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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극장] 레이첼 카슨은 과학적 전문성이 부족했다?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새들이 모이를 쪼아 먹던 뒷마당은 버림받은 듯 쓸쓸했다.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1962년 출간된 ‘침묵의 봄’은 살충제 사용으로 새들이 죽어버려 침묵에 빠진 봄을 형상화하며 전 세계적인 환경 운동을 일으킨 고전이다. 이 책을 지은 레이첼 카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의혹1. 카슨은 과학적 전문성이 부족했다?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직후부터 화학, 농화학 산업과 긴밀한 관련을 맺은 과학자들은 이 책이 과학적으로 문제가 많은 저작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이런 비판들은 종종 카슨의 과학적 전문성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카슨이 박사학위가 없고, 동료 심사가 이뤄지는 학술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어떤 전문 학회에서도 임원으로 임명되지 못했기에 과학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하나는 카슨이 당대의 최신 유전학 실험 연구에 참여할 정도로 적절한 과학적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카슨이 연구에 기여하는 일반 과학자들과 다른 과학적 전문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과학 연구와 현실의 문제들에 대처하는 공공 정책 사이의 간극을 발견하고, 여기에 필요한 정책적 개입과 과학 연구를 제안하는 능력이었다.

 

카슨은 이런 능력을 대학에서 과학자로 연구하고, 정부 관청에서 과학 저술가로 훈련받는 독특한 경력 가운데 발전시켰다. 그는 192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여대(현 채텀대)에서 생물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후에는 존스홉킨스대에서 동물학과 유전학을 공부했으며, 1932년 여름 해양생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로도 학업을 이어가려 했으나 대공황의 여파 가운데 가족 부양을 이유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카슨은 미국 수산국에 취직해 대중을 대상으로 한 해양생물학 방송 대본과 대중용 브로셔를 작성하는 일을 시작했다. 1936년부터는 수산국에서 정규직 생물학자로 근무하며 기존 업무에 더해 어류 개체군에 대한 현장 데이터를 분석해 보고하는 일 또한 맡게 됐다. 카슨은 이때 쓴 글을 고쳐 첫 저작인 ‘바닷바람을 맞으며’를 출판했다. 그리고 해양생물학 전문 저술가의 이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카슨은 해양생물학자들로부터 자신들의 과학 연구 성과를 대중이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940년 카슨이 근무하던 수산국은 생물조사국과 통합해 내무부 산하 어류 및 야생동물 관리국으로 개편됐다. 카슨은 이 새로운 부서에서 어류를 포함한 야생동물의 보호 및 보전에 관한 글들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같은 업무 활동 가운데 카슨은 각 정부 부처의 다른 이해관계와 정책들이 충돌하기도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비록 카슨이 합성 살충제 남용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것은 직장을 그만두고 집필에 전념하기 시작한 1950년대 중반 이후이지만, 야생동물 보전 정책과 농림부의 살충제 대량 살포 정책 사이에 충돌이 있음을 알고, 합성 살충제 위험에 대한 과학적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한 데에는 이와 같은 경력이 중요했다.

 

 

의혹2. 카슨의 환경 보호 주장은 정치적이었다?

 

카슨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카슨이 과학적 근거보다는 생태애호주의와 같은 정치적 믿음 때문에 합성 살충제의 위험성을 주장했다고 말한다.

 

출간 직후 ‘침묵의 봄’에 대해 가혹한 비평문을 낸 미국 밴더빌트대의 영양학자 윌리엄 다비는 이 책이 “유기농 정원사, 수돗물 불소화 반대론자, 자연 식품 숭배자, 생기론자나 사이비 과학자, 음식에 까다로운 사람들”의 입맛에나 맞을 책이라고 힐난했다. 그외에도 카슨이 ‘공산주의자’라는 등, 다양한 비판이 각종 언론 매체에 쏟아졌다.

