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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탐독] 유전질환 스위치 OFF 후성유전학

    이 논문의 저자인 데이비드 A. 싱클레어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와 그 연구진은 시르투인원(Sirtuin1, SIRT1)이란 단백질을 연구합니다. 이들은 시르투인원의 활성을 높이면 세포의 노화를 늦춘다는 사실을 밝혔죠. 시르투인원은 손상 DNA를 복구하며, 세포 내의 에너지를 감지해 물질 대사 조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칼로리 제한으로 세포 에너지가 줄면, 시르투인원은 세포 노화의 속도를 늦추죠. 이런 시르투인원의 역할은 노화도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고 이 연구팀이 판단한 근거입니다.

     

    유전자가 환경에 맞게 발현하는 비결은?

     

    후성유전학은 DNA 서열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일련의 과정을 다룹니다. 대표적으로 히스톤 단백질 변형은 히스톤 단백질의 아세틸화나 메틸화로 염색체의 응축 정도를 결정해, 유전자의 발현 빈도를 조절하죠. 이렇듯 후성유전학은 주어진 환경에 맞게 세포 상태를 바꾸는 스위치입니다. 이 스위치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거나, 아예 유전자 발현으로 생성된 단백질의 기능 자체를 환경에 맞게 바꾸기도 합니다.

     

    유전학과 후성유전학을 비교하면 유전학은 인간과 다른 종의 차이를, 후성유전학은 인간 각 개체의 고유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후성유전학은 신체 조직이 고유한 특성의 세포를 갖거나 질병에 걸리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후성유전학이 생물학 및 의학 연구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많은 연구진이 특히 활발히 연구하는 주제는 크게 보면 후성유전학이 바탕인 유전자 발현의 조절 과정입니다. 후성유전학적 과정에 이상이 생길 때 암, 신경계질환, 노화 등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많은 기업과 과학자가 질병의 치료 전략을 고안하고 신약을 개발합니다. 하지만 이런 신약이 모두 유효하진 않았고, 임상실험에서 예상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때도 있습니다. 모든 인간 세포의 역할과 활동이 전부 밝혀지진 않았고, 하나의 단백질이 둘 이상의 다른 과정에서 작용해서입니다.

     

    손상된 DNA, 복구하거나 청소하거나

     

    이번 논문은 DNA 서열의 변경 없이 단백질을 조절하는 후성유전학적 관점에서, 유전질환의 일종인 혈관확장성 운동실조증(이하 A-T)의 치료를 모색합니다. A-T는 어릴 때 발병하며 대부분 소뇌가 위축돼 신경 퇴화, 기억력 및 운동능력 감소를 보입니다.

     

    세포 단위의 연구에서 A-T 환자는 ATM 단백질이 매우 적었습니다. ATM 단백질은 DNA 이중가닥이 손상된 유전체의 복구 과정을 조절합니다. 뉴런에서 DNA 이중가닥이 손상되면, ATM 단백질은 시르투인원 단백질과 함께 손상된 DNA 부위로 갑니다. 이때 시르투인원의 이동은 ATM에 의존하고, ATM은 시르투인원의 영향을 받아 DNA 복구의 활성이 커집니다. 이 상호 작용이 DNA 복구 과정 자체를 활성화하고 유전체의 안정성을 높이죠.

     

    시르투인원 단백질은 DNA 손상 부위의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고, 손상 정도에 따라 필요한 단백질을 보충해 DNA를 복구합니다. 보충된 단백질이 손상을 복구하거나 DNA에 결합해 유전체 안정성을 높이죠. 시르투인원은 비정상적 미토콘드리아를 세포 스스로 분해하는 자가포식, 즉 미토파지도 활성화합니다.

     

    정상적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하지만, DNA 등이 손상된 비정상적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 생성 능력이 크게 저하됩니다. 세포가 미토파지로 분해하는 이유죠. A-T 환자는 미토파지가 일어나지 않아 비정상적 미토콘드리아가 쌓입니다. A-T 환자의 다른 증상은 소뇌의 뉴런을 이루는 푸르키네 세포가 줄어 기억력, 운동능력이 낮아지는 것 등이 있습니다.

