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이제 노벨상을 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든지.”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만난, 한국에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과학자로 손꼽히는 한 석학은 안타까움을 담아 말했습니다. 물론 이 시점에서는 대한민국의 소설가 한강이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을 거란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과학상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었을 겁니다. 한국인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온 국민이 축제 분위기인 걸 보니,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한국 과학기술에 대한 자부심,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더 높아질 거라는 기대감을 국민들에게 주고 싶었던 거죠.
머지않았다고 봅니다. 해마다 한국이 노벨 과학상에 점점 더 근접함을 느낍니다. 단적인 예로, 올해 화학상을 받은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의 대표 연구인, 단백질 구조 예측 인공지능 ‘로제타폴드’를 개발한 논문의 제1저자가 한국인입니다. 작년에는 스웨덴 왕립 과학한림원이 주관하는 비공개 노벨 심포지엄에 한국 연구자가 초청받아 세미나를 했습니다. 이곳의 참석자들은 ‘비공식’ 노벨상 후보로 거론됩니다.
오랫동안 기초 연구보다는 응용 연구에 투자해 왔고, 현재도 정부가 선호하는 분야에만 R&D(연구개발) 예산이 집중되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과학자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연구, 인류의 삶을 개선할 연구에 묵묵히 노력해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노벨상이 반드시 ‘최초 발견자’에게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는 점도 희망적입니다. 2019년 리튬이온 배터리가 화학상을 받았을 때를 보면, 연구의 싹을 틔운 사람뿐만 아니라, 상용화로 그 연구의 가치를 꽃피워낸 사람까지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국 과학이 노벨상에 한 발짝씩 다가가며, 우리가 되새겨야 할 점은 이 상의 본질적인 의미입니다. 우리는 왜 노벨상을 기다리는가? 문득,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아일랜드 작가의 희곡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고구마를 100개 먹은 것 같은 답답한 작품이었습니다. 인물들이 계속 고도를 기다리는데, 결국 고도는 나타나지 않거든요. 인물들은 끝까지 고도가 누군지, 왜 기다리는지 모른 채 고도를 기다립니다.
이것이 삶의 본질을 질문하는 부조리극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도요. 매년 노벨상 시즌만 되면 기대했다 좌절하길 반복하는 과학 기자로서,
이 작품은 저에게 기다림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하고, 고도가 오든 오지 않든 기다리는 행위 자체에서 가치를 찾으라는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올해 노벨상 취재를 위해 만난 과학자들은 이미 그걸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노벨상을 받는 것보다, 노벨상을 받을 만한 ‘인류를 위한 과학’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요.
여튼 저는 고도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