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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부딪친 초전도 연구에 돌파구 제시한 고려대 최동식 교수

초전도 연구 돌파를 제시한 고려대 최동식 교수


"초전도 현상을 해석하는 기존BCS 이론이 잘못됐다는 것부터 지적하고 싶습니다"

1980년대 말 세계 과학계는 초전도 열풍으로 몸살을 앓았다. 컴퓨터 혁명에 이어 20세기 대미를 장식하는 과학혁명으로 '초전도'를 추천하는데 과학자들 대부분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초전도체 개발은 인류의 당면 과제인 에너지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초전도란 저항이 없이 전류가 흐르는 현상이다. 대부분의 물질은 온도를 절대온도 0도(-2백73℃)에 가깝게 내리면 초전도 현상이 일어난다. 문제는 아주 낮은 온도가 아니라 어느 정도 고온에서도 초전도현상을 일으키는 물질을 개발하는 일.

1911년 네덜란드의 온네스가 수은에서 초전도현상(절대온도 4도)을 발견 했지만 그로부터 75년 동안 임계온도(초전도를 일으키는 온도)의 상승은 19K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에서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것이 1986년 IBM 취리히 연구소의 베드노르츠와 뮐러. 30K 근처에서 초전도현상을 일으키는 란탄-바륨-구리 산화물을 만들어냈다. 이후부터 3-4년 간은 열풍이란 말이 적절할 정도로 급속도로 임계온도가 높아져 갔다. 86년 말에는 40K, 87년 초에는 미국 휴스턴 대학의 추박사에 의해 90K의 이티륨 계열 산화물이 발견됐다고 보도됐다.

BCS이론의 한계

88년 1월에는 일본에서 1백K를 상회하는 초전도체가 발표됐으며 거의 같은 시기에 열린 세계 초전도 학술대회에서는 1백25K에서 초전도현상을 나타내는 티타늄계 산화물이 등장했다.

국내의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도 1백K 내외에서 전기저항이 없어지는 초천도체를 발견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이러한 열풍은 갑자기 식기 시작했다. 왜일까.

고려대학교 화학과 최동식 교수는 초전도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벽에 부딪쳐 있는 초전도 연구에 새바람을 일으킬 차세대 초전도체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최동식 교수를 만나보았다.

-9월말에 새로운 초전도 연구에 대한 저술을 탈고하신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기존의 초전도 연구와 최교수께서 연구를 새로운 초전도 연구는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차이점보다는 기존의 초전도 연구가 벽에 부딪친 이유부터 설명을 하지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초전도현상을 설명해주는 기본 이론은 BCS이론입니다. 그중에서도 전자가 쌍을 이루어야 초전도현상을 일으킨다는 쿠퍼의 페어이론이 초전도연구자들을 지배해 왔는데 이것이 잘못됐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싶습니다."

-쿠퍼는 이 이론으로 72년에 노벨상까지 타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전자가 쌍을 이루면 자화율이 0이 되어야 하는데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상황에서는 자화율이 0이 안됩니다. 또 전자는 실제 공간에서 쌍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다. 운동량 공간에서만 운동량값과 에너지값이 같을 뿐이지요."

BCS이론이 등장한 50년대 이미 이 이론보다 초전도현상을 보다 폭넓게 설명하는 이론이 옛소련과 동구에서 등장했는데, BCS가 1972년 노벨상을 수상 하면서 다른 이론들은 맥을 못추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당시 냉전의 분위기가 학문의 방향을 왜곡시켰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최교수의 설명이다.

-최교수의 새로운 초전도 이론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초전도현상이 일어나려면 엔트로피가 낮아야 합니다. 그런데 전자는 온도를 낮추어도 엔트로피가 잘 줄지 않습니다. 방법은 위치와 운동량, 운동양식을 획일적으로 제한해야 하는데 제일 이상적인 것은 군대 분열하는 것처럼 획일적인 운동을 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좁은 공간에 가두어놓고 제자리 진동만 시켜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런 개념이 바로 '집단진동'(collective oscillation)입니다. 저는 처음에 집단진동이란 개념을 제가 처음에 정립한 줄 알았는데 요즘 책을 다시 찾아보니 폴란드의 갈라스비치가 이미 사용했더군요."

최교수는 1970년에 현재 자신과 비슷한 결론을 유도하고 있었던 폴란드의 갈라스비치와 그의 스승이었던 옛소련의 보골리우프를 찾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교수의 이론은 재발견에 불과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집단진동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이 더욱 중요하지요. 집단진동을 하고 있던 전자는 외부에서 전자가 유입되면 한칸씩 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 때는 입자로서가 아니고 파동으로서 터널링한다는 것입니다. 즉 전자는 온도가 낮을 때, 위치가 제한됐을 때, 질량이 아주 적을 때 파동의 성격을 갖는 것이지요. BCS이론은 전자의 움직임을 입자로 보았지만 저는 파동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큰 차이입니다. 일종의 양자역학적 관점이라고 할까요."

여기에 덧붙여 최교수의 이론은 초전도에서 전자의 흐름을 기체적 흐름이 아니라 액체적 흐름으로 파악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기체보다는 액체가 점성이 크기 때문에 초전도가 일어날 때는 기체적 관점을 갖기 쉬운데 오히려 동일한 조건(같은 압력, 같은 온도, 같은 밀도)에서는 액체가 점성이 작다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전자의 흐름을 액체적인 파동현상으로 파악할 때 저항이 0이 된다는 설명.

