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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면(月面)연합은 고요의 바다 전역을 폐쇄한 이유가 원자력발전소 고장으로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중국령 소행성대 자치정부는 세레스에서 일어난 대규모 폭발이 운석 충돌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화성 산업관리 당국은 올림포스 산 일대에서 일어난 ‘로봇들의 반란’ 사건이 실제로는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오류로 인한 단순 오작동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그 세 사건이 17년 전, 일주일 사이에 일어났다. 우주탐사 역사에서 가장 피해가 큰 사고 세 건이 같은 시기에 발생했다. 그 기이한 동시성을 주목하고 입방아를 찧는 이들은 물론 있었지만, 대개는 초점이 엉뚱했다. 우주식민지 개척 주체들의 조급함과 무분별한 확장주의가 비판받았다. 진상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오십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진상을 부분적으로 아는 이는 백 명 남짓 되었다. 그들은 17년 동안 오백 명 정도의 연구자에게 그 진상의 일부를 제시하고 분석을 맡겼다. 연구자들은 물리학자, 뇌과학자, 심리학자, 전파공학자, 로봇공학자들이었으며, 심령술사와 초자연현상을 연구하는 사이비과학자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용역을 맡은 학자 대부분은 자신들이 뭘 다루는지도 몰랐다.

 

아주 일부만이 자신들이 어떤 현상을 분석하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들은 비밀 서약을 몇 번이나 했고, 정보기관의 감시까지 받았다. 의뢰인들은 연구자에게 연구 대상인 세 사람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연구자들이 보고서에서 그 세 사람을 불러야 할 때에는 각각 알골 A, 알골 B, 알골 C로 지칭하게 돼 있었다. 페르세우스자리에 있는 삼중성계(三重星系) 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아무도 그 코드네임의 유래를 설명하지 않았으나, 의미심장한 작명이었다.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예로부터 알골은 거대한 비극을 예고하는 별이었다. 알골이라는 이름 자체가 아랍어로 악마라는 뜻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알골을 ‘적시성(積屍星)’이라고도 불렀다. 알골이 나타나면 큰 재난이 벌어져 시체가 쌓이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쓴 보고서는 진상을 아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들은 내게 정보를 몇 조각 더 제공했고, 새 정보에 근거한 두 번째 보고서를 요구했다. 내가 두 번째 보고서를 제출하자 만나자는 제안이 왔다. 첫 번째 만남은 지구의 정보기관 아지트에서, 두 번째 만남은 지구궤도의 군사시설에서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알게 되는 정보의 양도 늘어났다.

 

알골 A, 알골 B, 알골 C는 한날한시에 출현한 초인들이라는 것. 모두 우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이 처음에 힘을 억제하지 못해 달과 소행성대와 화성에서 참사를 일으켰다는 것.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보고 놀란 그들이 스스로 힘을 봉인했다는 것. 그들이 처음 2, 3년 동안은 과학자들의 조사에 응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거부했다는 것, 이후에 지구연방이 ‘우주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심각한 기형아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가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지구 밖에서의 임신과 출산을 금지했다는 것.

 

아는 것이 많아질 때마다 보고서를 새로 썼다. 세 번째 만남은 고요의 바다에서 가졌다. 풍화가 없는 위성의 개척도시는 17년 전과 마찬가지로 쑥대밭 같은 모습이었다. 자연 방사능 외에 다른 방사능은 전혀 없었다. 나는 건물이 무너지고 철골이 뒤틀린 모양을 유심히 관찰했다.

 

고요의 바다에서는 이 문제에 몇 년 이상 매달린 군인과 실무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세 초능력자를 가끔 고전 문학 속의 대마법사 이름으로 불렀다. 알골 A는 프로스페로, 알골 B는 멀린, 알골 C는 메데이아였다. 초기 코드네임이 그랬는지, 아니면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느낌을 주는 애칭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메데이아라는 이름을 듣고 알골 C가 여성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다른 연구자들은 달의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 알골 A, 소행성대의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 알골 B, 화성의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알골 C라고 추측하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네 번째 미팅은 화성 궤도에서 있을 거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장거리 여행에 대비해 갈아입을 옷과 신경안정제를 챙겼다. 핵심 관계자를 만나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아마도 알골 A, 알골 B, 알골 C의 신상 정보와 이력도 이제 알려주지 않을까 싶었다. 화성 궤도 근처에 그들이 있다는 것도 짐작 가능했다.

