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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Part1. 기후 위기 속 살길 도심 속 물길을 따라 걷다

▲GIB
 

2022년 8월, 한국 중부지방에 극한호우가 내렸다. 이에 따라 수도권과 강원도 일대에서 총 4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23년 7월엔 극한호우로 충북 청주 궁평2지하차도가 침수되며 14명이 사망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지구가 따뜻해지는 결과만 낳은 게 아니었다. 갈수록 더 강한 극한호우가 찾아오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는 땅속엔 빗물이 지날 터널을 뚫고, 땅 위엔 댐을 더 짓겠다고 나섰다. 이런 인프라가 극한호우에서 한반도를 구할 수 있을까? 과학동아가 팩트체크에 나섰다.

길이 1.1km, 내경 4.3m나 되는 거대한 하수 터널 여월빗물배수터널과, 분당 255t(톤)의 물을 끌어 올리는 오정빗물펌프장은 경기도 부천시에 지어진 한국 최초의 빗물저류배수시설이다. 기후 위기가 야기한 극한호우의 시대, 도시 아래 깊숙이 설계된 빗물저류배수시설은 호우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는 주요 인프라로 주목받고 있다. 77개의 계단을 내려가 그 내부를 들여다봤다.

 

빗물 1만 5000t 저장하는 지하 저장소

 

“여긴 엘리베이터가 없어요, 걸어서 내려가셔야 합니다.”

 

2024년 3월 28일, 오정빗물펌프장 지상층. 신동원 부천환경사업소 시설관리팀 과장은 무릎 바로 아래까지 오는 긴 장화를 내어주며 말했다. 펌프장의 지상층은 2층으로 펌프장 내부 모니터링 시스템과 펌프에 신호를 보내는 기동반, 변압기 등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안전모까지 착용한 뒤 지하 16m에서 연결되는 여월빗물배수터널(이하 하수 터널)까지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사각 돌림 계단을 따라 총 77개의 계단을 밟고 지하 3층에 위치한 저류조에 도달했다. 저류조는 오정빗물펌프장의 가장 깊숙한 곳이자 하수 터널 하류와 연결된 장소다. 저류조는 하수 터널을 통해 흘러 모인 빗물을 모아두는 공간이다. 최대 1만 5000t(톤)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다. 

저류조는 천장이 높고 펌프와 펌프를 가로 막고 있는 벽면 기둥이 커서 마치 지하 아케이드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저류조 천장에는 3개의 조명이 설치돼 있긴 했지만 밝은 편은 아니었다. 해가 한 점 들지 않는 실내에 조명을 모두 꺼둔 상태와 유사했다. 물을 저장하는 공간이다보니 많이 습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만큼 습하지는 않았다. 가을 장마가 끝나는 매년 10월 말부터 하수 터널과 펌프장은 정비 기간에 들어가, 건조된 지 5개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정비 기간의 끝자락에 있어서였을까, 저류조는 지하 공간 특유의 냄새 말고는 다른 악취도 나지 않았다. 기대보다 넓고 큰 공간에 감탄하며 저류조의 층고가 어느 정도 되는지 묻자 신 과장은 “7m가 넘는다”고 답했다. 이곳 빗물펌프장이 지하 약 16m 깊이의 시설인 점을 감안했을 때, 저류조가 시설의 약 5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오정빗물펌프장은 여월빗물배수터널을 통해 들어온 빗물을 끌어 올려 인근 하천인 베르네천으로 내보낸다. 도심에서 빗물은 평소 하수관으로 모이고 또 처리되는데, 짧은 시간 하수관이 처리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비가 오면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차오르게 된다. 이런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지하에 빗물을 저장하는 공간인 ‘우수저류시설’을 만들거나, 기존 하수관과 별도로 빗물이 빠져나가는 공간인 ‘하수 터널’을 만든다. 여월빗물배수터널은 부천시 여월동, 원종동, 성곡동의 상습적인 침수 피해를 막고자 2016년 한국 최초로 완공된 빗물배수터널이다.

 

베리내사거리부터 펌프장까지 이어진 하수 터널의 총길이는 1066m. 하수 터널의 시작엔 빗물이 들어오는 통로인 ‘유입정’이 있다. 베리내사거리 인근에는 두 개의 유입정이 설치돼 있었다. 유입정을 통해 빗물이 하수 터널로 들어오는 건 1년에 두세번이다. 비가 많이 온다고 무조건 하수 터널을 가동하는 것은 아니다. 여월빗물배수터널 위에는 하천 위에 도로를 건설한 복개천이 있다. 부천시는 집중호우에 대비하고자 이 복개천을 박스형 빗물 터널로 만들어 뒀다. 여월빗물배수터널은 하수관과 이 복개천 터널에 빗물이 모두 들어 찼을 때만 수문이 자동으로 개방된다. 복개천 터널엔 빗물이 들어찼지만 하수관에 공간 여유가 있는 경우나, 하수관엔 비가 가득 찼지만 복개천 터널은 그렇지 않은 경우엔 수문이 열리지 않는다. 일상적인 하수 시스템으로도 빗물을 처리할 수 있는 경우다. 

