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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광자를 사냥하라

자연계의 다섯번째 힘 발견할까



독자가 지금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까닭은 빛이 있기 때문이다.
빛은 초속 30만km의 빠르기로 움직이는 ‘광자’라는 작은 입자로 이뤄져 있다.
이 작은 입자의 질량은 ‘0’이어서 전자기력을 무한한 거리까지 전하기도 한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이 요즘 이상한 광자를 찾기 위해 나섰다. 질량도 있고 심지어 빛을 내지도 않는다.
과학자들은 이 광자에 ‘암흑광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암흑광자 사냥을 함께 떠나보자.
 
[파멜라 위성의 이상한 관측결과 - 1.5~100GeV의 에너지 범위에서 양전자가 이론값보다 월등히 많이 검출됐다. 양전자를 만든 용의자로 ‘암흑광자’가 지목됐다.]

2006년 6월 파멜라 위성은 우주에서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전자의 반물질인 양전자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발견된 것이다. 양전자란 플러스(+) 전하를 띤 반물질이다. 양전자는 일반적으로 광자가 소멸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당시 관측한 양전자의 양은 예상보다 너무 많았다. 광자 말고도 양전자를 만든 ‘또 다른 범인’이 있다는 뜻이다. 물리학자들이 지목한 용의자는 1990년대부터 이론물리학자들 입에서 오르내린 ‘암흑광자’였다.

암흑의 땅에 사는 무겁고 어두운 광자

암흑광자에 대해 알려진 것은 사실 거의 없다. 물리이론에서만 등장한, 아직은 가상의 입자다. 물리적 성질만 추측할 뿐인데 그것도 모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반 광자와 달리 질량이 있으며,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빛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계의 4대 힘 중 오로지 중력과만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리학자들은 왜 이런 괴상한 암흑광자를 고민하게 된 걸까. 암흑광자가 우주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암흑의 힘(dark force)’의 열쇠일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더 깊게 알아보기 전에 한 가지만 짚고 가자. 이름이 비슷해서 암흑광자를 암흑물질(dark matter)의 하나로 착각하기 쉽다. 암흑광자는 ‘암흑영역(dark sector)의 물질’이며 암흑물질과는 다르다. 암흑영역의 물질은 자연계의 4대 힘 중 오직 중력과만 상호작용하는 가상의 물질이다. 반면에 암흑물질은 4대 힘 중 중력과 약한 상호작용(weak interaction)과만 상호작용을 한다. 암흑영역에 대한 가설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다. 당연히 암흑광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암흑전자기력 존재할까

형광등 불빛 아래서 책을 읽고, 최신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있는 당신. 당신은 지금 전자기력이 주는 혜택 속에서 살고 있다. 전자기력은 현대 문명의 이기인 전기는 물론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는 힘이다. 전자기력을 전달하는 입자는 바로 빛, 즉 광자다. 입자가 힘을 전달한다는 게 낯설기는 하지만 물리학에서 이미 오래전에 검증된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 세계의 광자와 전자기력은 암흑물질은 물론 암흑영역의 입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혹시 암흑광자도 눈에 보이는 일반물질에는 영향을 못 미치는 대신 자신이 속한 암흑영역에서 ‘어떠한 힘’을 전달하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 힘은 혹시 ‘암흑전자기력’이 아닐까.

더 알아보기 전에 먼저 고민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암흑영역이라는 특이한 물질세계에서만 작용할 수 있는 암흑의 힘이 꼭 존재해야 할까. 암흑광자는 어쩌면 광자와 달리 아무런 힘도 전달하지 못하고 그저 이름이나 성격만 광자인 엉뚱한 입자일지도 모른다. 암흑영역의 물질도 서로 상호작용하는 힘이 없는 고독한 물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병원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는 “만약 암흑영역 물질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없을 경우, 우주 에너지의 밀도가 지금보다 더 커야 하며, 우주의 편평도도 관측결과와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어떤 식으로든 암흑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암흑광자가 정말로 암흑의 힘인 암흑전자기력을 만드는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만약 암흑광자가 정말로 암흑전자기력을 만든다면 암흑광자를 찾는 것이 자연계 4대 힘 외 새로운 힘을 발견하는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 그 첫걸음을 위해 지난 4월 24일 미국 버지니아주의 토머스제퍼슨연구소(이하 제퍼슨연구소)가 암흑광자 사냥에 돌입했다.


