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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락’ 장한나 작가 “플라스틱 시대를 작품으로 기록합니다”

 

“환경 문제를 주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환경 문제에 관한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5월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장한나 작가의 개인 작업실에 들어서자 벽면과 책상 위, 바닥을 빼곡히 장식하고 있는 돌이 한눈에 들어왔다. 언뜻 봐선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없는 평범한 돌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장 작가의 시선 아래에서 새롭게 예술품으로 재탄생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돌을 만나다


장한나 작가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새로운 바위’라는 뜻의 ‘뉴락(new rock)’이라는 일련의 작품을 발표하며 최근 주목받고 있다. 뉴락은 장 작가가 지은 조어로, 실제 돌이나 바위가 아니라 버려진 플라스틱에 자연물이 퇴적되거나 생명체가 붙으며 생겨난, 인공물과 자연물 중간에 있는 물질을 일컫는다. 장 작가는 “인공물인 플라스틱이 자연의 일부가 됐다. 자연물과 인공물이라는 두 극단 사이의 경계를 보여주는 존재가 뉴락이라고 생각했다”며 “어느새 자연의 일부로 녹아든 플라스틱을 통해 환경 문제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그는 “작가는 저마다 자신만의 관심사가 있는 존재”라며 “사람들이 구분하는 다양한 속성의 경계에 있는, 그동안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작업에 매력을 느껴 이 같은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우연한 계기로 뉴락과 만났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주제로 한 미술 작업을 위해 2016년 울산의 해안가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특이한 돌을 만났다. 마치 자연적인 풍화로 다듬어진 바위 같았는데, 속에는 플라스틱이 들어있었다. 장 작가는 이를 보고 그 동안 몰랐던 플라스틱의 한살이를 떠올렸다. “플라스틱은 어딘가에 버려져 드넓은 바다를 돌고 돈 끝에 울산 해안에 자리를 잡았을 거예요. 이후 그곳에서 썩지도 못한 채 머물렀고, 오랜 기간에 걸쳐 그 위에 퇴적물이 쌓이고 그 위에 다시 생명체들이 자리 잡으며 자연과의 경계가 불분명해졌을 겁니다.” 


장 작가는 “당시에도 플라스틱에 의한 환경오염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이후 해안가에 방문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뉴락을 찾아 수집하고 동료 작가들에게도 소개했는데, 이전에 제 전시를 기획했던 큐레이터가 뉴락 전시를 제안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작품활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작품 콘셉트는 수석으로 잡았다. 수석은 특이한 형태나 무늬를 가진 돌이다. 자연이 돌을 캔버스 삼아 수채화처럼 그려낸 경이로움이 일품이다. 뉴락 역시 플라스틱이 풍화돼 자연적인 모습을 지니고, 산화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수석과 통하는 면이 있다고 장 작가는 생각했다. 그렇게 몇 차례 전시를 기획했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작품을 알렸다.


장 작가는 여전히 뉴락을 수집하러 전국을 헤매고 있다. 특별히 뉴락이 더 잘 만들어지는 조건이나 지역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런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이미 전 세계 모든 바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의 작품활동을 응원하는 다른 동료 작가들에게서 뉴락이 발견된 지역을 제보받기도 한다. 한번은 동료 작가로부터 전남 신안군의 한 해안에 플라스틱 폐기물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달음에 찾아갔는데 도착해보니 이미 모두 수거돼 깨끗이 정리된 후였다. 아쉬운 마음에 해안가를 거닐었는데 뉴락 한 개가 눈에 띄었다. 그는 “너무 자연물처럼 생겨서 미처 치우지 못했던 것 같았다”라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뉴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는 버려져 있음에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런 폐플라스틱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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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락 속 인간과 자연의 의미


뉴락은 예술작품이기도 하지만, 환경 문제를 모두에게 보여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사용 후 버려진 폐플라스틱이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이들 모두가 깨끗이 재활용되거나 친환경적으로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관심 두지 않았던 폐플라스틱이 자연 어딘가에서 쌓여가고 있음을 뉴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플라스틱이 처음부터 환경의 골칫덩이는 아니었다. 올바르게 이용한다면 그 어떤 물질보다 유용하고, 친환경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장 작가는 “플라스틱은 코끼리 상아를 대체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며 “처음에는 자연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과도한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과 무분별한 처리다. 장 작가는 ‘인간 욕망의 산물’이라고 표현했다. 


최근에는 뉴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진짜 바위는 풍화돼 자갈이 되고, 모래로 바뀌면서 암석의 순환을 이룬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다르다. 대부분의 폐플라스틱은 오랜 시간 풍화되는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을 만들고 이는 해양동물에 축적될 수도 있다.


장 작가가 환경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한 것은 뉴락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는 방사능에 관심을 갖고, 전공 분야였던 조소가 아닌 식물 세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인터넷과 전문서적, 다른 작품 등을 참고해 방사능에 노출된 식물의 형태가 어떻게 바뀔지 조사한 뒤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해 방사능의 위험을 그려냈다. 이렇게 만든 작품이 원전 이야기를 담은 ‘이상한 식물학’이다. 


플라스틱 재활용도 작품활동의 대상이었다. 집 앞에 분리수거해 둔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어떻게 재활용되는지 1년간 추적해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마이크로플라스틱 카나페’라는 작품이다.


예술에 대한 장 작가의 신념은 명확하다. ‘예술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창’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종교가 세상의 중심이던 시기에는 종교를 주제로 한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작품이,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에는 우울하고 어두운 작품이 남겨졌다. 지금은 환경과 플라스틱의 시대다. 그의 작품들을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물론 미래에서 살아갈 후손들이 우리가 환경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는지,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지 알지도 모른다.


그는 5월 말부터 인천아트플랫폼에서 환경을 주제로 활동하는 작가들과 공동 전시를 시작했다. 장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해볼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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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철 기자 기자
  • 사진

    장한나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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