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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인간처럼” 활동하는 동식물을 상상했다면 두 가지 의미다. 동식물도 인간 같을 수 있다고 믿거나, 안 믿거나.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동식물이 인간과 다르다고 믿는 작가도, 동식물이 사람처럼 활동하고 표현하는 이야기를 쓴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의인법이라는 표현 기법을 효과적으로 구사한 고전이다.
캐럴의 토끼나 나쓰메의 고양이는 너무나 사람처럼 행위한다. ‘나는 남들과 달라’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동물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동식물은 인간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관점이 오히려 잘 드러난다. 이것은 의인법을 구사한 소설과 SF를 나누는 기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SF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고호관 작가의 SF 단편 소설 ‘숲의 전쟁’은 동식물도 인간 같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인 듯하다. 작가의 첫 SF 단편집인 신간 ‘숲의 전쟁’에는 표제작이자 2022년 제9회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인 이 작품을 포함해 11편의 작품이 담겼다. 그중 ‘숲의 전쟁’은 인간처럼 지성체로서 생각하고 움직이는 숲과 그곳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 숲에 들어온 인간들이 숲의 의도, 숲과 동물들 간의 의사 소통을 치밀하게 연구해야 할 정도로 그들만의 구조가 단단하다.
인간 같은 숲과 동물이 존재한다면, 그들도 인간들처럼 독립된 개체일 수밖에 없다. ‘숲의 전쟁’은 이방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 숲과 동물의 서사를 박진감 있게 묘사한다. 의지를 지닌 숲들이 전쟁을 벌이고 서로 동물을 동원해 전략을 구사하는 전장에서, 한낱 정물은 나무가 아닌 이방인 인간이다. 승리의 열망에 불타는 숲들에게, 외부 행성에서 온 인간 따위는 전세에 영향을 미치기에 너무나 미미하며 무력한 존재다.
숲들은 ‘인간적으로’ 동물들을 앞세워 전쟁을 벌이고, 전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숲의 전쟁’ 속 인간들도 전쟁 같은 시간을 겪는다. 그 연구는 이제 시작이다. 이렇게까지 인간 같은 동식물의 세계가 있다면 이들을 이해하고 대화하기까지 매우 긴 시간이 걸릴 듯하다. ‘숲의 전쟁’은 고대부터 존재한 ‘인간 같은 숲’이란 의식에 담긴, 인간의 가장 멀고 긴 가능성을 보여준다. SF만의 매력을 극대화한 이야기로만 짜인 단편집을 만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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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늙을까, 왜 병들까, 왜 죽을까’는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인체의 37조 개 세포에 담긴 생명의 지도로 대중들을 이끄는 네비게이션이다. 저자인 이 교수는 세포의 긴 여정 위에서 암이 생기고, 인간이 결국 생명을 다하는 과정과 원리를 연구해온 생명과학자다. 케임브리지 의과학 분자생물학연구소의 첫 한국인 연구자로, 암세포의 특징인 유전체 불안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유방암 억제인자 BRCA2의 분자 기능을 규명해 암 발병 원인 연구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다.
저자가 이 연구를 수행한 장소가 특히 의미 있는 이유는 이 연구소가 분자생물학의 출발점이어서다. 바로 이곳에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했다. 이렇게 크릭과 왓슨에서 저자로 이어지는 과학적 서사를 따라가는 것도 ‘왜 늙을까, 왜 병들까, 왜 죽을까’만의 즐거움이다. 저자가 케임브리지 의과학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본 DNA 모형이 크릭이 직접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남다른 감회를 느끼는 대목도 그중 하나다.
이 교수는 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의 암세포 생물학 연구실에서 정상 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원인과 과정을 집중적으로 연구한다. 그는 현대인의 가장 큰 관심사인 건강, 그중 핵심인 암과 노화의 관점에서 세포의 놀라운 세계를 안내할 적임자다. ‘왜 늙을까, 왜 병들까, 왜 죽을까’에선 염색체의 끝부분으로 세포의 수명을 결정하는 텔로미어와 이 텔로미어의 길이를 보호해서 노화를 막는 단백질 효소인 텔로머레이스에 주목한다. 텔로머레이스만 있으면 텔로미어를 지킬 수 있고, 그렇다면 세포 노화도 막고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텔로머레이스는 인체의 생식세포와 줄기세포에 있다. 줄기세포의 텔로미어를 지켜야, 텔로머레이스가 필요할 때마다 세포를 만들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반면 텔로머레이스가 과도하게 발현하면 암세포까지 만들 수도 있다. 이처럼 저자가 안내하는 생명의 지도는 암과 노화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로 이어진다.
경이롭거나 경악스러운 복잡계
이 책은 역사와 현실 세계를 종횡하는 무작위적 우연 현상과 그것이 가져오는 거대한 변화를 파고든다. 사회과학과 카오스 이론, 진화생물학, 철학, 지리학 등의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복잡계인 이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한다. 나아가 확실성의 추구라는 ‘안락한 거짓말’에 갇힌 우리의 매트릭스를 해체함으로써, 삶을 더 가치 있게 누리는 방법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진다.
우주의 문법, 양자색역학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가 아니었다. 양성자와 중성자마저 기본 입자가 아니었다. 양성자 안에는 전하를 띤 ‘무언가’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쿼크’다. 이 책은 인류가 이 세상의 모든 기본 입자를 표준 모형이라는 하나의 표에 담고 그들의 상호작용을 네 근본 힘으로 설명해서, 마침내 우주를 이룬 문자인 쿼크와 그 문법 ‘양자색역학’까지 이르는 현대 물리학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탄생하고 진화하는 기술의 생물학
혁신 기술이 어떻게 태어나고 진화하는지 그 원리에서부터 기술의 진화와 발전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까지, 더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기술에 대한 지식과 통찰력을 전하는 책이다. 저자는 기술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진화한다고 주장하면서, 창의적 천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혁신적 기술이 만들어질 사회적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상에서 벗어난 진정한 일상
시력을 잃어가는 작가 앤드루 릴런드의 회고록이자 ‘시각장애’라는 주제로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장대한 탐구다. 저자는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존재 방식을 배워가며 사랑, 예술, 기술, 정치의 의미를 새로운 방식으로 돌아본다. 아들의 졸업식과 아내의 미소를 볼 수 없으리란 슬픔에 사로잡혔던 저자는, 미지의 세계이지만 언젠가 자신이 살게 될 ‘눈먼 자들의 나라’로 과감히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