최교수는 양자통계역학이나 액체론 전공자들이 초전도연구에 참여한다면 누구라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라고 부언 설명했다. 실제로 1989년 로스알라모스에서 개최된 심포지움에서 이론물리학의 대가들이 모여서 초전도체 속 전자들을 액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조순탁 박사 등은 액체론을 지지하고 있다.

-결국 이론적인 오류의 결과로 오늘 날 초전도체 연구가 벽에 부딪쳤다는 말씀인데요.

"맞습니다. 그런데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BCS이론은 고온에서의 초전도현상을 설명하고 있지 못 하다는 것을 초전도연구자들은 잘 알고있습니다. 따라서 BCS와는 상관없이 고온초전도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고온초전도체 개발이 쏟아지니까 미국과 일본에서 하나의 준거틀을 마련해 이를 만족하는 것만을 선별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제 글에서 설명한 준거장벽입니다. 예를 들어 준거틀에는 마이스너효과(초전도체에 자계를 가했을 때 반자성을 나타내는 현상)가 반드시 나타나야 초전도체라는 항목이 들어가 있는데 저는 그것이 초전도체 연구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한 것만 취하면 된다

기자와 세번째 만났을 때 비로소 그는 쉬운 예를 들어 자신의 이론을 설명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가장 이상적인 초전도체라면 임계 온도도 높고 임계전류도 많이 흐를 수 있고 임계자장도 커야 되겠지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결국 필요에 따라 높일 수 있는 부분만 높여 사용하면 된다는 뜻이지요. 전류를 송전하는 전선에 초전도체를 사용하려면 임계전류가 높고 임계온도가 높으면 되지 임계자장까지 높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슈퍼컴퓨터에 초전도체를 사용한다고 했을 때는 아주 미약한 전류만 흐르면 되므로 임계전류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지요."

결국 용도에 맞는 초전도체를 개발한다면 초전도체 개발은 급신장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현재 최교수는 자신의 이론에 부합되는 초전도체 십여개를 찾아 특허를 준비 중이다. 이중에는 다른 사람이 발견했지만 이른바 준거틀에 맞지 않아 버려진 것들이 상당수된다.

"새로운 초전도이론에 비추어보면 기존에 무시됐던 많은 초전도체가 새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초전도체 개발이 연금술사가 우연히 값진 보석을 만드는 것과 유사했다면 앞으로는 어떤 물질을 어떻게 처리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가 실험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증명될 수 있을 겁니다. 재현성이 없다고 무시당한 이유도 설명 해줄 수 있구요. 즉 필요에 따라 진단과 처방이 확실해진 셈이지요."

-국내의 다른 학자들과 최교수의 이론을 토론해보신 적은 없습니까.

"초전도와 관련된 모든 학자들과 이야기를 해보았지요. 그런 가운데 아직 우리는 학문간의 장벽이 심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익숙한 방법이 아니면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적극적으로 도와 주시는 분도 많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초전도체이론이 빛을 보려면 물리 화학 금속 전자 재료 화공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모여 조직적인 연구를 해야 하는데 각 분야에서 저의 의견에 동조를 해오신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새 개념초전도연구회를 조직 중인데 여기에는 학계에서 20명, 연구소 5명, 산업체 5명 등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적극적으로 연구를 같이 하고 있는 분들을 소개해주시지요.

"박성호 고대전자과 교수, 이홍희 서울대 화공과 교수, 권동용 변리사(화학박사), KIST의 고체화학연구실의 변종홍 박사와 유체전세라믹스연구실의 김윤호 박사, 표준연구원 초전도실의 허남회 박사, 동양화학연구소의 홍양기 부소장 등이 있고 이외에도 많은 교수 연구원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기존 이론에 물들지 않은 소장 물리학자들, 한림대의 원혜영, 서울대의 노태원, 충남대의 임국형, 서강대학의 유재준 교수 등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큽니다."

-이번 초전도체 연구가 결실을 맺게 되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하셨는데···



"과학기술 발전뿐 이겠습니까.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할 것입니다. 초전도체의 응용은 에너지 분야를 비롯 통신 컴퓨터 의료 교통 등 안쓰이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연구에서 우리가 앞장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요.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이론으로 노벨상 같은 것은 생각해보시지 않았습니까.

"글쎄요. 이미 네번씩이나 초전도체분야에서 노벨상이 나왔는데 그게 모두 물리쪽이거든요. 한번쯤은 화학쪽에서 나올 수도 있겠지요."

-세계적인 학회지나 권위지에 이 이론을 발표하실 생각은 없습니까.

"과학동아에 나온 다음에 그렇게 해야겠지요. 저는 동양과학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많이 하고 다닙니다. 그런 사람이 처음부터 외국의 권위지부터 찾을 수 있겠습니까."

처음 최교수가 초전도 연구를 시작한 것은 학생들에게 물리화학특론을 강의 하면서부터. 동양과학의 특성을 강조 하면서 자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전자 속에 들어가보자는 말이 씨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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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이종승 기자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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