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처음 개봉한 영화 ‘맨 인 블랙’은 끊임없이 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기상천외한 외계인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이들 외계인이 지구인의 모습으로 위장한 채 인간과 섞여 지구에 살고 있다는 설정도 흥행 포인트였다. 무엇보다도 지구를 공격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외계인이 아니라 무섭지 않고 이웃사촌 같은 외계인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지구상 어디엔가 실제로 존재할 것처럼 말이다. 6월 개봉하는 ‘맨 인 블랙’ 시리즈 4편인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에도 어김없이 이런 ‘지구형 외계인’이 등장한다. 그간 ‘맨 인 블랙’ 시리즈 네 편에 등장한 지구형 외계인과 닮은꼴인 지구 생명체를 찾아봤다.
웜 4인방 vs. 멕시칸장님동굴고기 핵심 장기 무한 재생
셀 수 없이 많은 외계인이 등장하는 ‘맨 인 블랙’ 시리즈 네 편에 모두 출연한 외계인이 있다. 지구가 위험에 처하면 가장 먼저 도망갈 준비를 하는 ‘웜(worm) 4인방’이다.
“벌레의 진가를 모르는군요!”
허세도 부리고 재치 있는 대사도 날리며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애쓰는 웜 4인방은 시리즈 3편까지는 점점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4편에서는 당당히 포스터의 중앙을 차지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웜 4인방은 비교적 평범한(?) 재생 능력을 가졌다.
2편에서 ‘설리나(여성지 모델로 자신을 복제하고 맨 인 블랙 아지트에 침입한 외계인)’의 공격을 받고 몸이 두 동강이 나지만, 팔다리가 스스로 꾸물꾸물 기어가더니 다시 몸에 붙어 멀쩡해진다.
이 정도 수준의 재생 능력은 지구에서도 그리 대단한 수준이 아니다. 도마뱀도 꼬리 정도는 재생할 수 있다. 오히려 지구에는 심장도 재생할 수 있는 막강한 재생 능력을 가진 ‘멕시칸장님동굴고기(Astyanax Mexicanus)’가 있다.
마틸다 맘머스티그 영국 옥스퍼드대 발생및재생의학과 교수팀은 멕시코에 서식하는 멕시칸장님동굴고기가 손상된 심장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심장에 손상이 일어나면 심장 수축에 관여하는 것으로 확인된 유전자(Irrc10)가 증가하고, 7일 만에 심장이 복구됐다. doi:10.1016/j.celrep.2018.10.072
재생 능력은 양서류나 파충류를 통해 그 비밀이 상당 부분 밝혀져 있다. 일례로 ‘우파루파’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애완용으로도 키우는 멕시코 도롱뇽인 ‘아홀로틀(Ambystoma mexicanum)’의 경우 신체 일부가 절단되면 그 즉시 특정 기관으로 분화될 수 있는 세포집단(blastema)을 만든다. 그리고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마이크로RNA를 작동시켜 이 세포집단을 절단 부위의 조직으로 분화시킨다. 아홀로틀은 이런 방식으로 중추신경계인 척수도 일부 재생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doi:10.1038/nature25458.
▲몸이 두 동강 나도 회복되는 엄청난 재생 능력을 가진 ‘웜 4인방’. ‘맨 인 블랙’ 전 시리즈에서 한결같이 껄렁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로젠버그 vs. 톡소포자충 뇌에 침투해 숙주 조종
1편에 등장하는 보석상 주인을 기억하는가. 그는 사실 외계인이다. 엄밀히 말해 사람을 숙주 삼아 기생하며 조종하는 외계인이 침투한 사람이다. 그의 뇌 속에는 아퀼리안 종족의 왕자 ‘로젠버그’가 살고 있다.
영화에서 로젠버그는 10~15cm 크기의 소형 외계인으로 사람의 머릿속에 침투해 숙주를 조종하며 생활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버그 종족에 맞서 종족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보물 ‘은하계’를 가지고 지구에 망명한 상태였다. 은하계는 아퀼리안 종족이 가진 능력의 원천을 제공하는 것으로, 로젠버그는 최선을 다해 이를 지키려 하지만 결국 버그 종족 우두머리에게 은하계를 빼앗기고 극중 죽음을 맞이한다.