 

그러나 화성 궤도에 가자마자 알골 A와 알골 C를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들이 나를 초청했다는 사실도 화성으로 가는 길에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들도 나만큼이나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지구에서 화성 궤도까지는 보름가량 걸렸다. 마침 화성이 지구에 근접해 있었고, 나는 여객선이 아니라 군함을 타고 갔다.

 

크기는 작은데 엔진이 42개나 달린 배였다.

 

다른 승무원들 앞에서 침착하게 보이려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알골들에게 호기심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격렬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신인류였고, 새로운 세계의 문이었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평소보다 신경안정제를 자주 복용해야 했다.

 

우주선이 화성 근처에 이르렀을 때에는 정해진 수면시간을 거의 뜬눈으로 보냈다. 잠깐 눈을 붙였을 때에는 악몽을 꾸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고의 기억이 꿈속에서 되살아났다. 바다와 구분되지 않는 하늘, 안개 자욱한 길, 줄지어 선 자동차, 옆으로 번지는 것 같은 후미등의 붉은 조명, 그리고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흔들리고 솟구친다…….

 

“안색이 안 좋으신데요, 교수님. 우주멀미 때문이라면 약을 드릴까요?”

 

선교(船橋)에 들어선 나를 보고 선장이 말을 붙였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교수도, 박사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를 다른 사람들은 사이비과학이라고 부른다고. 선장은 한쪽 눈썹을 조금 치켜 올렸다. 얼굴 반대편에는 눈 대신 고배율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보통은 그런 직함이 없어도 다들 스스로를 교수나 박사라고 지칭하잖습니까?”

 

선장은 ‘특히 그 분야에서는 말이죠’라는 말을 참는 듯했다.

 

“저는 아닙니다. 황당무계한 일을 취재하고 글을 쓰는 것은 저술의 자유이지만 학위 소지자인 척 하면 사기가 되지요.”


“그러면 제가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독립 연구자? 재야 과학자?”


“책을 몇 권 내긴 했으니 그냥 작가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대화로 선장은 내게 호감을 품게 된 것 같았다. 이전까지 우리가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저희는 포보스로 가나요? 아니면 데이모스? 이제 말씀해주셔도 괜찮지 않습니까?”


내가 물었다.


“왜 화성에 간다는 생각은 안 하시죠?”


선장이 빙그레 웃으며 반문했다.

 

 

 

“행성에 착륙할 때 이런 각도로 진입하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딜 가든지 극비 시설일 텐데, 그런 시설 이라면 화성 표면보다는 위성에 지었을 것 같아서요.”


“저희가 어느 시설로 간다고, 그리고 그 시설을 저희가 지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제가 뭔가를 잘못 알았나요?”


“이제부터 좀 놀라실 겁니다.”


선장은 턱으로 전면 유리창을 보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잠자코 어떤 변화가 있기를 기다렸다. 2분 정도 지나자 갑자기 우주선 앞 풍경이 달라졌다. 어느 순간 미사일 한 무더기가 나타났는데,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해 온 것 같았다.


“이게 뭡니까?”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물었다.

 

“제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바를 말씀드리자면 포보스가 두 개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그 화성의 위성이 있고, 17년 전에 새 포보스가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두 포보스가 한 공간에 중첩되어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포보스는 우주선을 타고 이 각도로 접근해서 어느 거리 안에 들어와야만 볼 수 있죠. 포보스는 공전주기가 8시간도 되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새 포보스를 없애려고 핵미사일을 여러 개 쏘았어요. 그런데 미사일들이 저기서 멈췄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계속 포보스 주변에 떠 있죠. 저 미사일들은 물리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어요. 어느 거리 바깥에서는 보이지도 않고 탐지되지도 않습니다. 저런 질량을 가진 물건이 초속 수십 킬로미터로 날아가다가 저렇게 정지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저 위치에서 저 자세로 계속 멈춰 있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정지위성이라면 포보스 주변을 돌아야죠.”

 

“저기에 알골들이 있는 겁니까? 선장님 표현에 따르면 ‘새 포보스’에?”


“예.”


“핵미사일은 그들을 죽이려고 쏜 거군요?”


선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렇겠지요”라고 시인했다.


‘정말 결계 같군.’


나는 생각했다. 안에 있는 것을 감추고, 보호한다.


“저는 저 자들이 자기 힘을 과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미사일을 폭파시키거나 없앨 수 있을 텐데 저렇게 놔두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고 보여주려는 의도 아니겠습니까.”

