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주요기사] 실전! 과학정책 이공계 연구소 보드게임 그 승자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연구실을 운영해 반물질 연구를 가장 먼저 완성하세요.” 2024년 1월호부터 6월호까지 ‘과학을 돕는 과학, 과학정책’을 연재하며 과학기술 연구 정책에 대해 살펴본 과학동아 기자들이 연재의 대미를 장식할 명승부를 벌였습니다. ‘이공계 연구소 보드게임’의 플레이어로 맞붙은 겁니다. 

과연 승자는 누구였을까요?

 

 

저(김태희)와 김소연, 이창욱 기자가 ‘이공계 연구소 보드게임’으로 맞붙었습니다. 연구교수나 박사후연구원과 같은 연구자를 고용하고, 실험장비를 구매해 실험을 성공시키고, 마지막으로는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까지. 연구실 운영 과정이 그대로 녹아있는 보드게임입니다. 먼저 각각 연구실을 하나씩 뽑았습니다. 제가 뽑은 연구실의 초기 자본은 150디랙(게임 속 돈의 단위). 맞은편 김소연 기자 연구실 초기 자본의 절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연구비는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연구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라 한숨이 나왔습니다.

 

게임은 플레이어가 돌아가면서 총 4개의 연구 활동을 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가 연구 활동을 마치면 1년이 지난 것으로, 연구비 정산, 논문 투고 결과 확인, 인력 추가 등이 이어집니다. 규칙에 따라 주머니에서 다섯 개의 인력 토큰을 꺼냈습니다. 고용 순서에 따라 이창욱 기자가 양자물리학 연구실에 연구교수를, 김소연 기자는 프로그래밍 연구실에 연구교수를 고용했습니다. 두 기자가 앞다퉈 연구교수를 채용한 까닭은, 교수가 있는 연구실만 나중에 대학원생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DF에서 고화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CERN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실험 설비.  CERN은 2002년 최초로 반수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반양성자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라!

 

연구 활동엔 8개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실험 장비 구매, 아이디어 카드 뽑기, 아이디어 카드를 내려놓기, 인력 추가 고용, 이벤트 카드 뽑기, 실험 실시, 논문 투고, 고장난 장비 수리입니다.

 

연구 활동은 순서가 중요합니다. 첫 번째 플레이어만 반양성자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각 연구실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입자가속기에서 반양성자를 충돌시킬 수 있는 선(先)마커를 돌아가며 쓰기 때문입니다. 다음 플레이어는 1년이 지나야 반양성자 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첫 해에 반양성자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저는 반양성자(P-) 실험 장비를 5디랙을 주고 구매했습니다. 곧바로 과감하게 실험을 시작했죠. 반양성자 실험과 양전자(e+) 실험은 ‘룰렛 돌리기’입니다. 힘차게 돌린 룰렛의 바늘이 가리킨 건 ‘실수’.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실수 카드를 뒤집어봤습니다. 

 

‘실험이 대실패했다.’ 적힌 메시지에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다시 룰렛을 돌렸습니다. 다행히 이번엔 바늘이 ‘최적화’에 멈췄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디어 카드를 한 장 뽑았습니다. 

 

김소연 기자와 이창욱 기자는 모두 연구 장비부터 채우는 전략을 짰습니다. 각각의 연구실에 모든 장비를 채워 넣기 위해서는 총 5번의 연구 활동이 필요합니다. 2년에 걸쳐 잘 분배해야 하죠. 둘 다 반양성자 실험을 한 번씩 했습니다. 김소연 기자는 저처럼 ‘실수’가 나왔지만, 이창욱 기자는 처음부터 실험 ‘최적화’에 성공합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인력난과 연구비 기근, 악순환의 굴레  

 

몇 년이 지났을까요? 이창욱 기자의 거만한 어깨가 하늘을 찌를 것 같습니다. 저와 김소연 기자는 논문이 한 편도 없는 반면, 이창욱 기자는 양전자와 반양성자 연구를 출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논문 3편을 학술지에 먼저 게재하면 승리입니다.

 

연구실의 인력 문제는 현실이나 보드게임이나 잔인합니다.  제 연구실에 필요한 인력은 실험숙련도가 높은 인력(노란 토큰)인데, 인력 시장에 나와있는 건 팀워크를 높이는 인력(초록 토큰),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인력(분홍 토큰)뿐입니다.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노란 토큰을, 앞서 먼저 데려가 버린 탓입니다.