 
부천 오정빗물펌프장의 기둥에는 높이를 나타내는 파란 안내판이 붙어있다. 신동원 부천환경사업소 시설관리팀 과장은 가장 높이 붙어있는 안내판을 가리키며 “2022년 8월 집중호우 당시 저류량을 표시한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2022년 8월 집중호우, 하수 터널이 ‘열일'

 

“저기가 2022년 8월, 폭우가 내렸던 때 저류량을 표시한 선입니다.” 신 과장은 손을 뻗어 저류조 제1펌프와 제2펌프 사이 벽면 기둥을 가리켰다. ‘저류량 수위 기록표’라고 적힌 기둥엔 파란 선이 그어져 있고, 파란 선 약 20cm 아래에 높이 5m를 가리키는 지시선이 붙어있었다. 즉, 폭우로 이곳에 물이 5m 20cm 높이로 가득 찼다는 뜻이다. 

 

2022년 8월 8일 자정부터 9일 오전까지 한반도 중부지방에는 장마철 열흘 동안 내릴 비의 두 배 가까운 양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부천엔 시간당 69mm의 비가 내렸다. 부천시 2개 지역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지만, 이곳 하수 터널이 감당하는 여월동, 원종동, 성곡동 일대에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

 

당시 집중호우로 서울, 경기, 강원 지역에선 총 14명이 숨지고 26명이 부상을 당했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 침수 등의 피해를 본 이재민은 1901명에 달했다. 집중호우가 쏟아진 바로 다음 날인 8월 10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남역, 광화문, 도림천, 동작구 사당동, 강동구, 용산구 등 서울 침수취약지역 6곳에 빗물저류배수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서울시는 1단계 사업지로 강남역, 광화문, 도림천 일대를 선정해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부천시는 2010년, 2011년에 시간당 100mm 이상의 비가 내리는 집중호우로 여월동, 원종동, 성곡동 일대에 750여 채의 주택 침수 피해를 연달아 겪고 2012년부터 환경부와 빗물저류배수시설 건설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상습 침수지역이었던 것은 부천시의 지반고가 대체로 낮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남동쪽에 위치한 소래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하천을 지나 인천 앞바다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정명 부천시 하수과장은 “같은 양의 비가 오더라도 한강 수위와 인천 앞바다의 해수면이 높을 때와 겹치면 침수 피해가 발생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부천시의 의뢰를 받은 한국환경공단은 미국과 일본 등에서 많이 사용하는 하수 터널을 한국 최초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 3월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해 약 3년의 공사 기간을 거친 뒤 2016년 10월, 여월빗물배수터널과 오정빗물펌프장은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정빗물펌프장 지하 1층 펌프실. 끌어올린 빗물을 수평으로 누운 파란색 하수관에 모아 인근 하천인 베르네천으로 보낸다(위). 펌프 하단은 지하 3층 저류조까지 이어져 있다(아래).

3대의 펌프로 1분에 255t 물 퍼내 

 

저류조의 오른쪽엔 지름이 약 1m인 펌프 세 대가 안쪽 깊숙이 설치돼 있었다. 각각의 펌프는 진공 압력을 이용해 지하 3층에서 지하 1층
까지 빗물을 약 16m 수직으로 끌어 올린다. 이 하수과장은 “프로펠러를 돌려 모터 내부를 진공 상태로 만들어 압력을 높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펌프 세 대를 동시에 가동하면 분당 255t의 물을 한 번에 퍼낼 수 있다. 하수 터널을 통해 물이 들어오면 펌프는 실시간으로 물을 끌어 올릴까? 기자의 질문에 이용수 부천환경사업소 시설관리팀장은 “저류조에 빗물이 6m 이상 찼는데도 바깥에 계속 비가 오는 경우에만 펌프를 실시간으로 가동한다”며 “만약 빗물이 가득 차더라도 비가 그친 경우나, 비가 계속 오더라도 저류조에 공간적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펌프 가동을 기다린다”고 설명했다.

