 HIV에 감염될 위험이 13배 더 높았다. 연구팀은 프레보텔라 비비아가 리포다당류라고 부르는 염증유발 분자를 방출해 HIV 감염 기회를 높인다고 추정했다.

또, 질 속에 HIV 살균제를 바른 뒤 어떤 조건일 때 효과가 좋은지도 연구했다. 688명의 여성으로부터 채취한 생식기 박테리아 단백질 3334종을 분석한 결과, 건강한 유산균이 많은 여성에서만 효과가 있었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를 통해 질 내 유산균 수치가 낮아질 때 가드네렐라 바지날리스(Gardnerella vaginalis)라는 질염 유발 박테리아가 급증하면서 약제를 흡수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행히 두 박테리아는 질내 산도(pH)를 높이기 때문에 빠르고 간단하게 진단할 수 있다. 압둘 카림 국장은 “(콘돔 같은)기존의 HIV 감염 예방법과 함께 여성들의 세균성 질염을 치료하는 전략을 병행하면 HIV 전파를 막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에 만연한 기생충도 HIV 감염에 영향을 준다.  2014년 3월 노르웨이 연구팀은 아프리카 여성 상당수가 만성 생식기 주혈흡충병을 앓기 때문에 H IV 감염에 더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doi: 10.1177/0956462414523743). 주혈흡충(Schistosoma )은 전세계 약 2억5000만 명이 감염된 기생충으로, 주요 증상은 혈뇨다. 연구팀은 주혈흡충병에 걸리면 HIV가 백혈구를 공격하기 더 쉬워진다고 밝혔다. 짐바브웨, 탄자니아, 남아공, 모잠비크 등에서 수행된 여러 연구에서도 주혈흡충에 감염된 여성은 HIV에 감염될 위험이 더 높았다.

다행히 주혈흡충 치료제는 저렴한 편이며, 세계보건기구(WHO)가 아프리카에 약을 지원하고 있다. 국제연합(UN)은 HIV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해 학교와 지역사회를 통해 아프리카의 어린 소녀들에게 주혈흡충 치료제를 투여할 것을 권고했다.
 
[가드네렐라 바지날리스에 감염된 질 상피세포(왼쪽)와 주혈흡충(오른쪽) 사진. 세균성 만성 질염이나 기생충 감염 때문에 아프리카의 어린 여성들이 HIV에 감염될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화학요법도 있다. 노출 전 예방요법(Pre-Exposure Prophylaxis)으로, 줄여서 프렙(PrEP)이라고 부른다. HIV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에게 에이즈 치료제인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을 지속적으로 먹게 해 HIV 감염을 미리 막는 방법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2년 7월 16일 ‘트루바다’라는 약을 프렙 제제로 승인했다. 트루바다는 HIV 감염자가 복용하는 대표적인 치료제로, 면역세포수치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게 막는다. 원리는 이렇다. HIV가 인체의 면역세포에 침투하면 자신의 RNA 정보를 이용해 DNA를 합성한뒤, 사람의 DNA에 끼어 들어간다. 이렇게 RNA가 DNA로 변환하는 과정을 역전사라고 하는데, HIV가 갖고 있는 역전사 효소가 이 과정을 매개한다. 트루바다 같은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은 이 역전사 효소를 억제한다. HIV의 증식을 막아 에이즈로의 진행을 늦추고, 이미 에이즈가 발병한 환자는 상태를 호전시킨다.

이론상으로는 HIV 감염을 처음부터 막을 수도 있기 때문에 수년 전부터 과학자들이 에이즈 치료제의 에이즈 예방 효과를 연구했다. 그리고 2010년 미국 UC샌프란시스코 의대 로버트 그랜트 교수팀은 임상시험 아이프렉스(iPrEx) 프로젝트를 통해 에이즈 치료제의 예방 효과를 입증했다(doi: 10.1056/NEJMoa1011205). 연구팀은 페루, 에콰도르, 남아공, 브라질, 태국,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HIV에 감염되지 않은 2499명을 대상으로 하루 한번 테노포비르와 엠트리시타빈 복합제(트루바다의 성분과 동일) 한 알을 복용하게 했다. 이들의 상당수는 HIV감염 고위험군에 속했다. 시험군은 실제 약을, 대조군은 위약을 복용시킨 결과, 대조군에서 64명의 신규 감염자가 나올 동안 실험군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36명의 감염자가 나왔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프렙의 예방 효과가 44%라고 결론 내렸다.

알약 외에도 질이나 항문에 바르는 겔 형태의 예방약도 있다. 미국 콜럼비아대 마일만공중보건대 역학과 콰라이샤 압둘 카림 교수팀은 여성용 HIV 살균제를 개발해 2010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doi: 10.1126/science.1193748). 남아공 여성들을 대상으로 시험군 445명엔 실제 약을, 대조군 444명엔 위약을 사용하게 했더니 관찰 기간 동안 대조군에서는 신규 감염자가 60명 발생한 데 비해 실험군에서는 절반이 조금 넘는 38명이 발생했다(사회적 거부감 때문에 상용화는 못 했다).

프렙의 HIV 감염 예방 효과가 입증되면서 전세계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 호주, 캐나다, 케냐, 페루, 남아공 등이 트루바다를 프렙 제제로 허가했다. 올해 8월 유럽연합(EU)도 장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트루바다를 승인했다. 한국도 준비가 한창이다. 대한에이즈학회 프렙 지침 개발위원회는 WHO의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국내 프렙 가이드라인’을 준비해 11월 25일에 열리는 추계학술대회에서 토론할 예정이다. 물론 프렙의 HIV 감염 예방 효과가 100%가 아니기 때문에 콘돔 등 다른 예방법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HIV를 전파하는 또 하나의 위험은 바로 모계 전이다. HIV에 감염된 여성이 출산을 하거나 모유를 수유하는 과정에서 신생아에게 HIV가 전파된다. 이를 막기란 쉽지 않다. 출산 과정에서 HIV 감염을 막는 기술이 너무 복잡하고, 경제적 여건상 모유수유를 할 수밖에 없는 지역도 많아서 모유수유를 강제로 금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매년 15만 명에 달하는 어린이가 HIV에 신규 감염된다.

미국국립보건원(NIH) 과학자들은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HIV 모계 전이를 줄이는 다채로운 방안들을 실험해 각각의 효과를 학술지 ‘에이즈’ 8월 1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이 실험한 방안은 여성들을 어떻게 하면 병원에 더 자주 오게 하고 약을 먹을 수 있게 할지에 초점을 맞췄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출산 전 진료소를 찾는 여성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안은 초기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처방 받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지역 교회들과 연계해 임신부를 위한 ‘베이비 샤워’를 열어 HIV 검사를 해주고 선물을 줬더니, HIV 양성 반응을 보인 환자를 진료소로 오게 하는 것보다 효과가 두 배 더 높았다. 또, HIV 검사를 해주면서 모유수유와 가족계획, 가정의 기타 다른 문제들을 상담했더니, HIV 전파의 핵심이면서도 의료소 방문을 꺼렸던 남성들의 참여를 두 배 더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휴대 가능한 진단키트를 배포하자 어린이가 늦지 않게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됐다.

연구를 이끈 NIH 포카티국제센터장 로저 글라스 박사와 미국 글로벌에이즈코디네이터 데보라 벅스 대사는 논문을 통해 “HIV 신규 감염을 줄이는 도구를 우리는 이미 갖고 있다”며 “그간 제대로 된 진단이나 치료를 받지 못했던 아프리카 여성들이 이 도구를 보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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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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