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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시사기획] 전쟁 중에도 이어지는 과학 연구, 전쟁과 과학자들

▲Shutterstock

 

전쟁의 시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지금도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전쟁의 한가운데에서도 군사적 충돌 지역을 떠나지 않은 과학기술 연구자들이 있다. 전쟁이 과학자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놨는지, 그리고 전쟁 중에도 연구가 이어지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우크라이나 과학자] 체르닌스키 씨의 어느 하루

 

2022년 2월 24일 오전 4시 50분(현지 시간). 러시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우크라이나 동부를 침공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오늘을 산다. 우크라이나의 생리학자, 안드리 체르닌스키와의 e메일 인터뷰로 그 하루를 들여다봤다.

 

▲연합뉴스

 

▲Wadco2(W)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산하 보고몰레츠 생리학 연구소. 안드리 체르닌스키 연구원의 직장이다.

 

▲TCH 유튜브 캡처
2025년 1월 1일, 러시아가 발사한 드론 추락으로 우크라이나의 과학자 부부가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뉴스 채널 TCH가 1월 5일 사건을 보도한 장면.

 

오전 5시 30분, 차를 끓이며 시작하는 과학자의 하루

 

안드리 체르닌스키 우크라이나 보고몰레츠 생리학 연구소 연구원의 하루는 차를 한 잔 끓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차가 끓는 것을 기다리며 노트북을 켜 메일과 메시지를 확인한다. 보고몰레츠 생리학 연구소는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산하 기관으로, 신경생리학 분야의 선도적인 기관이다. 연구소는 우크라이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키이우에 있다. 키이우 교외에 거주하고 있는 체르닌스키 연구원이 마르슈루트카란 이름의 미니버스를 이용해 연구소까지 출근하는 데는 보통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는 이 시간 동안 논문을 읽거나 강의를 준비한다. 그는 키이우 경제대에서 신경계에 대해 강의하는 교수이기도 하다.

 

1834년에 설립된 타라스 셰우첸코 국립 키이우대(이하 키이우대)는 우크라이나 최고 명문대다. 체르닌스키 씨는 그곳에서 학사 및 석사를 우등 졸업했다. 박사 졸업 이후에는 스위스 취리히대에서 실험실 동물의 뇌 활동과 행동을 연구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로 돌아온 그는 우크라이나 국립연구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수면 장애 치료를 위한 분자 표적을 연구하고 있다. 중추 신경계의 억제를 매개하는 GABAA 수용체와 ASIC 채널 간의 상호 작용이 그의 현재 관심사다. 수면 장애는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이 겪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매일같이 울리는 경보와 포격 소리로 우크라이나에서 수면 장애는 더 심각한 문제가 됐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공습 경보가 울리지 않는 낮이나 밤이, 언제 마지막으로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2024년, 키이우에서 발령된 공습 경보는 500회 이상이었다.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2022년 2월 24일부터 지금까지 키이우에서만 1443건의 경보가 울렸다. 공습 경보가 울리면 사람들은 일을 중단하고 대피소를 찾아야 한다. 

 

멈춰야 하는 것은 연구도 마찬가지다. 특히 경보가 7~9시간가량 오래 지속될 때는 대중교통 시스템이 마비된다. 키이우 도심에서 교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럴 때 재택근무가 좋은 선택지 같지만, 실험 장비를 사용하는 그에게 재택근무는 한계가 있다. 우크라이나 과학 연구 및 지속 가능성을 위해 조직된 ‘우크라이나 과학 재가동(UA.Science.Reload)’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해 약 30%의 과학 연구가 중단됐다.

 

연구소에 도착하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사무 업무를 한다. 실험이 한창일 때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동료들과 논의하고, 논문 출판을 준비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연초에는 여느 나라 연구자들처럼 한 해 동안 진행할 연구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기 바쁘다. 

 

우크라이나 과학 연구의 현실
▲자료: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Communications
가에탕 드 라센포스 스위스 로잔공대 교수팀은 2023년 12월, 전쟁이 우크라이나 연구에 미친 영향을 살폈다. 연구팀은 2022년 가을에 약 2500명의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에게 질문해 답변을 분석했다. 이중 81.5%의 과학자가 전쟁에도 우크라이나에 남았다.
하지만 이들은 연구 시간이 줄었고, 연구 기관 및 연구 자료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doi: 10.1057/s41599-023-02346-x

 

새해 첫날에 날아든 비보, 지도 교수의 장례식에 참석하다

 