 

선장이 말했다. 나는 그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알골들의 힘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았다. 결코 전능하지 않으며, 나름대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면 이런 여행도 불필요하다.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나를 순간이동해서 데려가면 된다.

 

“아마 효과는 없을 테지만…….”


‘새 포보스’가 가까워지자 선장이 내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콘택트렌즈가 한 쌍 들어 있었다.

 

“이게 뭡니까?”


“착용하십시오. 안에 카메라가 있습니다. 작가님이 저기서 보실 광경을 저희한테 전송해줄 물건입니다.”


“마이크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알골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으셔야죠.”


렌즈를 끼며 내가 물었다.


“마이크는 이미 작가님 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두 시간 전에 드신 식사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유난히 꼬챙이가 날카로웠던 산적 요리를 떠올렸다. 맛은 좋았는데.

 

우주선은 포보스에 내리지 않았다. 전면 유리창에 화성이 꽉 들어차 검은 공간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됐을 때 선장은 내게 갑판으로 올라가라고 지시했다. 나는 거기서 로봇의 도움을 받아 우주복을 입었다.

 

해치가 열릴 때 나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채 떨고 있었다. 우주복 차림으로 우주에 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머리 위로 붉은 땅과 감자 같은 위성이 보였고, 나는 위아래가 뒤집혔다는 생각을 내내 떨치지 못했다. 내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이러다 과호흡증후군이 오는 것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들이 잘 모시고 갈 겁니다.”


선장이 무선통신으로 말했다.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선장은 답하지 않았다. 혹시 이전에 알골들을 만났던 방문객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 것 아닐까? 혹시 새 포보스에 가는 외부인은 내가 처음인 것 아닐까? 혹시 나는 일종의 미끼이거나 희생제물…….

 

그때 발판이 나를 부드럽게 위로 띄워 올렸다.

 

난생 처음 해보는 우주 유영은 예상보다 훨씬 괜찮았다. 나는 잘 포장된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상쾌하게 달리는 속도로 포브스로 나아갔다. 흔들림은 전혀 없었고, 보이지 않는 손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나를 붙들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아마 알골들의 염력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포브스 표면에 남녀 한 쌍이 서 있었다. 그들은 맵시 있는 평상복 차림이었고, 아무런 보호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포브스에 천천히 내려선 뒤에야 그곳의 중력이 1G임을 알았다.

 

인사말을 건네기도 전에 여자가 내 우주복의 감압 버튼을 누르고 헬멧을 벗겨냈다. 공기가 있을 거라고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숨을 한번 들이켰다.

 

“팬이에요.”


젊은 여자가 말했다.


“저희 다 작가님의 팬입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인사했다.

 

내 경험으로는, 첫 만남에서 팬이라고 말하는 사람 중 실제로 내 책을 읽어 본 이는 다섯 명 중 한 명도 되지 않는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고, 어색하게 우주복을 벗었다. 우주복을 벗고 나니 그들과 나의 옷차림새가 더 비교되었다. 나는 주머니가 잔뜩 달린 멜빵바지 차림이었다. 우주선 안에서 입던 작업복이었다.

 

포보스의 지면은 회색이었고, 반질반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곳곳에 가로등 같은 조명시설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 조명등이 거의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밤에 비행장 활주로에 몰래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진짜 포보스도 이렇게 생겼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곳에는 진짜 포보스에는 절대로 없을 두터운 대기와 강한 중력이 있다.

 

“저를 프로스페로, 이 친구를 메데이아라고 불러주십시오. 저희 본명을 밝히지 못해 죄송합니다. 본명이 알려지면 친구나 친척들이 정부의 인질로 잡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저희는 외모도 크게 바꿨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나는 그때서야 정부가 알골들의 신상명세를 제공하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부는 그 정보를 아예 몰랐던 것이다.

 

“외모를 바꾼다고 지문이나 유전자 감식 같은 것도 피할 수 있습니까?”


“그런 것들도 바꿨습니다.”


프로스페로가 대답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내 반응을 가늠하려는 것이었을까?


“멀린은 어디 있나요?”


내가 애써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말에 프로스페로와 메데이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멀린은 잠을 자고 있어요.”


메데이아가 말했다.


“404시간째 자고 있죠. 지구 기준으로 16일이 넘네요. 이미 아시고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저희는 생리적인 문제에 그다지 시달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멀린도 잠이 들기 전에 작가님의 가설을 읽고 무척 흥미로워했습니다.”


프로스페로가 말했다.