 

저류조와 펌프 사이에는 큰 철창, 스크린이 세워져 있었다. 스크린은 빗물펌프장이나 하수 처리장으로 유입되는 이물질, 즉 쓰레기를 제거하는 설비의 일부다. 스크린은 컨베이어벨트처럼 위로 움직인다. 스크린이 일차로 쓰레기가 펌프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막고, 스크린에 설치된 갈퀴가 쓰레기를 모아 지하 2층 제진기로 올려보낸다. “보통 어떤 쓰레기들이 여기에서 걸러지나요?” 기자의 질문에 신 과장은 “도로에서 많이 보이는 이물질들이 하수관을 따라 같이 떠내려온다”며 “비닐, 담배꽁초, 물티슈부터 나뭇가지 같은 이물질까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저류조 안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여월빗물배수터널과 마주할 수 있었다. 빗물이 흘러들어오는 경로를 상상하며 반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저류조도 어둑어둑한 정도였는데, 하수 터널과 터널 인근은 플래시를 켜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휴대폰 플래시로는 전방 1~2m밖에 볼 수 없었다. 시설관리팀이 사용하는 휴대용 플래시를 이용해 가시거리를 겨우 5m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하수 터널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닥에 물이 찰박거렸다. 조심히 발을 떼며 하수 터널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진흙이 얕게 깔려 있었다. 빗물과 함께 유입된 진흙이 남은 것이다. “바닥 엄청 미끄러워요! 조심하세요!” 터널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기자에게 이 팀장이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했다.

 

내경이 4.3m나 되는 거대한 하수 터널을 뚫기 위해 건설팀은 ‘쉴드TBM(Shield Tunnel Boring Machine)’ 공법을 주로 사용했다. 기계식 굴착 장비인 쉴드TBM은 발파 없이 회전하는 커터로 터널의 절단면을 파쇄하며 굴진하는 기계다. 발파하지 않으니 소음과 진동을 줄이며 공사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하철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터널을 뚫는 데 이 공법을 이용한다. 

 

그럼에도 소음과 진동이 없을 수는 없다. 이 하수과장은 “공사 과정에 민원이 들어와 공사를 멈춘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극한호우 시대, 지하 물길이 답일까 

 

 

1분쯤, 대략 30미터 가량 걸었을까. 넘어질 뻔한 위기를 수차례 넘기며 열심히 걷고도 하수 터널의 초입에서 벗어나지 못했단 사실에 한숨을 쉬며 다시 방향을 바꿨다. 진흙이 1~2cm 두께로 깔린 터널 바닥을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마치 ‘하체 운동’을 하는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물기가 많은 진흙은 얼마나 튀는지,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긴 장화가 왜 필요한지 절감했다.

 

하수 터널 바깥으로 걸어 나온 뒤 고개를 올려보니 천장에 무언가가 설치돼 있었다. 하수 터널이 저류조와 만나는 지점에 설치된 초음파 수위계였다. 물이 천장까지 들어찰 수 있는 시설인지라 전기가 아닌 초음파로 수위를 실시간 측정한다. 부천시청의 상황실은 이 신호를 통해 수위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지하 3층 저류조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지하 1층에 있는 펌프실을 둘러봤다. 펌프 3개가 끌어올린 빗물이 하나의 하수관으로 합쳐지는 곳이었다. 이곳에선 펌프를 돌리는 고압전기 시설이 특히 눈에 띄었다. ‘특고압’이라고 경고문구가 붙어 있었는데 특고압은 7000V 이상의 전압 범위다. 이 하수과장은 “(펌프의) 프로펠러를 돌릴 때 전압이 2만 5000V까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모인 빗물은 최종적으로 베르네천에 방류된다. 현재 여월빗물배수터널은 30년 빈도의 강수량 수준인 시간당 91mm의 빗물을 감당할 수 있다. 건설 및 유지관리 비용을 고려한 규모다. 만약 이곳 빗물저류배수시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부천시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빗물저류배수시설 없이 시간당 91mm의 비가 올 경우, 약 32만 8000㎡에 이르는 성곡동과 원종동 일대가 침수된다. 최대 침수 깊이도 1m가 훌쩍 넘는다. 2010년, 2011년에 발생한 침수 피해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건설 목표는 지금까지 무사히 달성 중이다.

 

하지만 극한호우는 갈수록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비가 내리는 극한호우는 피할 수 없는 기후 재난이 됐다. 민승기 POSTECH 환경공학부 교수팀은 2095년에서 3000년 사이엔 시간당 200mm가 넘는 비가 올 수 있다는 기후 모델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기후 위기와 직면한 한국이 극한호우에 대비해 또 어떤 노력을 들이고 있는지 다음 파트에서 자세히 알아보자. 

 

▲서울시, Shutterstock
서울시는 극한호우에 의한 대규모 침수를 방지하기 위해 상습침수지역 지하 40~50m 아래에 빗물저류배수시설인 ‘대심도 빗물터널’ 6곳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시에 건설된 대심도 빗물터널은 2019년 완공된 신월 빗물배수시설이 유일하다. 추가 건설할 대심도 빗물터널의 설계 용량은 강남역 대심도 빗물터널(시간당 110mm)을 제외하고 모두 시간당 100mm다. 이는 서울시의 방재성능목표가 시간당 100mm(강남역 110mm)이기 때문이다.

2024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기획 및 글

    김태희 기자
  • 기획 및 글

    김소연 기자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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