2025년 1월 6일은 평소와 다른 날이었다. 체르닌스키 연구원은 오전 10시 30분, 지도 교수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키이우대 생물학 및 의학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이호르 지마 교수는 자신의 아내인 올레시아 소쿠르 생물학 박사와 1월 1일 사망했다. 러시아의 드론이 키이우 페체르스키 지역의 한 아파트를 강타해 맨 위 2개 층을 파괴했다. 사이좋은 부부이자 직장 동료였던 두 명의 과학자는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doi: 10.1126/science.zyyikmx

 

지마 교수는 우크라이나에서 잘 알려진 과학자였다. TV 다큐멘터리에 출연했고, 대중 강연도 많이 나갔다. 그리고 지마 교수는 체르닌스키 연구원이 키이우대 생물학부에서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밟을 당시의 지도 교수였다. 그는 지마 교수와 1997년 처음 만났다. 지마 교수가 그의 연구실을 꾸린 직후였다. 

 

1월 1일, 아침에 일어난 체르닌스키 연구원은 평소처럼 노트북을 켰다가 드론이 키이우의 한 건물을 파괴했다는 기사를 봤다. 건조했던 뉴스 자막은 몇 시간 뒤 익숙한 이름을 사망자로 소개했다. 약 1시간 정도 진행된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체르닌스키 연구원은 장례가 끝난 뒤 연구소로 늦은 출근을 했다. 동료들과 연구 현안에 대해 논의했고 각종 메시지에 답변했다. 늦은 오후에는 예정대로 시냅스 기능과 뇌의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춘 신경계의 생리학에 대한 강의를 했다.

 

전쟁이 동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2월부터 4월까지, 러시아는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 당시 과학자를 포함한 수많은 민간인이 대피 중에 사망했다. 2022년 4월에는 같은 연구소의 동료가 전사했다. 비잔 샤로포프 신경 및 근육 생리학과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군대에 복무하던 중 전투에서 사망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전쟁 이후 최소 150명의 과학자가 목숨을 잃었다.

 

전쟁은 그의 동료들이 우크라이나를 떠나게 했다. 전쟁 발발 직후 해외에 연구 자리를 제안받은 많은 과학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이주했다. 떠난 이들 중에는 지금도 우크라이나 연구 기관 소속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체르닌스키 연구원은 그들 모두가 우크라이나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쟁이 길어지며 연구자들은 잠깐의 해외 활동도 금지됐다. 비록 과학자와 교육자들은 강제 징집 대상이 아니지만, 징집 연령대의 남성 과학자들은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것이 금지됐다. 이들은 국제 학회나 인턴십, 그리고 단기 연구 방문 모두 불가능해졌다. 

 

▲Andrii Cherninskyi
안드리 체르닌스키 연구원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남아 자신의 연구와 강의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2019년 대구를 방문했던 그는 한국의 분단 역사를 알게 됐고, 당시 우크라이나를 떠올렸다.

 

6년 전 그는 대구에서 우크라이나를 떠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르닌스키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최고 기관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전쟁과 과학기술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립 연구재단은 전쟁 상황에서 실용적이지 않은 연구에도 보조금을 끊지 않았다.  

 

또한 국제 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과학자와 과학 연구를 지원코자 했다. 한 예로 국제학술지 ‘세포 신경과학 프런티어(Frontiers in Cellular Neuroscience)’의 ‘세포 신경 병리학’ 분야 편집장인 디르크 헤르만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교수는 우크라이나 신경과학학회 회장에게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의 연구에 관한 특별 호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체르닌스키 연구원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약 2년 동안 동료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신경과학 연구 역사와 19개의 주요 연구 논문을 정리했다.

 

특별 호는 2024년 1월에 발표됐다. doi: 10.3389/fncel.2023.1354398 세포 신경과학 프런티어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논문 처리 비용 전액을 부담했다. 논문 처리 비용은 오픈 액세스 학술지에서 출판, 편집, 심사, 배포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통 논문 저자가 부담한다.

 

체르닌스키 연구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가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국제뇌과학올림피아드(IBB)와 제21회 세계 뇌신경과학총회(IBRO 2019)가 대구 EXCO에서 개최됐다. 그때 한국뇌연구원에도 방문해 해외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투어에도 참여했다. 그는 한국이 전쟁으로 분단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크라이나를 떠올렸다. 당시에도 러시아는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쪼개기 위한 분리주의 운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는 한국의 과학 연구 기관과 연구자들이 우크라이나를 생각해 주길 바라고 있다. 전쟁의 아픔을 겪고도 그 속에서 성장해 온 한국의 경험이 우크라이나에 큰 응원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연대와 지지가 전쟁 속에서도 연구를 포기하지 않는 동료들에게 희망으로 전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계의 과학자] 전쟁 속 연대의 방법

 

 

과학사에서 전쟁은 과학이 ‘도구’로 어떻게 사용됐는지, 그리고 전쟁을 거치며 과학이 어떻게 비약적으로 발전했는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전쟁 중 국가와 국가, 사회와 사회, 사람과 사람을 잇는 새로운 연대의 방법을 찾고 있다. 주체적이며 지속 가능한 과학 연구 방안을 살펴봤다.