 

저는 일주일째 잠을 자지 않았어요. 잠을 자면 자꾸 악몽을 꿔서요. 프로스페로도 그래요.”

 

메데이아가 말했다.


“저는 그래서 자는 대신 명상을 하곤 합니다. 어제는 참고래에 대해 깊이 생각했죠. 저희가 악몽을 자주 꾸는 것은 이곳 환경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실내로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드실까요? 궁금한 게 많습니다. 작가님도 저희에게 궁금한 게 많으실 테죠. 참, 불편하시면 눈에서 콘택트렌즈는 빼셔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작동하지 않으니까요.”


프로스페로가 제안했다.

 

“한 세기쯤 전에 멸종한 동물이죠. 수가 급격히 줄어든 걸 인간들이 뒤늦게 깨닫고 보호하려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 종이 지구에 나타나 번성하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머리 속으로 그렸습니다.”

 

로봇 하인이 찻물을 끓이는 동안 나는 참고래에 대해 물었다. 프로스페로는 설명을 하면서 공중에 작은 참고래 모형을 만들어 띄워 보였다. 홀로그램처럼 보였지만 홀로그램이 아니었다. 그가 생각만으로 만들어낸 실체였다. 작은 참고래는 그의 머리 주변에서 헤엄을 치더니 흐릿해지면서 사라졌다.

 

우리는 프로스페로의 집이자 연구실에 와 있었다. 우주식민지의 조립형 주택보다는 지구에 있는 리조트호텔에 훨씬 더 가까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에 자금성이나 피라미드를 복제할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이 집도 그에게 로봇 하인과 마찬가지 존재인 것 아닐까 생각했다. 방문자를 놀라게 하지 않는, 관습적인 상상.

 

“하루 종일 참고래 생각만 했단 말입니까?”


“저희는 시간이 많습니다. 이곳에 갇힌 죄수 신세죠.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는 점이 다를 뿐.”


“작가님의 보고서들을 보고 놀랐어요. 저희를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것 같았죠. 특히 첫 보고서요. 저희의 관계를 어떻게 맞추셨죠?”


메데이아가 말했다.

 

 

“보고서에 쓴 대로입니다. 논리적으로 치밀한 추론은 아니었습니다. 기이한 일이 동시에 세 곳에서 벌어졌다, 그건 굉장히 가능성이 낮은 일이다, 그러므로 그 세 사건은 직접적인 원인이 같다, 어떤 방아쇠가 있는 것이다……. 물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우연일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단정과 비약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어떤 각성의 순간이 있었고, 그때 사고가 터졌는데, 그건 그 시점에서 사고 주체들에게 통제력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후로는 17년이나 조용하죠. 정부가 상황을 잘 관리하고 있거나, 아니면 17년 전 사고를 낸 당사자들이 자제력을 갖췄기 때문이겠죠. 전자는 아닐 것 같고, 후자를 좀 더 파고들면 세 초인이 각자 힘을 참고 있는 게 아니라 서로 합쳐져서 맞
물린 결과가 힘을 못 쓰게 하거나, 적어도 폭주를 막고 있다고 봤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아직은 진실을 털어놓을 때가 아니었다.

 

“전에 저희가 외계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주장한 연구자가 있었죠. 그 이론도 세 사건의 연관성을 낮은 수준에서 설명합니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왜 거의 같은 시기에 발병한 건지 설명하려면 결국 우연이라는 개념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러스 이론은 우리 세 사람이 모여 있을 때 왜 힘의 양상이 달라지는지도 설명하지 못하죠.”

 

프로스페로에 이어 메데이아가 말했다.


“하지만 저희를 각각 발열자, 냉각자, 회전자로 분류한 것은 잘 납득이 안 갑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제가 회전자가 되는 셈인데…….”

 

“그건 그냥 문학적 비유일 뿐이었습니다. 세 사람의 힘이 모여서 어떻게 하나의 엔진처럼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려고 든 거예요. 피스톤, 크랭크, 실린더, 아니면 사법부, 행정부, 입법부,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세 사람의 의견이 같으면 굉장히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힘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이때 서로 역할은 다르죠. 그러나 다른 사람의 동의가 따르지 않는 한 개인의 순간적인 욕구는 현실조작능력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파괴적인 충동이 일어도 그게 현실이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죠.”

 

“아무래도 전 작가님이 모든 걸 꿰뚫어 보시면서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지네요.”

 

메데이아가 미소를 지었다.


