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m높이에서 크기는 같고 무게가 다른 종이를 떨어뜨린다고 하자. 뉴튼의 운동방정식에 따르면 두 물체는 동시에 떨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공기의 저항이 없다고 가정한 이상적인 조건에서만 옳다. 이상적인 조건에서 운동을 한다고 하면 이 물체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뿐이다. 하지만 현실의 상황에서 떨어지는 물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중력뿐일 수 없다. 물체는 공기 저항을 받는다. 또한 물체가 딱딱하지 않고 물 같은 액체라면 저항을 받아 방울방울 흩어져 버릴 수도 있다. 바람이 불어 궤도가 변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려면 변수는 한가지 일 수 없고 운동은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현실의 물리학은 변수가 여럿
비행기를 띄울 때도 우리는 중력 한가지만을 고려할 수 없고 수많은 다른 변수들을 고려해야 한다. 때문에 이런 복잡한 변수를 한꺼번에 고려하면서 실제의 물리현상을 기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리학에서는 변수가 여러 개인 상황 속의 변화를 기술하는 수학적 방법으로 편미분방정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강물이 흐르는 것을 기술할 때는 네이비어-스톡스 방정식이라는 편미분방정식을 쓰는 것처럼, 실제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의 대부분이 편미분방정식이라는 수학적 모델로 표현된다.
KAIST 수학과 최희준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바로 이런 편미분방정식의 해를 찾아내고, 이 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연구한다. 강물의 흐름을 기술하는 편미분방정식을 풀어 실제로 물이 어느 지점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강바닥 부근과 수면 부근의 속도가 왜 달라지는지 등을 알아낸다. 하지만 해만 구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해가 간단한 경우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해가 하나인지 여럿인지도 알 수 없는가 하면, 해를 구해 놓고도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일이 많다. 때문에 이들이 하는 대부분의 작업은 해를 구하고 이 의미를 다시 수학적으로 구명해내는 것이다.
얼른 보면 연구라기보다 문제만 잘 풀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편미분방정식 연구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최고의 수학적 훈련과 연구능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다. 유체를 기술하는 네이비어-스톡스 방정식은 해가 존재한다는 것이 오래 전에 밝혀졌다. 하지만 그 해가 연속적이냐, 그리고 그것의 의미는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최교수가 5년간이나 계속해서 매달리고 있을 정도로 난해한 문제다.
최교수는 연구원들에게 논리력과 직관력을 강조한다. 한눈에 방정식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직관과 이 직관을 수학적 언어로 풀어내는 논리적 능력을 결합하는 훈련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교수의 연구실을 거쳐간 선배들은 항공우주산업이나 자동차 산업계에서 촉망받는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 말 그대로 ‘수학박사’들이 밤새워 방정식을 풀어내기 때문에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기초가 단단해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