 

▲FDR Presidential Library & Museum
세계 인권 선언 초안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엘리노어 루즈벨트가 세계 인권 선언 포스터를 들고 있다.

 

▲ISC
국제과학위원회(ISC)와 전유럽아카데미(ALLEA)는 2022년, 2023년 ‘우크라이나 위기 회의’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사진은 500명이 넘는 과학자와 과학 정책자가 참여한 2차 회의.

 

“폐쇄된 것이나 다름없는 국경, 저임금 국가로 다른 나라와 경쟁해야 하는 사회적 부담, 그리고 전쟁과 같은 절대적인 불확실성은 2025년 우크라이나 과학 연구를 확실히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반 데미도프 우크라이나 르비우 폴리테크닉 국립대 부총장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했다. 독립 이후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의 과학 연구는 연구 지원 자금과 연구 인프라가 항상 부족했다. 소련이 군사, 우주와 같은 특정 분야의 과학 연구를 중앙집권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데미도프 부총장은 “기존 유럽연합(EU)의 연구 보조금은 경험이 많은 기관에 돌아가기에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의 연구는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기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Karazin Kharkiv National University
우크라이나 카라진 하르키우 국립대가 포격으로 파괴됐다. 러시아 국경에서 약 40km 떨어진 하르키우 지역에서는 지금도 군사적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위기의 과학자와 왜 연대해야 하는가

 

전쟁으로 과학계가 위기를 겪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은 양분됐고. 유럽 물리학계 역시 분단을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유대계 과학자들이 크나큰 피해를 보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미국으로 떠났고, 유럽 과학계는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처럼 전쟁은 몇몇 과학자의 삶을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학 연구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린다. 때문에 데미도프 부총장의 목소리에 한발 앞서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있다. 국제과학위원회(ISC)와 전유럽아카데미(ALLEA)는 2022년과 2023년에 우크라이나 전쟁 안에서 과학기술 연구가 계속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살펴보고자 ‘우크라이나 위기 회의’를 개최했다.

 

1차 회의는 2022년 6월, 전쟁이 시작된 후 5개월이 지난 시점에 열렸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회의에 유럽 전역에서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세계 인권 선언(UDHR) 제27조였다. 1948년 12월, 유엔(UN) 총회에서 채택된 UDHR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권 유린의 참상을 막고,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국제 인권 문서다.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즐기며, 과학 발전과 그 혜택을 누릴 권리가 있다.’ 회의 참석자들은 UDHR 27조가 과학적 탐구에 참여하고 지식을 추구하며, 이를 전달하고 또 자유롭게 이런 활동에 연대할 권리를 포함한다고 해석했다. 202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은 수상 강연에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으며,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다”고 말했다. 2022년의 과학자와 과학 정책가들 역시 한 작가가 찾던 질문에 같은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한 국가의 과학 시스템을 위협하는 전쟁이 그 나라만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도 나왔다. 오늘날 과학과 연구는 국제적인 활동이기에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위기는 전 세계 과학자 네트워크와 연구 인프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과학자이자 정책 자문가인 피터 글럭먼 ISC 회장은 “국경을 초월한 과학적 협력은 모든 국가에 전략적인 필요로 인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doi: 10.24948/2022.04 

 

▲CERN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 연구에는 전 세계 80여 개국의 1만 7000명(2023년 기준)이 참여하고 있다. CERN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며 러시아와 그 동맹국인 벨로루시와의 협력 계약을 종료했다.

 

위기의 과학자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가

 

1차 회의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총 3가지의 국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맺었다. 첫 번째는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과학자들이 계속해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원격 근무에 필요한 재정 지원이나, 가상으로 연구, 교육, 학습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두 번째는 전쟁으로 중단된 우크라이나 국립연구재단의 연구 보조금을 지원해, 자금이 없어 중단된 연구가 계속 진행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모색됐다. 위기 지역의 과학자를 지원하는 유럽 펠로우십 제도를 새로 설립하자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유럽 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유럽 대학 협회가 대학 간 파트너십 등을 통해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과학 연구 기관과 러시아 과학자 역시 보호하고 연구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를 운영하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며 2024년 11월, 러시아와의 협력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종료했다. 계약 만료로 러시아 연구기관과 관계된 약 400~500명의 과학자가 CERN을 떠났다.