“저도 문학적 비유를 하나 들어도 될까요. 저는 저희들이 서로 발을 묶어 놓은 몽유병 환자들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중증 몽유병 환자들은 잠을 자면서 일어나 걷고 말하고 운전을 하고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몽유병 환자는 다른 몽유병 환자가 없어도 자기 몸을 침대에 묶어놓으면 그만이지만, 저희는 다른 알골이 없으면 저희 의식을 어딘가에 묶을 수가 없습니다.”

 

프로스페로가 말했다.


“참고래 형상을 만드는 데에도 일일이 다른 두 분의 동의를 받아야 하나요?”


내가 물었다.


“아니오.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건 그냥 자면서 잠꼬대를 하거나 팔을 흔드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의식이 다른 사람과 묶여 있다는 기분이 갑갑하진 않습니까?”


“갑갑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요.”


프로스페로가 말했다.


“가족이 있으십니까?”

 

프로스페로의 목소리가 조금 갈라졌다.


“부모님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같은 차에 타고 있었는데, 저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두 분만 돌아가셨어요. 안개 때문에 도로에서 다중추돌 사고가 났습니다. 아직도 그 꿈을 가끔 꿉니다. 꽤 큰 사고였어요.”

 

내가 대답했다.


“저는 아이와 아내를 잃었습니다.”


프로스페로가 말했다.


“각성했을 때의 사고로요?”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실제로는 몇 살일지 궁금했다. 직업은 뭐였을까? 금욕적이면서 카리스마가 있는 직업이라. 인문학 교수? 성직자?


“저는 여동생과 친구들을 잃었어요. 제가 그런 일을 또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혼란스러웠어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어요. 그때 프로스페로가 와서 저에게 텔레파시로 말을 걸었어요. 멀린이 합류한 건 그 직후였고요.”

 

메데이아가 말했다.


“지금 멀린과 저는 십대 아들과 아버지 같은 관계죠. 많이 답답할 겁니다. 외딴 곳에 감금된 신세이니…… 그러나 여기를 벗어나면 안전하지 않습니다. 멀린에게도, 세상에게도. 멀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엄청난 희생이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걸로 믿습니다.”


마치 가장 먼저 불을 일으키는 법을 발견한 인류가 주변 원인(原人)들에게 ‘우리가 이걸로 당신들을 멸종시킬 수도 있다’며 부싯돌을 맡긴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프로스페로는 씁쓸하게 웃었다.


“가장 먼저 불을 일으키는 법을 발견한 선조는 그 발견이 세계를 얼마나 바꿀지 몰랐겠죠. 하지만 저희는 저희의 힘이 지닌 파괴력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 힘 이전의 세계를 사랑하고요.”


“결과에 만족하시나요?”

 

“처음에 정부에 저희의 존재를 알린 건 그게 옳다고 믿었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방법을 정부 과학자들이 찾아줄 수도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치들은 저희를 무슨 실험실 동물처럼 다루더군요. 2년을 못 버티고 빠져나왔습니다. 그때 약간 물리적 충돌이 있었지요. 그 뒤에 포보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시는 길에 핵미사일을 여러 기보셨을 겁니다. 그게 정부의 대응이었고요.

 

 

 

지금은 묘한 대치 상태입니다. 저희는 흩어지면 약합니다. 한 개인으로서 발휘할 수 있는 현실조작능력은 단순한 염동력(念動力)들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신종 테러리스트이긴 하지만, 제압하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셋이 모이면 현재의 과학기술을 뛰어넘는 존재가 됩니다. 이곳은 요새이자 감옥이죠. 여기에 있으면 붙잡혀 생체실험을 당할 걱정 없이 자유롭게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밖에 못하죠. 솔직히 이제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부도 그런 것 같아요.”

 

“세 사람이 함께 밖으로 나간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해봤죠. 그런데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글쎄요. 태양계 외곽이라든가.”

 

“명왕성에서 장염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요? 그런 문제는 현실 조작능력으로 해결이 되지 않더군요. 저희는 늙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혹시 명왕성에서 갑자기 현실조작능력이 사라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저희도 인간입니다. 새로 나온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싶고 지구의 소식도 듣고 싶습니다. 포브스에 자리를 잡은 것은 여러 가지 보급물품 문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구에 숨는 건요? 정부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봐요.”

 

메데이아가 끼어들었다.


그러나 프로스페로는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포브스에서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다 해도 어딘가에서 현실조작능력을 쓰면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끌 거고요. 그리고 저는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정부의 과학자들이 우리가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법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저희가 여기서 사라진다면 작가님 같은 분의 연구 보고서를 앞으로 어떻게 받아보겠습니까?”