     

    DNA 이중가닥 손상이 발생했을 때, ATM 단백질은 두 가지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손상된 DNA 부위에서 손상 부위만 제거하고 남은 나머지 부위끼리 이어지는 비상동 말단 연결을 억제합니다. 둘째, 손상되지 않은 다른 DNA를 이용해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상동 재조합을 촉진합니다. DNA 이중가닥이 손상된 세포의 상황에 따라, ATM 단백질의 이 두 작용 중 하나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ATM 단백질이 DNA 복구에 꼭 필요하죠.

     

    A-T 환자는 ATM이 없어서 다른 단백질이 손상 DNA를 복구하며, 그 과정에서 세포의 NAD+ 인자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때 감소한 NAD+ 인자는 시르투인원 단백질을 활성화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따라서 A-T 환자는 ATM이 없어서 시르투인원까지 억제되고, 미토파지가 크게 줄어 세포에 손상 DNA가 쌓입니다. 환자의 세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건강이 악화되죠.

     

    이 논문을 쓴 싱클레어 교수와 연구진은 유전질환인 A-T에서 시르투인원 단백질이 어떤 후성유전학적 기능을 하는지 밝혔습니다. 시르투인원의 보조효소인 NAD+를 합성하는 전구체와 시르투인원 촉진제를 투여할 때, A-T 세포의 미토파지가 증가해 A-T의 대표적 증상이 약화된다는 사실도 실험으로 확인했죠.


    유전체 안정의 핵심 축, 시르투인원

    이번 논문에 따르면 A-T 실험체는 세포의 미토파지 기능이 약한 탓에 비정상적 미토콘드리아가 제거되지 않아서 세포 대사가 비정상적인 뉴런이 많았습니다. 뉴런 간 신호 전달도 정상 실험체보다 약했습니다. A-T 예쁜꼬마선충 실험체는 근육 발달이 저하되고 운동능력이 감소했습니다. A-T 쥐 실험체도 회전축을 활용한 운동 실험과 Y자 미로를 활용한 기억 실험에서 운동능력, 균형감각, 기억력의 감퇴를 보였습니다. A-T 환자와 유사합니다.

     

    NAD+는 유전체 안정성에 전반적으로 관여하는 시르투인원을 활성화하는 보조효소입니다. NAD+의 전구체인 NMN과 NR가 세포에서 합성돼 NAD+가 됩니다. 이번 논문에서 NMN과 NR를 투여한 A-T 실험체는 NAD+가 증가해 시르투인원이 활성화됨으로써, 비상동결합 등의 DNA 복구 능력과 운동능력 등이 정상 실험군과 유사한 수준으로 회복됐습니다. 다만 정상 실험체는 이런 시르투인원 활성화가 수명 연장, 건강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죠.

     

    또한 이번 논문은 동물과 인간 유래 세포에 시르투인원 촉진제 SRT-1720를 투여한 각각의 실험에서, 시르투인원이 활성화될 때에 A-T 실험체 세포의 노화 속도가 줄었습니다.  하지만 안정성이 불충분해 이 촉진제의 인체 사용은 불가능합니다. 시르투인원을 활성화하는 NAD+의 전구체들은 영양제처럼 살 수 있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진 않았습니다. 시르투인원 촉진제와 보조효소 모두 노화 극복에 실질적 한계가 있죠.

     

    원인의 원인까지 파고드는 후성유전학 치료

     

    이번 연구에서 시르투인원 단백질의 활성화는 A-T 동물 실험체의 수명을 연장시켰고 건강 상태를 향상시켰습니다. A-T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은 시르투인원의 활성화를 보조하는 효소인 NAD+를 보충하면 시르투인원이 증상들을 호전시킵니다.

     

    이 논문은 시르투인원 활성화의 두 가지 효과를 특히 강조합니다. 손상 DNA의 자가 복구 능력 그리고 세포가 비정상 미토콘드리아를 분해하는 미토파지 능력을 정상 개체군 수준까지 높인 점입니다. 유전체의 전체적 안정성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죠.

     

    시르투인원을 활성화하는 NAD+를 투여하거나 시르투인원의 활성 자체를 높이는 치료법은 향후 실제 A-T 환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A-T처럼 어릴 때 발병하는 신경퇴행성 유전질환의 치료법을 모색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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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우 연세대 약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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