 

더 큰 문제는 연구실에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디어 카드의 연구 제안 조건을 만족하지 못해 연구비를 따올 수 없습니다. 총 자산이 45디랙까지 떨어지고 나니 어쩔 수 없이 몇 명의 스태프와 박사후연구원을 해고해야 했습니다. 사람이 없어 연구를 할 수 없고, 연구비가 없다 보니 사람을 해고해야 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 겁니다. 김소연 기자 연구실은 돈도 많고 사람도 많지만 매년 학술지 게재 심사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심사 결과는 흰색 주사위를 굴려 1, 2, 3이 나오면 ‘거절’이고 4, 5, 6이 나오면 ‘승인’입니다. 

 

아쉽게도 반전은 없었습니다. 이창욱 기자의 마지막 논문 심사를 앞두고, 두 손 모아 ‘거절’을 바랐으나 멈춘 주사위 숫자는 ‘5’. 이창욱 기자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피어올랐습니다. 그동안 ‘과학을 돕는 과학, 과학정책’ 기사를 연재하면서 과학기술 연구를 둘러싼 주요 제도와 정책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게임을 해보니 더욱 확실히 알겠습니다. 연구비 그리고 연구원.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걸요.  


 

보드게임 제작자 인터뷰

 

‘이공계 연구소 보드게임’은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와 출판사 동아시아가 2022년 공동 제작했습니다. 5월 3일 김찬현 ESC 대표와 남현경 ESC 법무이사를 만나 얘기를 들었습니다.

 

 

Q. ESC는 어떤 곳인가요?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과학을 추구하는 과학기술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합리적인 과학기술과 자유로운 문화를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에 다리를 놓아 과학기술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추구하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시민의 공공재가 되도록 하는 활동도 하고 있고요. 보드게임을 만든 것도 교육 및 문화 활동의 일환이었어요.

 

 

Q. 어떻게 보드게임의 배경이 CERN이 됐나요?

 

 보드게임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했어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도쿄대에서 석사 연구를 하며, 일본과 스위스를 오가면서 반수소를 합성하는 연구를 했죠.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학생 연구원들 인건비가 따로 지급되지 않아요. 한국은 학생 연구원이 학생이자 노동자인 이중적이고 중간자적 지위를 갖고 있지만, 일본은 학생으로만 보거든요. 때문에 장학금을 받아 공부와 연구를 하는 형태죠. 그래서 보드게임에서도 대학원생은 인건비가 0원입니다.

 

 

Q. 그러다보니 게임을 할 때 대학원생을 고용하고 싶게 되더라고요.

 

 인건비가 없으니 대학원생을 선호할 수밖에 없죠. 

어느 연구실에서도 고용할 수 있고요. 여기엔 대학원생들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의미도 같이 담았어요. 어떤 길을 가다가도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거든요. 

 

 

Q. 연구실 구성원 중 스태프가 따로 있는 것도 재밌었어요.

 

 테크니션 등을 스태프로 설정했어요. 테크니션은 연구 장비를 구축하고 조정, 관리하는 전문가예요. 한국에서는 대부분 학생연구원, 즉 대학원생들이 장비 구축이나 관리를 해야 해요. 미국이나 일본에는 테크니션이 연구실에 따로 있어요. 때문에 석사나 박사를 졸업하고도 테크니션이라는 직업을 택할 수 있죠.

 

 

Q. 1년마다 지불해야 하는 인건비가 정말 신경 쓰이긴 했어요.

 

 그러셨다면 제대로 게임을 하신 게 맞아요. 게임의 핵심은 연구실 경영 시뮬레이션이니까요. 연구실에서 고용했던 박사후연구원이나 스태프를 해고하고 그 자리를 대학원생으로 채워보면서 지금의 상황에서 연구실이 어떻게 운영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알게 되면 다음으로 개선 방안을 같이
고민해볼 수 있으니까요.

 

 

Q.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실험이 3가지 결과 (최적화, 실수, 고장)로 이어진다는 거였어요.

 

 실험 룰렛을 만들 때 결과 단어 선택에 많은 고민을 했어요. 특히 연구 현장에서는 정말 많은 실수가 있어요. 그런데 실수한 결과가 나왔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달라져요. 예를 들어 숫자 입력을 잘 못해서 계획과 다른 결괏값이 나왔는데, 데이터 해석을 잘 해서 통찰력 있는 실험이 될 수 있거든요. 때문에 실수의 결과 범위를 넓게 만들었죠. 실수 카드를 뒤집으면 실패도 있지만 성공도 있는 이유입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24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태희
  • 디자인

    이한철

🎓️ 진로 추천

  • 에너지공학
  • 물리학
  • 환경학·환경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