[암흑은 빛으로, 빛은 다시 전자로-암흑물질과 반암흑물질(암흑물질의 반물질)이 충돌하면 2개의 암흑광자가 탄생한다. 암흑광자는 ‘키네틱 믹싱(128쪽 참고)’이라는 단계를 거쳐 일반 광자가 된다. 광자는 다시 양전자와 전자를 만든다. 물리학자들은 파멜라 위성이 검출한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전자가 이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제퍼슨연구소의 암흑광자 검출전략 - 텅스텐 원자에 전자를 충돌시켜 광자가 튀어나오게 한다. 광자는 키네틱 믹싱을 거쳐 암흑광자가 됐다가 다시 광자로 돌아온다. 광자가 쌍생성을 통해 전자와 양전자를 만들면 이것을 검출한다. 키네틱 믹싱의 낮은 확률을 극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암흑광자 찾기, 1조 분의 1 이하의 확률

암흑광자를 찾기란 무척 어렵다. 도대체 제퍼슨연구소의 전략은 무엇일까.

이론에 따르면 광자는 100만 분의 1 이하의 아주 낮은 확률로 암흑광자로 변하는 성질이 있다. 암흑광자도 비슷비슷한 확률로 광자로 변한다. 이런 특수한 현상을 ‘키네틱 믹싱(kinetic mixing)’이라고 한다. 제퍼슨연구소는 바로 이 성질을 이용했다.

연구소가 준비한 실험을 자세히 보자. 우선 텅스텐 원자에 전자를 충돌시켜 광자를 만든다. 광자 중 극소수는 암흑광자로 변한다. 그리고 변한 암흑광자 중 극소수는 다시 광자로 되돌아온다. 마지막으로 두 개의 광자가 ‘쌍생성’이라는 현상을 일으켜 전자와 양전자를 만든다. 제퍼슨연구소는 바로 이것을 검출하려고 한다. 암흑광자는 일반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검출할 수 없지만 전자와 양전자는 검출이 가능하다. 또 자기장을 걸어 전자와 양전자가 휘는 궤적을 측정하면 암흑광자의 질량을 알아낼 수 있다. 이를 위해 연구소는 우리 돈으로 35억 원(300만 달러)에 이르는 검출기를 준비했다.

문제는 키네틱 믹싱의 확률이다. 100만 분의 1이란 확률도 이론적으로 추정한 확률이고 실제로는 이보다 더 낮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현상을 두 번이나 거쳐야 하기 때문에 텅스텐에 발사한 전자 하나당 전자와 양전자가 만들어질 확률은 1조 분의 1 이하로 떨어진다. 제퍼슨연구소는 이 문제점을 텅스텐에 1초에 50억 개의 전자를 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제퍼슨 연구소는 3주 동안 실험을 진행했으며 실험 결과에서 암흑광자를 찾고 있다.

과학동아 독자라면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왜 이런 실험을 세계 최대의 가속기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하지 않을까. LHC는 지난 1월 신의 입자라 부르는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한 실험으로 유명세를 탄 바 있다. 고병원 교수는 “LHC는 에너지가 너무 강해 불필요한 무거운 입자들이 만들어져 오히려 암흑광자만 찾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암흑광자는 어디에 있을까 - 제퍼슨연구소는 이번 실험에서 20~1000MeV/c2의 질량 범위에서 암흑광자를 검출할 계획이다(붉은색 부분). 전자의 질량은 0.5MeV/c2, 양성자의 질량은 938MeV/c2다. 회색 부분은 암흑광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부분.]


[미국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토퍼스제퍼슨연구소 전경.]

암흑광자로 밝히는 암흑의 힘

제퍼슨연구소가 만약 암흑광자를 검출하는데 성공한다면 물리학은 어떻게 달라질까. 고병원 교수는 “암흑광자는 암흑의 힘의 비밀을 밝힐 첫 단추로 이상적인 입자”라고 말했다. 광자가 전달하는 전자기력은 자연계의 4대 힘 중 비교적 설명하기 쉬운 힘이다.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오로지 광자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힘인 강한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은 모두 여러 입자가 관여하기 때문에 더 복잡하다(중력은 아예 어느 입자가 전달하는지 아직 모른다).

암흑물질 세계의 물리법칙이 우리의 물리법칙과 닮았다면 암흑전자기력을 전달하는 입자도 암흑광자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암흑광자를 발견해 연구를 하면 존재조차 알 수 없던 암흑의 힘 중 하나가 그 실체를 드러낼 수도 있다.

제퍼슨연구소는 3주에 걸친 실험에서 암흑광자를 찾아내지 못하면 텅스텐에 쏘는 전자빔의 출력을 2배 높여 암흑광자 사냥을 계속할 예정이다. 암흑광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본다.
 

2012년 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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