 

그러나 카슨은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이 무색하게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또 카슨은 합성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도 생물학적 방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기술적 해법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이는 과학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나아가 다비의 힐난과 달리, 카슨은 앞서 언급한 독특한 과학적 경력에 더해 합성 살충제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관한 조사를 진행했다. 1958년, 카슨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살충제를 뿌린 다음 수많은 명금류가 죽은 사건에 주목하게 됐다. 이후 카슨은 DDT를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만들어진 여러 합성 살충제들이 조류뿐만 아니라 인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때 카슨은 학위 과정 동안 쌓아 온 다양한 지식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유전학 분야를 예로 들자면 카슨은 방사선 조사로 인한 염색체 이상 연구에 직접 참여하고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합성 화학물질 사용이 염색체 손상을 가져올 가능성을 추론했다. 그녀는 합성 화학물질이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들을 체계적으로 읽고 정리해나가며, 본인이 도출한 과학적 결론을 클라우스 파타우 등 당대의 유전학자들에게 공유해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doi: 10.1016/S0140-6736(05)67182-6

 

이렇게 카슨의 ‘침묵의 봄’ 집필은 본인의 과학적 훈련과 생물학자 경력에 기초한 문제 인식, 조사 능력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나아가 카슨은 본인이 조사하는 주제에 대해 현업 과학자들의 견해를 묻고, 조사 결과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공유하는 등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최신 과학 연구 성과와 자신의 주장을 맞춰 나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만큼만 결론에 반영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의혹3. 카슨의 주장 때문에 말라리아가 퍼졌다?

 

오늘날에도 카슨의 비판자들은 그녀가 ‘침묵의 봄’에서 합성 살충제 DDT의 사용 금지를 주장해 말라리아 환자가 급증했다고 주장한다. 열대 지방의 개발도상국에서는 DDT가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박멸해 말라리아 유행을 억제했다. 그러나 카슨의 비판으로 DDT 사용이 중단되면서 말라리아 환자 수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은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됐는데, 하나는 카슨은 합성 살충제 사용 금지를 주장한 적이 없었고, 다른 하나는 카슨 때문에 DDT 기반의 말라리아 퇴치 정책이 중단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슨은 ‘침묵의 봄’이나 인터뷰에서 본인이 DDT를 비롯한 합성 살충제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거듭 밝혔다. 그보다는 그동안 13.5억 t(톤)에 달하는 합성 살충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해온 상황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것을 ‘침묵의 봄’의 목표로 삼았다.

 

‘침묵의 봄’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미국 정부였다. 1970년 환경 전담 관리 정부 기관인 환경보호청(EPA)이 설립된 뒤로 수천 건의 과학 논문과 정부 기관 과학 보고서가 체계적으로 검토됐다. 그 결과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서는 정파를 막론하고 DDT의 위해가 이득보다 크다는 결론에 도달해 1972년 미국 내 사용 금지 처분을 내렸다.

 

세계보건기구(WHO)나 개발도상국 정부가 카슨 때문에 말라리아 퇴치에 DDT 사용을 중단했다는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다. WHO는 1955년 DDT 살포를 통한 세계 말라리아 퇴치 전략을 채택한 후, 1967년까지 아시아 아열대 국가들과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추진했다.

 

그러나 이후 내성을 가진 모기들이 등장하고 세계적인 퇴치 활동을 지원할 인프라도 부족해지면서 1969년 추진을 중단했다. 1950년대 후반 DDT를 사용해 가장 성공적으로 말라리아를 퇴치한 스리랑카 역시 카슨의 말 때문이 아니라 비용 부담 문제로 DDT를 포기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환경보호를 위해 인간의 생명을 희생시켰다는 카슨에 대한 잘못된 비난이 아니다. 그보다는 DDT가 환경과 인체에 위해를 가한다는 과학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왜 일부 과학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여전히 DDT의 위험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아직 불확실한 것처럼 그려내는지, 이를 통해 이들이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일일 것이다.

 

 

*필자소개 

현재환.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 과학사 연구자로, 한국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는 한국 과학사를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저서로 ‘마스크 파노라마’(공저)가 있다. jhwanhyun@pusan.ac.kr

202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현재환 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
  • 일러스트

    김연정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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