지구상에도 로젠버그처럼 다른 생물에 침투해 증식하는 바이러스나 기생충이 있다. 로젠버그처럼 뇌와 같은 중추신경계까지 침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쥐의 뇌에 파고드는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이 있다.
톡소포자충은 쥐를 중간 숙주로 삼는다. 쥐의 몸속에 먼저 들어간 뒤, 쥐를 주식으로 하는 고양이에게 최종적으로 침투하는 기생충이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신경계에서 공포심을 일으키는 반응이 억제돼 고양이를 피하지 않고 무모한 공격까지 시도한다.
실제로 2000년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과 연구팀은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가 고양이의 소변 냄새를 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선천적으로 고양이 소변에 공포심을 갖고 있는 쥐의 행동이 톡소포자충 감염으로 바뀐 것이다. doi:10.1098/rspb.2000.1182 이런 행동변화는 이후 연구를 통해 톡소포자충이 쥐의 뇌에 침투한 뒤 후생학적으로 유전자 변화를 일으켜 바소프레신 등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doi:10.1111/mec.12888
영화에서는 로젠버그가 죽자 그가 조종하던 사람도 살아나지 못했다. 신성식 전남대 수의대 교수는 “로젠버그와 달리 톡소포자충은 위험성이 크게 높지는 않다”며 “고양이가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더라도 가벼운 장염 외에는 증상이 거의 없고 생명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설리나 vs. 청줄베도라치 교활한 위장술
영화의 전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눈길을 끄는 악당은 2편에 출연한 설리나가 아닐까 싶다. 매혹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위장한 설리나의 본 모습은 온 몸이 무한 증식하는 촉수로 이뤄진 외계인이다. 설리나는 예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지구의 남성들에게 접근해 그들을 유혹한 뒤 촉수로 공격한다.
친근한 모습으로 변장했지만 실은 무시무시한 외계인인 설리나의 모습은 ‘청줄청소놀래기(Labroides dimidiatus)’로 위장한 ‘청줄베도라치(Plagiotremus rhinorhynchos)’를 연상시킨다. 몸길이 12cm가량의 작은 물고기인 청줄베도라치는 강력한 독을 가졌으며, 비슷하게 생긴 청줄청소놀래기로 변장하는 능력이 있다.
청줄청소놀래기는 다른 물고기의 아가미나 입 안에 붙은 기생충을 먹고 살기 때문에 다른 물고기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청줄베도라치는 이런 점을 이용해 청줄청소놀래기의 모습으로 둔갑한 뒤 안심하고 있던 주변 물고기에게 접근해 마취 독을 쏘고 살점이나 비늘을 뜯어먹는다. doi:10.1098/rspb.2005.3256
▲2편에서 매력적인 모습으로 위장한 뒤 무시무시한 촉수로 공격하는 악당 ‘설리나’. 호감 가는 외모로 위장하는 모습이 마치 청줄베도라치를 닮았다.
보리스 vs. 울버린 개구리 가시는 최고의 무기
3편에는 다른 행성을 침략해 정복하는 게 목표인 보글로다이트 종족의 두목 ‘보리스’가 악당으로 등장한다. 보리스는 가시 뼈를 발사하는 벌레를 무기로 사용한다. 성인 남성을 수m 이상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영화에서 보리스는 지구 침략에 방해가 되는 보호막 ‘아크네트’를 찾아 없애기 위해 1968년 지구에 몰래 침투했다. 하지만 지구에서 외계인 연쇄살인을 저지르다 맨 인 블랙에게 잡혔고, 이후 40년간 감옥에 수감된 처지였다.