 

“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저나 멀린은 당신보다 훨씬 더 비관 적이에요.”


메데이아가 한숨을 쉬었다.


“다른 알골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물론 해봤고, 정부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을 테죠. 그런데 이렇게 안 나오는 걸 보면 어쩌면 저희 셋이 전부인지도모르겠습니다. 만약 있다면 지구에 있을 테죠. 지구에서라면 자기통제력 없는 알골이 현실조작능력으로 사고를 쳐도 그게 자연재해나 다른 원인으로 빚어졌다고 착각하기 좋으니까요.”


그때 멀린이 잠에서 깨어났다.


프로스페로와 메데이아는 멀린이 눈을 떴음을 바로 알았다.


등이 가렵다든가, 발에 쥐가 났다든가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감각이었다.


그런데 멀린이 눈을 떴다는 사실을 나도 그만큼 자연스럽게 알아차렸다. 확실히 다른 알골들과 함께 있으면 능력이 증폭되는 모양이었다.

 

“당신…….”


프로스페로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각성의 시기에 저는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켰죠. 50중 추돌사고였어요. 그런데 경찰에서는 그게 안개 때문이었다고 하고, 자동차회사에서는 자율운행차를 이용하지 않고 손수 운전을 고집한 몰지각한 청년들 때문이라고 하고, 정신과의사는 아무튼 절대 제 탓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저도 한동안은 그 말을 믿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서 방황하다 저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게 됐습니다. 그래서 초자연현상 전문 르포 작가가 됐죠.”

 

내가 말했다.


“어떻게 버틸 수 있었죠?”


메데이아가 물었다.


“신경안정제를 매일 한 움큼씩 먹었어요.”


내가 대답했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오늘밤에 저희가 함께 나눌 이야기가 정말 많겠군요. 멀린도 부르겠습니다.”


프로스페로가 말했다.

 

사실 멀린은 그 순간 내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멀린과 텔레파시로 이미 많은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다. 누군가와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것은 처음이라 내가 좀 서툴긴 했지만 말이다. 멀린은 내 계획에 찬성했다.

 

나는 메데이아에게도 말을 걸었다. 그녀는 자유만큼이나 악몽에서 벗어날 가능성에도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그녀의 악몽이 죄책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이곳의 결계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내 경우 지구에서 간혹 꾼 꿈과 결계 근처에서 생생하게 겪은 악몽은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명확히 자기 입장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2대 2, 어쩌면 2대 1이었다.


멀린은 리조트호텔처럼 생긴 건물의 한쪽 벽을 부수고 들어와 프로스페로에게 돌진했다. 멀린은 탄탄한 몸집의 20대 초반 남성으로 보였다.


“또!”


프로스페로가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멀린의 몸이 공중에서 멈췄다. 두 알골 사이의 공간이 이지러지는 것이 보였다. 메데이아가 흘끔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염동력으로 개입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멜빵바지의 앞 주머니에서 유난히 끝이 날카로운 꼬챙이를 꺼내들었다. 나는 그걸로 프로스페로의 목을 두 번 찔렀다.


일그러졌던 공간이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멀린은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죽은 거야?’

 

메데이아가 텔레파시로 물었다.


‘죽어가고 있어.’


내가 텔레파시로 대답했다. 프로스페로는 오른손으로 목을 쥐고 있었는데 숨을 내쉴 때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엄청나게 흘러나왔다. 눈은 엉뚱한 곳을 향해 있었다.


‘참고래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데.’


멀린이 텔레파시로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메데이아.

 

‘일단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나자. 나가서 뭔가 아무 일이 라도 저지르자.’


멀린.


나는 그 말이 프로스페로의 연설보다 훨씬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니체가 그 비슷한 주장을 하지 않았던가?


내가 얼굴과 몸과 지문과 유전자를 프로스페로와 똑같은 형태로 바꾸는 동안 멀린이 옆에서 물었다. 이름은 어떻게 할 거냐고. 나는 그들의 전통에 따라 문학작품 속 위대한 마법사의 이름을 따올 생각이었다.

 

오베론, 사루만, 게드…… 적당한 이름을 찾다가 나는 프로스페로라는 이름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그는 내심 다른 두 알골을 캘리반이나 에어리얼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못 정하겠으면 대신 지어줄까?’


성미 급한 멀린이 물었다.


‘볼드모트 어때?’


내가 대답했다.

 

 

201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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