 

2023년 3월, 두 번째 ‘우크라이나 위기 회의’가 개최됐다.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과학자들과 정책 연구자들은 좀 더 넓은 맥락에서 이야기를 논의하고자 했다. 왜 과학자들이 국경을 초월한 연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더 명확한 답을 찾고, 이를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전쟁을 넘어서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다양한 과학 연구 위기 사태에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ISC와 500명이 넘는 회의 참가자들은 “과학은 세계 공공선(global common good)을 위한 것이며, 이는 국경을 초월한 공동의 노력이기에 전 세계 과학 공동체는 위기 상황에서 동료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답을 내놨다. doi: 10.26356/UKRAINECONFERENCE2023

 

위기 사태에서 과학 연구 생태계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논의됐다. 과학과 연구는 학생부터 교수까지 모든 경력 과정에 있는 연구자가 연속적으로 수행하는 모든 활동이다. 연구자들의 연속성이 곧 과학 연구의 생태계며, 경력이 중간에 끊어지게 되면 되돌리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따라서 저명한 과학자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자들에게도 연구 기회를 열어두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회의에서 강조됐다. 경험이 많고 저명한 과학자와 연구 기관에게 유리한 기존의 연구 보조금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하고 현대적인 연구개발(R&D)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데미도프 부총장이 말한 바 있는, 미래 세대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오픈 사이언스’도 위기 상황에서 과학 연구 생태계 붕괴에 대응할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오픈 사이언스란 연구 과정과 결과를 모든 사람이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다. 연구 결과나 데이터, 논문을 누구나 무료로 접근할 수 있게 공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구에 사용되는 알고리즘이나 소프트웨어를 공개하는 것, 더 나아가 교육 자료나 강의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 등이 오픈 사이언스에 포함된다. 전쟁 등으로 연구 시설이 파괴되는 등 위기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오픈 사이언스 하에서는 과학자 개인이 최신 과학 연구에 접근할 수 있다.

 

▲UAUAS/KSE
독일 고등연구소가 우크라이나 과학자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가상의 연구지원기관, VUIAS가 2024년 10월 우크라이나 키이우 경제대와 함께 개최한 토론회의 모습. 참석자들은 전쟁 중의 학계에 대해 논의했다.

 

유학생들 지원한 한국, 한발 더 나아가려면

 

ISC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시작된 지 나흘이 지난 2022년 2월 28일, 전 세계 모든 회원 기관을 대상으로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갈등과 결과는 과학을 활용해 해결해야 하는 모든 문제를 방해할 것이며 국제 과제와 최첨단 연구에 협력하는 과학 기술 연구 능력은 혼란 속에서도 강력한 협력을 유지하는 능력과 같다”고 쓰여 있다. 현재 한국에는 대한민국학술원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사회과학협의회가 ISC에 가입한 회원 기관으로 있지만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과학 연구와 과학자를 돕기 위한 특별한 활동은 없었다.

 

다만 한국은 전쟁 등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재건 지원의 일환으로 2023년 하반기부터 정부 초청 우크라이나 장학생에게 등록금과 생활비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2023년 당시 한국의 우크라이나 유학생은 총 153명이었는데, 이 중 이미 장학금을 받거나 휴학 중인 학생 등을 제외한 총 101명이 지원을 받았다. 2024년에는 우크라이나 유학생이 더 늘어나 총 126명이 추가로 장학금을 지원 받았다.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은 “2025년에도 계속해 우크라이나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라 밝혔다.

 

2022년, 안드리 체르닌스키 우크라이나 보고몰레츠 생리학 연구소 연구원은 유럽의 몇몇 연구소로부터 자리 제안을 받았다. 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를 고사했지만 국제 사회가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 연대 움직임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독일 고등연구소는 과학 및 학문 지원 재단인 폴크스바겐 재단의 지원을 받아 2023년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며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 VUIAS(Virtual Ukrainian Institute of Advanced Studies)라는 가상의 연구지원기관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과학자들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고국을 떠나지 않고도 연구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스위스의 국립과학재단이 공동으로 우크라이나 국립연구재단을 통해 알츠하이머 발병 메커니즘 연구와 간질 치료 및 예방 등 생리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국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4년, ‘K-사이언스&테크놀로지 글로벌 포럼’을 개최했으며, EU의 최대 다자협력 연구개발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의 준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전쟁의 시대, 새롭게 발의된 과학의 국제 협력 방법과 그 필요도 함께 살펴보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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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과학동아 정보

  • 기획

    김태희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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