지구에도 보리스와 유사한 능력을 가진 개구리가 있다. 발톱을 무기로 사용해 ‘울버린 개구리’라고도 알려진 ‘털개구리(Trichobatrachus robustus)’다. 번식기의 수컷은 마치 털같은 피부돌기가 발달하는 털개구리는 언제든 상대방에게 발사할 수 있는 발톱을 가지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털개구리의 발톱이 케라틴으로 이뤄진 보통 발톱과 달리 뼈와 동일한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2008년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발표했다.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발톱을 발사하고 나면 뼈가 뒤로 후퇴하면서 발톱이 다시 자라난다. doi:10.1098/rsbl.2008.0219
하이브 vs. 흉내문어 누구로도 변신 가능
이번에 개봉한 4편에서 눈길이 가는 외계인은 단연 ‘하이브’다. 하이브는 전작의 설리나와 보리스에 이어 4편의 악당을 맡았다. 하이브의 능력은 다른 생명체와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하는 능력이다. 영화에서 하이브는 맨 인 블랙 요원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 하이브는 위장술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문어나 갑오징어를 연상시킨다. 가령 이름부터 ‘흉내문어(Thaumoctopus mimicus)’인 종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자이언트 크랩, 바다뱀, 넙치, 불가사리 등 40여 종의 생물로 변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문어 껍질에 있는 색소세포(chromatophore)를 이용해 몸 색깔도 바꾼다. 색소세포는 근육 세포와 연결돼 있어 근육이 수축하거나 이완하는 정도에 따라 색이 변한다. doi:10.1098/rspb.2001.1708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해안에 서식하는 ‘코코넛 문어(Amphioctopus marginatus)’도 특이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코넛 문어는 천적이 나타나면 두 다리로 바닥을 걸으면서 나머지 여섯 개의 다리를 공처럼 말아 코코넛 껍데기 속에 숨겨 자신을 코코넛 열매처럼 보이게 만든다.
원용진 이화여대 화학생명분자과학부 교수는 “진화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이런 현상은 생물의 적응방식 중 하나”라며 “포식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방향으로 자연선택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원용진 이화여대 화학생명분자과학부 교수는 “진화생물학적으로 봤을 때 이런 현상은 생물의 적응방식 중 하나”라며 “포식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방향으로 자연선택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 코코넛으로 변신 중인 코코넛 문어.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아 코코넛 껍데기에 넣어 위장한다.
‘맨 인 블랙’ 같은 지구형 외계인이 살고 있다?
영화 ‘맨 인 블랙’의 세계관처럼 외계인이 인간과 지구에서 공존할 가능성을 주장하는 인물이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4월 29일자에 지영해 옥스퍼드대 동양학부 교수의 인간과 외계인의 혼혈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보도했다. 지 교수는 1999년 출판된 데이비드 제이콥스의 소설 ‘위협: 외계인의 비밀을 들추다(The Threat: Revealing the Secret Alien Agenda)’를 접한 뒤 20년 간 외계인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주로 외계인에게 피랍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외계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5월 11일 영국에 있는 지 교수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외계인은 정말 존재하는가?
일반인이 외계인에 대해 믿지 못하는 건 현재 과학적 상식으로는 당연하다.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보다 월등한 존재라는 점을 부정하는 마음이 크다. 심리적으로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UFO(미확인비행물체)를 보거나 외계인과 직접 접촉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물론 증언 중에는 거짓으로 판명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사례들은 거짓으로 단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Q. 증언이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
외계인에게 피랍됐다고 주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외계인의 형상을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증언을 한 사람 중 직접 취재한 이들은 외계인이 사마귀를 닮은 곤충형과 눈이 큰 그레이형이라고 얘기한다. 그레이형은 머리와 눈이 크고 코와 입이 퇴화한 모습을 말한다. 두 발로 걷고, 눈코입이 사람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고 기술한 부분도 일치했다. 외계인이 인간을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Q. 증언에 따른 외계인과 영화 ‘맨 인 블랙’의 외계인을 비교한다면?
(웃음) 영화에 나온 외계인은 상상 속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피랍자들의 증언으로 살펴봤을 때 외계인이 몸을 재생하는 능력이 있다거나 사람의 뇌로 침투해 조종을 한다는 등의 증언은 전혀 없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즐기는 게 좋을 것 같다.
Q. 외계인의 존재를 연구하는 이유는?
현재의 생각의 패러다임 속에서 외계인의 존재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계인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은 역사나 과학을 공부해야하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본다. 이런 학문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고,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폭넓게 이해하고 있다. 외계인이 지구에 있든 저 멀리 떨어진 우주에 있든, 현재는 어느 것도 단정할 수 없는 상태다. 외계인 연구를 통해 누구나 납득할 수밖에 없는 성과를 거둔다면 우리의 의식을 다른 차원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